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122화 (122/306)

122. 여자 주인공의 삶을 고달프다. (8)

“미친… 들개?”

나는 들려온 말을 조용히 되뇌며 옆을 보았다. 그곳은 어둑한 골목이었으나, 딱 봐도 양아치 같은 놈들이 진을 치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공기를 타고 풍겨 오는 냄새에 자동적으로 눈살을 찌푸리며 코를 막던 중, 담배를 휙, 하고 내던진 한 놈이 밉살맞게 고개를 기울이곤 비아냥거렸다.

“그것도 여자를 셋이나 끼고… 근데 수준이 영~ 그렇다?”

“풉.”

“아, 그 들개 새끼도 결국 개새끼라 이건가? 혹시 사대천왕 자리도 운으로 들어간 거 아니야?”

“크큭, 야, 야. 팩트도 정도껏 해라.”

그들의 업신여김은 끊이지 않고 계속됐다. 나는 들으면 들을수록 차가워지는 머리에 이를 까득 깨물며 그들에게 경고했다.

“…적당히 하지?”

“오, 저 새끼 여친이야? 와, 여친이 방패막이인가? 최강혁에게 패배하고 여자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니 좋냐, 새꺄?”

“얼굴도 봐라. 기생오라비 같은 새끼…. 여자 등골이나 처먹게 생겼네. 저딴 새끼를 왜 여자들이 환장하나 몰라.”

와, 이거 진짜 골 때리는 새끼들이네. 나는 뻣뻣해지는 뒷목에 손을 올려 목을 주물렀다. 그리고 거울을 보지 않는 것 같은 그들에게 확실하게 단언했다.

“니들보다 백배 천배 잘났으니까 여자들이 환장하지. 너희 얼굴은 뭐 사람이냐? 눈, 코, 입도 제대로 안 달린 병신들이 지금 무슨 개소리를 지껄여?”

“뭐? 야, 씨발. 죽고 싶냐?”

“봐주고 있으니깐 기어오르네? 하, 씨발. 좆같네.”

그러자 이 자식들은 자신들이 한 말은 생각도 않고 내 말이 기분 나빴나 보다. 나는 그런 그들에게 이죽거리며 고개를 기울여 보였다.

“뭐, 치게?”

“하, 씨발. 이 미친년이…”

대놓고 도발을 해 주자, 녀석들의 낯이 제대로 굳어졌다. 그리고 한 놈이 내 앞에 성큼 다가오더니 번쩍 손을 들어 올렸다. 이혜인이 그 모습에 숨을 들이켜며 작게 비명을 내질렀지만, 난 개의치 않았다.

빡-!!!!

“어디서,”

어차피 저 손은 내 얼굴에 닿지 않을 테니까. 나는 내 앞으로 뻗어져 있는 발을 보며 뒤로 한 걸음 조용히 물러섰다. 그러자 동시에 커다란 몸집이 내 앞을 지키듯 양아치 집단과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손을 올리지?”

고찬영의 차분한 음성이 양아치들에게 향했다. 하지만, 얼핏 보이는 그의 얼굴은 굉장히 서늘했다. 나는 그에게 단조로이 말했다.

“늦다, 찬영아.”

나설 거면 네 욕을 적나라하게 더 듣기 전에 나섰어야지. 괜히 속상한 마음에 핀잔을 주자, 고찬영이 나를 향해 싱긋 웃었다.

“아, 미안, 미안. 듣다 보니 어디까지 기어오르나 궁금해져서 그만. 더러운 말을 듣게 해 버렸네. 오늘 전부 내가 살 테니까 그걸로 봐주라.”

그런데 내가 의도하고자 한 내용이 전달이 안 됐나 보다. 고찬영은 자신이 들은 욕보다 우리가 들은 욕이 신경 쓰였는지 미안해하며 눈썹을 모았다. 나는 그런 그의 정강이를 약하게 차며 투덜거렸다.

“그거 때문에 화내는 거 아냐. 이 멍청아. 넌 저걸 들어도 해명할 마음이 안 들어?”

“으음~ 어쩔까~.”

그는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곤 손목을 돌리며 슬슬 풀더니, 돌연 빙글거리며 웃던 낯을 싸늘하게 굳혔다.

“그렇지만, 지금은 좀… 화나네?”

그럼 당연히 화가 나야지. 나는 질린 낯을 하며 그의 등을 노려보았다. 사실 몇 마디 더 한 소리를 해 주고 싶었다. 놀라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응하는 그의 태도가 이런 소리를 듣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니란 걸 증명했기 때문이었다. 왜 이런 소리를 그냥 듣고만 있냐고 따지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그 어이없는 패배를 해명하기 위해 최강혁과 재대결을 하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내 의견이었고, 나의 고집이었다.

‘서이나 선수, 왜 선수를 그만두시는 건가요.’

‘세계 챔피언까지 앞으로 한 걸음이면 되지 않았습니까?’

‘…혹시 두려우신 겁니까?’

불현듯 과거의 잔상이 귓가에 울려 퍼졌다. 나는 울렁이는 시야에 이를 꽉 깨물며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그렇다. 나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어째서 이런 모욕을 들으면서도 반박하려 들지 않는지, 어째서 가만히 있는 것인지. …어떻게 그리 무던할 수 있는 것인지. 나는 궁금해졌다.

‘기회가 있는데 어째서…’

…너는 해명하려 들지 않는 거야? 비슷한 결과를 보인 우리이지만 선택지가 있었던 너다. 그러나 너는 나와는 다른 선택지를 골랐다. 그렇다면, 알려 줘. 네가 왜 그 길을 택했는지, 나는 그것을 들어야만 했다.

“…이나야?”

“……!”

핫. 익숙한 음성이 깊은 상념에 빠져 있던 정신을 끌어 올렸다. 나는 멍하니 눈을 끔뻑이다가 옆을 보았다. 곁에선 이혜인이 걱정 어린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왜 그래?”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웃었다. 그런 후에 슬쩍 앞을 보았다.

“뭐, 뭐! 씨발! 너, 지금 한 명 나가리 됐다고 얕보는 거냐?!”

“그, 그, 그래 봤자 넌 호, 혼자야!”

골목 쪽에선 고찬영에게 단 한 방으로 기절한 놈을 보곤 벌써부터 겁먹은 듯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나에게 시비를 걸어 온 놈은 꽤나 덩치가 있었다. 설마 발차기 한 번으로 단번에 기절할 줄은 몰랐겠지. 게다가 잠깐이긴 했으나, 그 중심으로 대화가 형성이 됐던 것을 보면 그들 사이에서도 위치가 가장 높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들었다.

“호오?”

고찬영이 감흥 없는 듯한 감탄사를 내뱉으며 입던 외투를 벗었다. 그러곤 내 쪽으로 툭, 건넸다.

“그거 잘 들고 있어 줘. 아끼는 거라 피 묻히기 싫거든.”

고찬영이 익살맞게 윙크를 보냈다. 나는 잠시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피식, 웃었다.

“그래. 재기는 불가능하지만 적당한 정도로 밟아 버려.”

“와~ 그거 참 어려운 주문인걸? 하하.”

그가 유쾌하게 웃었다. 하지만, 으슥한 골목을 향해 뻗어 가는 발걸음은 어쩐지 사냥을 하러 가는 야생 짐승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나는 외투를 팔에 걸치며 문득, 곁에 있는 두 사람이 신경 쓰여 그들에게 경고했다.

“애들아, 눈 가리자.”

“어?”

“응?”

내 경고와 동시에 빡-!!! 하고 뼈가 부러진 것 같은 살벌한 소리가 울렸다. 아이고, 벌써 시작했네. 이혜인과 안경희가 그 소리에 반사적으로 눈을 돌리다가 동시에 낯이 창백해졌다. 예상치 못한, 아니, 예상은 했겠지만 상상 이상으로 잔인한 현장에 식겁한 게 컸을 터였다.

‘픽션이랑 진짜는 다른 법이지.’

현실에서 일어나는 싸움, 특히 패싸움이란 건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뼈가 부러지고 살이 터지며, 피가 철철 흘리는 걸 감당한다는 건 일반 사람에겐 어려운 일이었다.

사실 처음엔 나도 이렇게까지 살벌할 줄은 몰랐다. 이 인소 속 세상에 들어와 처음 본 패싸움은 가히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물론 지금도 가끔 눈살이 찌푸려질 때도 있지만 나름 즐기는 수준까진 올라갔다. 그래도 그때엔 얼마나 당황했던지….

다시 돌이켜 봐도 고개가 저절로 내저어지는 심경에 나는 두 사람의 심신을 위해 뒤늦게나마 손을 뻗어 각자의 어깨에 둘러 눈을 가려 줬다. 이혜인과 안경희는 잠자코 내 손에 응했다.

“크, 아악…!”

“아, 시끄러.”

빡!! 고찬영이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한 놈의 얼굴을 가볍게 걷어찼다. 그러자 그 얼굴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그 정체가 무엇인지 짐작이 갔던 나는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밟으라고 했지만, 진짜 가차 없네….’

뭐, 감당 가능하니깐 저러는 거겠지만. 나는 그와 일행이 아닌 척 딴 곳을 보며 능청을 부렸다. 그러다가 이상한 것을 포착했다.

“……?”

“…….”

그리고 그 이상한 것, 정확히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왠지 거동이 수상했다. 마치 이쪽으로 몰래 다가오려다가 나한테 간파당한 것처럼 말이다.

“그, 에, 에이씨! 모르겠다!!”

어. 진짜 내가 목적이었나? 아니, 이혜인과 안경희도 포함이었나? 나는 갑작스레 이쪽으로 달려드는 놈을 막기 위해 반사적으로 팔을 풀었다. 그리고 외투를 이혜인 쪽으로 던지고 내 쪽을 향해 뻗어 오는 주먹을 가로막기 위해 손을 뻗었다.

빠악-!!!!!

쿠당탕, 탕탕-!!!!

그런데 갑자기 남자가 날아갔다. 아니, 진짜 날아갔다. 게다가 왠지 모르게 한 명이 더 있었다.

‘나,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갑작스러운 상황에 얼떨떨하게 굳어 버렸다. 혹시 고찬영이 날린 놈이 여기까지 날아왔나…? 아니, 그것은 아니었다. 위치로도, 각도로도 날아올 만한 방향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현 사태에 대한 상황을 섣불리 판단 못 하고 멀거니 서 있던 중이었다. 내 쪽으로 느릿한 발걸음이 타박, 타박 하고 다가왔다. 그 방향은 웬 생뚱맞은 남자가 날아온 방향이었다. 그걸 깨닫자 내 목은 자연스레 그쪽으로 돌아갔다.

“엥…?”

그리고 나는 기함했다.

“휘혈이 네가 왜 여깄어…?!”

왜냐하면, 그곳엔 더더욱 생뚱맞은 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아니, 그보다 그 옷차림은 또 뭔데?!”

그것도 누가 봐도 꾸민 티가 나는 정장 차림으로 말이다! 세팅된 머리, 각 잡고 차려입은 듯한 모습은 어딜 봐도 중요한 자리에 있다가 온 듯한 모양새였다. 그런 모습으로 왜 이런 구석진 번화가에 있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 물론 내 눈이야 즐겁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좀 말도 안 되지 않아?!

“…….”

그런데 내가 당황해하든 말든 반휘혈에게서 반응이 없었다. 그는 난처히 내 눈을 피하는가 싶더니, 슬쩍 내게 핸드폰 하나를 건네주었다.

“어? 뭐야, 이거?”

너무 뜬금없는 그의 행동에 내가 영문을 몰라 고개를 기울이며 의중을 물었다. 하지만, 반휘혈은 대답하지 않고 다시 한번 손을 내밀어 내게 핸드폰을 가져가라는 것처럼 압박했다. 나는 그 난데없는 태도에 인상을 찌푸리며 투덜거리다가 내민 핸드폰을 받았다.

“아니, 진짜 말 좀 하라니깐… 응? 뭐야, 이거.”

그리고 나는 이상함에 이맛살을 더 구겼다. 그가 보여 준 건 영상이었다. 그것도 초점이 정확히 나를 향해 있는, 그런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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