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여자 주인공의 삶은 고달프다. (1)
***
서걱- 서걱-.
예리한 금속이 스치는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방 안엔 표정이 없는 인형처럼 무감정한 여자가 가위를 들어 쥐고 있던 장미 한 송이에 가져다 댔다. 그때, 문밖에서 똑똑, 하고 정적과도 같던 방의 공기를 흔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아가씨.”
“응.”
방 안 주인의 허락이 떨어지자 정장을 반듯하게 차려입은 여성 한 명이 들어섰다.
“실례하겠습니다.”
“무슨 일이야.”
서걱-, 여자가 들고 있던 가위의 소리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본론을 말하도록 압박했다.
“최강혁 님에 대한 소식입니다.”
그 소리에 여자는 자르려던 손길을 멈추고 우뚝, 멈춰 섰다. 그러곤 들고 있던 가위를 내려놓고 뒤를 돌았다. 말없이 바라보는 눈길이 여성, 곧 자신의 비서를 향했다. 비서는 그 눈길에 시선을 내리깔며 차분히 자신이 전해 받은 정보를 그녀에게 전달했다.
“최강혁 님이 반휘혈 님과 학교에서 내분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그 두 사람이?”
여자의 고개가 의문스레 기울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여자가 아는 최강혁과 반휘혈은 사이가 좋진 않을지라도 서로 엮이지 않으려고 하는 쪽이었다. 왜냐하면, 둘이 엮이게 되면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싸운 이유는?”
“여자… 때문인 것 같습니다.”
흥미를 띄던 여자의 시선이 단번에 서릿빛이 돌며 날카로워졌다.
“…여자?”
비서가 방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줄곧 생기 없는 인형 같던 이가 처음 보인 감정이었다. 하지만, 비서는 침착하게 자신이 들은 정보를 나열해 갔다. 그것을 잠자코 듣던 여자는 그 나열이 끝날 즈음, 손을 슬며시 올려 자신의 턱을 받치듯 가져다 댔다.
“또 조커…구나.”
게다가 이번엔 그 정체가 확실하게 드러났다. 도방중학교 오짱 서이수의 누나 서이나. 그녀가 현재 조커로 가장 유력한 이였다.
“한도훈 그 새끼가 그렇게 싸돌더니, 결국 실패했나 보네.”
쿡쿡, 정말 즐거운 듯 여자는 낮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의 감정이 깃든 듯한 웃음이 그려지자 방 안의 공기가 화사하게 바뀐 것 같은 착각마저 일게 했다. 하지만, 비서는 흔들리지 않은 채 그녀가 다시 입을 열기까지 기다렸다.
“혁이가 그 학교로 간 것도 그렇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둘이 싸웠다, 라.”
게다가 그 두 사람을 발로 걷어차? 세상에 다시없을 개그였다. 그녀는 오랜만에 기분이 좋은 듯 코를 흥얼거리며 뒤에 있던 책상에 살짝 걸터앉은 채 그녀의 비서에게 말했다.
“더 재밌는 건 없었어?”
그 말에 비서의 눈이 커졌다. 흔치 않은 주인의 반응이었다. 비서는 잠시 생각하다가 방금 얘기하지 못했던 이야기 하나를 꺼냈다.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소동이 하나 작게 일어났었다고 합니다.”
“소동?”
“네. 어떤 여학생이 최강혁 님께 화이트 데이 선물을 준비해 건네주려 했던 것 같으나, 그분께서 거절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선물을 준 여학생의 친구가… 최강혁 님의 뺨을 때렸다고 합니다.”
그 말에 입가에 걸려 있던 여자의 입매가 확 굳었다.
“…이건 좀 건방진데.”
주제도 모르고 최강혁에게 선물을 주려던 것도 모자라, 그 주제도 모르는 친구를 위해 감히… 최강혁의 뺨을 건드려?
책상을 짚던 손이 그 위에 올려진 꽃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녀의 손등이 뼈마디가 불거지면서 그 틈으로 꽃잎이 산산이 흩어져 갔다.
“누군지 알아내.”
그녀는 움켜쥐던 주먹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곤 손바닥이 아래쪽으로 향하게 하며 쥐던 주먹을 폈다. 그러자 채 흩어지지 못하고 손안에 남아 있던 꽃의 잔재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녀가 발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쾅, 하는 소리가 바닥을 울렸다. 바닥을 강하게 내리친 슬리퍼 아래로 떨어진 꽃잎들이 짓이겨졌다.
“주제에 맞지 않은 행동을 한 이들에게 확실한 응징을.”
명령이 내려졌다. 비서는 숙이던 고개를 더 깊이 숙이며 그 명을 받들었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곧 비서는 방을 나섰다. 여자는 그런 비서를 본 척도 하지 않고 다시 몸을 돌렸다.
여자는 놓아둔 가위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화분에 꽂아 둔 장미 한 송이를 꺼냈다.
서걱-.
가위의 날이 꽃잎을 건드렸다. 하나, 하나 정성을 들이는 듯한 손길과 함께 강박과도 같이 모든 꽃잎이 하나씩 잘려 나갔다. 그녀의 책상과 바닥엔 난도질당한 장미의 흔적만이 가득 흩어져 있었다.
***
다음 날이 왔다.
“…응?”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분명 시선이 오가며 내 눈치를 살피면서도 내게 말을 걸어 오는 이가 한 명 없었다.
‘그래도 방심하지 말자.’
그러다가 어제 그 난장판이 일어나질 않았던가. 어쩌면 이 조용함이 폭풍의 전조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난 하교 시간까지 긴장의 끈을 풀지 않았으나,
“이나야, 집에 가자!”
아무런 일도 없었다. 가방을 부리나케 챙긴 이혜인이 신나서 내게 다가오는 게 보였다. 설마 야자가 다 끝나도록 이렇게 조용할 수 있나…? 혼란스러운 마음에 눈이 다 떨려 왔으나, 나는 두 볼을 짝, 하고 강하게 쳤다.
“이, 이나야?”
옆에서 당황해하는 이혜인을 뒤로하며 난 스스로를 다잡았다. 그래, 아직 소문이 덜 퍼졌…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무슨 이유가 있을 거야. 내일은 분명 난리가 날 게 뻔했다. 그래서 난 정신을 놓치지 않도록 주의하며 내일을 준비했다.
그리고 또 다음 날이 되었다.
“……아니, 진짜 뭔데?”
왜? 라는 의문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아니, 정말, 왜?
“왜 이렇게 조용한 건데…?”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나는 주위를 휙휙 둘러보았다. 어제는 눈치라도 봤던 반 아이들은 어느새 관심을 껐는지 모두 자기 할 일이 바빠 보였다. 나는 황당한 마음을 금치 못하고 입을 벌렸다.
“친구님, 왜 그래?”
흐암- 하며 뒤에서 엎드려 자고 있던 고찬영이 내 어수선한 인기척에 깼는지 느그적 몸을 일으켰다. 안경희도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붙잡고 이 알 수 없는 현상에 대해 꺼냈다.
“야, 애들아. 왜 이렇게 조용한 거야? 어?”
분명 어제나 오늘 나를 향해 많은 관심이 쏟아질 거라 생각했다. 조커냐고 캐묻는 질문이나 반휘혈 애들의 관계 등 여러 질문이 내게로 향해 정신 사나운 일정을 보낼 것이라 예상했었기에 이 무관심이 너무나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게 그렇게 이상해?”
그런데 고찬영의 반응이 어쩐지 시큰둥했다.
“이상하지! 무슨 일 터지면 나부터 찾던 애들인데!”
나는 그 답답한 반응에 책상을 두들기며 발끈했다. 이 학교에서 가장 만만히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게 바로 나였다. 그러니까 한도훈과 이윤과의 스캔들이나 도방중 애들 정보, 고찬영의 정보와 관계 등등 온갖 질문이 시시때때로 내게 쏟아졌다. 하지만, 그런 내 심경을 모르는지 고찬영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귀찮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아- 그냥 좋은 게 좋은 거잖아? 그냥 대충 넘어가~.”
그러곤 다시 엎드려 잠을 청했다. 나는 그 매정한 뒤통수를 어처구니없이 바라보다가 안경희를 휙, 돌아봤다.
“경희, 너도 얘처럼 생각해?”
“어? 어… 뭐, 그렇긴 하, 한데.”
설마 싶었던 동조에 나는 울상을 지었다. 믿었던 너마저 나를 배신하다니! 내가 그렇게 예민한 놈이었나 다시 돌이켜 보았지만, 역시 이상한 건 이상한 거였다.
“저기… 이나야. 애들 반응 신경 쓰는 거라면…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그때, 안경희가 중얼거리며 무언가를 말했다. 나는 고뇌에 잠겨 찌푸리던 미간을 펴며 다시 안경희를 보았다.
“왜? 역시 무슨 일 있던 거지…!”
그래,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이렇게 조용한 데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아직 안경희에게선 무슨 사정이 있다고 듣지도 않았지만, 나는 이미 확신을 하고 있었다.
“어, 어…. 그, 그렇다면, 그렇…지.”
안경희가 난처하게 눈썹을 찌푸리며 힐끗 고찬영을 보았다. 엎드린 고찬영은 미동도 않고 있었다. 나는 녀석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안경희에게 입 모양을 속삭였다.
“얘야, 얘? 얘 때문에 그래?”
“아니, 어…. 마, 맞긴 맞는데,”
너였냐, 고찬영!! 나는 자고 있는 놈의 어깨를 짤짤 흔들어 사건의 경위를 캐묻기 위해 손을 뻗었으나,
“얘뿐만은 아닌데….”
안경희의 말에 도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뭐??”
안경희의 눈이 데록 한 바퀴 굴러갔다. 그녀는 고찬영을 힐끔힐끔 보다가 복도 쪽을 한 번 보더니, 설명하기 어려운 듯 더듬거리며 설명을 시작했다.
“그게 말이지, 사실 어제 커, 커뮤니티에….”
***
모든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한도훈 : 애들아]
[한도훈 : 대충 눈치챘겠지만 누나 정체 들킨 듯]
[사진.jpg]
시작은 한도훈의 메시지에서부터였다. 이 단체 채팅방은 최근 체육관 일을 도와준 수고비 겸 고등학교 입학 선물로 서이수에게 스마트폰이 생기자마자 그것을 알게 된 한도훈이 주체로 만든 방이었다.
서이수는 단체 채팅방에 난데없이 올라 온 내용에 눈썹을 들어 올렸다가 캡처 된 사진을 보곤 미간을 찌푸렸다. 그것은 조커가 자신의 누나인 서이나란 사실이 증명됐단 것처럼 떠들썩한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재현 : 누나... 괜찮을까....?]
이재현도 사진을 보았는지 걱정이 한가득 담긴 메시지를 띄웠다. 서이수는 젖은 머리를 대충 수건으로 털며 아직은 서툰 손놀림으로 키패드를 눌러 답장을 하려는데,
[한도훈 : 그래서 생각했는데]
[한도훈 : 협박을 해보려 해.]
“……?!”
수건이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서이수는 기상천외한 답변을 한 한도훈의 답변을 보곤 경악하며 입을 벌렸다.
[나 : ?????????????????????????????????????????????????]
[이재현 : ????????]
[김시원 : ??]
[반휘혈 : ?]
그래서 그 황당한 마음을 담아 물음표를 연타해 가득 보내자, 다들 한 마음이었는지 물음표를 보내기 시작했다. 게다가 평소 읽씹만 하고 아무 대답도 없던 반휘혈마저 한도훈의 대답이 어처구니없었는지 답변을 올릴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