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138화 (138/306)

138. 수면 아래. (1)

***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체 모를 양복 양반은 한도훈의 수행 비서 중 한 명이었으며, 그 사람이 만든 요리는 훌륭했다. 평범한 분식점에서 먹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고급 퀄리티의 음식이 나와 당혹스럽긴 하였으나, 토를 달기도 민망할 정도로 너무 맛있게 먹고 말았다.

주연희는 도움받기만 하고 해 준 게 없어서 꽤나 미안한 눈초리였다. 거기에 한도훈의 비서란 사람이 주방 안에 식재료를 마음대로 써서 그 값을 원가의 몇 배나 지불하려 들었다. 그런 모습에 주연희는 퍼뜩 놀라 손사래를 치며 강하게 거절해 보았으나 평범한 고등학생이 사회 물을 먹은 비서의 현란한 말솜씨를 이기는 건 불가능했다.

울상을 지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애매한 듯한 주연희의 복잡한 얼굴을 뒤로하며 우리는 식당을 나왔다. 이전이었다면 진즉에 졌을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여름이 오는구나….’

차림새도 겉옷을 따로 챙기지 않을 정도로 가벼워졌다. 이제 반팔을 입을 날이 머지않았다는 뜻이리라.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지났나 멍하게 걷고 있는데,

“으어…?!”

하고 누군가가 식겁한 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 그쪽을 바라보니 장을 본 것처럼 장바구니를 들고 서 있는 남학생이 보였다. 그는 눈을 크게 부릅뜨고 입을 쩍 벌린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얘네들 팬인가 보네.’

반휘혈을 포함한 아이들은 여성 팬뿐이 아니라 남성 팬도 여럿 보유하고 있었다. 길을 지나가다 보면 대부분 선망과 동경의 시선을 그리는 아이들은 팬이라 추측하는 편이었다.

‘일진이 팬이 있어….’

풋, 생각해 보니 좀 웃겼다. 새삼스러운 사실이었으나, 곰곰이 따지니 우습지 않은가. 내가 아는 일진은 불량아나 허세가 가득한 저열한 집단에 가까운 이미지였다. 그런데 이 세상은 참… 뭘 하든 중간이 없었다. 일진들이 미남이고 공부도 잘하는 데다가 싸움도 월등하다. 게다가 집안 재력까지 출중하니 정말 완벽했다.

참 불공평하다고 볼 수도 있었지만, 생각을 바꿔 보면 어떨까? 만약 내가 그들의 팬이라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질풍노도와도 같아 자극이 필요한 청소년기에 있어선 말 그대로의 아이돌, 즉 우상으로 삼기엔 딱이었다.

‘어라, 나… 꽤 대단한 애들이랑 같이 다니는 걸지도.’

미리 사인받아야 되는 거 아닌가, 조금 진지하게 생각하며 그 남학생 지나치려던 순간,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

우연히 시선을 돌린 순간 목도한 그의 얼굴에 나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틀어막고 있는 입, 감격에 젖은 눈. 그것까진 아이들의 여타 팬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분명 그럴 것인데….

‘…왜, 날 보고 있는 것 같지?’

나는 눈을 끔뻑이며 기분 탓인가 싶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가 다시 내 짐작이 맞는지 틀린지 확인하기 위해 슬쩍 남학생을 바라보았다.

“크흡…!!!”

하지만 남학생은 이젠 털썩 주저앉으며 부들부들 떨고 있어 확인이 어려웠다. …거참, 누굴 그렇게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성 팬이었나 보다. 나는 한 번 더 그를 슬쩍 바라보았다가 뒷목을 주물렀다.

‘그건 그렇고 재밌는 애네.’

그런 감이 있지 않은가. 끼가 충만할 것 같은 애들은 단순한 행동조차 남다른 것 말이다. 왠지 저 남학생이 그럴 것 같았다. 다시 만날 일은 없겠지만 나름 유쾌했던 만남에 나는 픽, 웃음을 흘렸다.

***

여기 한 사이트가 있다.

[FAKER].

이름만 봐선 웬 이상한 집단이 속했다거나 불법이 오가는 이상한 곳이 아닐까 싶은 비밀 사이트였다. 그리고 배경마저 어두운 흑색으로 물들어 있어 그 수상함이 말로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방금 올라온 게시물의 내용과 댓글 하나로도 이 사이트의 정체는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제목 : ㅠㅠㅠㅠㅠㅠㅠㅠㅠ오늘 존엄한 그 분을 영접하였습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내용 : 장 보고 가게 가는데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 분이 저희가 가게에서 나오고 있었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5분만 더 일질갈거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조커님사랑합니다 : 헐 ㅈㄴ 부럽습니다......... 어떠셨나요.... 그분은........ 여전히 용맹하시고 듬직한 자태를 지니고 계시던가요.......]

[└(작성자)☆조커팬1호☆는바로나 : 진짜 너무 존엄하셨구요..... 후광이......훅고 ㅏㅇ이 마악.....!!!!!!]

[조커없인못살아 : 로또사세요. 1호님...... ㅅㅂ 왜 난 같은 지역에 사는데 스쳐지나가질 못하지????]

[└조커가최강 : 그건 님 운이 좆망이라 그런듯요.... 그리고 나도.......ㅋ]

[└조커외조빱 : 님들은 그래도 같은 지역이라 같은 공기라도 마시지....... 전 거기서 4시간 거리임.......ㅅㅂ]

차마 감동을 주체 못 하는지 범람하는 게시글 원작성자의 댓글에 대댓글이 뒤를 이어졌다. 그렇다. 이곳은 바로 한 존재를 찬양하기 위해 만들어진 독자적인 팬 사이트였다.

[♡♥조커포에버♥♡ : 조커님이 세상을 제패하신다!!!!!]

[└조커사랑나라사랑 : 믿습니다!!!!! 조커님 만세!!!!!]

[└조블리♥♥♥ : 조커님 만쉐에에에에ㅔ!!!!!]

[└조커없음내목숨도없음 : 님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저도 외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적당히 해주세요. 선 넘으면 사이트장님한테 경고 먹음.]

물론 스크롤을 내리면 내릴수록 이건 광신도 집단이 아닌가 의심케 하는 내용들도 섞여 있었으나 그 아래론 상식적인 중재가 달렸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하나같이 한 사람을 향한 은은한 광기가 서려 있었다.

슬슬 눈치챘겠지만 이 카페는 ‘조커’라 불리는 이를 위한 비밀 팬 사이트였다.

왜 이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질 못하고 이렇게 숨어서 덕질을 하는가. 여러 이유가 있었으나, 종합적으로 따지면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었다.

바로 조커 본인의 신비주의.

정체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하는 조커의 특성을 고려해 이 카페는 그 정체를 알고 있음에도 조용히 숨어서 덕질을 하는 이들로 구성되었다. 초창기의 카페 멤버 구성은 그녀에게 도움을 받았거나, 이러저러한 정보를 통해 그녀의 정체를 파악한 극소수의 멤버들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점점 조커가 유명세를 타고 점점 정보가 늘면서 조커의 정체가 수면 위로 드러날 뻔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손수 발 벗고 나섰다. 그녀가 본인의 이름을 날리는 것을 원치 않기에 그들은 우상의 뜻을 받든 신자처럼 곳곳으로 퍼져 그녀의 정보에 허위성 정보를 끼워 퍼트린 장본인들이 바로 이들이었다. 덕분에 조커의 정체는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뻔하였으나…

상황은 예기치 않게 돌아갔다. 설마 조커 본인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움직일 줄이야. 그들은 자신들이 모르는 사이에 조커 본인이 신비주의를 깬 것인가 심각하게 토론했으나, 곧 한도훈 측의 변호 팀이 움직이는 걸 보곤 아님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할 일은 한 가지. 조커 여론을 묻어 버리기, 였다.

그들의 수는 참으로 갖가지였다. 유명한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더한 어그로를 끌 만한 사안을 가져오든가, 몰래 익명으로 조커의 행적을 추측해 관심을 끄려는 종자가 보이면 그 아이디를 해킹하여 정보를 수정하는 것도 모자라 컴퓨터에 바이러스를 퍼트려 완전히 망가트려 버리든가, 악질적인 허위성을 유포하려 들면 다양한 이유를 들어 현피를 뜨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든가…. 아무튼 여러 가지의 방법으로 그들은 수면 아래에서 움직였다.

[조커팬 : 저기... 여기 원래 이럼?]

그리고 여기, 딱 봐도 적응 못 해 보이는 신규 유저가 한 명 있었다. 그 가련한 외침은 묻혀도 이상치 않았다. 하지만,

[└조커가최강 : 뉴비?!?!=͟͟͞͞(๑º ロ º๑) 이번에 수가 한놈늘었다 싶었더니!!!!]

[└조커따까리 : 사이트장님 이번엔 또 어디서 건져오셨대.......]

[└♡♥조커포에버♥♡ : 여기에 귀한 새신자 한명이...!!!! 탈주는 목숨으로 받는다.]

[└조커따까리 : 님은 적당히 좀.... 또 경고 먹고 싶어요?]

다시 한번 말한다. 이 사이트는 신비주의를 원칙으로 삼는 조커의 팬 사이트. 수면 아래에서도 심해라고 불릴 정도로 심각한 비밀주의 사이트다. 그렇기에 이곳은 새로운 유입이 있다는 건 그만큼 극히 드문 현상이란 뜻. 정확히는 사이트의 회원들 몇몇이 눈여겨본 이들을 고르고 골라 사이트장이자 개발자의 엄격한 심사가 비밀리에 진행한 후 초대되는 방식이었다. 사이트장은 대체 어떻게 그렇게 자세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지, 이것은 팬들의 불가사의 중 하나였으나, 크게 짚고 넘어가는 부분은 아니었다. 혹시라도 조커라는 희귀성과 신비주의를 악용해 관심을 끌어내는 종자를 들여선 안 될 일이 아니던가.

어쨌든 이번에 새로이 영입된 멤버 또한 자신도 모르게 그 절차를 밟고 초대되어 온 자였다.

그리고 그는 지금 꽤나 당황스러웠다. 평소 조커에 관심이 있던 그 초대가 반가운 일이었지만 초대된 링크가 척 보기에도 보통 이상한 곳이 아니었다. 게다가 지켜야 하는 조항까지 딸려 있었다. 혹시 악질에게 속은 건가 싶었으나, 그 또한 팬으로서 정상적인 범주 안에 드는 사람은 아니었다.

다름이 아니라, 자신을 친구라고 부르는 이를 진심 어린 팬으로서 동경하여 자진해서 부하처럼 있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여튼 그런 그였기에 주체 못 하는 팬심이 이겨 버린 게 당연했다. 그렇게 그는 초대에 응했고, 이렇듯 팬 사이트의 새로운 회원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가 들어온 사이트는 상상 이상이었다. 평범한 듯 보이나 은은하게 돌아 있는 게 얼핏 광신도 집단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사이트의 원칙으로 조커에 관한 사진 하나 올라오지 않고, 정체를 정확히 거론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단단히 조커에게 미친 것 같았다.

“…잘못 들어왔나?”

새로운 FAKER의 멤버, 이현호는 떨떠름한 얼굴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는 3월 초에 조커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이후, 그는 조커에게 반하였고, 이리저리 사이트를 전전하며 조커에 대한 정보를 찾아다녔고, 또 저와 같은 이들이 없나 떠돌던 중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그가 알고 있는 팬 집단이라기엔 좀… 그가 흔히 알고 있는 팬 카페나 사이트는 이렇게 음험한 느낌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너무 비밀리에 덕질을 해서 다들 미쳐 버린 건가 의심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뭐어… 그래도 이왕 들어왔으니까 좀 더 지켜볼까.”

안타깝게도 그는 이 팬 카페를 바로 나갈 처지가 되진 못했다. 몇 번이나 말했다시피 조커는 신비주의. 그리고 그녀의 뒤를 봐주는 막강한 조력자들이 버젓이 버티고 있었다. 수면 위에서 조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 금방 뭇매를 맞든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러기에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소중했기에 그는 얼떨떨해하면서도 잠시 동안 탈퇴 여부에 대한 부분은 유예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아직 이현호가 모르고 있고,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했던 현실 하나.

다시 말하지만, 이 사이트는 사이트장의 엄격한 심사가 들어가는 곳이다. 그렇다는 뜻은, 어정쩡한 팬심으론 들어오기 힘든 구역이란 뜻.

즉, 이현호는 그가 거리를 두려 하는 팬들과 같은 종족이란 말이었다.

그렇게 조커, 곧 서이나는 절대 알 수도, 알려야 할 수도 없는 그녀의 충직한 팬들은 오늘도 활기차…게 그녀를 찬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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