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160화 (160/306)

160. 고마워. (3)

문설희는 고찬영의 말에 한동안 아무 반응도 못 했다. 하지만 할 말을 다 마친 고찬영이 몸을 돌려 가려고 하자, 그녀는 뒤늦게 그의 옷깃을 붙잡고 매달렸다.

“내가! 내가 미안해! 그러니까 제발 헤어지자곤 하지 말아 줘, 응? 찬영아….”

그녀의 애처로운 목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동정이 일게 하였으나, 고찬영은 아니었다. 그는 뒤돌아보지 않은 채 덤덤히 말했다.

“내가 찼다고 얘기 안 할 거니깐 걱정 마.”

무심한 그의 배려에 문설희는 미칠 것만 같았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다정한 그였다. 이리도 차가운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초조해졌다. 그를 놓치면 앞으로 자신은 어떻게 되는 건데…? 본능이 위험스레 경고했다. 그녀는 덜덜 떨며 빠르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 아니야. 찬영아. 그거 아니잖아…. 네가 없으면, 나, 나는….”

“문설희.”

차가운 음성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사실 난 바람피운 건 그러려니 넘어가려 했어.”

“……뭐?”

문설희가 그 말에 몸을 흠칫거리며 망연히 그를 올려다보았다. 고찬영은 그녀를 보지 않은 채 덤덤히 말을 이었다.

“…그런데 친구님 무시하는 건 도저히 못 참겠더라.”

그가 이별을 결심한 가장 큰 원인이었다. 고찬영은 우연히 그녀의 반을 지나다가 그녀가 친구님의 욕을 했음을 들었다. 그것은 고찬영에게도 큰 모욕으로 다가왔다. 바로 그 전날, 그녀에게 경고를 했었기에 그는 더 이상 그녀를 봐줄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게다가 그 모욕을 자신의 친구님이 직접 들었단다. 그는 정말 그 순간 머리끝까지 화가 나 이성이 당장이라도 끊길 뻔하였다. 하지만 그가 당장 소란을 일으키면 이제껏 자신을 위해 몰래 움직인 그녀의 수고가 수포로 돌아갔기에 그는 참아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 그는 기어코 미련하게 자신을 잡는 문설희에게 마지막 경고를 했다.

“…그러니까 앞으론 정말 입조심해.”

붙잡힌 옷깃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고찬영은 잠시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뜨며 그녀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다신 알은척하지 말자, 우리.”

고찬영은 그렇게 그녀를 떠났다. 떠나는 그의 뒤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으나, 그가 뒤돌아보는 일은 없었다.

***

오늘 하늘은 달이 참 밝구나, 나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길을 걸었다. 이재현과는 막 헤어진 참이었다. 어쩐지 하늘을 보고 있자니 자꾸만 정신이 멍해지는 것만 같았다.

“…나, 누나!”

“어, 어??”

그때, 곁에서 같이 걷던 서이수가 버럭 내게 소리쳤다. 깜짝 놀라 동생을 보자 서이수는 못마땅한 듯 나를 보더니, 이내 숨을 내쉬며 떨떠름히 입을 열었다.

“그…. 아까 반휘혈 때문에 그래?”

“엥? 뭔 소리야?”

나는 뜬금없는 그 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서이수는 우물쭈물하더니 조심스레 말했다.

“아니, 아까부터 기분이 별로인 거 같아서.”

“뭐어? 아니, 나 괜찮은데?”

아닌 게 아니라 정말 괜찮았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가. 반휘혈이 주연희와 잘되는 걸 직접 목도한 거 빼곤 별거 없지 않던가. 그러니 정말 평소와 별다를 게 없을 터였다.

“…진짜?”

“진짜라니까? 거참, 의심 많네. 그리고 나랑 휘혈이 그런 사이 아니라니까 자꾸 그러네~.”

귀찮다는 듯 머리를 헝클이며 대꾸해 주었으나, 서이수는 좀처럼 쉬이 수긍하지 못한 기색이었다. 그는 잠시 입을 달싹이더니 이내 입을 꾹 다물었다. 나 또한 더 할 말이 없었기에 그냥 입을 닫았다. 그렇게 말없이 집을 향하고 있을 때, 저 멀리서 익숙한 뒷모습이 눈에 띄었다.

“…음? 저거 찬영이 아니야?”

“엇. 진짜네.”

착각하기 힘든 잘난 뒷모습이 확 눈에 들어왔다. 어쩐지 이혜인의 친구가 어둠 속에서도 고찬영은 착각하기 힘들지 않냐고 성질을 낼 만하다는 생각마저 일었다. 나는 발걸음을 좀 더 빨리하며 앞서 걸어가는 그를 따라잡았다.

“요, 고찬영이!”

“…어? 친구님?”

고찬영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내 존재에 깜짝 놀란 것 같았다. 나는 깜짝 놀래는 것에 성공하자 어쩐지 기분이 좀 상승하는 것 같아 씩 웃었다.

“이 한밤중에 집에 안 들어가고 뭐 해? 넌 한참 전에 끝났잖아.”

“…아-. 잠깐 누구 좀 만나느라. 그런데 친구님…이랑 동생도 이제 들어가는 거야?”

뒤에서 다가오던 서이수를 발견했는지 고찬영이 뒤쪽을 눈짓해 보였다. 나는 그 말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빨리 들어가. 비행 청소년으로 오해할라.”

“후후, 그럼 친구님이 나 막아 줄 거면서.”

“음?”

그의 능청에 나는 눈썹을 들어 올렸다. …뭐지? 어쩐지 평소와 다른 거 같은 건 기분 탓일까. 평소보다 과장된 말을 하는 것도 모자라 그와 상반되게 덜 유쾌하고 기분 또한 저조해 보였다. 그 기묘한 상태에 나는 눈을 빠르게 깜빡이다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 얘들아, 잠깐 여기서 기다려 봐!”

그리고 원하는 걸 찾은 나는 두 사람을 잠시 세우곤 황급히 그곳을 향해 뛰어갔다.

“자.”

다시 돌아온 나는 척, 하고 콜라랑 초콜릿 하나씩 고찬영에게 내밀었다.

“…갑자기 뭐야?”

고찬영은 갑작스러운 내 선물에 당황했던지 차마 받지 못하고 의아함을 드러낸 채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이거 사려고 편의점 간 거야?”

그것은 서이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내가 다녀온 곳, 편의점을 흘긋 바라보더니 이해할 수 없단 것처럼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너 기분 별로 안 좋아 보여서.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단 거 먹고 힘내라고.”

“어…….”

“어? 형 기분 안 좋아요?”

내 말에 고찬영의 눈이 커졌다. 서이수는 뜻밖의 소리를 들은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찬영을 살폈다. 나는 그런 서이수를 성의 없이 치워 버리곤 들고 있는 음료수와 초콜릿을 짧게 흔들었다.

“팔 아파. 받을 거야, 말 거야? 안 먹을 거면 내가 먹는다.”

시큰둥하게 재촉하자 고찬영이 그제야 정신을 차린 것처럼 내가 주는 과자들을 받아 들었다.

“음? 잠깐, 너 손 그거 뭐야.”

그러다 나는 잔뜩 까져 있는 그의 손등을 발견했다. 피로 더러워진 그의 손은 딱 봐도 무언가를 친 흔적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나도 오늘 그와 비슷한 상처를 점심부터 달고 있어서 몰라볼 수가 없었다. …이 녀석, 혹시 밖에 서성이던 이유가 싸움을 하다 와서였던 건가? 나는 혀를 쯧쯧 차며 가방을 뒤져 그에게 소독약과 연고, 밴드를 내밀었다.

“어휴, 너도 참 손 많이 간다. 이거나 받아. 아, 아니다. 그냥 내가 해 줄게. 저기로 가자.”

나는 그의 대답도 듣지 않고 척척, 밝은 편의점 쪽으로 그를 끌어당겼다. 고찬영은 얼떨떨해하면서도 순순히 내게 끌려왔다.

“요새 좀 잠잠하더니 왜 또 싸움질이야, 싸움질은.”

“…누나가 할 소린 아닌 것 같은, 악-!!!!”

매를 버는 동생 놈의 다리를 빠르게 걷어찬 나는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에게 핀잔을 이어 갔다.

“하여간 싸울 거면 다치지를 말든가. 이게 뭐냐.”

나는 툴툴거리며 소독약으로 상처를 씻어 낸 후, 연고를 발랐다. 마무리로 밴드를 착, 하고 그의 손등에 착, 붙이곤 잘 붙였다며 남몰래 흡족하며 바라보고 있자, 갑자기 고찬영이 쿡쿡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뜬금없이 터진 그의 웃음보가 이해가 되질 않아 바라보자, 그는 아무것도 아니란 듯 고개를 젓더니 툭, 하고 내 손등을 건드렸다.

“그래도 다친 덕에 친구님이랑 세트잖아. 아, 나 이런 거 해 보고 싶었던 거 같아.”

“뭐어-?”

나는 괜히 닭살스러워져 팔을 북북 쓸었다. 하지만 고찬영은 장난이 아니고 진심이었는지 그의 손등을 소중히 쓸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니, 장난으로 받아들인 게 괜스레 미안해진 나는 슬쩍 눈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그런 거 말고, 좀 더 제대로 된 걸 말해.”

“음?”

“아니, 보통 친구들이랑 그… 뭐냐, 반지나, 아, 이건 오해 살려나. 이건 아니고, 목걸이라든가, …또 뭐 있지? 아, 아무튼 제대로 된 거 있잖아. 제대로 된 거나 사러 가자고.”

주절주절 쑥스러움을 감추고 말하고 있는데, 고찬영의 반응이 조용하다. 어쩐지 그 침묵이 견디기 힘들어 책상을 쾅, 하고 내리쳤다.

“아, 나도 처음이라 낯간지럽단 말이야! 뭐라 말 좀 해 봐!”

“…자기가 말해 놓고 성질은. …악!!!”

“넌 조용히 해! 윗사람 대화하고 있는데, 어? 어디서 아랫사람이 끼어들어?!”

옆에서 쓸데없는 말을 한마디 거드는 서이수를 다시 잠재워 주고 있던 중이었다.

“…풋, 큭, 으하하하하하하!!”

고찬영의 웃음보가 재차 터졌다. 나는 서이수를 구박하는 손을 멈추곤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하하, 아- 진짜 어떡하지?”

그가 잔웃음을 흘리며 눈가를 쓸었다. 나는 급변한 그의 분위기에 어리벙벙하니 눈을 깜빡였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더니 돌연 그가 내게 활짝 웃어 보였다.

“정말로 좋아해, 친구님.”

나는 난데없는 그 고백에 멍하니 입을 벌렸다. 어, 잠깐. 이건 뭐지? 나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고민하길 잠시, 곧 그가 뒤이어 한 고백이 우정의 뜻임을 겨우 간파해 낼 수 있었다.

‘…진짜 아까 무슨 일 있었나 봐.’

아무래도 그에게 좀 중대한 일이었나 보다. 그게 아니고선 이 아닌 밤중에 혼자 저렇게 감성적이게 될 리가 없었다. 나는 이것을 어떻게 대꾸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솔직하게 말해 주는 게 나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어. 그래. 나도 좋아, 어, 좋아해.”

“으엑.”

생전 안 해 본 말을 하려니 여간 낯간지러운 게 아니었다. 괜히 부끄러워 옆에서 조용히 추임새를 넣고 있는 서이수의 발을 강하게 밟고 있으니 고찬영은 다시 한번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너와 친구여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 고마워, 친구님.”

……진짜 무슨 일이래! 나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어. 나, 나도 고, 마워…?”

“아아아악…! 발, 내 발! 내 바아아알!!!”

이 닭살스러운 상황이 괴로워 나도 모르게 힘이 발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자 고통스러워하는 서이수의 비명이 들렸으나, 나는 그저 때아닌 예민한 감수성을 발휘하는 친구를 위해 한차례 땀을 흘려야만 했다.

***

주연희는 조금 난처했다.

다름이 아니라 집 앞에 다다를 때까지 무거운 묵언 수행을 하고 있는 옆에 있는 남자아이가, 지나치게 신경 쓰였기 때문이었다. 주연희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다 겨우 집이 보이자 그에게 황급히 말했다.

“저기, 그, 집 다 왔는데….”

“…….”

그러자 반휘혈의 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그는 눈을 몇 차례 깜빡이더니 무심히 그녀가 가리키는 앞을 바라보았다.

“아.”

무심한 탄성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꽤나 무뚝뚝한 반응이었지만, 요 몇 주간 조금씩 봐 와서일까, 주연희는 문득 그의 정신이 멍하다고 느껴졌다.

“…저기, 이나 언니 때문에 그래?”

혹시나 싶어 묻자, 그가 움찔 몸을 작게 튀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일에 주연희는 쓰게 웃었다.

‘역시 점심에 있었던 일은 그냥 해 본 말인가.’

그에게선 자신을 향한 일말의 애정조차 느껴 본 적 없기에 그리 믿지는 않았지만, 점심때 일은 둔한 그녀조차 순간 가슴이 덜컹이게 만들었다. 그녀는 멋쩍게 볼을 긁적이곤 그에게 인사했다.

“어쨌든 그… 그동안 고마웠어. 그리고 오늘도.”

주연희는 아까 칼로 위협을 당했던 일을 떠올렸다. 최강혁과 반휘혈이 조금만 늦었어도 분명 자신은 그 칼에 당했으리라. 그 사실을 떠올리면 자꾸만 온몸이 오싹해졌다. 하지만 자신은 지금 멀쩡히 서 있다. 이것은 순전히 그들 덕분이었다.

“…딱히.”

그러나 반휘혈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했다. 그는 그저 할 일을 했다는 것처럼 대꾸했으나, 주연희는 어쩐지 그 모습이 안심되었다.

“후후…. 아닌 게 아니라 정말 고마워서 그래. 너 아니었으면 정말… 버티기 힘들었을 테니까.”

씁쓸한 말이 입안에 자꾸만 감돌았다. 하지만 그녀는 억지로 웃으며 기분을 한껏 끌어 올렸다.

“…신경 쓰인다는 것도 내가 자꾸 괴롭힘당해서였지? 이젠 범인도 잡혔으니까! 앞으론 괜찮아!”

…괜찮아야만 했다. 그녀는 차마 입 밖으로 그 말을 꺼낼 수 없이 꾹 눌러 담았다. 끌어 올린 입꼬리가 자꾸만 떨려 왔으나, 어두운 밤길이라 그리 티 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 들키기 전에 서둘러 집에 들어가야만 했다. 그래서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서둘러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어서 가 봐! 너무 늦었다.”

주연희는 손을 흔들며 그에게 재촉했다. 반휘혈은 그녀를 잠시 보더니 발걸음을 돌렸다. 주연희는 그런 뒷모습에 한시름을 놓을 때였다.

“…너무 참지 마.”

“어?”

돌연 뜻밖의 말이 들려왔다. 주연희는 멍하게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열일곱이잖아. …그러니까, 굳이 참지 말라고.”

그리고 그는 그 말만 남기고 무심하게 떠나 버렸다. 주연희는 멍하니 그가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녀가 정신을 차린 건 그녀의 동생이 누나의 늦은 귀가에 걱정돼 나올 즘이었다.

“누나, 여기서 뭐…. 엇? 누나, 울어?!”

왜 우냐고 산만하게 앞을 지나다니는 동생의 모습이 보였다. 주연희는 뒤늦게 손을 들어 눈가를 훔쳤다. 그리고 그곳엔 동생의 말대로 손에는 물기가 잔뜩 젖어 있는 채였다.

“하, 하하….”

주연희는 문득 힘이 빠졌다. 그래서 그녀는 그대로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 하, …흐, 윽.”

힘없이 흘러나오던 웃음이 어느 순간 일그러졌다.

“으윽…. 흑, 으, 으아아아앙….”

벌벌 떨리는 손으로 그 얼굴을 감췄다. 하지만, 울음을 자각하는 순간 속절없이 오열이 새어 나왔다. 곁에서 당황하던 동생은 자신으로 감당이 되질 않는다고 판단했는지 서둘러 그의 삼촌을 불렀다.

“누나?! 사, 삼촌! 나와 봐! 삼촌!!!”

“뭐, 뭐야, 무슨 일이야!”

갑작스러운 소란에 황급히 나온 삼촌은 후줄근한 차림새 그대로였다. 그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변을 살피더니 울고 있는 자신의 조카를 발견했다.

“아이고, 연희야! 무슨 일이야, 어??”

“흐어어어엉…. 삼초오온! 어어어엉!!”

서둘러 달래기 위해 달려들자 그게 더 자극 버튼이 되었나 보다. 주연희의 오열은 더 극심해져만 갔다. 평소 우는소리 없이 당차고 강하던 조카가 보여 주는 어린아이처럼 약한 모습에 두 남자는 심히 곤혹스러워졌다.

하지만 이 순간 위태롭게 넘실거리던 둑이 터져 버린 주연희에게 있어선 그간 쌓아 왔던 감정을 쏟아 내는, 그런 귀중한 시간이었음은 틀림없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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