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90화 (90/306)

90. 이런 인기는 필요 없어! (5)

***

“와-, 진짜 피곤해.”

이거 얹힌 거 아냐? 나는 더부룩한 속을 느끼며 배를 쓸었다. 반휘혈의 축하 자리는 작년에 초대되어 한 번 가 봤던 한도훈네에서 이뤄졌다. 거창하다곤 하긴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작다고 할 순 없는 홈 파티였다. 인원은 소소하게 할 모양이었던지 우리들로만 구성되었고, 그 수에 비해 호화로운 요리들이 가득 전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주최자와 주인공이 문제였다. 그들은 도통 기분이 풀릴 생각이 없는지 냉랭한 기운을 뿜어냈고, 결국 파티 내내 삭막하기 짝이 없었다. 덕분에 난 음식들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이야기를 시도 안 해 본 건 아니었다. 몇 번이나 도전해 봤지만, 끝내 장렬히 실패만을 남겨서 문제일 뿐…. 난 입안에서 쓴맛을 맛보며 그들과 헤어졌다.

그리고 현재, 난 방금 있었던 일을 흐린 눈으로 떠올리며 공부에 필요한 학용품을 사기 위해 밖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휘혈이는 그렇다 치고, 도훈이 걔는 이윤이 그렇게 싫은 건가?”

반휘혈이야, 자기 기분 나빠지면 말이 없어지니 그렇다 쳐도 한도훈의 행동은 너무 낯설었다. 평소 살갑던 인상을 다 어디로 내던졌는지 모르겠다. 정말 이윤을 그렇게 경멸하는 줄 알았다면 번호를 주지 말 걸 그랬나 보다. 덕분에 굉장히 귀찮은 사건이 되어 버렸다.

‘이제라도 이윤한테 내 번호 삭제해 보라고 얘기해 봐…?’

지금 당장 떠오르는 답이라곤 이것뿐이었다. 그러나, 곧 고개를 저었다. 서른 살의 내가 이 세계에 온 가장 큰 실마리인데 이런 중요한 연결점을 없애고 싶진 않았다. 그렇다면 역시 한도훈과 제대로 얘기를 해야 하는데…, 언제쯤이면 가능할지 가늠이 되질 않아 머리가 다 아파 왔다.

“어우, 몰라. 다음에 만나면 다시 얘기해 봐야지.”

터덜터덜, 마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귀찮은 기색이 가득 담긴 발걸음이 거리를 거닐었다. 나는 어느새 어둑해진 하늘을 보며 잠시 머리를 비웠다. 그러다가 어느 골목을 들어서던 찰나,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퍽!

“크윽…!”

“음?”

벽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와 사람의 신음 소리였다. 느낌이 싸했다. 나는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슬며시 그 안쪽 골목을 조심스레 살폈다. 그리고 보이는 광경에 눈을 차게 내리깔았다. 다름이 아니라, 그 골목에선 한 사람을 두고 열댓 명의 사람이 구타를 하기 위해 몰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야.’

나는 짧게 혀를 차면서 이 황당한 상황에 열이 오르는 게 느껴졌다. 피곤한 건 피곤한 거였지만, 이렇게 불공평한 대치는 정말 질색이었다. 반휘혈 같은 애면 몰라. 평범한 일반인이라면 그냥 일방적인 유린일 뿐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슬며시 입고 있던 패딩의 후드를 뒤집어썼다. 적당히 치고 들어갈 타이밍을 간 보려고 하는데,

“고찬영 없으니깐 존나 만만하네.”

“아주 그 미친 들개 새끼 아래서 꿀 좀 빨았지? 너 존나 재수 없었는데 잘됐다.”

…고찬영? 그 사대천왕의, 아니, 이젠 전 사대천왕이려나? 아무튼 그 녀석 이름이 왜 여기서 나와? 당황스러움에 잠시 행동을 멈추고 상황을 지켜봤다.

“하…! 찬영이 앞에선 아무것도 못할 새끼들이…. 너희들이 이런다고 찬영이 발끝도 못 따라가.”

벽에 몰렸던 이가 이를 꽉 깨물며 그들에게 대항했다.

“뭐, 이 새꺄?”

“존나 사람 대우해 줬더니 기어오르네?”

“씨발. 좆같네. 야, 잡아.”

그러자 둘러싸던 녀석들이 기분이 확 상했는지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윽…! 놔!”

고찬영과 한패로 추정되는 녀석이 반항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그는 다친 모양인지 힘이 미약했다. 곧 그는 붙잡혔고 무릎이 꿇려졌다.

“고분고분했으면 이 상황까진 안 왔을 거 아냐.”

“여자 소개시켜 주는 게 그렇게 어렵냐? 어?”

“고찬영도 다 죽어 가는 마당에, 걔가 알고 있는 여자들 연결해 주는 게 그렇게 어렵냐고. 존나 생긴 것처럼 까탈스러운 새끼. 그냥 고찬영이 있는 척 조용히 데려오기만 하면 되는데 사람 귀찮게 하고 있어.”

“꺼져. 더러운 새끼들아.”

퉤, 하고 붙잡힌 녀석이 다른 한 놈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나는 그 말에 대강의 상황을 파악했다. 동시에 내 머리는 단번에 차가워졌다. 이로써 내가 움직일 명분은 제대로 갖춰졌다.

“고찬영 뼈 부러졌댔나? 너도 같은 꼴…, 커헉!”

빠악! 하고 살벌한 소리가 골목에 울려 퍼졌다. 나는 뻗은 다리를 느릿하게 회수하며 몰린 시선을 조용히 돌아봤다.

“너, 너 누구야!”

“뭔데 갑자기 끼어들고…! 끄억!!!”

나는 위협스럽게 다가오며 손을 들어 올리는 녀석의 옆구리를 강하게 찼다. 또 한 명 픽, 하고 쓰러지자 갑자기 두 명의 아군을 잃은 녀석들이 주춤하기 시작했다.

“씨, 씨발! 너, 너, 넌 뭐, 뭔데!”

고찬영의 편을 붙잡고 서 있던 녀석이 겁을 먹은 것처럼 소리쳤다. 나는 그런 녀석을 깊게 눌러 쓴 후드 아래서 조용히 노려보다 히죽 웃었다.

“너희 뼈 부러뜨려 줄 사람.”

“뭣…! 크허억!!”

그리고 골목 안에선 짧지만 강렬한 비명이 한차례 이어졌다.

***

“괜찮아?”

“아, 네….”

상황이 대충 종결되고 툭툭, 가벼이 발로 바닥을 두드렸다. 간에 기별도 안 가는 시시한 싸움이긴 했지만, 오랜만에 싸움을 해서 그런지 몸이 살짝 삐걱거리는 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오늘 운동도 제대로 안 했지, 참. 나는 뒷목을 주무르며 아직까지 주저앉아 있는 아이를 일으키기 위해 손을 뻗었다. 아이는 내 손을 멍한 기색으로 붙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윽….”

“많이 다쳤어?”

그런데 녀석이 일어서자 잠시 옆구리를 부여잡으며 신음을 내뱉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어깨를 붙잡아 지탱하며 상태를 살폈다. 그러자 녀석은 괜찮다며 내게서 몸을 물리며 멀어졌다.

“…저기, 감사합니다.”

“뭘.”

그의 인사에 나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아이는 그런 날 잠시 바라보다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 실례지만, 조커…, 맞죠?”

나는 그 말에 눈을 크게 뜨며 그에게서 한 발자국 멀리했다. 그리고 혹시 얼굴이 드러났을까 싶어 후드를 더 강하게 내리누른 후, 목소리를 최대한 낮게 깔며 말했다.

“흠, 흠. 난 모르겠는데.”

“역시 맞구나.”

씁. 역시 씨알도 안 먹히나. 떨떠름한 마음에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자, 그가 안심하란 것처럼 작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저 얼굴 못 봤어요. 어차피 주위가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는걸요.”

…하긴. 나도 이 녀석 얼굴이 가까이 있지 않고선 희미한 가로등 불빛에 얼굴의 형태가 비친 것 말고는 정확히 보이질 않았다. 조금 안심이 된 난 어깨에 살짝 힘을 빼며 그에게 물었다.

“병원 가 봐야 되지 않아? 이 근처에 병원 어딨는지 알고 있어?”

고찬영이랑 관련 있는 걸 보면 이 녀석도 타지 출신일 게 분명했다. 혹시 그 오토바이 멤버 중 한 명이려나? 나름대로 추측하며 병원이 어딨는지 알려 주기 위해 입을 열려는데, 그가 고개를 저었다.

“알고 있어요.”

“그래?”

의외의 말이었지만, 주위를 돌아다니다가 발견했겠다 싶었다. 그래서 이젠 별달리 이곳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게 된 난 헤어지기 위해 인사를 전했다.

“그럼 난 가 볼게. 또 이상한 놈들이랑 엮이지 말고, 친구들이랑 같이 다녀.”

“…네.”

어쩐지 한 박자 느린 대답이었다. 무언가 석연찮은 기분이 들었지만, 이 이상 관여할 이유는 내게 없었다. 찝찝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떨쳐 내고 골목을 빠져나가려는데,

“…저기!”

응? 갑자기 녀석이 나를 불렀다. 나는 또 할 말이 있나 싶어 살짝 몸을 돌리자, 녀석은 잠시 입을 달싹거리다가 곧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작게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도와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고, 인사하고 싶어서요.”

나는 잠깐 동안 말없이 녀석을 보았다. 그의 찌푸려진 미간이 왠지 시선을 사로잡았다.

‘…어? 잠깐, 저 녀석은?’

그러다 난 그의 얼굴이 낯설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분명, 저 아이는 그저께 고찬영과 같이 있던…,

“너, …아니, 아니다. 조심히 들어가.”

순간적으로 좀 더 깊게 파헤칠 뻔했다. 하지만, 곧 이성이 그것을 제지해 가까스로 막았다. 나는 짧게 혀를 차며 뒷머리를 긁적이다가 다시 몸을 돌린 상태로 대충 손을 흔들어 작별을 고했다.

“…….”

그런 내 뒤로 붙잡는 말은 더는 없었다.

***

‘찝찝해.’

집에 돌아오고 나서도 그 기분은 계속 이어졌다. 나는 침대에 뒹굴거리다가도 떠오르는 그 표정이 어쩐지 자꾸만 눈에 거슬렸다.

“…정신 차려, 서이나. 너 지금 상황으로도 벅차. 일 벌이지 말고 조용히 있어.”

그래서 난 스스로에게 경고를 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불편한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으으, 저절로 찾아오는 골치에 신음이 새어 나왔다. 나는 그것을 떨쳐 내기 위해 침대를 거칠고 뒹굴다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걘 왜 혼자 있던 거지?’

앗! 스스로 생각한 내용에 머리를 붙잡았다. 서이나, 이 바보 멍청이! 얌전히 있어도 모자랄 판에 왜 이딴 생각을 하는 건데! 정말 자신이 호구 같았다. 내가 언제부터 불의를 보면 못 지나치는 정의의 사도 같았다고…. 그만 잊자, 그만 잊…,

‘도와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고, 인사하고 싶어서요.’

“으아아아악…! 젠장!!!”

벌떡,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귓가에 맴도는 그 안쓰러운 목소리, 그 표정! 게다가 최강혁과의 싸움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던 고찬영의 모습까지 연달아 떠오르자 짜증이 순식간에 차올랐다.

난 거칠게 머리를 헝클이며 내던져 놨던 폰을 들어 올리며 전화번호부에 찍혀진 어느 연락처를 꾹 눌러 통화를 연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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