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이런 인기는 필요 없어! (10)
헐. 나는 그 황당한 말에 바로 탄식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건 나뿐만은 아니었는지, 묘하게 흥미가 없어 보이던 안경희와 호기심 가득해 보였던 이혜인의 관심을 모두 가져갔다.
“너, 그거,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그 말을 직접 들은 당사자는 우리처럼 어이가 없었는지, 순간 멈칫했다가 심각하게 되물었다.
“어? 어…. 얼굴이 잘생긴 걸 보면, 혹시 모델이나 아이돌 지망생이라도 되는 거야?”
“너, …그게 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어쩜 좋아, 어떻게 반휘혈을 모를 수가 있어! 잘 들어! 반휘혈은 말이야….”
그런데 여자애는 오히려 친구의 반응이 더 당황스러웠나 보다. 그녀는 나름대로 추측을 입에 담으며 스스로의 말을 수습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주변의 반응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백치와도 같아 보이는 그녀의 대답에 친구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다다다 정보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천연기념물이다.”
그런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애를 보며 이혜인이 작게 중얼거렸다. 나도 그 말에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도방중, 강해중 애들 입학 건으로 이렇게 학교가 떠들썩한 적이 없었는데, 설마 그 유명한 인물을 못 알아볼 줄이야. 역시 쟤는 여자 주인공이 확실했다. 더불어 저렇게까지 상세하게 설명해 주는 친구까지 있다니, 더더욱 확신이 섰다.
솔직히 저 애의 입장을 공감 못 할 건 아니었다. 진짜 관심이 없거나 일상이 눈 돌아가게 바쁘다 보면 화제 같은 건 제대로 파악하기도 힘들지 않던가. 나도 작년까지만 해도 반휘혈이란 존재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든가, 강해중학교 출신 애들 얼굴이나 이름을 지금에 와서야 겨우 알게 되었다든가, …변명 같지만 아무튼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왠지 마음 편히 저 여자애의 심경을 공감하고 싶진 않았다. 그러면 왠지 내가 저 여자 주인공의 입장과 별 차이가 없지 않게 느껴지지 않은가. 물론 이 세계로 온 시점부터 여주급이긴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내 처지는 여전히 메인 흐름에 있어선 좋게 쳐도 조연급에 머물러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에 대해 확신하는 원인은 바로 하나였다.
‘연애 플래그가 이렇게 안 서는 것도 기적이지.’
지난 생에 비해 월등하게 잘난 인물들과 엮이는데도 내겐 그 유명한 썸이란 기류가 전혀 흐르지 않았다. 반휘혈과 그 친구들이 절대 매력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아이들 각자에겐 나름대로 설렜던 포인트들이 있었다. 그러나, 나와는 전부 다 가족물이나 우정물을 찍고 있는 걸 보면 다 글러 먹었다. 물론 이 상황에 대해 불만은 없다. 그렇다고 내 연애 전선에 이상이 전혀 없는 것에 대해 납득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씁. 빙의나 차원이동 하면 다 하는 연애, 난 한 번도 못 해 보다니.’
물론, 그 기회가 왔어도 연령대 문제로 인해 스스로 걷어찼을 확률이 200퍼센트였지만, 억울한 건 억울한 일이었다.
“어휴, 밥이나 먹어야지. 얘들아, 가자.”
“응.”
“아, 응.”
왠지 기운이 빠졌다. 그래서 기력을 보충하기 위해 식당으로 다시 가기로 결정한 난 구경하던 친구들을 불렀다. 안경희는 처음에만 관심이 있었던 모양인지 빠르게 몸을 돌렸고, 이혜인도 저 친구들에겐 큰 관심이 있던 건 아니었는지 금방 흥미를 끊고 우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흐음.”
나는 그런 두 사람을 새삼스레 신기하게 보았다. 관심이 굉장히 많을 거라 여겼던 안경희는 생각보다 시큰둥한데, 그냥저냥 관심이 있을 줄만 알았던 이혜인은 반휘혈을 보자 생각 이상으로 격하게 반응했던 탓이었다.
‘혜인이는 나름대로 오래 알고 지내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닐지도.’
내가 그렇게 무관심했나, 과거를 돌이켜 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앞서 걸어가는 두 사람을 빤히 바라보다가 곧 어깨를 으쓱이며 상념을 털어 냈다.
뭐, 차차 알아가면 그만이지.
나는 가볍게 결론을 지으며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서둘러 발을 놀려 식당으로 향했다.
***
전등이 모두 꺼진 고요한 교실 안. 창가 곁엔 어떤 여인이 하나 서 있었다. 그 안에는 그녀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으나, 밖에서 그녀를 보았다면, 한순간 넋을 잃을지도 모를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한 여성이 있는 적막한 공간과 달리 건물 밖에선 여학생들만이 하하 호호 웃으며 즐거이 교정을 거닐었고, 그녀는 그 모든 것을 무감각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지잉-.
그때, 여성의 품에 있던 핸드폰이 작은 소음을 일으켜 그 적막을 깨부쉈다. 여성은 여전히 감정 하나 없는 시선으로 그 화면을 열어 소식을 확인했다.
“…….”
그리고 여성은 자신의 핸드폰에 도착한 메시지를 보곤 살짝 눈을 가늘게 떴다. 여성의 핸드폰에 도착한 건 다름 아닌 사진이었다.
그것도 바닥에 남학생 다수가 쓰러져 있는 학생들의 사진.
여자는 그 처참한 모습에서도 경악이나 두려움 따윈 내비치질 않았다. 오히려 재미없는 일을 목격한 것처럼 지루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하나, 그녀의 그림 같은 무표정에 금이 가는 건 다음 순간이었다. 지잉-, 하고 연이어 도착한 내용을 확인하곤 여성의 눈이 일순 커졌다.
[고찬영이 한 짓입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먼저 움직였어야 했는데, 늦었습니다. 그가 알아챈 것 같습니다.]
“어떻게 알았지….”
그녀의 입에서 속삭이는 듯한 의문이 흘러나왔다. 여성은 잠시 입술을 깨물다가 연달아 도착한 메시지를 보곤 물던 입술을 놓았다.
[그래도 저희 측에까지 닿지는 않았습니다. 손을 써 두었으니 심려치 마시길.]
그 내용에 여자는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렇지. 모든 건 완벽해. 이런 내가 실수할 리가 없지.”
그녀는 핸드폰의 화면을 조작했다. 그리고 감추어진 폴더 안, 어떤 사진을 눌렀다.
눈을 사로잡는 금발과 그 사이에 숨겨진 붉은 눈동자. 아름다운 외형을 띈 남성이 어떤 표정도 갖추지 않은 채, 격식을 차린 듯 정장을 입은 모양새로 조각상처럼 그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조금은, 네 안에 내가 들어갔을까.”
응? 혁아. 여자의 입매가 고혹스럽게 휘었다. 지나가는 나비를 현혹시킬 만한 아름다운 그 모습은 빈 교실에 조용히 아로새겨졌다.
***
“짜~잔! 오랜만이야, 친구님!”
길 것만 같던 한 주가 지나고 다시 주말이 되었다. 놀랍게도 지난 평일, 긴장했던 것과 달리 아무 일도 없는 평범한 나날을 보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주말 아침. 나는 기쁜 마음으로 체육관 문을 열었다. 그리고 눈앞에 보인 인물에 쩍, 하고 몸이 굳어 버렸다.
“…….”
네가 왜 여깄어. 하지만, 생각과 달리 지나치게 당황한 내 입에선 뻐끔거리기만 할 뿐, 어떤 말도 나오질 않았다.
“누나, 잠깐 나 좀 봐…!”
그렇게 소리 없이 굳어 있던 날 구원한 건 아침 일찍 체육관으로 향했던 서이수였다. 서이수는 내게 할 말이 많은지 나를 잡아끌며 갑작스러운 방문객과 거리를 벌렸다. 그러곤 재빠르게 내 귓가에 속삭였다.
“왜 고찬영이 여기 있고, 누나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 대체 무슨 짓을 벌인 거야?!”
그렇다. 난데없는 손님은 바로 고찬영이었다. 하지만, 이 녀석이 왜 왔는지 나도 모른다. 진짜 왜 온 거야, 저 자식…?!
“누나, 뭐라고 말 좀 해 봐. 왜 저 녀석이 여기 있냐니깐?!”
“나, 도, 모, 올, 라, 아.”
서이수가 답이 없는 내가 답답했는지, 내 어깨를 짤짤 흔들었다. 그제야 가출한 정신이 돌아온 나는 솔직한 마음을 내뱉었다.
“모르긴 뭘 몰라…! 고찬영, 저 녀석 아침부터 죽치고 체육관에 앉아 있었다고! 왜 누나 보러 여기까지 왔냐고…!”
“아, 글쎄, 진짜 나도 모른…!”
“왜긴 왜야. 친구가 보고 싶어서 찾아온 것뿐이라니깐?”
“끄악-!!!”
“우왁-!!!”
모른다고 해도 계속 나를 박박 긁는 서이수의 질문에 답답함이 뻗쳤다. 그래서 신경질적으로 목소리가 튀어나오려던 찰나, 고찬영이 우리 사이로 불쑥 끼어들었다. 나와 서이수는 그 인기척 없는 등장에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치 놀라 파드득거리며 그와의 거리를 벌렸다.
“불쑥 나타나지 마!”
“하하, 친구님이랑 동생은 새가슴이구나?”
아직도 벌렁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경고하자, 고찬영은 태평하게 웃으며 내 속을 긁는 말로 대꾸했다. 아오, 저걸 진짜….
“으윽…! 너 진짜 무슨 일로 찾아온 거야? 연락 하나도 없었잖아.”
하지만, 어린놈을 진심으로 상대해 봤자 내 자존심만 상할 노릇이었다. 나는 뻗쳐 오는 열불을 다스리며 퉁명스레 그에게 본론을 물었다. 그러자 고찬영은 눈썹을 팔자로 휘며 입꼬리를 내렸다.
“어떻게 그런 매정한 소리를…! 우리 절친 아니었어? 네가 자꾸 그러면 나 너무 속상해.”
아니, 저게 무슨 개소리야. 그의 황당한 발언에 저절로 입이 떡 벌어졌다. 바로 지척에선 서이수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그나마 다행히 지금은 회원이 올 시간이 아니라 이목이 집중되지 않아 천만다행이었다. 나는 한숨이 저절로 나오는 상황에 골머리가 아파 옴을 느꼈다.
“너랑 나랑 안 지 일주일밖에 안 됐거든…? 무슨 절친 같은 소릴 하고 있어….”
정말 다시 생각해도 말 같지도 않은 발언이었다. 일주일 동안 깜깜무소식이었으면서 갑자기 체육관에 나타나더니, 날 보곤 절친이라. 얜 지금 나를 놀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고찬영은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곧 아련한 눈빛으로 내 시선을 피하며 마치 부끄럽다는 듯 진지하게 말했다.
“그야 우린 서로의 비밀을 공유한 사이잖아.”
“뭣?!”
“뭐?!”
고찬영의 대답에 서이수와 내가 동시에 기겁하며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는 우리들의 반응에도 기죽지 않고 오히려 살짝 붉힌 얼굴을 한 손으로 감싸며 더 뻔뻔하게 말했다.
“난 지난주에 널 보고 느꼈어. 이게 바로 운명이라고.”
“뭐-?!?!”
“아니, 진짜 뭔 개소리냐고오-!!!!”
왜 나만 모르는 감정 교류를 너만 알고 있냐고! 너 혼자 앞서 나가지 마, 이 자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