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154화 (154/306)

154. 각본. (16)

언제 왔는지 서이수는 나와 문설희가 말릴 틈도 없이 사진을 주웠다. 그러곤 그 내용물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허얼…. 그러니까 지금 이 여자가 찬영이 형 두고 바람피웠다는 거지?”

“…….”

야, 이 눈치 없는 자식아…! 끼어들 때가 있고 아닐 때가 있는 법이거늘! 나는 눈치가 더럽게 없는 동생 놈을 당장이라도 쥐어박고픈 충동을 억눌러야만 했다. 안 그러면 이제껏 가오 잡던 게 다 무색하지 않은가!

“느으, 으끄 그르그 흤든그긑은드….”

너, 아까 가라고 한 거 같은데 왜 여기 아직까지 있냐고 근처로 다가가 속삭여 주자, 서이수는 내 말을 못 들은 척하며 문설희를 내려다보았다.

“흐음?”

아니, 이 새끼가 내 말을 무시하네? 나는 울컥하는 감정을 겨우 내리누르며 휙, 하고 그의 뒤쪽을 노려봤다. 그곳엔 서이수뿐 아니라 이재현과 김시원, 그리고 아직까지 왜 있는지 모를 서강이도 있었다. 아까부터 멍한 서강이를 제외하곤 그들은 나와 시선을 마주치더니 바로 시선을 돌려 버렸다. 나는 그런 놈들을 어이없이 바라보았다.

“저기, 이봐. 너 아까 협박받았다고 했지.”

“어, 어…? 어, 네, 네.”

아니, 쟨 또 왜 존댓말이야? 나는 서이수의 말에 얼떨떨히 수긍하고 있는 문설희를 못마땅히 바라보았다.

“흐으음. 누나, 저번에 나한테 얘에 대해서 묻지 않았어?”

서이수가 가리킨 것은 빈 책상이었다. 정확히는 문설희가 더럽히고 있는 책상이었지만. 하지만 서이수는 그 주인을 짐작하는 것처럼 확신 어린 목소리였다.

“그렇, 지.”

떨떠름하게 맞다고 대답해 주자, 서이수는 그 사진을 곰곰이 쳐다보다가 문설희를 힐끗 보았다.

“그럼 낚아야 하지 않아?”

“어, 어?”

“이용해야지, 이 여자.”

“……뭐?”

나는 눈을 멍청하니 깜빡였다. 서이수는 그런 내 모습에도 아랑곳않고 사진을 휘휘 흔들어 보였다.

“그 주찬인가 뭔가 하는 놈. 낚아야지. 함정 파자.”

“…엥?”

“무슨 소리야, 이수야?”

가만히 듣던 이재현이 서이수의 말에 의문을 띠었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기에 미간을 찌푸리며 서이수의 말을 기다렸다.

“찬영이 형이랑 헤어지는 것도 헤어지는 거지만…. 그건 나중에 해도 되잖아? 그치?”

“그렇긴 하다만….”

“그럼 이용해 줘야지.”

서이수가 씨익, 하고 사악한 미소를 그렸다.

“…….”

난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저 자식, 언제부터 한도훈 같은 발상을 하게 된 거지? …물들었나?

“…누나, 방금 이수, 도훈이 좀 닮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건 나만 생각한 건 아니었던지 이재현이 내가 떠올렸던 생각을 그대로 귀엣말로 속삭여 왔다. 그래서 나도 이재현에게 같이 속닥거렸다.

“하여간 나쁜 건 빨리 배워선…. 쯧. 재현아, 넌 저러지 마라.”

“…다 들려, 이것들아!!!”

넌 그대로 착하고 순수한 이재현으로 남아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 딴에는 작게 속삭여 줬으나, 근처에 있던 서이수에겐 다 들렸나 보다. 얼굴이 벌게진 채 버럭 외치는 서이수의 모습에 잠시 그를 달래는 시간이 필요하긴 했으나, 곧 우리는 그가 생각한 작전을 들을 수 있었다.

***

[흐음. 이수치곤 나쁘지 않네요. 마침 저도 준비 거의 다 끝났어요.]

얼결에 세워진 서이수의 작전을 한도훈에게도 문자로 알려 줬다. 그러자 의외로 한도훈의 후한 평가가 내려왔다. 나는 의외인 마음을 감추지 않고 그에게 말했다.

[의외네? 넌 네 작전으로 밀어붙일 줄 알았는데.]

한도훈은 자기의 계획이 틀어지는 걸 싫어하는 타입이라고 생각했던 터였다. 그런데 이렇게 선뜻 응하니 이상하기까지 했다.

[그건 제가 바로 마음이 태평양처럼 넓기 때문 아니겠어요!!!◌ 。˚✩( › ̫ ‹ )✩˚ 。◌]

나는 그 말에 고개를 가벼이 끄덕이며 대답했다.

[어어 그래 방금은 좀 웃겼어 도훈아 그래서 왜 그런 건데?]

그러자 한도훈이 뭐 이렇게 야박하냐며 탓하는 답장을 보내왔지만 나는 상큼히 무시하며 답을 기다렸다. 곧 한도훈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뭐어어어.......]

[세상일이란 게 뭐든 제 뜻대로 되는 건 아니잖아요?]

오? 나는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녀석이 이런 말도 할 줄 알았나. 세상이 마치 자기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굴더니…. 언제 이렇게 생각이 커졌는지 모르겠다. 의외로이 그 문자를 보기를 잠시, 바라보다가 픽, 웃으며 답변했다.

[많이 컸네. 한도훈.]

장한 마음을 담아 보냈다. 그러자 한도훈에게서 잠시 동안 메시지가 오질 않았다. 나는 그 대답을 여유롭게 기다렸다. 얼마나 흘렀을까, 메시지 몇 개가 연이어 도착했다.

“이번엔 뭐라 보내왔을까~. …응?”

나는 핸드폰을 열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도훈뿐이라고만 생각했던 발신인은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아무튼!! 누나는 그 고찬영 친구한테 부탁한 것만 빨리 보내줘요!!٩(๑`^´๑)۶٩(๑`^´๑)۶٩(๑`^´๑)۶]

[이현호(으)로부터 메시지가 왔습니다.]

[혹시 메일 좀 알려줄 수 있을까? 보내주려는 음성 파일이 안 보내지네.]

“엇.”

부끄러워하는 걸 숨기려고 하는 한도훈의 메시지 뒤로 도착한 문자는 이현호였다.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히는구만.’

그러고 보니 얘한테 뭣 좀 부탁했었지, 참. 뒤늦게 떠오르는 일에 나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한도훈에게 문자를 보냈다.

[마침 딱 연락 왔다. 너 메일 좀 알려줘.]

[제 거요?]

[엉. 메일 좀 달래. 음성 파일이 좀 큰가 봐. 너도 들어야 하잖아.]

바로 듣고픈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어차피 당장 듣기도 힘든 데다가 정보도 드문드문 알고 있어서 괜히 억측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럴 바엔 한도훈의 메일로도 보내 놓는 게 훨씬 정리도 빨랐기에 나는 두 개의 메일을 이현호에게 보낼 참이었다.

‘…그리고,’

왜, 굳이, 서울에서도 해결할 수 있는 주연희의 괴롭힘과 고찬영 여친의 바람 사건을 광주 쪽에서도 파헤치려고 하는 건지 의구심이 들었다.

한도훈은 곧 내게 메일을 알려 줬다. 나는 곧장 이현호에게 나와 한도훈의 메일을 전달했다. 고맙다는 이현호의 말에 수고했다는 인사를 남기며 나는 핸드폰을 껐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 거란 괜한 의심이 드는 건 내 망상이려나. …아니, 망상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손가락을 책상 위로 가벼이 부딪히다가 머리를 헝클였다. 괜히 심란해진 마음에 얼굴을 쓸고 있자, 톡톡, 하고 옆자리의 친구가 내게 말을 걸어 왔다.

“저기, 이나야. 괜찮아?”

“응?”

뜬금없는 말에 나는 현 짝꿍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어쩐지 긴장을 품은 것도 하면서도 이리저리 눈치를 보고 있었다.

‘뭐지?’

평소 그리 말을 자주 거는 아이는 아니었기에 의아함이 먼저 들었다. 얘도 보통 낯을 가리는 게 아닌 편인데 무슨 일로 말을 건 걸까. 나는 멀뚱히 눈을 깜빡이다가 그녀에게 물었다.

“뭐가?”

“어, 어?”

“응?”

“아, 아니…. 네가 기분 복잡해 보이길래, 그, 심란해 보여서 그만…. 미, 미안. 내 오지랖이었나 봐.”

그런데 짝꿍이 말을 하다 말고 바로 수그러들었다. …진짜 뭐지? 내가 뭘 들었길래 심란해졌다고 하는 거지?

‘혹시 또 나도 모르는 소문이 퍼진 건가…?!’

나는 얼굴을 굳히며 그녀에게 몸을 기울였다.

“뭔데 그래? 나 모르게 또 뭐 퍼졌어? …혹시 내 소문?”

설마 아까 문설희 협박한 모습이 학교 내에 쫙 퍼진 건가?! 온갖 추측이 머릿속을 난무했다.

“어어, 그, 그건 아니고….”

“아, 그래?”

나는 짝꿍의 말에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난 또 뭐라고. 내 소문만 아니면 된다, 내 소문만. 한결 편해진 마음에 나는 활짝 웃으며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에이, 그럼 괜찮아. 뭔데 그래?”

아까 괜찮냐고 물었던 게 이상하긴 했지만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나는 잠깐 사이 긴장으로 탔던 목을 축이기 위해 텀블러에 입을 대었다.

“어…. 그, 저기….”

“응?”

물을 한 입 머금으며 그녀를 보자, 짝꿍은 눈을 데굴데굴 굴리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반휘혈이 아까 어떤 여학생에게 고백했다고….”

“푸웁-!!!!!!”

그리고 나는 채 다 듣기도 전에 반사적으로 창가 쪽으로 물을 뿜었다.

“아, 친구님. 대체 어디 있…, 친구님?!”

“켁, 커헉, 크헙, 컥컥!!”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를 찾고 있던 듯한 고찬영까지 반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내가 사레들려 죽을 듯이 기침을 하고 있자 고찬영은 단번에 걱정 어린 기색으로 내 등을 사정없이 퍽퍽 두드렸다.

“뭐, 뭐야? 왜 그래? 왜 갑자기 물을 뿜고 그래??”

“이, 이나야! 괜찮아?!”

“휴, 휴지, 휴지!”

뒤이어 따라 들어온 이혜인과 안경희까지 가세하자 금세 내 주위는 소란스러워졌다. 나는 그런 세 사람을 제지했다. 특히 정성스럽게 내 등을 두들기고 있는 고찬영의 손은 더더욱 말이다.

“크, 크흡. 크흠흠! 잠깐, 잠깐. 다시, 다시 얘기해 줄래??”

나는 떨리는 시선을 금치 못한 채 짝꿍에게 재차 물었다. 그러자 짝꿍은 갑작스럽게 몰려온 인원, 특히 고찬영의 등장에 긴장했는지 쉬이 입을 열지를 못하고 있었다.

“뭐야, 뭔데?”

한참이 지나도 짝꿍이 굳어 대답이 없자 고찬영도 답답했는지 의아함을 나타냈다. 나도 이 상황이 갑갑한 건 마찬가지였기에 책상을 초조하게 두드리며 그녀에게 물었다.

“아니, 휘혈이가 어떤 여학생한테 고백한 거 사실이냐니까?!”

“뭐?”

“헐?”

“엇?”

내 질문과 동시에 세 사람이 멍청히 반문했다. 마치 이상한 걸 들었다는 것처럼 멍한 반응이었으나, 나는 무시하고 짝꿍의 말을 급박하고도 초조히 기다렸다.

“어, 어…. 1, 1학년 어떤 애한테….”

긴장으로 떨린 듯하지만 확실한 대답이었다. 우리는 그 대답에 잠시 동안 충격으로 망연히 입을 벌렸다.

“뭐어어어어?!?!”

“무슨 말도 안 되는!!!”

“반휘혈이? 다른 애한테? …친구님 말고?!”

“허어어어얼….”

그리고 잠시 후, 동시에 소리를 내질러 교실을 한순간에 시끄럽게 만들었다. …아니, 잠깐. 나 방금 이상한 거 들은 기분인데? 나는 이상한 발언을 한 고찬영을 어이없는 시선으로 노려봤다.

“야, 거기서 내가 왜 나와?”

“친구님. 친구님이랑 반휘혈 걔 빼고 이 학교 모두가 다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아무튼 자세히 얘기 좀 해 봐. 이거 좀 흥미롭네.”

고찬영은 내 말에 단호히 대답하며 화제를 넘겼다. 나는 그 대답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그를 황당히 바라보았다.

이 자식, 웃기는 놈일세? 아주 단정을 짓는 게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반휘혈은 유구하게 날 좋아하질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나는 그의 말을 믿기로 했다. 사람 말을 좀 들을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인데, 현재 이놈의 자세는 글러 먹었다. 지금도 봐라. 난데없이 반휘혈이 다른 애한테 고백했다고 하질 않았… 아니, 이것도 이상한데? 언제 좋아하는 애가 생긴 건데?! 물론 그 후보야 한 명뿐이긴 하지만!

‘대체 언제 연희랑 그렇게 진도가 나간 거야…?!’

재차 비명을 지르고 싶은 충동이 내달렸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나는 머리가 복잡해져 두 손으로 감쌌다.

“어어. 그, 그, 아까, 점심시간 시작한 지 얼마 안 될 즈음에 그, 그랬다고….”

진짜 방금이잖아! 나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이게, 이게 뭐야…?!’

반휘혈이랑 잘되길 바란 건 맞지만 그래도 최강혁이랑 이어질 줄 알았다. 시프가 말하길, 반휘혈은 파멸의 기운이 강하다고 했다. 그래서 당연히 그가 서브 남주인 줄 알았건만…. 그런데, 그런데, 남자 주인공이 반휘혈이라고요…? 좀체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세계였다. 인소 세계라고 좀 만만히 봤더니 그게 아니었다.

‘와씨…. 그, 그럼 진짜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데…?!’

나는 떨려 오는 동공을 금치 못하고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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