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여자 주인공의 삶은 고달프다. (9)
영상의 내용은 방금까지 내가 서 있던 장면을 찍고 있었다. 나는 이 영문 모를 영상에 벙찌며 입을 벌렸다. 자세히 보니깐 이 핸드폰, 반휘혈의 것도 아니었다. 나는 이것에 해명을 바라며 반휘혈을 보았다. 그러자 반휘혈의 시선이 널브러진 두 남자를 향했다.
“어? 반휘, 어억??”
“헉….”
그때,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감을 눈치챘는지 슬며시 눈을 뜬 이혜인과 안경희가 반휘혈을 보곤 기겁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챙겨 줄 여유가 없었다. 나는 다시 영상 속의 자신을 쏘아보다가 반휘혈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쟤네들이 날 찍고 있었단 거지?”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내 질문에 또 다른 질문이 날아왔다. 시선을 돌리자, 상황을 대충 정리한 후 손에 묻은 피를 털고 있는 듯한 고찬영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이쪽으로 다가오다가 뜬금없이 나타난 반휘혈을 보곤 잠시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곤 곧 무언가 납득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잠깐. 뭐야, 저 반응…?’
이해할 수 없는 몸짓에 내 눈은 자연스레 의심을 담아 가늘어졌다. 그러나 고찬영은 상관치 않고 내가 들고 있던 핸드폰을 쇽, 하고 순식간에 가져갔다.
“뭐야, 이거.”
그의 눈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고찬영은 핸드폰을 가볍게 흔들며 뻗어 있는 두 놈을 흘겨봤다. 그러자 정신을 차리고 있던 한 놈이 고찬영과 시선이 마주치곤 흠칫 몸을 떨었다.
“쟤네들이 찍은 거야?”
그 물음이 향한 곳은 내가 아니라 반휘혈이었다. 나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이 궁금했던 차였기에 반휘혈을 돌아봤다. 반휘혈은 나와 시선이 마주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왜?”
정말, 왜? 나는 알 수 없는 그들의 행동에 눈살을 찌푸렸다. 차라리 싸움을 하고 있는 고찬영 쪽의 영상이 더 재밌지 않은가? 이해할 수가 없어서 슬금슬금 자신의 몸을 깔고 있는 놈을 치우려던 한 놈에게 다가갔다.
“왜 날 찍은 거야?”
“그, 그게….”
남자의 시선이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나는 차가워진 머리에 그걸 봐줄 요량은 없었다. 나는 손을 뻗어 그의 멱살을 잡아당겨 물었다.
“말해.”
두 번 좋게 물어볼 생각은 없었다. 이후엔 저 으슥한 골목으로 들고 갈 생각이었다.
“대답 여하에 따라선 넌 뒤지는 거지. 물론, 지금도 좀 맞을 거긴 하지만.”
“으, 으아아…!”
고찬영도 내 생각과 비슷했나 보다. 그는 흔치 않게 화가 난 얼굴로 바닥에 나뒹구는 남자의 손을 지그시 밟았다. 그리고 얌전히 있던 반휘혈은 조용히 내 곁으로 다가와 내 손을 조심스레 감쌌다. 그러곤 살며시 내 손을 풀더니,
빡-!!
하고 주먹으로 남자의 얼굴을 휘갈겼다. 순식간에 일어난 그 자비 없는 폭력에 내가 놀라서 눈을 크게 뜨자, 반휘혈이 표정 없는 낯으로 싸늘히 나뒹구는 남자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좋게 물어볼 필욘 없지.”
“그건 그래.”
뚜두둑, 뼈가 살벌하게 뭉개지는 소리가 고찬영의 발 아래서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남자가 비명을 질렀으나, 우리 중 그 누구도 동정의 시선을 보내진 않았다. 나는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뒤를 돌았다. 그러곤 그들에게 한마디 던졌다.
“적당히 처리해.”
“그럼. 당연하지.”
“응.”
두 사람의 대답을 들으며 이혜인과 안경희에게 향했다. 이곳이 아무리 인적이 드물어도 사람의 시선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들의 정신적인 피해가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뭐, 안색을 보니 이미 일어난 것 같긴 했으나, 나는 조용히 모른 척하며 자리를 잠시 피해 있기로 했다.
그런 내 곁으로 고찬영과 반휘혈은 따라오는 일은 없었다.
***
“많이 기다렸어, 친구님들?”
그들이 보이지 않는 거리까지 나온 우리는 두 사람을 얌전히 기다렸다. 위치는 메시지로 보내 두었기에 고찬영과 반휘혈은 손쉽게 우리를 찾아냈다. 그러곤 도착하자마자 해맑게 인사를 건네 오는 고찬영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 들고 있던 외투를 그에게 주며 물었다.
“그 녀석들은?”
내 물음에 고찬영이 잔잔히 웃으며 어깨를 으쓱 올렸다. 잘 해결했다는 거군. 나는 그 대답만으로 충분했기에 이번엔 반휘혈에게 질문을 던졌다.
“무슨 일인지 설명 좀 해 줄래?”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다. 반휘혈은 그런 내 물음에 잠시 말이 없다가 차분하게 입을 열어 상황을 알려 주기 시작했다.
“조커의 정체를 확신할 증거를 포착하기 위해…, 라고 했어.”
“…조, 커?”
나는 생각지 못한 단어에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러자 외투를 주섬주섬 입던 고찬영이 짜증이 얼핏 도는 낯으로 설명을 이었다.
“그걸로 자기 영상 채널 인기 좀 얻고 싶었다고 하던데. 아, 그리고 나한테 시비 건 놈들까지 모두 한패더라.”
“허….”
“뭐…? 자, 잠깐! 그러면 그 모든 게 계획적이었단 거야?!”
나는 점점 골이 아파 오는 상황에 황망히 입을 벌렸다. 동시에 그것은 이혜인도 마찬가지였는지 발끈하며 나섰다. 그렇다. 이혜인의 말대로였다. 어떻게 알았는지, 아니면 우리를 발견하곤 즉흥적으로 짠 건지 몰라도 그 양아치 무리는 계획적으로 우리에게 접근한 거였다. 게다가,
“그래. 나한테 시비 건 건 미끼, 진짜는 친구님이었던 거지.”
“…….”
그 목적은 나였고 말이다. 나는 그 확언에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대체 내가 뭐가 대단하다고?”
이해할 수가 없었다. 조커란 게, 그저 길거리에서 이름 좀 날린 이의 정체가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왜 그런 걸로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처해야 되는지 알 수 없었다.
“…전부터 생각했지만, 친구님. 친구님은 혹시 자기가 얼마나 굉장한지에 대해 혹시 잘 모르나?”
“무슨 소리야?”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나는 바로 되물었다.
“…조커는, 정태우와 견주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평가받고 있어.”
그런데 대답을 해 준 것은 고찬영이 아닌 안경희였다.
“정태…우?”
들어 본 적 있다. 정태우. 그는 현 사대천왕이자 전국 서열 1위에 서 있는 인물이라고 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난공불락의 괴물. 그런 이가 바로 정태우였다.
“아니, 내가 왜…?”
딱히 그렇게 나선 적은 많이 없었다. 싸움판에 끼어든 것도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까지 후한 평가가 나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 그야… 도방중학교 애들을 휘어잡는다든가, 어… 신비주의이기도 하고…, 정태우처럼 단 한 번도 진 적도 없고….”
“…….”
안경희의 말을 듣다 보니 결론이 나왔다. 아, 그러니깐 너무 현장에 안 뛰어들어서 내 입지가 높아졌구나. 상상도 못 한 소문의 결과에 결국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런 와중에 한도훈이 법 쪽으로 나서기도 했고… 아, 이, 이게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그, 그 애가 상황 대처는 좋았는데…, 그, 그러다 보니 더 궁금증을 사 버려서…! 으, 아, 어….”
이야기를 들을수록 썩어 가는 내 얼굴을 발견해서일까, 안경희의 얼굴이 울상으로 일그러졌다. 나는 그런 그녀의 반응에 아차, 싶어 황급히 얼굴을 풀며 고찬영과 반휘혈을 돌아봤다. 그리고 심각하게 물었다.
“…이제 어떡하지?”
앞으로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닐 거란 예상이 팍팍, 들었다. 분명 이런 식으로 나한테도 시비가 종종 붙을 게 뻔했다. 그럴 때마다 유연히 벗어날 자신이 전혀 없었다. 그러니 내 정체가 들키는 건 시간문제였다.
“흐음~.”
고찬영이 고개를 살짝 올려 하늘을 잠깐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는 무언가 떠올랐는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내 쪽으로 몸을 조금 기울였다.
“들으면, 내 말대로 할래?”
“…이 상황, 우리 언제 한 번 있었지 않아?”
이 익숙한 대치는 뭐람. 멀지 않은 과거에 이런 적이 있었던 것 같단 생각에 내 눈이 자연스럽게 가늘어지며 얼굴이 구겨졌다. 반사적으로 거리까지 벌리자, 고찬영은 짓궂은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히죽, 웃으며 놀리듯 내게 말했다.
“아~아~. 난 다 친구님 생각해 줘서 말하는 건데~. 너무하네~.”
아니, 네 얼굴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어. 나는 저 자식이 일으켰던 후폭풍을 떠올리며 팔을 북북 쓸었다. 나와 고찬영을 제외하고 모두가 의아한 눈길로 우리를 보는 게 느껴졌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그를 노려보았다.
“이번에도 넌 재밌겠지만, 난 재미없겠지!”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해? 너한테도 충분히 재밌을지도 모른다니까?”
“아니, 그 얘긴 결국 너는 재밌다는 게 맞잖아!”
나는 발끈하는 심정을 감추지 않고 그에게 쏘아붙였다. 그러나 고찬영은 내 반응에 전혀 타격을 입지도 않았으면서 가증스레 우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흑…. 우리 우정이 이 정도야? 내가 그렇게 의심스러워? 친구님, 진짜 매정하다. 나 상처받았어. 진짜야.”
“…너 입꼬리 올라와 있는 거 다 보이거든?”
어딜 되도 않는 사기를 치려고. 거짓말을 할 거면 그 솟아오른 입꼬리부터 처리하고 와 주길 바란다. 게다가 어차피 작정하고 연기하는 것도 아니란 게 버젓이 보였다. 그래서 대놓고 질색해 보이자 고찬영이 상큼하게 웃으며 얼굴을 가리던 두 손을 활짝 펴 보였다.
“앗, 들켰네?”
“…….”
이젠 말을 더 내뱉을 기운도 없었다. 갑자기 모든 게 귀찮아졌다. 나는 기운이 쫙 빠진 듯한 느낌에 피로한 한숨을 푹 내쉬며 눈가를 문질렀다.
“…알았어, 알았다고. 듣기나 해 보자.”
“좋은 생각이야. 뭐, 어차피 이 방법 외엔 딱히 좋은 방법도 없겠지만.”
그렇게 말하니까 더 불길하다. 나는 떨떠름하게 굳어지는 얼굴을 막지 못하고 고찬영을 보았다. 반휘혈이나 다른 애들도 궁금했는지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고찬영은 그런 모두의 시선을 잔뜩 받으며 해맑은 미소를 지은 채 답을 내놓았다.
“간단해. 네가 나나 얘네들, 그러니까 한도훈, 김시원, 이재현… 아니, 얘는 빼자. 아무튼 이 중에 한두 명을 매사 어느 곳을 가든 데리고 다니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