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남자는 상상 이상으로 단순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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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괜찮을까…?
고찬영의 제시한 답안을 들은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찾아왔다. 오래 있을 거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고찬영은 다른 아이들이 오기 전에 떠나 버렸다. 서이수의 매서운 시선이 그의 뒤통수를 따른 것 같았지만, 그건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고.
진짜 중요한 부분은 고찬영 말한 내용을 실천해야 되는가, 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곰곰이 생각해 봐도 이런 걸로 대화할 기회가 생기나? 솔직히 안 걸려들 것 같다. 오히려 더 삐져서 나랑 얘기도 안 하려 드는 거 아냐? 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걘 또 그걸 어떻게 실천하려고….’
설마 그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또 오토바이 몰고 올 생각인 거면 절대 안 하겠다고 엄포를 놓자, 고찬영은 그런 건 아니라면서 웃었다. 그 대답이 안도가 되는 한편, 어쩐지 더 느낌이 찝찝해졌지만 그 녀석도 생각이 있으니 이 계획을 제안한 거겠지. 나는 나름대로 그 녀석을 믿어 보기로 하며, 넘어가려던 찰나.
“야, 빅뉴스, 빅뉴스!! 오늘 우리 반에 전학생 온대!!!”
툭, 나는 들고 있던 펜을 떨궜다. 차마 들기 힘든 고개를 억지로 들어 올려 그 소식을 가져다준 남학생을 바라보았다.
“전학생? …2학년인데?”
“여자? 남자?”
“예쁜 여학생이면 좋겠다~.”
꼴깍, 남학생의 친구들이 정보를 더 상세히 요구하는 소리에 내 눈이 심하게 요동쳐 왔다. 내 직감이 말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내 예상이 맞다면, 정말 상상도 하고 싶지 않지만, 내 느낌이 틀리지 않는다면…!
“아냐, 남자야, 남자.”
“에이, 괜히 기대했네.”
“아, 꺼져. 남자가 웬 말이냐?”
“야, 야. 야박하게 굴지 말고. 그래도 뒤태는 존나 잘생겼더라.”
그런데 남학생의 말에 점점 흥미가 식어 가 눈을 돌리고 있던 모든 반 아이들의 시선이 남학생한테로 다시 휙, 하고 몰렸다.
“잘생겼어? 잘생겼다고?”
“와, 드디어 내 학교생활도 피는구나!!”
“야, 근데 남자애들이 말하는 잘생김은 좀….”
“아, 그건 그래.”
하지만, 그 관심은 일부 여학생들의 대답으로 한순간에 식었다. 남학생은 억울한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투덜거렸다.
“아니, 진짜 잘생겼다니까?! 앞은 제대로 못 봤지만, 뒤태만 봐도 잘생겼었다니까??”
“아, 예. 그러세요.”
“뭐 대단한 거라도 나오는 줄 알았네. 꺼져, 새꺄.”
정말 신뢰성 없는 대답에 모두의 관심이 끊기는 건 한순간이었다. 제 친구들에게 마저 외면받은 남학생은 억울한지 그 전학생 오면 두고 보자며 이를 갈았다. 하지만, 난 직감했다. 남학생이 말한 그 전학생이 정말로 잘생겼을 것임을. 보지 않아도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지금 이 순간 그 누구보다 든든한 아군을 돌아봤다.
“…경희야, 넌 누군지 알아?”
“응? 아, 응. 안 그래도 너한테 말해야 될까 고민을 하긴 했는데…. 네가 아침부터 심각해 보여서 말할 기회를 놓쳤어. …미안.”
안경희는 미리 말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는지 시무룩해 보였다. 나는 그녀에게 괜찮다며 네 잘못 아니라고 잘 타일러 준 후, 새삼 그녀의 정보력에 감탄했다.
‘역시 믿고 보는 안경희.’
얘가 모르는 정보는 대체 뭘까? 그런 게 있기나 할까 싶을 정도로 빠른 정보 습득력이었다. 나는 남학생을 흘긋 보며 안경희에게 속삭였다.
“그럼 혹시, 이번에 전학 오는 학생…, 고… 씨로 시작하는 그 친구가 맞아…?”
“어? 어. 어떻게 알았어…?”
역시. 나는 확실한 답을 듣고 갑자기 머리가 아파 왔다. 그냥 다른 엑스트라의 출현을 바랐건만, 진짜 너였냐! 이 망할 놈아!
‘친구님. 내가 다음 주에 친구님께 서프라이즈 하나를 준비할게. 기대해 줘?’
찡긋, 하고 떠나기 전 윙크를 날리던 고찬영의 면상이 떠올랐다. 나는 이가 부득부득 갈리는 걸 억지로 참으며 슬쩍 안경희에게서 눈길을 돌렸다.
“그, 그런 일이 있었어.”
“아, 걔 주말에 체육관 갔었지. 그럼 그때 들었을 수 있겠구나.”
아니. 나 그런 소식 못 들었는데. 그냥 지레짐작이었을 뿐이었는데, 확언을 받자 기분이 처참해졌다. …안녕, 내 평온했던 고등학교 시절이여. 나는 아련한 감상에 젖으며 지난 한 해를 떠올렸다. 앞으로 닥칠 파란만장한 일들이 선명하게 눈에 그려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경희, 넌 그 녀석이 체육관에 온 건 어떻게…?’
체육관 개장한 지 얼마 안 된 시각이기도 하다 보니, 회원들도 몇 없었다. 내가 왔을 땐 고찬영뿐이었고, 차츰 늘어가 자리를 채웠어도 한두 명 남짓이었다. 그런데, 그걸 기어이 캐냈다고? 대단한 녀석 같으니라고….
‘나, 정말 대단한 애랑 친구 먹은 게 아닐까?’
이젠 안경희의 정체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얜 어디서 나타난 아이길래 이렇게 정보에 빠삭할 수 있는지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선 이런 캐릭터 정도는 이 말도 안 되는 인소 세상 속에 있을 수도 있지, 하면서 여전히 깊게 파고들 생각이 안 들었기에 난 조용히 흐린 눈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뭐…. 그런 거지. 아무튼, 걘 대체 왜 여기로….”
“어? …그 소식은, 못 들었어?”
“응?”
그런데 안경희가 내 말을 듣곤 의아한 듯 눈을 깜빡였다. 이번엔 도대체 무슨 일인데…?! 또 어떤 엄청난 정보가 들려올까 자연스레 긴장이 되었다. 안경희는 주위 눈을 슬쩍 살피곤 내게 조용히 속삭였다.
“걔, 퇴학당할 뻔했대.”
“…뭐?”
그러나 여전히 현실은 내 상상을 아득히 넘어서는 법이다. 나는 생각도 못 한 답변에 경악하며 입을 벌렸다.
‘퇴, 퇴학, 퇴학이라고…?!?!’
아니, 그게 이런 인소의 세계에도 적용되는 이야기였어?! 보통 인소 속 주연이나 조연이나 아무리 패싸움에 휘말려도 징계 얘기가 오간 적은 없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그런 일은 전혀 없을 거라고 무의식중에 생각했던 현실적인 얘기가 나오자, 난 진심으로 기겁했다.
“그게, 있을 수 있는 일이었어…?”
그래서일까, 나는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이 불쑥 튀어나왔다. 안경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퇴학까진 잘 안 가긴 하지. 나도 이 소식 처음 들었을 땐 엄청 놀랐어.”
아, 역시. 퇴학은 잘 안 시키는 게 맞구나. 그럼 고찬영은 대체 어떤 사고를 쳤길래 학교에서 그런 징계 처분이 내려진 거지? 점점 의문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지난번에 만났을 땐 밝아 보이는 인상에 이런 일이 일어난 줄 전혀 몰랐었다. 아마 징계 처분은 우리가 만난 주말이 되기 전에 내려졌을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면, 그는 그사이에 사고를 터트린 건데….
“다들, 이제 조용히 해 주세요. 자습 시간인데 너무 시끄럽지 않나요?”
그때, 선생님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하시는 한 소리에 학생들은 부리나케 자신의 책상에 도로 앉았다. 선생님은 그런 학생들을 돌아보더니, 한창 화제인 그 전학생 건을 꺼냈다.
“갑작스러운 소식이지만, 오늘 우리 반에 전학생이 왔어요.”
“알고 있어요!”
“잘생겼어요, 쌤?”
“그건 직접 보시고 판단하세요. 자, 들어오세요.”
헉, 나 아직 마음의 준비가…! 하지만, 매정하게도 반의 앞문이 시원스레 열리며 커다란 장신이 반 안으로 들어섰다. 동시에 반 전체가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 전학 온 학생이에요.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그리고 전학생은 싱긋, 웃으며 살짝 앞으로 다가가 자신을 소개했다.
“고찬영이라고 해. 앞으로 잘 부탁해.”
전학생, 고찬영은 반을 주욱 훑으며 인사하다가 곧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러자 그는 눈을 더 깊게 그리며 조용히 내게 인사했다. 마치 장난이 성공한 것처럼 짓궂은 미소에 나는 그에게 몰래 오만 욕을 싸질렀다.
“갑자기 전학 온 만큼 낯설 테니깐 다들 배려해 주시길 바라요. 자리는 저기, 비어 있는 자리로 가서 앉으면 돼요.”
선생님이 비어 있는 창가 맨 끝 쪽을 가리켰다. 즉, 내 뒷자리다. 고찬영은 그 자리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는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헉.”
“억, 내 심장이….”
“쩌, 쩔어. 얼굴이, 쩔어.”
“거봐…! 내 말 맞잖아!”
그리고 고찬영이란 존재에 대해 실감을 시작한 학생들은 그의 빛나는 외모에 홀린 듯 중얼거렸다. 그중, 전학생이 잘생겼다고 강경 어필했던 소식을 가져온 학생의 억울한 소리가 들린 것 같긴 했지만…,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고찬영은 그것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척척 내 뒷자리로 다가왔다. 나는 그 모습을 망연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고찬영은 나와 가까워질 즈음, 슬쩍 내게 윙크했다.
‘놀랐어?’
마치 그런 눈빛이라 나는 그만 보이게끔 조용히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그래, 놀랐다. 이 자식아.’
그런데 고찬영은 그런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그는 큽, 하고 터질 것 같은 웃음을 가까스로 내리누르며 뒷자리에 앉았다. 나는 그런 녀석의 기척을 느끼며 갑자기 몰려오는 피로에 미간을 꾹꾹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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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층]
1교시가 끝나고 나는 재빠르게 고찬영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원래 핸드폰 반납이 의무란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요새 하도 위급 사항이 많아서 계속 품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쓸 일이 생겼고 말이다. 그럼 고찬영이 반납했을 확률? 개나 주라지. 역시나, 뒤에서 무언가를 본 것처럼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구겨지려는 얼굴을 최대한 자제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절대 뒤는 돌아보지 말아야지. 당장이라도 고개를 돌려 멱살을 잡고 싶은 걸 바들바들 참으며 인내심을 끌어올렸다.
“야. 너 당장 설명해.”
그리고 메시지를 확인한 게 틀림없는 고찬영을 5층에서 마주치자마자 조용히 끌고 가 아무도 없는 창고로 향했다. 고찬영은 진정하는 것처럼 두 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워, 워. 진정해. 너 빡치면 인상 되게 험악해지는구나? 주름 생겨, 주름.”
그는 유들거리는 자세를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이마를 툭툭 건드려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어처구니없이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