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미워할 수 없는 골칫덩어리들. (1)
“야, 잠깐! 한도훈, 기다려!”
서둘러 두 사람을 따라잡으며 외쳤다. 그런데 한도훈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지는 게 느껴졌다.
“야, 이…! 휘혈아, 걔 잡아!”
아까까진 가장 좋아하는 누나라고 잘만 떠들었으면서! 했던 말과 상반된 행동에 열이 뻗친 난 반휘혈에게 한도훈의 제지를 명했다. 그러자 반휘혈은 그의 목덜미를 붙잡아 멈춰 세웠다.
“윽, …야!”
졸지에 힘으로 세워진 한도훈이 항의하듯 반휘혈을 쏘아보자 반휘혈은 그가 노려보든 말든 관심 없다는 것처럼 시큰둥한 태도로 일관했다.
“지는 화해했다, 이거지…?!”
“야.”
한도훈이 그런 반휘혈에게 씩씩거리며 발끈했지만, 겨우 따라잡은 내가 한도훈의 어깨를 붙잡았다.
“윽….”
그러자 한도훈이 움찔거리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내게서 고개를 돌려 버렸다. 누가 봐도 나를 외면하는 모양새가 어처구니없었다. 나는 이 피곤한 놈을 어쩌나, 싶어 한숨을 푹 내쉬다가 이내 그의 어깨를 강하게 잡으며 말했다.
“너, 다음 쉬는 시간에 건너편 복도 쪽 5층에서 나 좀 보자.”
우리 학교는 교실이 있는 건물이 두 곳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그 사이엔 건물을 잇는 복도가 있어 통행이 그다지 번거롭진 않았지만, 건너편에 있는 건물은 수험 준비를 하는 3학년이 사용하기 때문에 정숙을 위해 잦은 통행은 금하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이쪽 건물은 1학년과 2학년 대부분이 사용했다. 아, 대부분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과인 2학년 7반과 8반이 3학년과 같은 건물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건너편 5층은 사람의 왕래가 가장 적은 곳이었다. 덕분에 요즘 들어 자주 이용하고 있는 창고가 있으니, 좋은 게 좋은 거였다. 내 볼일을 한도훈에게 전하자 그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고개를 홱, 돌렸다.
“…제가 왜 누나 말,”
“휘혈아, 이 자식 안 올 거 같으면 끌고 와 줘.”
“응.”
나는 한도훈의 말을 귓등으로 듣지 않고, 반휘혈에게 부탁을 전하자 그는 간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믿음직한 한 마디에 나는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여 보이곤 손을 가볍게 흔들어 인사하며 서둘러 교실로 향했다.
“야, 이 배신자 자식아…!”
뒤에서 한도훈이 반휘혈에게 항의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난 모른 척했다.
***
다음 쉬는 시간. 그사이에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호기심이 잔뜩 어려 보이는 고찬영과 안경희, 그리고 이혜인을 뒤로하고 5층 창고에 도착하자, 진즉에 도착해 있는 한도훈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고마워, 휘혈아. 수고했어.”
옆에는 그가 도망가지 않게 감시하고 있었던 건지 벽에 기대어 있던 반휘혈에게 감사 인사를 해 주자 반휘혈이 별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내가 알아서 할게. 먼저 교실로 돌아가도 돼.”
그에게 인사를 하며 한도훈에게 다가가려 하는데, 반휘혈이 내게 짧게 속삭이며 지나쳤다.
“…너무 오래 걸리진 마.”
“어?”
뜬금없는 말에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어볼 새도 없이 반휘혈은 휙, 나가 버렸다. 닫힌 문을 멍하니 바라보다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정말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참 난해한 말을 잘하는 놈이었다.
“자, 그럼 한도훈 씨? 우린 얘기 좀 해 볼까요?”
더 생각해 봤자 머리만 복잡해지기에 미련 없이 몸을 돌린 난 여전히 내 눈을 피하고 있는 한도훈을 향해 싱긋 웃으며 말을 걸었다. 한도훈은 뚱한 얼굴로 날 힐끗 보더니 입을 삐죽 내밀며 더 시선을 돌려 버렸다. 난 그런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도훈아, 이젠 진짜 얘기 좀 해 봐.”
“…….”
한도훈은 내 질문에 침묵했다. 나는 한숨이 나오려는 걸 참으며 그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 대충 널브러져 있던 책상에 걸터앉아 질문을 달리 해 보았다.
“내가 이윤한테 번호 준 게 그렇게 싫었어?”
“그건…! 그야, 그렇긴 하지만….”
그가 우물쭈물 입을 다물었다. 표정이 일그러진 게 무언가 할 말이 많아 보였다. 하지만, 끝내 제대로 입을 열지 못하는 그를 보며 나는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난 네가 이윤을 그렇게 싫어하는 줄 몰랐어. 알았으면, 안 줬을 거야.”
“…알아요.”
“응?”
“알고, 있어요. 그런 거.”
예상치 못한 긍정이 그에게서 들려왔다. 놀라 그를 바라보니, 그가 돌연 푹, 하고 주저앉으며 소리쳤다.
“아-! 알아요! 누나가 걔보단 절 더 아끼는 거! 그리고 지금 제가 엄청 못났다는 거!”
난데없는 반응에 놀랄 새도 없이, 한도훈은 두 팔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며 무릎에 파묻은 채, 우다다 말을 쏟기 시작했다.
“사실 화난 거 풀린 지 오래예요! 근데, 그냥 어떻게 말을 걸어야 될지 몰라서 피했어요! 으윽…! 아, 진짜 쪽팔려…!”
창피함을 증명하듯 유일하게 보이는 한도훈의 귓가가 새빨갰다. 그는 그런 그의 얼굴을 더 꽁꽁 숨기기 위함인지 팔에 얼굴을 파묻으며 우물쭈물 말을 이었다.
“…한심하게 봐도 좋아요. 저 진짜 못나 보이는 거 알아요. 아까도 누나가, 고찬영 그 새끼랑 뜬금없이 친해졌다는 사실 듣고 좀 질투하긴 했어요. 근데, 그런 건 상관없어요. 누나가 친해지는 건 누나 마음이니까. 제가 그 누구보다 누나랑 친해지면 되니깐…. 그러니깐 상관없어요.”
나는 그의 말이 이어질수록 어리벙벙해졌다. 멍하니 입을 벌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에요…. 이윤, 이윤 그 새끼는 싫어요. 완전 싫어요. 죽어도 싫어요!”
한도훈의 얼굴이 번쩍 들렸다. 그는 바닥을 강하게 노려보며 토해 내듯 말을 이었다.
“…걘, 걘 절대 안 돼요! 혹시라도, 걔를 나보다… 나보다….”
한도훈은 차마 뒷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그를 말없이 내려 보다 조심스레 걸터앉은 책상에 내려와 그에게 다가가 어깨를 짚으려던 순간,
“걔를 나보다 귀엽다고 생각하는 건 용서할 수 없다고요!!!”
나는 그의 어깨를 짚으려다 말고 몸을 휘청였다. 정말 상상도 못 한 내용에 기함하고 있자니, 한도훈이 나를 향해 홱, 하니 고개를 돌렸다.
“누나한테만큼은, 누나한테만큼은! 제가 가장 귀여운 동생이어야 해요! 이윤 그 새끼한테 절대 넘겨주고 싶지 않다고요!!!”
그 어느 때보다 비장한 얼굴이 내게 향했다. 얼핏 광기까지 서린 것 같은 그 낯에 나는 무슨 표정을 지어야 될지 몰라 떨떠름하니 굳혔다.
‘어라, 내가 얠 그렇게 귀여워했던가…?’
아니었던 거 같은데. 오히려 귀찮아했으면 귀찮아했고, 막 대했다면 막 대한 편이었다. 나는 이 황당한 소리에 어떻게 반응해야 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누나가 이윤을 매몰차게 거절했단 소식 듣고 엄청 기뻤어요. 이미 그때부터 화는 풀렸었는데…, 이런 식으로 굴어 본 건 처음이라 어떤 식으로 말을 꺼내야 될지 몰라서… 그래서…. 사실 이번 주말에라도 얘기하고 싶었는데, 집안 행사가 잡혀서 체육관에 못 갔어요.”
아, 집안 행사. 그거 사실이었구나. 한도훈은 말을 하면 할수록 부끄러운지 얼굴이 더 빨개지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팡-!!
그리고 그의 등을 세차게 때렸다.
“윽…!”
“그럼 그렇다고 말을 해, 이 자식아!!!”
나는 그의 머리를 강하게 억누르며 세차게 휘저었다. 한도훈이 아프다고 발버둥을 쳤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소리쳤다.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속이 썩었는데! 어?! 너 진짜 나한테 사과해야 해! 무엇보다, 내 의리를 그 정도로밖에 안 보다니…! 너야말로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사과해, 이 자식아!!!”
“으아악…! 미안, 아니, 죄송합니다…!!”
내가 화풀이하듯 그 녀석의 머리를 꽉 잡자 한도훈은 고통을 호소하며 내 손을 붙잡은 채 사과했다. 하지만, 이미 열불이 터진 난 그에 그치지 않고 그의 양 볼을 꽉 꼬집었다.
“으아아….”
“너 잘 들어.”
양쪽 볼이 붙잡히자 한도훈의 신음이 새어 나갔다. 나는 그런 그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이윤은 확실히 귀엽게 생겼어. 진짜 같은 고등학생이 맞나 싶을 정도로 천사같이 생겼지.”
그런 내 말을 잠자코 듣던 한도훈이 팍, 하고 울상을 지었다. 그새 넘어갔냐는 것 같은 질타와 원망이 섞인 눈초리였으나, 나는 그것을 싹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근데 난 그런 녀석보다 너의 그 비뚤어진 성격이 더 친숙하고 좋아.”
“…에?”
볼이 붙잡혀선지 그의 발음이 샜다. 하지만 눈만큼은 멀쩡했기에 그는 웬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고 있냐고 말하는 게 여실히 전해져 왔다. 나는 그런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넌 확실히 제멋대로에 짜증도 많이 날 때가 많아. 자주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점점 욕이 되어 가는 것 같은 뉘앙스에 한도훈의 표정이 떫어졌다. 그는 꼬집혀진 상태로 입을 꾹 다물며 심통이 난 것처럼 볼을 부풀렸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에 결국 참다못한 웃음을 터트렸다.
“푸핫! 그래도 역시 난 이런 네가 더 나은 거 같아.”
“우븝.”
나는 한도훈의 양 볼을 놓고 꾹 눌렀다. 내 손에 의해 찌그려져 우스워지긴 했으나, 잘난 얼굴이라 그런지 크게 망가지지도 않았다. 나는 그런 그를 귀엽게 바라보며 누르던 볼을 놓고 헝클어진 머리를 쓰다듬었다.
“도훈아, 꼭 네가 더 귀여워야 하는 거야?”
“그건….”
“나랑 더 친하단 걸로 만족할 수 없어?”
이윤은 확실히 귀엽게 생겼다. 성격도 좋아 보였다. 하지만, 그래도 내게 더 친숙하게 다가오는 건 한도훈이었다. 혹시 이걸론 부족했던 걸까? 나는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모르겠어요.”
그러자 한도훈이 고개를 푹 숙이며 중얼거렸다. 그는 잠시 입을 꾹 다물더니 다시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돼?”
조심스러운 질문에 잠시 동안 되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하지만, 그 답은 오래 걸리지 않고 나지막한 음성과 함께 돌아왔다.
“…걘, 어릴 때부터 줄곧 관심을 독차지했어요. 모두가 절 귀여워했는데 순식간에 모든 사람의 시선을 뺏어 갔어요. …저희 부모님도 마찬가지였고.”
나는 그 말에 잠깐 입을 벌렸다가 도로 다물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을 경청했다.
“부모님이 절 사랑한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잊을 수 없어요. 제가 세상에서 가장 귀엽다고 하던 모든 사람들을…, 어른들을 다 뺏어 가던 순간을.”
한도훈은 파묻은 머리를 더 깊숙이 묻으며 속삭였다.
“…그래서 전 걔가 정말 싫어요.”
나는 조용히 그를 보았다. 이제야 알았다. 한도훈은 이윤에게 깊은 열등감을 있다는 걸. 그리고 그가 말한 귀여움은 즉, 그를 향한 애정의 시선이 한순간이라도 돌려지는 게 두려운 것이다.
“그렇구나.”
“…….”
“그럼 네가 내 눈엔 더 귀엽단 걸로 하자.”
“……네?”
한도훈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그런 녀석에게 피식, 웃어 주며 개의치 않고 말했다.
“어느 욕심쟁이 씨가 그렇게 원하는데 들어줘야지.”
세상에서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한도훈은 아마 찰나의 관심이라도 싫었을 수도 있었다. 왜 이윤에게만 그렇게 깊은 혐오를 가지는지는 여전히 이해가 안 가지만, 그 이유는 이 녀석만이 알겠지. 나는 어쩔 수 없이 이 욕심쟁이의 장단에 맞춰 주기로 결정했다.
“네가 이윤보다 훨씬 귀엽다고.”
“…누나, 이상해.”
아니, 이 자식이? 이윤보다 귀엽다고 해도 욕을 듣는 이 상황이 어이가 없어서 황당하게 그의 뒤통수를 노려봤다. 한도훈은 고개를 들지 않은 채 꿍얼거렸다.
“진짜, 이럼… 내가 더 바보 같잖아요.”
나는 그 말에 잠시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곤 픽, 웃으며 그 곁에 앉아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도닥였다.
“그래, 이제라도 알았으면 됐다.”
“…이럴 땐 위로해 줘요.”
“싫어.”
짓궂게 대꾸하자 한도훈의 볼멘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속 썩인 만큼 당해 보란 심보도 있었기에 난 그의 머리를 쓰다듬는 걸로만 위로를 대신했다.
“아-, 진짜 너무하다.”
그가 고개를 살짝 돌려 나를 흘겼다. 나는 그런 한도훈의 시선을 맞받아치듯 뻔뻔하게 바라보았다. 그렇게 서로를 노려보듯 바라보길 잠시,
“큽.”
“푸흣.”
우리는 얼마 가지 못해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잠시 동안 서로를 향해 킥킥거리고 있자니, 어쩐지 홀가분해진 한도훈이 얼굴을 반쯤 팔에 파묻으며 작게 속삭였다.
“…고마워요.”
지척에 있지 않았다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정말 작은 소리였다. 나는 그런 그를 부드럽게 바라보며 그의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별말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