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83화 (83/306)

83. 생각지도 못한 만남. (3)

“아씨, 이건 또 뭐야?!”

“아, 죄송합니다!”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사과를 입에 올렸다. 부딪힌 이마가 욱신거리긴 했지만 괜찮았다. 그래서 한 번 더 사과를 하고 떠나려는데,

“…뭐야, 도방고잖아? 하, 시발. 마침 잘됐다.”

부딪힌 놈이 갑자기 날 붙잡았다. 난 이 난데없는 상황에 눈을 크게 뜨는데, 그 녀석이 갑자기 팔로 내 목을 죌 것처럼 감싸더니 골목 안쪽을 향해 소리쳤다.

“야! 적당히 해, 새꺄! 여기 니네 학교 인질 있다!”

“……?”

뭐? 이, 인질? 누가. 내가? 황당한 내용에 눈을 끔뻑이다가 고개를 돌려 골목 안쪽을 확인했다. 그러자 난 바로 보이는 광경에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저거.”

퍽, 퍼억, 퍽! 쓰러진 상대를 향해 발길질을 하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쓰러진 이는 몸을 움츠리며 최대한 몸을 가드하고 있었지만 그 충격이 꽤나 커 보였다.

“아, 씨발! 적당히 하라고!!”

그 모습에 날 붙잡고 있던 녀석이 초조한 것처럼 소리쳤다. 그러자 일방적인 폭력을 보이던 남자의 발이 우뚝, 멈췄다. 그리고 슥, 고개를 돌려 그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나는 그 존재에 눈을 크게 떴다. 화려한 그의 금발 때문이 아니었다. 이곳을 바라보는 그의 두 눈이, 새빨간 핏빛의 색이었기 때문이었다.

“…최강혁?”

자동적으로 그 이름이 떠올랐다. 저렇게 인상 깊은 얼굴은 이 세상에 별로 없을 터였다. 그는 화려한 색조만치 얼굴 또한 조각 같았다. 하지만, 무감한 그의 낯으로 인해 영혼이 없는 차가운 조각상을 연상케 했다.

생각도 못 한 만남이었다. 설마 이 녀석까지 만나다니. 분명 학교에 등교하지 않았다고 들었…, 아니, 그의 복장은 학교에 다녀왔다는 걸 증명하지 않은 것처럼 사복인 차림이었다. 그렇다면 이 근방에 볼일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이 근처에 사는 걸까? 여러 생각이 마구잡이로 섞여 뻗쳐 가는데, 마주친 시선이 나를 대충 훑는 기색이 느껴졌다.

“…….”

그리고 그는 바로 고개를 돌렸다. 마치 나는 하등 관심이 없다는 듯 말이다. 다시 발길질을 재개하려는지 발을 다시 들어 올리고 있었다.

“야! 야!!! 인질 있다니까?! 안 들리냐고!!”

그 행동에 당황한 건 나를 붙잡고 있던 녀석이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지금 최강혁이 하고 있는 행위는 내게 있어선 있을 수 없는 행위였다. 그가 발을 들어 올리는 모든 순간이 슬로비디오처럼 느릿하게 흘렀다. 그 용납되지 못한 상황에 난 이를 아득 깨물었고, 동시에 붙잡고 있던 녀석의 손목을 꺾어 단번에 풀어냈다.

“윽?!”

갑작스러운 내 공격에 날 붙잡고 있던 녀석이 당황해했다. 하지만 나는 지체치 않고 단숨에 그 손을 놓고 뛰어갔다. 힘을 실어 최강혁의 몸에 내 몸을 냅다 들이박았다.

“윽…?!”

최강혁은 예상치 못한 돌진 공격을 당한 몸이 휘청이며 나와의 거리가 벌어졌다. 그래서 난 뒤에 쓰러진 녀석을 보호하듯 서며 최강혁에게 항의했다.

“그만하라는 말 안 들려? 이미 쓰러졌잖아. 이게 무슨 비매너지?”

“…허.”

그러자 최강혁은 날 보며 어이없단 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리고 날 내리깔며 낮게 경고했다.

“같은 꼴 되고 싶지 않으면 비켜.”

“하.”

그 말에 이번엔 내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이 새끼, 질이 안 좋네. 눈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난 그를 향해 조소하며 대꾸했다.

“할 수 있다면 해 봐.”

자연스럽게 몸은 시동을 거는 것처럼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녀석의 공격에 대응할 자세를 만들어 냈다. 최강혁도 내가 진심이란 걸 느꼈는지 그 눈매가 가늘어졌다. 덕분에 그 붉은 눈동자엔 음영이 깃들어 더 스산함을 연출했다.

“…재밌네.”

피식, 웃는 것과 함께 그의 손이 움직였다. 찰나였다. 난 한쪽 팔을 들어 올려 그 손의 궤적을 어깨로 맞추려는데,

퍼억!

그의 얼굴 옆면으로 무언가가 날아왔다. 그리고 그 물건이 툭, 하고 가벼운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 궤도를 멍하니 좇아 바라보니 그 물건의 정체는 가방이었다. 그 뜬금없는 정체에 난 가드하려던 것도 잊고 어정쩡히 팔을 들어 올린 채 멍하니 입을 벌렸다.

게다가 맞은 당사자는 이번 타격에 물리적으론 그리 아프진 않더라도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은 모양인지 잠시 경직되어 있었다. 나는 녀석을 경계하면서 슬쩍 날아온 그 진원지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막 무언가를 던진 자세에 얼굴이 잔뜩 굳어져 있는 여자애가 한 명 있었다.

나는 그 생각도 못 한 정체에 눈을 깜빡였다. 여자애? 지금 상황에? 설마 저 가방을 던진 게 저 아이야? 얼떨떨함에 그녀를 보고 있자니, 옆에서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래서 반사적으로 다시 자세를 취하는데, 예상과 달리 최강혁은 내 쪽이 아닌 여자애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넌 또 뭐야.”

“그, 그만두세요!”

최강혁은 꽤나 성질이 난 모양인지 목소리가 꽤 언짢아져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가방을 던진 용자인 만큼 여자아이는 꽤나 담력이 있는 모양인지 몸을 떨긴 했어도 그에게 지지 않고 소리쳤다.

“저 여자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왜 나서서 지랄이냐고.”

“그, 그럼! 사람이 쓰러져 있는데 그냥 지나가요?!”

“하. 죽고 싶어?”

여자애의 대꾸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최강혁은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여자를 내리깔아 봤다. 그러자 여자애는 몸을 흠칫 떨며 두려운 낯으로 질려 했지만, 곧 창백한 안색과는 달리 눈을 부라리며 대범하게 외쳤다.

“저, 저 경찰에 신고했어요! 그, 그러니까 저 때리면 당신만 손해예요!”

하지만 말을 할수록 무섭긴 했는지 끝내는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헛웃음을 터트리는 최강혁 덕에 놓고 있던 정신을 되돌렸다.

“하! 완전 골 때리는군. 이 학교엔 이상한 여자들뿐이야?”

이 학교? 나는 그제야 여자아이가 입고 있는 교복을 확인했다. 최강혁의 말대로 그 여자아이도 패딩 안에 나와 같은 교복을 착용한 게 보였다.

‘잠깐.’

이 상황. 이 타이밍. 그리고 저 용감무쌍한 행동. 혹시, 저 여자아이가…?

경악과 가까운 감정에 입을 떡 벌어졌다. 하지만, 그런 내 입장은 안중에도 없는 최강혁이 쯧, 하고 혀를 찼다.

“재미없어졌어.”

그러곤 그는 여자애 옆을 지나 우리만 덩그러니 남겨 두고 떠나갔다. 갑자기 상황이 종결됐다. 그래서 난 잠시 상황을 파악 못 하고 어리벙벙하게 서 있다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남자아이 덕에 정신을 차렸다.

“찬영아, 정신 차려 봐!”

“…찬영? 고찬영?”

그의 말에 놀라 쓰러진 녀석을 바라보았다. 확인해 보니 피를 많이 흘리긴 했어도 정말 그는 고찬영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를 부르는 남자애의 얼굴도 익숙한 걸 보니 아침에 만났던 무리 중 한 명이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다른 녀석들은?”

왜 여기에 이 녀석들만 덩그러니 있는 거지? 분명 네다섯은 더 있었던 걸로 기억했다. 혹시 무리에서 잠시 이탈했다가 최강혁과 싸움이 붙은 건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난 곧 고개를 젓고 고찬영을 흔들고 있는 남자애의 어깨를 붙잡았다.

“여기서 가까운 병원부터 가자. 내가 알려 줄게.”

그는 내 접촉에 깜짝 놀랐다가 내가 하는 말에 입을 꾹 다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남자애에게 고찬영을 부축하라고 지시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가 긴장이 풀리면서 다리에 힘이 빠졌는지 주저앉아 있는 여학생을 발견했다.

“저기, 도와줘서 고마워요. 경찰한테는 설명 좀 잘 부탁드릴게요.”

그 여학생은 눈을 깜빡이며 멍하니 나를 보았다. 그러곤 곧 내가 한 말의 의미를 뒤늦게 파악했는지 몸을 흠칫거리며 고개를 황급히 저었다.

“아, 그, 그거 거짓말이에요! 저도 모르게 가방을 던진 거라 마땅히 할 말이 없어서 그만. 하하하….”

그녀가 멋쩍게 웃으며 볼을 쓸었다. 나는 그 말에 잠시 벙쪘다가 곧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푸핫, 하하! 아, 일어날 수 있겠어요?”

“아, 네!”

내가 손을 뻗어 일어서는 걸 도와주려 하자 여학생은 거절치 않고 내 손을 붙잡았다. 자세히 본 그 여자애의 얼굴은 꽤나 예쁘장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분위기는 여느 아이처럼 평범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방금 보여 준 대범함으로 보아 실제론 그리 평범하진 않겠지. 나는 눈앞에 있는 여자애를 짧게 평가를 내리며 그 몸을 일으켜 주자, 여자애는 몸이 잠시 휘청이긴 했지만 곧 안정적으로 설 수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난 다시 한번 그녀에게 감사를 전했다.

“어쨌든 도와줘서 고마워요. 덕분에 일이 커지지 않았어요.”

“아, 아뇨! 그, 아침의 사죄기도 하고 그래서 제가 감사받을 필욘 없어요.”

“아침?”

뜬금없는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여학생은 눈썹을 모으곤 잠시 시선을 방황시키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기, 기억 안 나세요? 오늘 아침에 트럭….”

“아, …아-?!”

트럭이란 한 단어에 바로 떠올랐다. 그땐 경황이 없어서 잘 살피진 못해 얼굴도 기억 못 하고 있었다. 설마 날 밀친 애가 바로 얘였단 말이야?! 이건 또 무슨 우연이지?!

‘아니, 잠깐만. 그렇다면 여주…로 보이는 애가 날 밀쳤다고?’

어떻게 이런 일이! 사실은 아침 댓바람부터 이미 얽히기 시작한 거였나?! 나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경악하다가 내 옆에 슬쩍 선 커다란 기척에 정신을 차렸다.

“아, 어, 아, 아무튼, 그, 조심히 가, 가요! 그럼 이만!”

딱 봐도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질 않은 고찬영이었다. 고찬영은 의식을 잃었는지 남자애의 등에 업혀 축 늘어져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병원에 가야만 했다. 그래서 난 황급히 인사를 하며 서둘러 발을 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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