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여자 주인공의 삶은 고달프다. (3)
[나 : 아 뭐! 위에 내용 좀 정독하고 온 거라고]
하필 비교해도 반휘혈이라니. 억울한 마음에 서이수가 항변하자, 한도훈은 빠르게 납득하며 볼일을 꺼냈다.
[한도훈 : ㅇㅇ]
[한도훈 : 그럼 이렇게 하는 걸로]
[한도훈 : 아니 진짜 꼭 명심해. 너 진짜 입도 벙긋하면 안 돼!!!!٩(๑`^´๑)۶٩(๑`^´๑)۶٩(๑`^´๑)۶]
…뭘? 또 자신이 놓친 게 있나 싶어 다시 스크롤을 올려 봤다. 그러곤 그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나 : 야 나 너무 신뢰 없는 거 아냐?]
그래서 바로 항의하자, 한도훈이 매정하면서도 재수 없는 대답을 내놓았다.
[한도훈 : 당연한 거 아님?]
[한도훈 : 네 연기를 어떻게 믿어?]
야!! 서이수는 결국 실제로 입 밖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러곤 아차 싶어 입을 닫고 문밖의 눈치를 보았으나, 다행히 밖에선 아무 반응도 없었다. 그는 그 사실에 안도하며 다시 메시지를 노려봤다. 아무리 내가 연기를 못 해도 그렇지, 누가 질문하면 입 다물고 노려보기만 하라니! 해도 해도 너무 박한 평가에 서이수가 막 따지려 했다.
[김시원 : 그건 맞음]
[이재현 : .................그으......]
[이재현 : .............이번만은 나도 도훈이 의견 찬성......]
[고찬영 : 와... 친구님 동생이 그 정도야?]
그런데 친구들이 배신을 때렸다. 김시원은 그렇다 쳐도 믿었던 이재현마저…! 게다가 고찬영의 감탄사까지 어우러지자 더 기분이 나빠졌다. 그 덕에 서이수의 볼이 부풀어지며 아랫입술이 튀어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서이수 : 개자식들아!!!]
그래서 그는 욕했다. 배신감에 치 떨며 소리쳤으나, 그들은 읽는 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이젠 각자 할 얘기도 마쳤으니 해산하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한도훈 : 아무튼 각자의 위치 잘 지키고]
[한도훈 : ㅂ2]
[한도훈 : ( ゚▽゚)/]
가장 먼저 떠난 건 한도훈이었다. 그 후엔 고찬영, 김시원 그리고 이재현 이렇게 차례대로 인사가 이어졌다.
[고찬영 : 다들 재밌네ㅋㅋㅋㅋㅋㅋㅋㅋ]
[고찬영 : 아 나 이 방에 계속 있어도 되지?]
[이재현 : 네. 어차피 한두 번 얘기 나눌 것도 아닐 것 같고...]
[고찬영 : 그렇지? 그럼 또 보자고~]
[김시원 : 나도 들어감]
[이재현 : 응. 잘 자~ 이수도 푹 쉬어~]
[이재현 : ( ´ ▽ ` )ノ]
…시발. 이러면 계속 화내기도 그랬다. 서이수는 입을 삐죽이며 이재현의 인사에 그래. 잘자. 라며 화답해 주곤 뒤로 가기를 연타해 나가려는데,
“응?”
무언가 굉장히 눈에 거슬리는 걸 포착했다. 그래서 꺼진 채팅 앱에 다시 들어가 확인하자 서이수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반휘혈 : ㅇ]
…아니, 얘가 대답을? 서이수는 당황스러움에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곧 침착하게 침을 삼키며 단체 채팅방을 확인했다.
“…….”
이쪽 방은 숫자가 모두 없어져 있었다. 그 많은 대화 속에서 기어코 대답 한마디 없는 녀석에 기가 질리는 한편, 대답을 받은 개인 채팅방 내역에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채워졌다.
“…뭐지? ……아니, 진짜 뭐야??”
무슨 바람이 불어 대답해 줬는지 서이수는 당최 알 수 없었다. 그는 머리를 벅벅 긁다가 힐끔 문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설마 이것도… 누나 영향…?’
에이, 설마~ 라고 넘기기엔 그간 짚이던 일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서이수는 진지하게 생각했다.
‘…진짜, 매형 자리를 노리는 거 아냐?’
한도훈은 비웃고, 본인들은 서로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그러기엔 보이는 상황이 너무 뚜렷했다. 그 사실을 떠올리자 서이수의 얼굴이 떫어졌다. 하지만, 이것은 그조차 모르고 지나간 일이었다.
***
“…아니, 그러니까 애들이 나 정체 지켜 준다고 다른 사람들 협박…했다고?”
안경희에게서 전해 받은 내용은 대강 이러했다. 일진들에 관한 소식이 자주 올라오는 커뮤니티에 한도훈 측 법무 팀으로 보이는 이의 글이 올라왔고, 그와 동시에 사이트에 올라왔던 나에 대한 글이 빠르게 삭제된 것과, 어제 그리고 오늘 모두가 합심해서 애들이 학생들을 겁주고 있다는 일이었다.
내가 되묻자 안경희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 어이없는 상황에 헛웃음을 지었다.
“어쩐지 어제 야자 끝나도록 안 가더라.”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뒷자리에서 자고 있는 놈을 보았다. 고찬영은 어제 야자까지 버텨서 피곤한지 엎드린 채 뻗어 있었다. 하지만,
덜컹-.
“…….”
하는 소리가 들려오면 바로 옆으로 고개를 들어 상황을 체크하는 기민함을 보였다. …왜 이걸 이제야 눈치챘나 모르겠다. 스스로의 둔감함에 어처구니가 없어 쓴웃음을 짓다가 시간을 확인했다.
‘지금은 좀 늦었으니깐 다음 쉬는 시간에 다녀와야겠네.’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몸을 돌려 앞을 보았다. 그러곤 책상에 턱을 괴었다.
‘…이런 건 미리 말하면 좀 좋아.’
하여튼 한도훈 그 자식은 이런 비밀을 만들어 두는 걸 참 좋아했다. 나는 뺀질거리는 그 낯을 떠올리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
댕대래 댕댕 댕댕~.
쉬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울리는 종을 확인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시간 역사인데 어디가?”
그러자 뒤에서 수업 내내 자고 있던 고찬영이 내 인기척을 느낀 듯 스멀스멀 일어났다. 꽤 피곤한지 눈을 비비는 모습이 나른해 보였으나, 나는 그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매점.”
“그럼 같이 가.”
고찬영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그런 그를 말리지 않았다.
“아, 나, 나도…!”
“나도 매점 갈래!”
게다가 안경희와 이혜인도 같이 따라붙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매점까지 가면서 가벼운 대화를 나눴다. 그러고 얼마 안 있어 매점에 금방 도착했다. 나는 매점에 파는 것들을 주욱 둘러보곤 하나하나 집어 들기 시작했다.
“……? 그렇게 많이 사? 곧 저녁 시간이잖아.”
하나둘 내 품에 물건이 점점 쌓이기 시작하자 고찬영이 의아한 듯 물어 왔다.
“점심을 부실하게… 먹었던 건 아닐 텐데.”
같이 점심을 먹었던 장본인인 이혜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경희도 궁금한 눈치였지만, 난 계산을 마치기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매점 아주머니가 구매한 물건을 봉지에 담아 건네주는 걸 받으며 인사를 하곤 그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자.”
그러곤 나는 봉지 안에서 하나, 둘 물건을 꺼내 그들에게 하나씩 건네줬다. 세 사람은 건네받은 과자를 한 봉지씩 안으며 눈을 크게 깜빡였다. 나는 그 반응에 짓궂은 웃음을 가득 그리며 말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뇌물.”
기특한 녀석들 같으니라곤. 이렇게 행동을 해 준다는 점에서 그들이 나를 얼마나 생각해 주는지 알 수 있었다. 특히, 고찬영은 알게 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귀찮은 일을 해 주는 걸까 싶었으나 고마운 건 고마운 거였다. 나는 나를 위해 아낌없이 움직여 주는 세 사람을 향해 미소 지으며 다음 목표지인 2층을 향해 몸을 돌렸다.
“아, 가, 같이 가!”
그러자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이혜인이 내 뒤를 따라왔다. 이혜인은 배시시 웃으며 내 팔에 팔짱을 꼈다. 나는 그런 그녀를 피식, 웃으며 바라보며 물었다.
“언제부터 알았어?”
“히히. 비밀.”
“너무하네.”
“너도 그랬으면서.”
“그건 그래.”
우리는 잠시 시선이 마주쳤다. 그리고 동시에 웃음을 가벼이 터트렸다.
…역시 내가 친구 하나는 잘 사귀었다니까.
비록 그 수는 적었지만, 이렇게 좋은 친구 한둘이면 충분했다. 그리고 의리가 있을수록 많이 바라진 않고 단 한 명뿐이면 족했다. 하지만,
‘한두 명도 아니고 일곱이라.’
나는 굉장한 자신의 인복에 감탄했다. 우여곡절은 많았으나, 결국 이렇게 좋은 인연들이 맺어졌다. …왠지 가슴 안쪽이 찡해지는 것 같았다.
서이수를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막막했었는데. 설마 그 어처구니없던 인연들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물론 여전히 그들과 엮여서 피곤한 일이 사라지는 건 아닐 테지만, 그래도 내 편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건 꽤나 기분 좋은 일이었다.
“…친구님은 사람 놀라게 하는 데 재주 있네.”
어느새 불쑥 내 곁으로 다가온 고찬영이 무언가 불만스러운 기분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쑥스러워하는 건가? 나는 그를 향해 피식, 하고 장난 어린 미소를 달며 대꾸했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냐?”
“…흐흠~. 그것도 맞지!”
그는 내 말에 잠시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웃음소리를 흘리며 천연덕스레 내 어깨에 자신의 팔을 걸쳤다. 내가 무겁다고 투덜거려 주자, 그는 보란듯이 무게를 더 실었다. 나는 질색해 했지만, 굳이 그 팔을 치우진 않았다. 그러다가 고찬영 건너편에서 머뭇거리며 이쪽을 보고 있던 안경희를 발견했다.
이쪽을 바라보던 안경희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미소를 띠며 물었다.
“경희야, 왜?”
“……!”
안경희는 내 물음에 몸을 움찔 떨었다. 하지만 무언가 결심했는지 그녀는 입술을 안으로 꾹 깨물더니 작게 소리쳤다.
“…그, 이, 이거! 잘 먹을게!”
외치는 말에 조금 놀랐다. 그리고 새빨개진 그녀의 얼굴에 나는 결국 웃음을 그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 주면 나야 고맙지.”
반갑게 말해 주자, 안경희의 얼굴을 더더욱 붉어져만 갔다.
“오, 얼굴 엄청 빨간데? 홍당무야, 홍당무.”
그리고 그걸 보고 가만히 있을 고찬영이 아니었다. 그는 장난기를 가득 담아 웃으며 안경희를 놀렸다. 그럴수록 그녀의 얼굴은 더 새빨개졌다. 그가 장난을 그만친 건 보다 못한 내가 그의 머리를 가볍게 손날로 내려치며 경고를 주기까지 계속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