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78화 (78/306)

78. 밝혀진 진실. (1)

***

정말 당혹스럽다.

“혹시 이 반에 서이나 누나 있나요!”

자꾸 날 찾아다니는 저 솜사탕 때문에.

나는 안경희와 같이 음악실로 향하려 반 문을 열다 말고 멈칫했다. 슬쩍 고개를 빼서 살펴보자 아니나 다를까 분홍색 솜사탕은 이 반 저 반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어쩐지 반을 나서기 전부터 복도가 어수선하다 싶었다.

“하아…. 경희야, 우리 다음에 보자.”

“으, 응…! 나, 난 상관없어!”

저대로 내버려 뒀다간 온 반을 휩쓸고 다닐 기세라 난 안경희에게 양해를 구한 후, 무거운 발걸음으로 그 녀석에게 다가갔다.

“솜사, …이윤 후배님?”

하마터면 솜사탕이라고 그대로 부를 뻔했다. 황급히 호칭을 수정하며 떨떠름히 녀석을 부르자, 솜사탕 머리의 이윤 후배님이 이쪽을 돌아봤다.

“아! 찾았다! 누나 엄청 찾았어요!”

그러자 날 발견한 이윤은 활짝 얼굴을 펴며 반색했다. 우왁,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아. 만화의 특수 효과처럼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

‘…이렇게 반길 일인가?’

그와 나와의 접점은 거의 전무했다. 솔직히 오늘 처음 본 사이에 내가 다녔던 중학교의 라이벌 학교 출신이기도 하다. 그런데 얘는 왜 날 처음 볼 때부터 반기는 걸까? …뭐, 그것보단 우선 자리를 이동하는 게 급선무였다. 온몸이 시선으로 따가워 버틸 수가 없었다.

“어, 그래.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자리부터 옮길까?”

“네~!”

이윤은 정말 해맑게 대답했다. 천진난만한 그 모습이 진짜 고등학생이 맞나 의심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저희 어디 가요? 네? 누나가 학교 안내해 주는 거예요? 와!”

“…그거 아니니깐 그냥 오렴.”

하지만 밝아도 너무 밝았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 기가 쫙 빠지는 것 같았다. 아침부터 계속 피곤하긴 했지만 이 녀석 옆에 있으니 더 피로해지는 느낌에 책상에 엎어져 자고 싶어졌다.

“저기 누나, 누나. 누나 몇 반이에요? 제가 3반까지 둘러봤으니깐~ 4반? 5반? 네? 6반부터 8반까진 이쪽 복도에 없잖아요. 그쵸?”

이윤은 정말 가는 내내 쉴 새 없이 떠들었다. 뭐가 그리 반가운지 내 옆을 자꾸만 기웃거리며 말을 거는 모습에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녀석을 보았다.

“저기, 내가 낯을 좀 가려서 그러는데 우리 지금은 좀 조용히 가면 안 될까?”

“앗! 그러시구나! 그럼 저 입 다물고 있을게요! 합!”

솜사탕 머리는 두 손으로 자신의 입을 탁 막았다. 그 사랑스러워 보이는 모습에 복도 한쪽으로 서 있던 여자애가 심장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그걸 본 난 조용히 흐린 눈을 하며 모른 척 지나갔다.

“그래서, 대체 무슨 일인데 날 찾은 거야?”

이번에도 여지없이 창고로 쓰는 교실로 온 나는 다짜고짜 그에게 본론을 캐물었다. 이윤은 오는 내내 입을 가리고 있던 두 손을 내리며 배시시 웃었다.

“누나랑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요.”

“무슨 얘기.”

시큰둥하게 묻자 이윤은 기대 어린 눈으로 내게 거리를 좁혀 왔다.

“누나, 누나. 외계인 맞죠?”

“…….”

내 얼굴이 저절로 떫어지는 게 느껴졌다. 이 자식이 자꾸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까부터 외계인, 외계인. 무슨 개소린진 모르겠지만 난 평범한 사람…”

“제가 아는 외계인 씨가 그랬어요.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이 있다고!”

흠칫, 나는 그 말에 하려던 말을 멈췄다. 이윤은 눈을 한껏 반짝이며 말을 이어 갔다.

“자신이랑 비슷하면서도 비슷하지 않다고, 막 그랬어요!”

“그게…, 무슨….”

머리가 새하얘졌다. 이 녀석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외계인? 다른 세계? 비슷하면서도 비슷하지 않다고?

“그러니까, 누나는 외계인이 맞는 거죠?”

“아니, 그건 아니고…. 우리 진정하고 차분히 얘기해 보자.”

자신의 생각에 확고한 자신감을 갖고 있는 그 태도를 보고 있자니 저절로 머리가 아파 왔다. 나는 손을 내저으며 지끈거리는 두통에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그 외계인…, 우선 그 외계인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줘.”

“으음~.”

이윤은 내 말에 턱에 손을 가져다 대더니 심각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곤 느릿하게 서두를 꺼내기 시작했다.

“외계인 씨는 말이죠~.”

꿀꺽, 나는 이유 모를 긴장감에 침이 저절로 삼켜졌다. 인소에서 이런 타입이 사차원적인 말을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런 말들은 별 의미 없이 엉뚱하고 귀여운 매력만 더하는 정도였는데… 하지만, 그게 정말 사실이었다면? 어쩌면, 어쩌면, 지금 이 순간 내가 이 세계에 온 사실이 밝혀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게 일어난 불가사의한 울렁증과 아침에 들었던 낯선 목소리. 그 모든 게 말이다.

“음~, 으으음~!!!”

그런데 이윤은 자꾸만 뜸을 들이며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나는 그럴수록 자꾸만 긴장으로 손을 제자리에 두질 못하고 쥐었다 폈다 반복했다. 그렇게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을 때,

“음! 역시 잘 모르겠어요!”

“……뭣.”

이윤이 천진난만하게 대답을 내놓았다. 그와 동시에 나는 삐끗한 심정을 느꼈다.

“모, 모른다고…?”

“네! 얼굴을 본 것 같긴 한데 잠에서 깨어나면 자꾸 잊더라고요. 그래서 대충 얘기해 줬던 내용 몇 개 기억나는 게 다예요!”

너무 황당해서 말을 더듬으며 되묻자 이윤은 성실하게 답해 줬다. 나는 그에 잠시 할 말을 잃곤 잠시 입술을 꽉 깨물며 한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아, 가끔 깨어 있을 때도…,”

“…됐다.”

기대한 내 잘못이지. 더 들을 가치도 없었다. 나는 그의 말을 자르곤 앞으로 삐져나온 머리칼을 강하게 억누르며 뒤로 넘겼다.

“간다.”

지금 여기 있으면 화를 낼 것 같았다. 괜히 시간을 내 줬다. 이럴 줄 알았다면 대충 대꾸하고 돌려보낸 후 반으로 돌아가 안경희랑 음악실이나 갈 걸 그랬다. 속이 뒤집어질 것처럼 부글거리는 기분을 내리누르며 성큼성큼 문으로 향했다.

“어, 잠깐만요! 저 아직 얘기…, 응?”

이번엔 그가 뭐라 하든 말든 무시했다. 놀리는 것치곤 진지해 보였지만, 내겐 장난치는 걸로밖에 안 들렸다. 인상을 굳히며 닫힌 문을 열어 나가려는데,

“…외, 계인 씨?”

그의 나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듣자, 내 몸은 반사적으로 멈췄다. 이번엔 또 어떤 장난으로 나를 농락하려는 건가 싶었다. 그래서 다신 그딴 짓을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기 위해 한 소리 하려 뒤를 돌았다.

“작작 좀…!”

“우리 이야기 좀 할까?”

흠칫, 난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하려던 말을 멈추었다. 이윤은 나를 보며 조용히 미소 짓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너무나 이상하게 느껴졌다.

‘분위기가 변했어.’

마치 다른 사람인 것 같았다. 분명 같은 외형인데, 방금과는 전혀 달랐다. 어린아이처럼 명랑한 기색은 사라지고 차분한 여유가 그의 몸에서 풍겨 왔다.

“이윤…?”

“…….”

그는 내 부름에 조용히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 이윤과 다른 깊은 눈과 마주하자 그 이름을 긍정하는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로써 나는 확신했다. 지금 이 사람은 방금까지완 다른 사람임을. 이윤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너, 누구야.”

내 말이 이상하단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묻지 않고선 안 될 것 같았다. 만약 이게 연기라면 질이 나빴다. 어쩐지 내 감이 그게 아닐 거라고 자꾸만 외치고 있었다.

“내 정체는 지금은 그리 중요하질 않겠지. 시간이 없으니 당장은 이 몸이 말하는 외계인으로만 알고 있어도 좋아. 언젠간 제대로 얘기할 날이 올 테니. 지금은 급히 알고 싶은 게 있을 테지?”

그가 눈을 부드럽게 휘며 웃음 지었다. 나는 그 말에 침을 꼴깍 삼키며 최대한 침착하게 그 앞으로 다가섰다.

“당신은, 모든 걸 알고 있나…요?”

어쩐지 경어를 붙여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원래의 이윤도 그 존재감이 강했지만, 눈앞에 있는 이 존재는 그 무게가 달랐다. 마치 큰 어른을 눈앞에 둔 기분이었다. 주먹을 꽉 쥐며 온몸에 긴장을 불어넣고 있자, 그가 내 질문에 대한 답을 해 주었다.

“그대가 알고 싶은 건 모두 알지도.”

역시! 차오르는 희망에 쥔 주먹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그럼 말해 주세요. 죽어야 했을 제가 왜 여기에, 왜 열다섯 살의 서이나에게 빙의를 했나요. 그리고 죽기 전에 들었던 그 목소리는 대체 뭐고, 왜 저와 이쪽 세계의 서이나를 비교할 때마다 자꾸만 속이 뒤틀려 버리는지요…!”

나는 그동안 참고 참아 왔던 의문점을 폭발시키듯 던졌다. 아무리 의연하게 있으려 노력해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는 점점 자신을 안달복달하게 만들었다. 그때마다 심장이 벌렁거렸고, 혹시 또 죽는 게 아닐까 불안해 자꾸만 공포가 밀려왔었다. 그 어느 누구도 해명할 수 없는 진실에 나는 점점 미쳐 가는 게 아닐까, 자조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살고 싶었다. 내게 주어진 이 또 다른 기회를, 이 삶을, 가꾸어나가고 싶었다.

“속이 뒤틀려?”

그런데 이윤, 아니, 정체불명의 존재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이해가 안 가는 것처럼.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방금 다 안다고 하지 않았나요. 근데 왜 못 믿는 건데요.”

그 반응이 왠지 내 말을 믿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로 인해 내 심사는 저절로 뒤틀려졌다. 말도 뾰족하게 날이 서자, 그는 고개를 차분히 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게 아니라 더 고통스러웠을 텐데? 마치 영혼이 분리되고 당장이라도 정신을 잃지 않는 게 용할 정도로.”

“……!”

내 상태를 정확히 짚는 그 대답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확실히 그런 적은 여러 번 있었다. 다만, 그때마다 어떻게든 버텨 끝끝내 정신을 잃지 않았고, 너무 과민하게 반응한 것이 아닌가 싶어 외면했기 때문이었다.

“그대는 고통에 익숙한가 보군.”

그리고 그는 이런 나를 아주 단순하게 정리했다. 아니, 복서 생활을 했다 보니 틀린 말은 아닌데 어쩐지 부정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 맞는 건 나름 익숙해요.”

으음…? 어쩐지 해명해 놓고 더 이상해진 기분이었다. 이게 아닌 것 같은데…. 왠지 떨떠름해져 더 항변하고자 고민해 보는데,

“뭐, 그건 언젠간 기회가 되면 더 듣도록 하지. 그보단 시간이 없으니 그대가 궁금한 것들에 대해 설명해 주도록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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