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여자 주인공의 삶은 고달프다. (20)
***
‘음. 이제 어쩌지.’
나는 단 한 방에 널브러진 놈들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나보다 덩치는 산만 한 것들이 너무 연약한 거 아니야?’
지나치게 미동도 없길래 혹시나 싶어 발로 툭툭 쳐 보기도 했다. 다행히 움찔 떠는 게 살아 있었다.
“…우와아! 누나 대박!! 대애바악-!!!”
이제부터 이 널브러진 사체 비슷한 것들을 어떻게 처리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내 곁으로 눈을 과도하게 빛내 오는 이윤을 발견했다.
“누나랑 거의 머리 두 개 차이 나는 녀석도 있었는데, 어떻게 한 방에! 한 방에 다 보내 버렸어!!! 소문이 사실이었구나아!!”
“아니, 대체 무슨 소문이… 아니, 말하지 마. 그다지 듣고 싶지 않아.”
충동적으로 되물었으나, 말 그대로 듣고 싶진 않았다. 학기 초에 들은 게 있다 보니 대강 짐작이 갔기 때문이었다.
‘근데 진짜 어떡하지….’
이대로 두고 갔다가 어떤 후환이 닥쳐올지 모르겠다. 그냥 인적이 드문 길바닥이었으면 그냥 두고 갔을 텐데 영업하는 가게 안에서 이렇게 방치해 두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여기 왜 이렇게 시끄럽…….”
굴러다니는 놈들의 처우에 대해 한참 골똘히 고민하던 중,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드니 연한 갈색의 눈동자와 마주치곤 잠시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침묵했다. 나와 눈이 마주친 한도훈은 잠시 이 난데없는 개판을 파악하려는 것처럼 주위를 슥 둘러보았다. 그러다 내 곁에 있는 이윤을 보곤 잠시 얼굴이 찌푸려졌지만, 바닥에 있는 놈들을 보곤 무언가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조용히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내려와서 이것들 치워.”
……너 지금 누구한테 하는 거니? 핸드폰을 꺼내자마자 하는 말, 아니, 명령에 내 얼굴이 멍청해졌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정장을 입은 몇몇이 우르르 몰려오는가 싶더니 바닥에 있던 양아치들을 챙겨 들고 사라졌다.
“…….”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나는 바보같이 입을 벌리며 그것을 지켜봤다.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얼떨떨해져 어떻게 반응해야 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서 있었다. 그렇게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모든 흔적이 사라지자 한도훈이 능청스레 어깨를 으쓱이며 싱긋 웃었다.
“어라? 누나들 여기 모여서 뭐 해요? 안 돌아와서 걱정했잖아요~.”
얼씨구? 나는 당장이라도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말을 꾹 눌러 삼켰다. 강해중 출신 놈들은 안중에도 없이 딱 나와 안경희만을 향한 말이었다. 그는 다른 놈들을 투명 인간 취급하며 척척 내 쪽으로 다가왔다.
“우와, 도훈이 넌 여전히 짱이구나. 저 사람들 대체 어디서 나온 거야? 응? 응?”
“어서 들어가요.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
“도훈아? 도훈아아~~?? …우씨, 내 말 무시하지 마~. 나 여기 있어~!”
“하하, 웬 날파리가 앵앵거리네.”
한도훈은 웃는 얼굴로 귀를 후볐다. 그러곤 바짝 다가온 이윤을 모른 척 손을 휘둘러 저 멀리 밀어 버렸다. 이윤은 방심했던 모양인지 악, 하며 쉽사리 치워졌다. 나는 그런 두 놈의 행태를 쓴웃음으로 지켜보다가 한도훈이 빨리 가자며 안경희와 내 팔을 각각 붙들었다. 한시라도 더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 하는 한도훈의 모습에 나는 황급히 몸을 반쯤 돌려 최강혁 무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도와줘서 고마워! 다음에 사례할 수 있으면 사례할게!”
잡히지 않은 손을 휘저어 주고 얼마 안 돼 그들의 모습은 시야에 잡히지 않게 되었다. 동시에 한도훈의 손아귀 힘이 더 강해졌다. 덕분에 난 이 녀석이 심기가 불편해졌다는 걸 빠르게 눈치챌 수 있었다.
‘아이고….’
이걸 또 언제 풀지? 난처함에 인상을 미미하게 찌푸리고 있는데, 한도훈이 불쑥 멈춰 서곤 옆에 있는 방문 하나를 열어젖혔다.
“응? 여긴 우리 방 아닌데.”
텅 빈 방 안은 우리가 대여한 곳이 아니었다. 곧장 우리 방으로 향할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내가 얼떨떨히 눈을 깜빡이고 있자, 한도훈이 문을 닫고 그것을 가로막듯 서더니 척, 하고 팔짱을 끼며 못마땅한 듯 내 쪽을 노려봤다.
“이제 설명해 봐요.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방금 쓰러진 그놈들, 누나 작품이죠?”
“아.”
이거 때문이었구나. 그래. 너무 쉽게 그 이상한 장면을 넘어간다 싶었다. 그건 그렇고 용케 내가 한 짓이란 걸 알아차렸구나.
“어떻게 알았어? 다른 애들도 있었는데.”
신기한 마음에 묻자 한도훈은 가당치도 않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렇게 큰 거구들을 별 소란 없이 깔끔하게 쓰러트리는 건 아무나 하는 줄 아나…. 그 녀석들이 판 벌렸으면 이 노래방은 이미 뒤집어졌죠.”
오. 명쾌한 해답에 나는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쩐지 옆에 있는 안경희가 불안한 듯 우물쭈물했다. 의아함에 어깨를 건드려 보자, 정신을 차린 듯한 안경희가 날 보더니 곧 눈을 질끈 감고 작게 외쳤다.
“이, 이나는 잘못 없어…! 나, 나쁜 건 그 인간들이야!”
…응? 나는 그 말에 눈을 멍청히 깜빡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굳이 저렇게 나를 감싸듯 말하는지에 대한 순수한 의문 때문이었다. 설마 한도훈이 날 의심했을까 싶었던 건가? 저 녀석이 그럴 리가 없는데.
“알아요.”
그런 내 생각을 증명하듯 한도훈이 담백하게 수긍했다. 그러곤 그는 귀찮은 듯 머리를 짧게 헝클이더니 말을 이었다.
“제가 묻고 싶은 건 어쩌다가 왜 저 녀석들… 특히! 이윤 그 자식이랑 친하게 붙어 있냐는 거예요.”
그래. 그럴 줄 알았어. 한도훈은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불쾌했는지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안경희는 설마 이런 반응이 나올 줄은 몰랐던지 어리벙벙한 낯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보는 잘 다루는데… 인간관계에 대해선 잘 모르나 보네.’
그렇게 방대한 정보를 다루는데도 한도훈과 내 관계에 대한 신뢰를 추측하지 못한 걸 보면 아무래도 그녀는 확실히 사람 그 자체의 교류에 대해 서툰 부분이 있나 보다. 사회성이 살짝 부족한 부분이 여럿 보인 적 있다 보니 그럴 수 있다 여겨졌다. 뭐, 어차피 이런 건 학창 시절 형성되는 부분이었고, 지금도 그리 늦지는 않았다. 차차 발전해 나가면 됐기에 상관없었다. 나는 안경희의 어깨를 두드려 주곤 안심하란 의미로 그녀를 근처에 있는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좀체 표정이 풀리지 않는 한도훈에게 아까 있었던 일의 대략을 설명해 주었다.
“…왜 저희 안 불렀어요!!”
설명을 다 들은 한도훈은 곧장 분개했다.
“아니… 나도 꽤 당황했다고. 그러다 보니 그렇게 된 걸 어떻게 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자식들 손을 빌리다니! 악! 자존심 상해!! 다음부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부르세요, 꼭!! …아니, 아니다. 단축키나 비상 연락망 있죠? 그거 저희로 해 두세요. 당장.”
한도훈의 협박 같은 재촉에 못 이겨 단축키와 비상 연락망에 도방중 애들이 등록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것은 안경희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아이들과 친하질 못하다는 그녀의 난처한 상황이 벌어졌지만, 한도훈은 개의치 않았다.
“그럼 제 거라도 해 둬요.”
스산한 눈동자가 더 이상 반박은 받지 않겠다고 강하게 일러 주고 있었다. 그 강압에 못 이긴 안경희는 얼떨떨히 한도훈과 연락처를 교환하게 되는 신세가 되었다.
“너도 참 유난이다.”
“…제가 안 떨게 생겼어요? 요즘 누나 주위 너무 시끄럽다고요.”
“그랬나?”
“그랬어요. 며칠 전에도 시비 걸렸다면서요.”
그의 말이 맞았다. …그러고 보니, 확실히 요즘 들어 부쩍 시비가 많이 걸리는 기분이었다. 몇 주 전, 같은 반 아이들과 함께 놀러 간 이후로 주에 한두 번씩 종잡을 수 없이 시비가 걸려 오거나 시선이 느껴지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그건 내 정체 까발리기 위해서 고의적으로 접근했던 거지만, 이번엔 진짜 우연찮게 운 나빠서 걸린 느낌이던데.”
그놈의 조커가 대체 뭐라고 이리도 유난인지 모르겠다. 내 정체를 드러내기 위해서 접근하는 무리나 개인이 늘어나긴 했어도 아직까진 큰 스트레스를 받은 적은 없었다. 왜냐하면, 거의 내 선이 아니라 아이들 선에서 알게 모르게 다 처리되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발견한다는 건 그만큼 직접적으로 접근해서 가능한 탓이었다. 그런 상황을 여럿 접했던 만큼 이번에 마주친 양아치들은 다가오는 분위기 자체가 틀렸다. 그들은 정말 내가 누군지 전혀 감을 못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반휘혈하고 다른 애들이랑 없어서 그랬을지도.’
한도훈과 안경희에게서 듣기론 내 사진이 인터넷상에서 떠도는 일은 없다고 한다. 만약, 돈다고 해도 그것은 그만큼 암암리일 거라고 할 정도라고 했다. 이 얘기는 안경희가 한 만큼 정보는 확실했다. 그러니 몇 주 전 그 양아치들이 내 정체를 추측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들이랑 같이 다니는 여학생이라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내 나름대로 생각했다.
…뭐, 그래서 이 사실을 파악하고 이제부터라도 같이 안 다녀도 될 것 같다고 제안을 해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매몰차게 거절당하며 무시당해 버렸다. 하여간 제멋대로라며 툴툴거렸으나, 이젠 옆에 누군가가 없는 게 서운할 정도였다.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 맞았다.
“그리고 설령 그 양아치 놈들에게 정체가 들켰다고 해도… 이 정도는 커버 칠 수 있을 것 같았는걸. 물론 내가 아니라 네가.”
최강혁 무리에게 묻어가려 했으나, 이왕 이렇게 된 거 한도훈의 힘을 더 빌리는 게 더 낫겠다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얼굴에 철판을 깔며 당당히 말했다. 어차피 여기서 도움 하나 더 받았다고 해서 티도 안 날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이런 식으로 굴면….
“…흥. 그건 당연한 거고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란 것처럼 튕기는 것 같이 보이지만, 채 숨기지 못하는 기쁨이 뿜어져 나오는 한도훈을 볼 수 있고 말이다.
‘이럴 때 보면 얘도 참 귀엽다니까.’
내가 의지해 주는 게 그렇게 기분이 좋나 보다.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한도훈의 어깨를 툭, 쳤다.
“이제 됐지? 그럼 가자, 애들 진짜 기다리겠… 아,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말 끝나기 무섭게 전화가 시끄럽게 울려 댔다. 발신인은 서이수였다.
“여보세,”
[화장실 전세 냈어? 아니면, 변기 막혔어?! 왜 안 와!]
…아니, 이 새끼. 말꼬라지 한번. 나는 핸드폰을 잠시 노려보다가 짜증스레 툴툴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