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118화 (118/306)

118. 여자 주인공의 삶은 고달프다. (4)

끼익-끼익-.

낡은 철제 건물의 문이 녹슨 소리를 내며 바람에 흔들렸다. 으슥한 곳에 위치한 건물은 인적이 드문 곳을 증명하듯 곳곳에 사람의 흔적이 타지 않은 면면이 보였다. 하지만,

“와~ 심심~허다.”

그 안에서 지루한 듯한 미성 하나가 커다란 건물 내부를 울렸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중성적인 목소리를 가진 이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어딘지 짜증스러운 기운도 감돌고 있었다.

“율아.”

단조로운 음성이 누군가를 호명했다. 그 소리에 무언가를 손에 쥐고 있던 장신의 남성이 쥐던 걸 놓았다.

쿵.

“크…윽!”

그러자 둔중한 소리가 울리며 신음 소리가 작게 울렸다. 남성은 그것에 관심도 주지 않은 채 끼고 있던 장갑을 가벼이 털며 그에게 다가갔다.

“부르셨습니까.”

정중히 머리를 숙이며 손을 뒤로 보내 뒷짐을 지는 자세는 상사를 대하는 부하의 자세였다. 얼핏 보아도 또래의 학생들로 보이는 그들이었으나, 그 기이한 상황을 지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두 사람은 으레 당연한 듯 서로를 그렇게 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머리를 숙이고 있던 이의 정체를 안다면 그리 쉽게 넘어갈 사안은 아니었다. 색이 바랜 듯한 잿빛 머리와 눈동자. 한국인답지 않은 이국적인 외형을 가진 미인. 그리고 율이란 이름. 그는 바로 전국 서열 2위이자 현 사대천왕 중 한 명인 김율이었기 때문이었다.

“니 정신머릴 어따 두고 사나.”

그렇지만 그런 이를 마음껏 하대하는 누군가는 김율의 정체 따위 알 바 아니란 것처럼 그를 막 대했다. 오히려 질타하듯 말하면서 자신이 앉고 있던 무언가를 발뒤꿈치로 툭툭 건드렸다. 그러자 앉고 있던 그 물체가 떨듯 잘게 흔들렸다.

그가 앉고 있던 것은 사람이었다. 그것도 앉고 있는 이보다 두 배는 클 것 같은 문신을 거구의 남자였다. 혼절을 한 모양인지 눈이 뒤집힌 남자의 목끝부터 팔목까지 문신으로 빼곡했다. 손에는 쇠 너클이 껴 있었으나, 더는 위협을 갖추지 않은 채 덩그러니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 따윈 앉아 있던 이에게 그리 흥미로운 사안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실망을 감추지 않고 다시 신경질적으로 그 거구를 뒤꿈치로 툭툭 건들었다.

“인마들, 신용파에서 난 놈들이라 하지 않았나.”

“맞습니다.”

“그란데 와 이렇게,”

그의 발이 올라갔다. 그리고 콰직, 하고 무료한 목소리완 상반된 살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비리비리-한데?”

“끄, 아아…!”

“닥치라.”

손이 밟힌 이는 뼈가 으스러지는 통증에 정신이 깨어났다. 동시에 찾아온 비명을 지르자, 밟은 이가 귀찮은 듯 인정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 눈동자로 고통을 호소하는 이에게 경고했다. 그러자 고통에 몸부림치던 남자가 억지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으며 지르던 비명을 내리 참았다.

“율아.”

“네.”

김율은 눈앞에 보이는 잔인한 그 광경에도 불구하고 눈 하나 깜짝하질 않았다. 오히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무표정한 그 얼굴에선 어떤 감정도 찾을 수 없었다.

“니 요즘 재미난 소식은 읎나?”

“글쎄요.”

“재미없는 자슥. 닌 얼라 때부터 정신이 빠졌다 아이가. 내를 지루하지 않게 하는 게 니 일 아이었나.”

그가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러자 덮인 눈가가 드러나며 김율 못지않게 잘생긴 외모가 드러났다. 하지만, 그 눈에 드리워진 권태로움은 지금 그가 얼마나 재미없는 상황에 놓였는지 알려 주는 것만 같았다. 그런 그의 불만 어린 소리에 곁에 있던 김율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랬습니까?”

“그랬다, 마.”

“그럼 제 불찰이 맞군요. 시정하겠습니다.”

뻔뻔스러운 말이었으나, 김율은 그저 수긍을 택했다. 그러자 사람을 깔고 있던 이가 한쪽 눈썹은 기울이더니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걸 또 받아 주는 건 믄디. 니는 생각이란 걸 쫌 하고 살어라.”

그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털며 김율에게 면박을 주었다.

“나름 한다고 합니다만.”

“말대꾸는 작작 하고.”

“알겠습니다.”

“……재미없는 자슥.”

다시 나온 평가에 김율의 고개가 다시 기울였다. 변덕스러운 그의 태도는 익숙했지만, 여전히 자신이 왜 저런 평가를 받는지 이해하질 못했다. 그 모습에 사람을 막 밟고 지나가던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여~간! 재미난 일 있으면 퍼뜩퍼뜩 내한테 보고해라.”

“알겠…, 아.”

“응?”

이번에도 간단한 대답만 하려던 김율의 입에서 짧은 감탄사가 나왔다. 무언가 떠오른 듯한 모습에 김율을 지나치려던 이는 고개를 돌려 그를 돌아봤다.

“그러고 보니 있군요. 재밌는 일.”

“오.”

그 말에 김율의 곁에 있던 서 있던 이가 이채를 띠었다.

“도방고등학교에서 조커가 모습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조커?”

김율의 말에 그가 두 눈을 깜빡였다. 그러곤 얼마 안 가,

“흐, 하하하!! 와~ 드디어 그 미꾸라지 같은 자슥이 뻘에서 몸뚱아릴 드러냈나!”

파안대소가 낡은 철제 건물을 뒤흔들었다. 그는 유쾌한 듯 웃으며 김율의 어깨를 강하게 내리쳤다.

빠악!

“니는 그걸 와 이제 말하는데!”

말은 가벼운 타박이었지만, 그 어깨를 때리는 울림이 심상치가 않았다. 하지만 김율은 아픈 내색도 하지 않고 그의 말에 대답했다.

“소식이 올라오는 것과 함께 내려가서입니다.”

“…그건 또 뭔 소리고.”

이해할 수 없는 말에 그의 얼굴이 기울였다. 김율은 자신이 보고 받았던 내용을 그대로 그에게 알려 줬다.

“HD 그룹 법무 팀 측에서 나서며 조커라 확실시되고 있던 이의 정체를 전면 부정에 나섰습니다. 그러면서 조커의 정체에 대한 여론의 증명이 어렵다는 걸 내세우며 만일 앞으로도 이와 같이 물증 없이 주장이 또 거론되면 초상권 침해로 소송까지 나서겠다고 하더군요.”

“허. 아주 돈지랄이 납셨군.”

혀를 차며 차갑게 내뱉는 조롱 어린 말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금마들, 참 고삼~하다 아이가?”

“고상입니다.”

누가 들었으면 너무 당당해서 틀린 줄도 모를 말이었다. 하지만, 김율은 그의 그런 단어 선정이 익숙한 듯 정정해 주며 말을 이어 갔다.

“하지만, 그쪽의 입장도 틀린 건 아닙니다. 조커라고 유력한 인물이 조커란 이유를 정확히 제시할 만한 증거는 없습니다. 있다곤 해도 이 사진 한 장뿐.”

핸드폰을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사진을 확인하자마자 눈이 가늘어졌다. 그 사진 속에 있던 것은 남학생 두 명과 여학생 한 명. 그것도 여학생이 남학생 두 명을 막 걷어찼는지 발을 뻗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 사진 속에 있는 남학생 두 녀석은 그의 귀에도 들어온 녀석들이었다. 특히, 이 화려한 금발은 모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최강혁과 그를 차고 있는 여자, 이 둘의 모습은 꽤나 희귀한 장면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이건, 이 여자가 이 두 놈을 밟기라도 한 기가? 아니, 그보다도 싸우는 거 맞나?”

결정적인 게 부족했다.

“아닙니다.”

“그럼?”

“그저 두 사람의 싸우는 걸 말리는 장면이라고 합니다.”

“하….”

그 대답에 사진을 보던 이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확실히 평범한 여학생치곤 말리는 방법이 과격하긴 했다. 게다가 자세도 나쁘진 않았고. 그렇지만, 이 모든 게 조커라는 결론으로 귀결되진 않는다.

“즉, 이 모든 여론이 HD 그룹의 주장대로 전부 심증뿐이란 뜻이 되죠.”

“…….”

김율의 말대로였다. 보고를 받던 이는 얼굴을 굳혔다. 그러곤 동시에 콰직, 하며 물체가 부서지는 소리가 울렸다.

“율아.”

“네.”

그가 들고 있던 핸드폰의 액정이 금이 가면서 까맣게 점멸됐다. 그리고 그 검은 화면 너머로 비린 웃음을 띠며 호승심이 타오르는 한 얼굴이 비춰졌다.

“다음엔 더 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온나.”

“…….”

자신이 움직이기 위해선 더 정보가 확실해야 했다. 엄한 일반인을 건드려선 안 된다. 그것은 그의 철칙과도 같은 일이었기에… 그는 금방이라도 조급해지려는 심정을 가다듬으며 들고 있던 김율의 핸드폰, 이제는 부서진 고철 덩어리가 된 그것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쳤다.

“도련님, 제 핸드폰 마음대로 부수지 마십시오.”

“아, 실수다, 실수. 새 거 사 줄게, 새 거.”

그리고 그걸 지켜본 김율은 한마디를 던졌다. 하지만, 말에 비해 전혀 타격을 받은 것 같지 않은 표정이었다. 오히려 시큰둥한 기색에 더 가까웠다. 반면 김율에게서 도련님이라 불린 이는 그가 무슨 감정을 품고 있을지 대충 예상이 갔다. 그래서 더 번거로워지기 전에 항복을 외치며 물러서려 했다.

“도련님.”

“아~ 고, 마! 낯짝은 멀쩡하니 굴면서 속 좁게 굴지 마라! 새 거 사준다고, 새 거!”

부순 장본인이 되레 소리치는 이상한 적반하장의 광경이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뻔뻔스레 소리치며 그만하라고 외치는 모습을 지켜보던 김율은 그런 그의 말을 무시하고 자신의 말을 이어 갔다.

“그게 아닙니다. 고찬영이 최강혁에 패해 사대천왕의 자리가 바뀌었다는 걸 보고한다는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대화를 하다 보니 그간 잊고 있던 사실 하나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 이야기를 꺼내자 자신을 피하듯 앞서가던 이가 휙, 하고 몸을 돌리며 다가오더니 그의 멱살을 붙잡으며 소리쳤다.

“…야! 니는 왜 그런 보고는 재깍재깍 안 하고 쓸데없는 것부터 하는데! 니 진짜 나 놀리나!!!”

“아닙니다. 당시 도련님께선 정학과 동시에 집 안에 구금되셔서 정보를 보고할 타이밍을 놓쳤을 뿐입니다.”

“……으!! 아오!!!”

진지한 김율의 대꾸에 도련님이라 불린 이가 입을 뻐끔거리다가 결국 성질을 내며 잡던 멱살을 내팽개쳤다. 그러곤 두 손으로 제 머리를 헝클이다가 김율의 가슴팍을 검지로 쿡 찔렀다.

“그래, 알았다! 그건 내 잘못이라 치고! 고찬영 그 자슥이 깨졌다고??”

자못 시비를 거는 듯한 모습이었으나, 김율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보고를 이어 갔다.

“네. 입학하자마자 자리가 뒤바뀌었다고 합니다.”

“…최강혁, 금마가 꽤나 쓸 만한가 보네?”

히죽, 그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흥미를 띠었다. 그가 아는 고찬영은 꽤 나쁘지 않은 실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 그래 봤자 저에게 있어선 가소로울 실력이었지만. 왜냐하면,

“태우 도련님.”

그가 바로 전국에서 가장 강하다고 거론되고 있는 괴물, 전국 서열 부동의 1위이자 현 사대천왕의 최강자인 정태우였기 때문이었다.

“와.”

“최강혁한텐 함부로 시비 거시면 안 됩니다. 잘못하다 그 최강 그룹의 재단이 나서서….”

“아, 안다! 알아!! 그 도련님 새끼 안 건든다고!”

정태우는 김율의 잔소리에 귀를 후벼 파며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아오, 저 융통성이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새끼. 하며 그를 욕하던 정태우는 곧 흥, 하며 콧방귀를 뀌었다.

“뭐, 그쪽에서 시비를 건다면 또 모르는 거 아이가.”

“그럴 일은 없다고 봅니다.”

“…니 진짜 나한테 뒤지고 싶나? 이 재미라곤 눈곱만치도 없는 자슥아.”

초를 치는 발언에 정태우가 살벌히 김율을 노려봤다. 하지만, 김율은 눈 하나 꿈쩍 않고 당당히 대답했다.

“전 재미를 논한 적이 없습니다.”

“그냥 닥치라.”

“알겠습니다.”

그렇게 김율의 입을 닫게 하는 데 성공한 정태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몸을 돌려 앞서 걸어갔다. 그런 정태우를 바라보던 김율은 문득, 잊고 있던 사실 하나를 떠올렸다.

바로 그 여학생의 이름. 가장 유력한 조커 후보인 그 여자의 이름을 아직 자신의 주인이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잠시 이 사실을 보고해야 될지 고민했다. 하지만, 곧 그 생각을 접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의 주인이 입을 닫으라 명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아직은 불명확한 사실이었다. 그러니 정보가 확실해질 때 함께 보고하는 것도 늦지 않았을 터였다. 김율은 그리 정리하며 정태우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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