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각본. (7)
그의 외침과 동시에 나는 입을 떡 벌렸다.
“어, 어…. 그, 그러니까 성이 그냥 최, 최씨가 아니야…? 이름도 강혁이 아니라…?”
당황스러움에 손을 방황하며 더듬더듬 되묻자 최강혁이 시선을 짜증스레 돌리며 짓씹듯 낮게 내뱉었다.
“아니라고.”
오, 세상에, 마상에. 나는 그 말을 통해서 그간 오해하고 있던 이름을 제대로 알 수 있었다. 그의 이름을 부른 적은 거의 없긴 했어도, 무의식적으로 당연히 ‘강혁’일 줄 알았건만… 그의 이름은 ‘강혁’이 아니라 ‘혁’이었고, 성이 ‘최’가 아니라 ‘최강’이었다.
‘어, 잠깐. 그러고 보니 최강 그룹의 후계자…. 아니, 그 최강이 이 최강이란 말이야?!’
연이은 충격에 몸이 반사적으로 휘청였다. 어떻게 보면 꽤나 단순한 논리이자, 당연한 사실이었으나 내 선입견이 바보같이 그것을 가로막고 있었다. 내가 느끼기에도 심히 당혹스러워하고 있자 최강혁의 얼굴에 어린 황당함과 짜증이 더 진해졌다.
“시발. 좆같은 아버지 같으니….”
이내 그는 자신의 머리를 세차게 헝클이며 살짝 몸을 뒤로 젖혔다. 그의 중얼거림을 듣고 있자니, 어째서 저런 성이 되었는지 연상이 되는 건… 대체 뭘까. 왠지 최강혁의 아버지 쪽이 외국인일 것 같고, 그 아버지가 한국으로 국적을 따면서 성을 ‘최강’이라고 지었을 것 같은 건… 너무 심한 억측일까? 나는 조용히 쓴웃음을 지으며 눈을 흐렸다.
시선을 돌리다가 불현듯 고개를 돌리고 있는 그의 부은 볼이 눈에 띄었다. 나는 그것을 잠시 물끄러미 보다가 멋쩍게 뒷목을 문질렀다. 그리고 품을 뒤져 잡히는 물건을 꺼내 최강혁에게 건넸다.
“야, 야. 강…이 아니라, 혁, 혁아?”
하마터면 또 실수할 뻔했다. 나는 빠르게 말을 번복하며 어정쩡한 자세로 그를 불렀다. 최강혁은 내 부름에 짜증스레 시선을 돌렸다가 내가 건네는 것을 발견하곤 떨떠름히 얼굴을 굳혔다.
“…뭐야.”
“뭐긴. 보다시피 연고지.”
버릇처럼 들고 다니는 상비약이었다. 터진 입안에 바르는 것과 부은 볼에 바르는 연고 총 두 개였다. 내가 입고 있는 바람막이는 주머니가 큰 편이라 연고나 밴드 등 여러 가지를 들고 다니기 딱 좋아서 아무렇게나 쑤셔 놓고 다녔더니, 종종 요긴하게 쓰이곤 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저 약들은 그 효용성을 발휘하려는 듯싶었다.
“별걸 다 챙기네….”
“알다시피 내 지인들이 손 많이 가는 놈들투성이라.”
떨떠름해하는 것 같은 최강혁의 반응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들고 있는 연고를 흔들었다. 얼른 가져가라는 무언의 제스처를 보이자, 최강혁의 시선이 잠시 가늘어졌다가 고개를 돌렸다.
“됐어. 무슨 병 주고 약 주고도 아니고.”
“고집부리지 말지? 덧나서 고생하는 건 너다.”
핀잔을 줘 봤으나 씨알도 안 먹혔다. 그는 내 말을 싹 무시하며 핸드폰을 들었다.
“어차피 나가서 치료하면… 어.”
“…뭐야?”
이상한 포인트에서 말이 끊기자, 불쑥 불길함이 찾아들었다.
‘설마 핸드폰이 고장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에, 에이, 설마~! 나는 애써 웃으며 그 가정을 부정했다. 아무리 감금 이벤트가 우연 찮게 이루어졌다곤 해도 그 로맨스의 철칙과도 같은 상황마저 생길 리가 없었다. 다름 아니라 그동안 나는 로맨스의 ‘로’조차도 이루어지지 않지 않았던가!
‘그리고 감금 시간 길어져 봤자 우애만 돈독해질 텐데 그런 쓸데없는 시간이 생길 리가…’
“배터리 없네.”
…있었다. 망연한 현실에 툭, 하고 내 손에 들려 있던 연고들이 바닥을 굴러다녔다.
“너, 너, 이…!”
너야말로 병 주고 약 주냐! 나는 차마 말을 못 잇고 빈 주먹을 부들거렸다.
“아. 어제 충전 안 했었나.”
그러나 다가온 현실에 충격받은 나와는 상반되게 최강혁은 꽤나 여유로운 작태를 뽐내었다. 그는 대충 머리를 흩트리더니, 자리에 일어서 뜀틀을 옆으로 밀었다. 그러곤 그 뒤에 있는 매트리스에 제 침대인 것마냥 털썩 누웠다.
굉장히 빠른 수긍에 나는 할 말을 잃고 그를 바라보았다. 보통 이런 상황이 오면 조금이라도 당황해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어? 내가 이상한 건가 심각하게 고민해 보았으나, 결론은 아니라는 답만 도출했다.
…역시 이 인소 세계관의 주역 정도나 되면, 저 정도의 담력은 필수인가? 말도 안 되는 억측마저 들었으나, 이 사실을 반박해 줄 만한 사람은 저기 드러누워 있는 한 놈뿐이었다.
“하아….”
어쩐지 피곤해졌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나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면 뭐 하나. 아무리 내가 정상적으로 굴어도 같이 있는 놈이 맞춰 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터덜터덜 그쪽으로 다가갔다.
“야, 좀 비켜.”
“뭐야.”
“나도 앉게 좀 비켜 봐.”
딱딱하고 차가운 바닥에 오래 앉아 있었더니 엉덩이가 아팠다. 나는 허리를 쭉 펴면서 스트레칭을 가볍게 하곤 여전히 비키지 않고 있는 최강혁을 억지로 밀어 버린 뒤 자리를 확보해 앉았다.
우리는 그렇게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될지도 잘 몰라 그냥 멍하니 앉아 있길 잠시, 나는 힐끔 녀석을 바라보았다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해가 길어져서 그런지 아직도 창고의 내부가 밝은 편이다 보니 녀석의 볼에 난 상처가 눈에 띄게 잘 보였던 탓이었다. 이걸 어쩌나 고민하다 결국 양심이 극도로 찔렸던 난 뺨을 쓸며 뒷목을 살며시 문지른 후, 최강혁을 불렀다.
“…야. 잠깐 일어나 봐.”
눈을 감고 있던 최강혁은 내 목소리에 살며시 눈을 떴다. 햇빛이 잘게 부수며 그를 비추고 있는 것이 참 한 폭의 그림 같다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나는 뺨을 가리켰다.
“그러다가 진짜 상처 덧나. 내가 치료해 줄 테니까… 아, 아니다. 그냥 누워 있어. 그 상태로 바르지 뭐.”
점차 귀찮아지는 듯한 그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나도 설득하기 귀찮아졌다. 그냥 치료해 주지 말까 고민도 해 보았으나, 치료 시간이 늦어져 얼굴에 흉이라도 지면 굉장히 마음에 찔릴 것 같아서 어쩔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 흉터의 원흉이 나란 게 퍼지면…. 어우.’
상상도 하기 싫은 현실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나는 최강혁에게 슬쩍 다가갔다. 최강혁은 말없이 눈만 느릿하게 굴리며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흔치 않은 붉은 눈동자가 어쩐지 지금 이 순간 낯설게 다가왔지만 굳이 내색은 하지 않았다. 나는 말없이 연고를 쥐며 꾹 짜내 최강혁의 볼에 살살 바르기 시작했다.
창고 내부엔 잠시 동안 옷이 스치는 소리만이 적막한 내부를 감쌌다. 최강혁은 말없이 나를 보았고, 나는 굳이 그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상처에만 집중했다. 왠지 어색함이 밀려들긴 했으나 치료는 금방이었다. 나는 꼼꼼히 바른 걸 확인하곤 다시 그와 거리를 벌리려고 하는데,
“…그 녀석한테도 이렇게 해 줬나 보지?”
최강혁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나는 그 소리에 그제야 그와 눈을 마주쳤다. 정면으로 똑바로 마주한 눈은 루비를 연상시킬 정도로 아름다웠으나, 그만큼 붉었다. 나는 멍하니 그 눈을 바라보다 뒤늦게 그가 한 말을 되뇌며 정신을 차렸다.
“그 녀석? 누구?”
“눈도 낮더니 눈치도 더럽게 없네.”
이 새끼가…. 예쁜 얼굴과 지나치게 상반되는 말본새에 울컥했으나 최강혁은 귀찮은 것처럼 눈을 감으며 말을 이었다.
“반휘혈.”
“음? 휘혈이?”
아아. 나는 그제야 최강혁이 한 말을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뭐, 그렇지? 다치면 아프잖아.”
“…….”
내 말을 들은 최강혁은 언짢게 눈을 뜨더니 어딘가 한심한 것 같은 얼굴로 나를 보았다. 그러곤 대놓고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멍청한 놈들끼리 잘 붙어 다니네.”
“뭐, 인마?!”
가만히 듣고 있으니깐 아까부터 자꾸 시비네?! 나는 올라오는 빡침에 주먹을 꽉 쥐며 저 잘난 뒤통수를 한 대 휘갈길지 고민해야만 했다.
“쯧, 잠 다 깼잖아.”
그때 최강혁이 머리를 짜증스레 휘적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품을 뒤적이더니 담뱃갑을 꺼냈…,
아니, 잠깐. 담배…?!
“야, 설마 너 지금 여기서 피우려고…?”
나는 서서히 구겨지는 얼굴을 막지 못한 채 떨떠름히 질문을 던졌다. 지금 이 자식이 고등학생이고 나발이고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곳은 체육 창고 안. 창문이라곤 내 키가 닿지도 않는 높은 곳에 있어 환기조차 어려운 곳이었다. 그런데 이런 폐쇄적인 환경에서 몰상식하게 담배를 피우는 그런 짓을 하진 않을 거라 애써 외면해 보았으나, 내 말을 말끔하게 무시하며 찰칵, 하고 라이터 불이 켜지는 소리에 나는 얼굴을 와락 구겨 버렸다. 동시에 내 손은 재빠르게 라이터를 그 손에서 강탈했다.
“…뭐야?”
최강혁이 나를 노려보았다. 나도 그런 그를 당당히 째려보았다. 그러곤 쥐고 있는 라이터를 꽉 쥐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내가 담배 연기에 질식하는 게 먼저일지, 내 손에 네가 질식하는 게 먼저일지 궁금한 게 아니면 당장 넣어라.”
당장이라도 그 목을 졸라 버리겠단 의미를 가득 담아 경고하자, 그러한 내 진심이 제대로 전해졌는지 최강혁은 인상을 구기며 나를 짜증스레 노려보았다. 그렇지만 그도 의미 없는 실랑이를 더는 하고 싶지 않았던지 담배를 도로 넣으며 머리를 헝클였다.
입에는 여전히 빼낸 담배가 질겅질겅 있었지만, 아마 입이 심심해서 그대로 둔 것이라 여기며 나는 품을 뒤적였다.
“입 심심하면 이거라도 먹어.”
주머니에서 꺼낸 건 사탕이었다. 반휘혈이 금연을 한 뒤로 사탕을 먹는 버릇이 생긴 것 같아 나도 간간이 사탕을 챙겨 다녔다. 그리고 마침 지금도 있었고 말이다.
“아, 나 음료수도 있다? 이것도 마실래?”
이런 감금 때엔 중요한 비상식량이긴 했으나 어차피 오늘 안으로 구해질 거란 확신이 있어 나오는 배짱이었다. 아까 설렁설렁 산책할 때 사 두었던 이온 음료를 꺼내자 최강혁의 얼굴이 묘해졌다.
“…그 안에 없는 게 뭐야?”
“…핸드폰.”
정작 중요한 거 빼곤 다 있는 것 같은 현실을 마주하자 입 안에 쓴맛이 감도는 것 같아 조용히 눈을 돌렸다.
“허….”
최강혁의 헛웃음을 무시하며 음료수를 꺼냈다. 그러곤 딸칵, 따며 그에게 마실 거냐는 듯 건네 보이자 최강혁은 말없이 그것을 가져갔다. 액체가 넘어가는 작은 목 울림을 들으며 나는 최강혁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다리를 쭉 펴곤 말없이 발을 까닥이고 있으니 문득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재미없다고. 모든 게.’
지금 생각해 보니 무언가가 이상한 말이었다. 방금까진 갇혔다는 현 상황에 대한 패닉과 최강혁에 대한 짜증으로 모든 게 거슬려서 놓치고 있던 사실이기도 하였다.
…보통 저 나이에 쉽게 그런 권태에 빠지나? 아무리 머리가 어느 정도 큰 고등학생이라곤 하나 저런 생각을 하기엔 일렀다. 나는 의구심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최강혁에게 물었다.
“야. 근데 너 아까 재미없다고 한 게 무슨 뜻이야?”
내 말과 동시에 음료수를 마시던 최강혁의 손길이 우뚝, 멈췄다. 그는 조용히 캔을 내리더니 나를 차분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 눈길이 어쩐지 왜 그런 말을 꺼내는 건지에 대한 이유를 독촉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나는 멋쩍게 그 눈길을 받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그냥 궁금해서. 네 나이대엔 왜… 모든 게 정신없이 돌아가고, 아무튼 막 그러잖아?”
왠지 횡설수설하는 느낌에 눈이 데굴데굴 돌아갔다. 최강혁은 그런 날 말없이 가만히 바라보다 한쪽 눈썹을 살짝 휘며 입을 열었다.
“당신은 아냐?”
“엥”
“당신은 그 나이대 아니냐고. 누가 들으면 다른 나이대인 줄 알겠네.”
최강혁은 나를 미심쩍게 보았다. 그제야 나는 내가 말을 이상하게 했음을 깨닫고 황급히 수긍했다.
“아, 아하하! 그, 그렇긴 하지! 어, 같은 나이대지. 그렇지. 하하.”
민망함에 어색한 웃음이 다 나왔다. 이것마저 트집이 잡히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는데 다행히 최강혁은 별말 하지 않고 캔을 바닥에 놓으며 몸을 뒤로 젖혀 매트리스 위로 드러누웠다.
“땅꼬마.”
“…나 땅꼬마 아니라고. 선배나 누나라고 불러라.”
아까부터 가만히 내버려 두니깐 아주 말을 막 놓네? 그에게 주의를 주자, 최강혁은 픽 웃었다.
“알았어. 땅꼬마 선배.”
“그놈의 땅꼬마… 내 이름 서이나라고. 서이나.”
“그럼 땅콩 선배.”
“땅…… 에이씨. 됐다.”
이름으로 부를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아 보이는 놈을 두고 실랑이를 벌여 봤자 내 기운만 빠진다. 나는 땅꼬마가 아닌 게 어디냐 싶어 체념하며 매트리스에 좀 더 올라 벽에 머리를 기댔다.
“그래서, 최강혁 어린이는 왜 그리 인생이 재미가 없어.”
내 질문에도 최강혁은 잠시간 말이 없었다. 그러다 그는 눈을 살며시 감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 거 느낀 적 있어?”
그 대중없는 말에 최강혁을 바라보았다. 그는 눈을 감은 채 앞을 덮는 머리를 가벼이 쓸어 올렸다.
“너무 일이 잘 풀려. 그런데 그게…”
그는 감았던 느릿하게 뜨며 천장을 보았다.
“인생이 내 뜻과 상관없이 알아서 맞춰지는 거 같아.”
천장을 바라보는 그 눈동자엔 권태로움… 아니, 어쩐지 짙은 피로감이 깊게 눌려 있었다.
“누군가가 써 놓은 각본 위에 놀아나는 기분…이라고 하면 알려나.”
그의 목소리는 평이했으나, 그 안에 진득하니 묻어 있는 것은 인생에 대한 공허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