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107화 (107/306)

107. 여주와 남주. (3)

……방금 뭐라 지껄인 거지, 이 새끼?

뜬금없는 욕에 나는 상황도 잊고 멍해졌다. 새하얀 머릿속에선 막 들은 말이 자꾸만 맴돌았다.

못생겼는데? 못생겼는데? 못생겼는데? 못생…,

“야, 이…!”

드디어 뇌가 방금 무슨 말을 들었는지 입력을 완료시켰다. 발끈한 내가 그의 손을 탁, 쳐 내며 뭐라 한마디 하려던 순간 옆에 있던 이가 불쑥 끼어들었다.

“너, 너도 안 잘생겼거든?!”

“……뭐?”

“너, 너도 그렇게 안 잘생겼다고! 넌 뭔데 남의 얼굴 보고 못생겼다고 하는 거야? 너 따위보단 이 언니가 훨씬 나아…!”

나 대신 씩씩거리며 화를 낸 이는 바로 여주였다. 나는 최강혁에게 하려던 말도 잊고 입을 떡 벌렸다.

아니, 물론 나도 그와 비슷한 말을 하려고 하긴 했다. 반휘혈보다 못생겼다고…. 그런데 누가 인소 여주 아니랄까 봐, 말하는 내용이 나보다 더 굉장했다. 진심이 아니란 건 알고 있지만… 주위를 둘러봐라. 나만 놀랐나. 여주는 사방에 깔린 구경꾼들을 전부 놀라게 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최강혁과 그 친구들도 포함이었고 말이다.

하지만, 여주는 최강혁을 노려보면서도 벌벌 떨고 있었다. 마치 내 팔이 유일한 지지대라도 되는 것처럼 꽉 붙들고 있어서 겨우 눈치챌 수 있었다.

“…이게 뭔 상황이야?”

그런 와중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자, 계단 쪽에서 내려와 사람들 틈을 가르며 등장하는 인물들이 있었다.

“뭐 이렇게 사람이…, 누나아?!”

“어어.”

그리고 그는 나를 보자마자 비명을 지르다시피 불렀다. 그래,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지. 다름 아닌 저놈은 내 동생이었으니까 말이다. 설마 이 소란의 중심에 내가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겠지. 그것은 서이수의 곁에 서 있던 이재현도 마찬가지였는지 멍하니 입을 벌리며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 우리 누나한테 무슨 볼일이야?”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그 누구보다 빠르게 정신을 차린 서이수는 황급히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러곤 최강혁네 무리들을 가로막듯 서더니 그들을 한껏 노려봤다.

“누나, 괜찮으세요?”

이재현도 정신을 차리고 내 옆으로 합세하자, 공기가 다시 긴장감으로 팽배해졌다.

‘아이고, 이제 좀 해결되나 싶더니….’

나는 이마를 부여잡으며 탄식했다.

“…누나?”

“아, 서이수…, 그러니까 쟤 친누나야.”

그때, 최강혁이 의아한 듯 나와 서이수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에 다정한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친절히 설명해 주자 최강혁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그런 거였군.”

그러곤 그가 히죽, 웃으며 싸늘하게 나를 보았다.

“좋겠네? 지켜 줄 기사들이 많아서.”

“…뭐?”

누가 봐도 비꼬는 말에 내 얼굴이 확 굳어졌다. 나는 앞을 가로막은 서이수를 밀치며 최강혁 앞에 다가섰다.

“아까부터 참고만 있으니깐… 내가 그렇게 만만한가 보지?”

다른 건 건드려도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날 나약한 놈으로 깔보는 그 말투는 도저히 용서가 안 됐다. 나는 얼굴을 싸늘히 굳히며 최강혁에게 경고했다.

“적당히 해.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까.”

“오. 봐준다고?”

최강혁이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허리를 숙여 나를 내려다봤다.

“그래, 그렇게도 말할 수 있겠네.”

“…뭐?”

무언가 함축된 듯한 말에 그게 무슨 의미냐고 물어보려는데, 최강혁이 내 귓가로 다가오더니 짧게 속삭였다.

“조-커.”

느릿하게 굴려진 단어가 귓가를 정확하게 관통했다. 고개를 빠르게 돌려 최강혁을 바라보았다. 그는 조소 가득한 얼굴로, 그렇지만 눈에는 확신이 가득히 담긴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깐 뒷모습밖에 보질 못해서 눈치 못 챘는데, 이렇게 보니 반갑네?”

“…그게 무슨, 아니, 난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만.”

뒷모습밖에 못 봐? 그게 무슨 소리냐며 좀 더 캐묻고 싶었지만, 눈이 너무 많았다. 무엇보다 이 녀석에게 조커란 정체를 들키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 수긍하고 넘어가면 안 될 것 같다고 내 감이 강하게 외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 여기서 시치미를 떼겠다?”

“그런 거 아니라고.”

나는 한 발 물러서 그와 거리를 벌렸다. 이 녀석이랑 더 엮이면 귀찮아질 것만 같았다. 그의 흥미로운 기색이 그 증거였다. 분명 날 번거롭게 만들 게 뻔한 분위기를 팍팍 풍기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경계를 풀지 않은 채 싸늘히 노려보았다.

“아무튼 말 가려서 해, 너.”

입만 열면 재앙을 선물하는 주둥아리를 가진 놈이 있다는 건 창작물에서 자주 본 적이 있었다. 당연히 이 세계에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내 눈으로 직접 마주치길 바란 건 아니었는데…. 설마 실제로 그 존재를 눈앞에서 보게 될 줄 상상도 못 했다. 최강혁은 내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내가 왜 네 말을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조…,”

그러나 그의 말은 끝나지 못하고 멈추고 말았다. 왜냐하면, 돌연 어떤 손이 턱, 하고 나타나 최강혁의 어깨를 짚었기 때문이었다. 난 그 건너에 있는 정체에 놀라서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휘…!”

빡-!!!

…혈아!! 라고 이름을 채 다 부르기도 전에 강한 타격음이 복도를 울려 퍼졌다. 나는 그 눈앞에 벌어진 현실에 경악하며 입을 떡 하고 벌릴 수밖에 없었다.

우당탕, 하고 최강혁이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얼마나 세게 친 건지 감이 안 올 정도였다. 무엇보다 지금 보이는 반휘혈의 얼굴은 싸늘하다 못해 한기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나는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가, 어리벙벙하게 굳어 있으니 최강혁이 실소를 터트리며 자리에 일어섰다. 그러곤 싸늘히 얼굴을 굳히며 반휘혈에게 곧장 주먹을 가격했다.

빡-!! 그러나 최강혁의 주먹은 팔에 막히고 말았다. 그렇다고 그 충격이 적진 않았을 터인데 반휘혈은 눈 하나 까딱 안 하고 맹렬히 최강혁을 죽일 듯 쏘아보고 있었다. 최강혁도 지지 않고 마주 노려보았다. 살벌한 시선이 강하게 부딪히며 주위의 공기를 숨 막히게 만들었다.

그 상태에서 먼저 움직인 것은 최강혁이었다. 그는 재빠르게 발을 날려 다리와 복부를 걷어찼다. 순식간에 최강혁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몸을 뒤로 빼며 충격을 덜어 냈으나, 충격을 채 버티지 못했는지 반휘혈은 살짝 비틀거렸다.

최강혁은 그 틈을 노려 다시 빠르게 얼굴을 향해 걷어차려고 했다. 하지만, 반휘혈이 고개를 살짝 틀어 그 공격을 피해 버렸다. 그러곤 최강혁의 품 쪽으로 날렵하게 파고들더니 그대로 주먹을 내질러 복부를 후려쳤다.

“……헛.”

퍽, 하고 강한 타격음이 들리자 난 멍하니 가출한 정신 줄을 그제야 도로 잡아 내는 데 성공했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싸움인 것도 모자라 둘이 아주 액션 활극을 찍어 주니 나도 모르게 홀린 듯 보고 말았다. 나는 상황도 잊고 멍청히 있던 자신을 질책하며 두 손으로 내 뺨을 강하게 내리쳤다. 짝, 하고 찰진 마찰음이 들리자 이제야 좀 더 정신이 또렷해졌다.

“야, 그만, 그만 싸워! 너희들도 뭐 해! 쟤네들 말려야지!!”

이 상황에서 제대로 끼어들 수 없다는 게 이렇게 한이 될 수가. 나는 황급히 그나마 도움이 될 만한 놈들을 부르며 중재에 나섰다.

“아, 휘혈, 휘혈아! 그만, 그만 싸워!”

“혁아, 진정해.”

“여기서 싸우지 마~!”

“으왁, 반휘혈 힘 존나 세!!”

내 말에 다른 놈들도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하나둘 싸움을 말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아주 잠깐 동안 거리가 벌어졌던 틈을 타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렇게 반휘혈 측은 이재현과 서이수가 매달렸고, 최강혁 측은 이윤과 다정한이 매달려 두 사람을 말렸다.

“놔.”

“아, 씨발. 야, 놔. 놓으라고.”

하지만 이미 싸움으로 눈이 돌아 버린 두 청춘을 말리는 건 힘에 겨운 일이었다. 게다가 한 명은 현 사대천왕이었고, 다른 상대는 그 인물과 대척점에 서 있다고 알려진 실력 있는 녀석이었다.

…원래 일짱 이하론 다 고만고만하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나 싶었을 정도로 두 사람을 말리는 이들은 힘에 부쳐 보였다.

“애들아, 진정하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내가 아니었다. 나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양쪽으로 두 손을 뻗으며 이 사태를 종결시키기 위해 움직였다. 다행히 나와 눈이 마주친 반휘혈은 움찔하더니 점점 몸에서 힘을 빼는 게 보였다. 나는 그 모습에 한쪽이라도 진정된 듯 보여 안심하려는데,

“주제넘게 참견질 하지 말고 꺼져.”

최강혁의 열이 바짝 올라 있는 대꾸에 다 말아먹었다. 반휘혈은 그 말에 다시 화가 치솟았는지, 얼굴에 음영을 드리우며 눈이 다시 뒤집히려 했다.

“…너나 꺼져. 최강혁.”

“뭐? 하! 와-, 천하의 반휘혈이 여자 하나로 이렇게 변할 수 있을지 상상도 못 했네?”

“뭐?”

“혁아!”

반휘혈의 스산한 경고에 최강혁이 헛웃음 쳤다. 그러곤 그는 반휘혈을 향해 이죽이죽하며 비아냥거렸다. 그 소리에 기겁한 다정한이 그를 말려 보려 했으나,

“아냐? 너 지금 이 여자 하나 때문에 이 개지랄을 떠는 거잖아. 반휘혈 수준 잘~ 보이네.”

“……그 입 닥쳐.”

“…야, 잠깐. 저 새끼 방금 뭐라고 했냐?”

“이수야, 너마저 그러지 마! 화나는 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아니야!”

상황은 다시 개판 되기 5초 전에 돌입했다. 반휘혈이 최강혁의 도발에 걸려든 것도 모자라 서이수마저 엮이게 생겼다. 나는 이재현의 비명에 공감하며 지끈거려 오는 이마를 짚었다.

그러던 와중, 서이수가 관심을 돌려 힘이 잠시나마 빠졌었는지 반휘혈은 한순간에 두 사람을 뿌리쳤다. 그러자 그의 행동에 이윤과 다정한이 놀랐는지 멈칫거렸다. 최강혁도 그들의 힘이 빠진 틈을 타 두 사람에게서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동시에 주먹을 내질렀다.

빡-!!!!

하지만 그 주먹들은 서로의 몸에 닿지 않았다. 그렇다면 들려온 이 묵직한 타격음은 무엇인가. 그 정체는 단순했다.

“그만하라고!!! 이 새끼들아악-!!!”

결국 참다못한 내가 두 사람을 걷어차 버려서 생긴 소음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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