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139화 (139/306)

139. 각본. (1)

***

정신없던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이 되었다. 나는 여느 때와 같이 학교로 등교했고, 평범하디평범하게 수업을 들으며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나마 사소한 일이 있었다면 자리가 바뀐 점이다. 그로 인해 고찬영과 안경희, 그리고 나는 각각 산산이 흩어져 버렸다. 이혜인과는 자주 이랬기에 그러려니 했으나, 다른 두 명까지 이렇게 되어 버리니 그냥 내가 자리 운이 없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반에서 가장 친한 애들이랑 떨어진 게 나름 씁쓸하긴 했으나, 나보단 다른 애들이 문제였다. 나는 고찬영의 우는 소리를 감당해야만 했고, 안경희의 눈에 띄게 처진 어깨를 위로해야 되는 상황이 왔다. 심란해진 두 사람을 위로하며 시간을 보내고 나자 어느새 수업 시간이 되어 있었다.

아무튼, 오전에 이런 사태가 있었긴 해도 어제 각오했던 것과는 달리 여유로운 하루였다. 그래서일까, 어쩐지 어깨에 힘이 빠졌다. 바깥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마저 들리고 날씨도 좋으니 나도 모르게 기운이 쭉 빠지려던 찰나였다.

‘응?’

나는 운동장 쪽에서 얼핏 보인 광경에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눈을 몇 번 깜빡이고 비빈 후 다시 그쪽을 보았으나, 내가 보는 상황은 변하질 않았다.

“…뭐야, 저거?”

당황스러움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왜 주연희가 저렇게 혼자 덩그러니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저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누가 봐도 구기 종목의 연습이 한창 이루어지는 것 같아 보였다. 짝을 이루어서 패스를 하는 걸로 보아 혼자서 할 만한 종목이 아닌 게 보였다. 혹시 수가 맞질 않았나 싶어 짚어 보며 세기도 해 보았다. 그리고 난 그 결과에 어처구니가 없어 헛숨을 흘렸다.

쌍이 이루어져야 할 한 팀에 한 사람이 더 많았다. 즉, 세 명이 팀을 이루고 있었다.

‘아니, 선생이란 인간은 대체 뭐 하는 거야?’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아무리 같이 하기 싫어도 그 모습을 보면 선생이 번호순이든 뭐든 간에 억지로 짝을 붙여 주기 마련이었다. 아니면 자신이 함께 해 주든가.

‘아, 설마 그 인간인가.’

체육 선생 중에 유달리 재수 없는 인간이 한 명 있었다. 학교 주임도 체육 선생이긴 했으나, 험상궂은 얼굴과 달리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 사람일 리는 없을 터였기에 나는 눈살을 구기며 운동장으로 보았다. 주연희는 여전히 혼자서 공을 툭툭 치고 있었다.

‘…잠깐, 그 친구는?’

곰곰이 생각해 보니 분명 주연희에겐 같이 다니던 여학생 한 명이 있었다. 그 여학생 덕에 최강혁이랑 시비도 붙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 학생은 대체 어디로 간 거지?

여러모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주연희를 보다가 머리를 긁적였다.

‘…언제부터지?’

지금 주연희의 꼴은 한눈에 봐도 왕따를 의심케 하는 장면이었다. 지금 내가 당장 본 게 이것뿐이라 지레짐작은 아직 이를 수도 있지만… 아니, 저 장면으로 충분하지. 원래 왕따를 당하는 자들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지 않던가. 왕따 당하는 본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바로 그 주변의 공기. 그 공기가 왕따의 피해자를 짓누르는 게 말이다.

문득, 어제 난장판이 되었던 주연희가 일하던 가게가 떠올랐다. 생각해 보니 평소의 그녀였다면 어떤 진상이 왔어도 그 뒤통수에 욕 한번 시원하게 갈겨 준 후 깔끔하게 잊었을 법했다. 그런데 어제 마주했던 그녀는 푹 숙인 채 힘없이 의자에 주저앉아 있었다. 마치 대응할 기력도 남지 않았던 것처럼.

‘…설마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건가?’

머릿속을 관통하는 깨달음에 눈이 커졌다. 나는 잠시 입을 달싹이다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메모지를 꺼내 들었다.

왕따, 가게, 진상, 친구. 그리고….

‘저, 저기, 자꾸 못난 모습만 보이네. 이번에도 도와줘서 그, …고, 고마워.’

반휘혈에게 도움을 받은 게 처음이 아닌 것 같은 말.

……나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걸 놓치고 있던 거지?

세심하게 기울여 상황을 파악한다고 여겼으나, 전혀 아니었다. 나는 현재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학교에서 마주친 주연희는 너무나 밝은 모습으로 내게 인사를 해 왔다. 그런 모습에 난 아무 일도 없을 거라 여겼고, 그녀의 사생활에 대해 깊이 파고들 생각이 없었다.

“미치겠네.”

당장 눈앞에 드밀어진 현실에 안주했다가 그간 모르고 지나친 사실에 숨이 무거워졌다. 머리를 벅벅 긁으며 어지러이 흩트렸다. 그 탓에 묶어 둔 머리가 정신 사납게 흐트러져 다시 묶어야만 했다. 나는 입술을 잘근 씹으며 초조하게 펜을 굴리다가 두 볼을 약하게 내리쳤다.

‘정신 차려, 서이나.’

여기서 흔들리면 어떡할 거야. 앞으로의 일이 태산이었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정신 바짝 차려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선 그동안 주연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 필요가 있었다. 나는 머리를 다시 강하게 질끈 묶으며 산만해지려는 정신을 똑바로 붙잡았다.

***

우선 나는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안경희를 찾아가 한적한 곳으로 불러냈다. 그리고 내 요청은 이러했다.

“주연희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봐 줄 수 있을까?”

“걔는 왜…?”

그러자 안경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내 말이 좀체 이해가 가질 않는 듯한 모습에 나는 뒤늦게 아차 싶어졌다.

“어… 그러니까… 중요한 일이라서…?”

역시 사생활을 캐는 건 좀 그렇…겠지? 그동안 묻기만 하면 바로 응해 주는 그녀의 반응이 평소와 달라 괜히 켕기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뭐, 그렇지. 이렇게 뒷조사하는 게… 그리 좋은 모습은 아니지. 나는 민망함에 눈을 돌렸다. 역시 이번은 내가 손수 발로 뛰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에 자리를 벗어나려는데,

“아, 아니…! 그, 그냥 이번엔 일진이 아니길래…. 알아봐 줄게!”

안경희가 멀어지려는 날 덥석 붙잡았다. …그런데 그 들어주겠다는 모습이 어쩐지 간절해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아니… 내가 이상한 부탁을 한 것 같은데….”

“아, 아냐! 내가 도와주고 싶어서…! 난 네 도움이 되면 뭐든 좋으니까…!”

평소답지 않게 그녀의 기색이 절박하다. …자리가 멀어진 게 그렇게 타격이 컸나? 왠지 부탁하는 입장과 들어주는 입장이 반대가 된 상황에 기분이 얼떨떨해졌다. 나는 민망하게 볼을 긁적이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 그럼 부탁할게.”

그러자 안경희가 그 어떤 때보다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열성적인 긍정을 보였다. 나는 그 모습에 이번 짝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들었나 걱정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일이 조금은 수월해질 거란 생각에 한시름을 조금 놓으며 다음 계획에 착수했다.

‘아무래도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순 없으니까.’

물론 주연희에게 다짜고짜 찾아가 너 요즘 왕따 당해? 라는 무례하고 눈치 없는 질문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내 목표는 단순했다. 그녀 몰래 현재의 동향을 파악하는 것. 그게 내 목표였다. 혹자는 왜 왕따 하나 당하는 걸로 이렇게까지 은밀하게 움직이는 건가 의문을 가질 수도 있었다.

“그게 왜 궁금해?”

바로 눈앞에 있는 내 동생처럼 말이다.

“아, 그냥 잘 지내던 애가 왕따 당하는 것 같으니깐 신경 쓰여서 그렇지. 잔말 말고 아는 거나 내놔 봐.”

말한 내용은 사실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아예 아닌 건 아니긴 했지만… 아무튼! 지금 나는 이 상황이 굉장히 석연치가 않았다.

추측이긴 하나… 만약, 식당 난동 사건과 이 왕따 사건이 그저 우연이 아니라면?

내가 너무 막장 드라마를 많이 봐서 머리가 이상해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하였지만, 원래 인소가 막장이질 않던가. 모든 걸 의심해 봐서 나쁠 건 없었다. 그리고 내 촉은 꽤나 잘 들어맞는 편이었다.

악재는 한 번 일어날 때 연이어 일어날 때가 많다. 마치 짜놓은 각본처럼 말이다.

당장 내 머리론 예측하기엔 한계가 있었지만, 어쩐지 이번 사건은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무언가가 더 나올 것만 같았다. 다름이 아니라 여자 주인공에게 일어난 사건을 알아내는 거니깐 더더욱 심증을 더해 갔다. 그러니 나는 조심스럽고도 은밀하게, 되도록 내가 움직이고 있단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혹여 알아채고 꼬리라도 자르고 도망가면 큰일이 아니겠는가.

“뭐야, 아닌 척했지만 그래도 신경 쓰이긴 했나 봐?”

그런데 서이수는 이 중요한 순간에 먹칠을 하고 자빠졌다. 그의 눈이 가늘어지며 마치 그럼 그렇지, 같은 의미 모를 눈빛까지 받고 있자 내 기분은 한순간에 뒤틀어졌다.

“뭐라는 거야? 내가 뭘 신경 쓰는데?”

“뭐긴 뭐야. 반휘혈이랑 걔, 그, 주연인지 주연희인지, 걔.”

그 헛소리에 바로 눈앞에 있는 자식의 멀대같이 긴 다리를 차 버렸다. 그와 동시에 혀를 함부로 나불거린 죄를 지은 동생 놈은 바닥을 굴렀다.

“헛소리하지 말고. 묻는 거에 대답이나 해.”

“말로 해! 말로!”

하여간 주먹부터 나간다며 툴툴거리는 서이수의 말을 무시하며 나는 다시 말없이 대답을 재촉했다. 3초 안에 말 안 하면 또 때리겠다, 라는 시선을 강하게 쏘아 보내 주자 서이수는 내 시선을 제대로 해석한 것처럼 몸을 흠칫 떨었다. 그러곤 입술을 삐죽이며 입을 꾹 다물더니 슬쩍 내 눈치를 살폈다. 그러길 몇 초, 그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귀찮은 몸짓으로 고개를 털듯 저어댔다.

“아, 나도 잘 몰라. 그런 거 관심 없단 말야.”

“어휴….”

그래. 너한테 물은 내 잘못이다. 물어볼 번지수를 제대로 잘못 골랐다. 그래도 같은 학년이니 뭐라도 알까 싶었건만 전혀 아니었다. 나는 찾아온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서이수를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자, 서이수가 발끈하며 외쳤다.

“아니, 보통 남의 반에서 일어나는 왕따 짓을 누가 관심 있게 보는데!”

……그것도 그렇네?

꽤나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나도 우리 학년에서 누가 왕따 당하고 있는지 자세히 모른다는 걸 상기해 낸 탓이었다.

“아, 아니, 그래도 난 누가 빵 셔틀 당하는지는… 어?”

말하다가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빵 셔틀 당하는 모습이 잘 안 보였다. 특히 2반에 우리 학교 일진이랍시고 나대는 놈들이 있지 않던가. 그렇게 악랄한 편은 아닌 것 같긴 했지만, 종종 소심한 남학생들을 타깃으로 빵 심부름을 시키는 모습을 여럿 목도한 적이 있었다. 또 그것은 자신의 반뿐이 아니라 다른 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 모습을 목격할 때마다 작작 하라고 주의를 준 적이 몇 번이던가. 그런데 요즘은 그 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걸 방금 깨달았다.

“뭐야?”

아차. 귀에 서이수의 목소리가 꽂히자 멍해진 시야가 순식간에 다시 잡혔다. 나는 두 눈을 깜빡이다가 고개를 갸웃하며 방금 생각했던 내용을 말해 줬다. 그러자 서이수는 내 말을 듣곤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시선으로 날 바라보았다.

“뭐야, 누나 그것도 몰라?”

“…….”

그래. 모른다. 아까와는 정반대로 입장이 뒤집혔다. 나는 입을 삐죽이며 시선을 모로 돌려 버렸다.

“아니, 어떻게 친구 일인데 몰라? 누나 찬영이 형이랑 진짜 친구 맞아?”

“엥?”

갑자기 걔 이름이 왜 나와? 난데없는 이름의 등장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서이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녀석은 답답한 듯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찬영이 형이 2학년 빵 셔틀 막은 거 알 사람은 다 아는데 왜 그걸 몰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