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161화 (161/306)

161. 장미의 유혹. (1)

***

달그락-. 고요한 식탁에서 식기만이 잘게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식탁엔 두 사람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들 사이엔 숨 막히는 적막이 흘렀으나, 그들은 신경 쓰지 않는 듯 그저 자신의 수저를 놀리고 있었다.

지잉-.

그때, 정적을 깨부수는 작은 소음이 일었다. 쉬이 눈치채기 어려운 작은 소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상석에서 식사를 하던 남성은 미간을 살풋 찌푸렸다.

“…식사하는 자리에서 핸드폰을 가져오다니, 어디서 배워 먹은 건지.”

누군가를 겨냥하지 않은 듯 중얼거리는 말투였으나 그 방향은 명확했다. 핸드폰의 주인인 여자는 움찔, 몸을 떨곤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버님. 다음부터 조심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본 척도 하지 않고 다시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쯧, 이리도 밥상머리 예의가 없어서야…. 하긴, 그 어미에 그 딸년이겠지.”

“죄송합니다.”

여자는 어떤 반박도 하지 않고 다시 사과를 올렸다. 남자는 그런 여자가 보이지 않는지 시선도 주지 않고 탕, 하고 예민한 소리를 울리며 수저를 식탁에 둔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입맛만 버렸군.”

그가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여자도 수저를 조심히, 소리 없이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자는 남자가 식탁을 완전히 떠날 때까지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남자가 종적을 감추자 여자는 그 자리를 당장에 박찼다. 그리고 근처에 있던 화장실 문을 벌컥 열었다.

“우, 웨엑….”

커다란 화장실 내부에서 속을 게워 내는 괴로운 소리가 작게 울렸다. 그 신음조차 밖으로 들릴까 두려운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듣기를 바라지 않는 것인지 꽤나 억눌린 그 소리는 모르는 이가 보았다면 당장이라도 동정할 모습이었다.

한참을 게워 내던 여자는 잠시 숨을 몰아쉬었다. 곧 눈을 꾹 감았다가 뜨며 그 가는 몸을 이끌고 주저앉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콰르르-, 변기 물이 내려가고 수돗물이 틀어졌다. 여자는 가볍게 세수를 하고 입을 헹구었다. 다 씻고 난 후 여자는 고개를 들었다. 거울 안에는 방금 속을 게워 낸 여파인지 어딘가 초췌하고 가련한 여성만이 있었다. 그러나 여자는 그 모습을 보곤 바로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여자는 주변에 있던 샤워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거울에 강하게 내리쳤다.

쨍그랑-!!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거울이 산산이 부서졌다. 그녀는 숨을 잔뜩 몰아쉬다가 샤워기를 툭, 떨구었다. 샤워기가 욕실 바닥에 산만하게 구르는 소리가 울렸다.

여자는 천장을 향해 고개를 올리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호흡을 고르는 모습은 마치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한 것 같았다. 그녀의 거친 숨이 점점 사그라들며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한층 진정이 되자 눈을 다시 떴다. 떠진 눈은 마치 인형처럼 어떤 감정도 깃들지 않고 공허하기 짝이 없었다. 여자는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핸드폰을 꺼내었다.

[변태 새끼]

그러나 발신자를 보자마자 한순간에 여자의 눈에 짜증이 깃들었다. 여자는 잠시 그 이름을 노려보다가 느릿하게 메시지 내용을 확인했다.

[사진.jpg]

[Q. 이 사람은 누굴까요~?]

여자의 눈이 확장됐다. 그녀의 손에 쥐어진 휴대폰은 덜덜 떨렸다. 그것은 두려움이 아닌 분노에 우러나오는 것이었다. 핸드폰을 쥔 손은 뼈가 도드라지며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 변태 새끼가…!!”

하나의 꽃처럼 가련하고 고운 그녀의 입에서 상스러운 욕 소리가 담아졌다. 그녀는 핸드폰을 강하게 쥐며 욕실을 박차고 나섰다. 거친 발걸음이 복도를 거닐었다. 평소 그녀를 안다면 필히 놀랄 사안이었으나, 다행히도 그런 그녀를 마주치는 이는 없었다. 만일 마주쳤다면… 그 고용인은 반드시 더 이상 그 저택에서 일할 수 없었을 터이니 말이다.

“김 비서-!!”

“네, 아가씨. 무슨 일…,”

짝-!!!

김 비서의 고개가 강한 마찰음과 함께 단번에 돌아갔다. 동시에 여자의 긴 손톱이 부러지며 바닥을 뒹굴었다.

“일을 어떻게 처리한 거야-!!!”

하지만 여자는 떨어진 손톱에 눈길도 주지 않고 김 비서를 강하게 노려보았다. 그 살기등등한 모습은 저절로 오싹하게 만들었으나 김 비서는 손톱에 긁혀 피가 비치는 볼을 훔치지도 않은 채, 내색지 않고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되물었다.

“죄송합니다만, 아가씨. 그게 무슨 말씀이온지….”

그러자 김 비서의 얼굴로 핸드폰이 날아왔다. 불시에 벌어진 일에 그것을 피하지 못한 김 비서가 몸을 휘청였다. 맞은 그녀의 이마에선 피가 뚝뚝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눈이 있다면 똑바로 봐! 일을 얼마나 병신같이 처리했기에 그 새끼한테서 이따위 연락이 와!!”

여자의 말에 김 비서는 휘청이는 몸을 바로 잡기 위해 애쓰며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을 주워 들었다. 피가 흘러 조금 흐릿한 시야였으나 가까운 무언가를 보기엔 무리가 없었다. 김 비서는 차분히 숨을 고르기 애쓰며 화면을 보았다. 그리고 내용을 확인한 그녀의 눈이 커졌다.

[사진.jpg]

[Q. 이 사람은 누굴까요~?]

[A. 답은 바로바로~~!!]

[백여우의 끄나풀이지요~(งᐖ)ว(งᐖ)ว!!!]

“이, 이건….”

김 비서의 입이 망연하게 벌어졌다. 그녀의 눈이 고정된 곳은 다름이 아닌 사진 속에 비친 남성이었다. 그는 낯이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카메라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자는 김 비서가 잘 아는 인물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그는 자신이 일을 처리하기 용이하게 쓰기 위해 중간책으로 고용한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김 비서의 고용주인 여자가 이자를 모를 리가 없었다. 김 비서는 고개를 황급히 내리깔며 그녀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서둘러 상황을 알아보겠…, 윽!!”

말이 채 다 끝나기도 전에 정강이가 차인 김 비서는 반사적으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여자는 그런 김 비서를 일말의 동정조차 어리지 않고, 오히려 분노만이 가득 담긴 시선으로 그녀에게 윽박질렀다.

“알아봐? 알아본다고? 하-!! 지금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거야, 뭐야?!!”

“죄, 죄송합니다.”

여자의 히스테릭에 김 비서는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었다. 정강이가 욱신거렸으나, 지금은 그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이후에 더한 노기가 찾아올 터였기 때문이었다.

김 비서는 당황했다. 여자가 저장한 이름과 별개로 그녀는 그 메시지의 주인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평소 여자가 변태라고 치를 떨며 싫어하는 남자, 바로 한도훈이었다.

‘왜 HD 그룹 자제가 이 일에 나선 거지…?’

그녀가 알기로 한도훈이 나설 만한 사유가 마땅치가 않았다. 최근 일 중에 그와 가장 관련된 연이 무엇인가 서둘러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설마…?”

김 비서는 가장 정황에 근접한 사건 하나를 포착했다. 그러나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당혹스러운 가정이라 스스로도 의식지 못하고 말로 내뱉어 중얼거렸다.

“뭐?”

근거리에 있던 여자가 그 소리를 놓칠 리가 없었다. 여자는 자신도 모르게 초조히 물어뜯던 손톱을 놓았다. 입에서 손가락이 떨어지자 그 사이로 짧은 손톱이 보였다. 그러나 그 손톱은 방금 손톱이 끊겨서가 아닌 상습적으로 물어뜯은 것처럼 거칠면서도 다듬어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여자는 그것이 익숙한지 개의치 않고 김 비서를 재촉했다.

“뭐가 설만데. 빨리 말해.”

“…확실치 않은 추측입니다.”

“말하라고!!!”

여자의 고함에 김 비서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다 곧 결연하게 눈을 뜨며 그녀에게 자신이 떠올렸던 가정을 고했다.

“…이전에, 최강혁 도련님께 뺨을 때린 여학생을 벌하시라는 명을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최근, 그 여학생과 조커가 친분이 다져졌다는 보고가 올라온 적이 있었습니다.”

……뭐? 여자가 눈을 크게 뜨며 김 비서를 내려다보았다.

“그래서 조커와 관련되어 있는 HD 그룹의 자제분께서 이 일을 조사하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걸 왜 지금…!!! 읏!”

여자는 버럭 화를 내지르다가 올라오는 화를 견디지 못하고 잠시 몸을 휘청였다. 김 비서가 그 모습에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녀를 부축했다.

“괜찮으십니까, 아가씨!”

“그걸, 지금 말이라고…!”

여자는 매정히 김 비서를 뿌리치며 제 발로 다시 섰다. 그녀는 숨을 몰아쉬더니 헝클어진 머리를 한 번에 쓸어 올렸다. 눈을 질끈 감은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땐 형형한 빛이 그 안에 어려 있었다.

“하-! 조커, 그 망할 계집이 결국 일을 벌렸겠다….”

그동안 한도훈과 엮이고 싶지 않아 내버려 두었던 게 사달이 되어 버렸다. 그녀는 다시 습관적으로 손을 물어뜯었다. 물어뜯는 손톱은 이미 끝을 보이려 하였으나, 그치지 않고 물어뜯자, 결국 피가 내비쳤다. 김 비서는 그런 그녀의 손을 조심스레 잡으며 자신이 꺼낸 손수건으로 그것을 감쌌다.

“…흉 지십니다, 아가씨.”

감싼 손을 내려다보는 김 비서의 눈엔 안타까움이 얼핏 번졌다. 하지만 여자는 그런 김 비서의 감정을 보지도 않은 채 신경질적으로 손을 빼냈다.

“그럼 이런 일 없게 일을 잘했어야지.”

여자는 피가 흐르는 자신의 손을 꽉 붙잡았다. 강하게 누르면 누를수록 고통이 번졌으나 그녀의 입에서 신음이 나오는 일은 없었다.

“생각, 생각해야 돼.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될지….”

손가락을 꽉 누른 채 그녀의 발이 방 안을 산만하게 서성였다.

당장이라도 조커의 숨을 누르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한도훈과 척을 지게 된다. 한도훈과 척을 진다는 것은 곧 HD 그룹과의 관계를 끊는다는 것. 과장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를 극성으로 아끼는 보호자들을 떠올리면 그것은 필시 과하다고 말할 수 없으리라. …또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반휘혈.

그 또한 문제 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반휘혈 그 자체도 충분히 위협적이지만, 무엇보다 그의 아버지인 반휘명을 적으로 돌려선 안 된다. 그와 적대 관계가 되는 순간 찾아올 여파는 절대적으로 무시하기 힘든 버거운 벽이 될 터였으니 말이다.

“너는 생각해야 돼…. 쓸모를, 쓸모를 증명해야만….”

습관적으로 입가에 손이 갔다. 초조하게 딱딱이는 치아가 짧은 손톱을 깨물었다. 입가엔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으나 그녀는 손가락끝의 감각이 없는 것처럼 끊임없이 손톱을 잘게 물었다.

“아.”

얼마간 그러하였을까, 그녀의 발이 우뚝, 멈추어 섰다. 마치 무언가 좋은 방안이 떠오른 것처럼.

“하, …하하! 왜, 왜 진즉 이 생각을 못 했지?”

여자가 자신의 붉은 머리를 가벼이 정리하듯 뒤로 넘겼다. 그리고 언제 조바심을 내비쳤냐는 듯 고아한 미소를 띠며 김 비서에게 명령했다.

“김 비서, 조커에 대해, 아니, 서이나란 여성에 대해 낱낱이 조사해.”

“네?”

김 비서는 그녀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평소 조커란 인물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던 여자였다. 역시 이번엔 타격이 큰 건가, 제대로 그 뿌리를 밟아 버릴 생각이신 건가, 김 비서의 머릿속에 수많은 부정적인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가씨. 그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그자를 공격하시게 되면, 움직이는 이들이….”

“누가 그렇다지?”

“네?”

김 비서는 또 멍청한 소리를 내뱉었다. 포커페이스를 잘 유지하는 편인 김 비서였으나 지금은 그러하기 힘들었다. 좀체 예측되지 않는 고용주의 말에 김 비서는 어리둥절하니 눈을 깜빡이며 그녀를 보았다.

“그런 하수를 보일 순 없지. 후후…. 되도록 빨리,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걸 낱낱이 내게 보고해.”

“…네. 알겠습니다.”

여자가 유쾌한 미소를 흩뿌렸다. 그것은 그녀가 무언가 흡족한 계책을 마련했을 때 내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 계획은 언제나 성공을 맞이했다.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든 말이다. 하나 김 비서는 이번엔 어떤 군소리 없이 고개를 숙이며 복종을 내보였다. 그녀의 뜻을 따르기 위해 방을 나서려는데,

“아, 잠깐.”

여자가 김 비서를 불러 세웠다.

“네.”

김 비서는 열던 문고리를 놓으며 다시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하나 더. 정태우와도 물꼬를 터 놔.”

“…정태우, 말씀입니까.”

“그래.”

김 비서는 그녀의 말에 눈이 흔들렸다. 그녀가 알기로 정태우란 이는 꽤나 위험군에 속한 인물이었다. 그는 모든 걸 힘으로 해결하는 편이었고, 그것은 만남을 시도하는 것조차 마찬가지였다. 김 비서는 잠시 생각했다. 자신이 아는 이 중에 그를 이길 자가 있는지. 없다면 서둘러 실력 있는 이를 수소문해야겠음을.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당장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김 비서는 서둘러 움직이기 위해 여자에게 재차 고개를 숙이며 방을 떠났다. 홀로 남겨진 여자는 숨을 조용히 내쉬며 잠시 시선을 천장으로 향했다.

“…할 수 있어.”

여자는 스스로를 향한 말을 되뇌었다.

“넌, 최강 그룹의 안주인이 될 사람이니까.”

그것은 그저 평범한 다짐이 아닌 그녀의 인생을 건 세뇌이자 각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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