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장미의 유혹. (3)
***
한도훈과 최강혁이 도착한 건 어느 사무소였다. 그곳은 어느 일이든 돈만 맡겨 주면 해 주는 흥신소였다. 한도훈은 건물 위를 바라보며 최강혁에게 사진 하나를 내밀었다.
“이 녀석은 사지 멀쩡히 해 놔.”
“호오?”
최강혁은 그 말뜻을 바로 알아들었다. 그자가 바로 저가 가지고 있는 의문을 해결해 줄 단서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는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서늘히 한도훈을 내려 보았다.
“여기서 별일 안 나오면 너도 같이 뒤질 줄 알아.”
“까고 있네.”
당돌한 한도훈의 비웃음이 그의 말에 뒤따랐다. 하나 그 말에 내포된 강한 자신감에 최강혁의 눈빛이 살벌한 맹수의 눈을 띠며 짙은 냉소를 그려 냈다. 그것은 사냥을 알리는 시작이었다.
난데없이 출현한 금빛 머리를 가진 짐승의 격돌에 사무소가 쑥대밭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벌컥, 사무실 가장 안쪽에 자리하던 문 하나가 거칠게 열리었다.
“뭐, 뭐야?!”
“웬 어린 애새끼 한 놈이 갑자기…! 크억!!”
부하가 갑작스럽게 허락도 없이 들이닥치자 놀란 남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으나, 이내 상황을 보고하던 남자는 거친 발길질에 의해 쿠당탕거리며 요란하게 넘어졌다.
“오, 네가 여기 보스?”
“너, 아, 아니, 당신은…!”
그리고 그 소란의 원인과 직면한 남자는 입을 떡 벌리며 경악했다. 그도 그럴 게 마주친 붉은 눈, 그리고 밝은 조명 아래 빛나는 머리 색과 그 화려한 색의 조합에도 그 미색이 꺾이지 않는 이는 그리 흔치 않기도 않거니와, 그는 자신의 고객이 관리하는 이였기 때문이었다.
“왜, 왜, 여기에….”
왜 여기에 그가 있는가. 그것도 혈혈단신으로 쳐들어와 왜 자신의 사무소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가.
‘아니, 그보다 보고하던 새끼는 어떻게 된 거야…?!’
최강혁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기 위해 그의 주변에 잠복시킨 부하의 보고에선 최강혁이 이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내용은 없었다. 사무소의 주인은 감감무소식인 자신의 핸드폰을 재차 확인하였으나, 역시나 메시지 함은 2시간 전을 이후로 텅 비어 있었다. 그는 도무지 이 난데없는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왜긴 왜야.”
최강혁이 성큼 다가와 그의 얼굴을 한 손으로 감싸 볼을 꽉 누르며 무기질적인 시선으로 그에게 스산히 뇌까렸다.
“너한테 볼일 있어서지.”
“끄, 읏…!”
강한 악력에 저절로 신음이 튀어나왔다. 사무소의 주인은 그에게 한순간에 압도되었다. 그것은 단순히 그의 볼을 짓누르는 힘 때문이 아니었다.
‘…이게, 고등학생이라고?’
멀리서 지켜봤을 때는 이리도 강한 카리스마를 가진 줄 몰랐다. 또 그래 봤자 그저 고등학생에 지나지 않다고 깔보고 있었다. 자신의 고용주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겨우 고등학생 연애에 끼어들어 떼돈을 벌었다며 좋아한 남자였다. 하지만 뒤에 널브러진 자신의 부하와 자신을 억누르는 그의 힘에 그 생각을 달리해야만 했다.
“그,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학생.”
하지만 그래도 그는 이 물에서 꽤 놀아 본 이였다. 지금 겁도 없이 홀로 들어와 젊은 객기를 부리는 한 명보다는 돈줄이 더 중요했다. 당장 몸은 고생할지 몰라도 그의 수중으로 떨어질 큰돈보다는 별거 아니었다. 볼이 억눌려 발음이 새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천연덕스러운 낯짝으로 그에게 말했다.
“하.”
그림과 같은 얼굴에 조소가 곁들어졌다. 그것은 한순간 가까이 있던 남자가 상황도 잊고 넋을 놓게 만들 정도였다.
“시치미를 떼시겠다.”
“…무,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는걸.”
그러나 뒤이어 들려온 낮은 음성에 남자는 정신을 차렸다. 그는 순간 정신을 놓았던 게 창피해 이 번지르르한 기생오라비의 낯짝에 향해 혀를 차며 욕하면서도 그 기생오라비의 말대로 시치미를 떼는 걸 잊지 않았다.
“아, 잠깐.”
그때, 뒤편에서 낯선 미성이 들려왔다. 남자는 문 쪽에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그제야 최강혁 말고도 다른 이가 있음을 눈치챘다. 설마, 일행이 있을 거라곤…. 그렇지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주로 홀로 다니는 그에게도 친구는 존재했다. 그를 뒷조사하기 위해 몇 년간 따라다니던 사무소 주인은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연스레 그 친구들 중 한 명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 중엔 그를 위협할 만한 이는 없기에 그는 방심했다.
“사지는 좀 보존해. 안 보이는 곳만 골라 쳐. 무조건 멀쩡하게 보여야 돼.”
…그런데, 어쩐지 그 말의 내용이 이상했다. 사무소의 주인이 알고 있던 최강혁의 친구들은 이런 말을 할 만한 놈은 딱히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그의 머리에 비상등이 설핏 켜진 느낌이 들었으나, 그는 그것을 제대로 의식지 못했다. 그저 자신이 제대로 알지 못했나 대충 넘길 뿐이었다. 하나 그것은 그의 크나큰 실책이었다.
“이유는.”
최강혁이 뒤를 보지 않은 채 심드렁하니 물었다.
“그야~.”
훌쩍, 최강혁으로 인해 가려진 몸 너머에 남자아이가 쓰러져 있는 자신의 부하를 아무렇지 않게 넘어서는 것처럼 가볍게 뛰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야 재밌으니까?”
하지만 그 천진난만한 모습에 반해 내용은 잔혹하기 짝이 없었다. 남자는 점점 자신이 알고 있는 최강혁의 친구들에 대한 정보가 잘못된 게 아닌지 혼란이 올 지경이었다.
“그건 그렇고 사무실이 생각보다 초라한데?”
남자는 자신의 사무소를 낮잡아 말하는 그 녀석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과 남자의 근처로 다가오며 점점 드러나는 그 정체에 서서히 낯이 굳혀져 갔다.
“그 여우가 먹이를 넉넉히 주지 않았나 봐, 아저-씨?”
싱긋, 조명 아래 드리워진 연갈색의 머리칼이 부드럽게 찰랑이며 그 아래로 상큼한 미소를 그린 미소년이 드러났다.
“너, 넌…?!”
남자는 당황했다. 그 소년은 자신을 붙들고 있는 남학생의 친구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와 척을 진 원수와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그 정체는 HD 그룹의 후계자이며, 되도록 엮이지 말라고 일러 줬던 요주의 인물이라며 그의 고용주가 제공한 정보가 그의 머릿속을 강타했다.
“저 자식을 보고 이렇게 놀라다니…. 이거 기분 더러운데.”
“끄으아…!!”
그를 보고 눈에 띄게 놀라고 있자 최강혁이 말 그대로 기분 나쁜 듯 누르고 있던 손에 힘을 더했다. 그러자 뼈가 으스러질 것 같은 통증이 남자를 습격했다.
“뭐, 그래도 그건 지금은 넘겨 줄게.”
최강혁은 서서히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그리고 남자의 귓가로 스산히 속삭였다.
“그러니까 네가 알고 있는 정보, 모조리 불어.”
안 그러면 좋은 꼴은 못 볼 거야. 퇴로가 보이지 않는 통첩이 남자에게 날려졌다. 그러나 남자는 이 순간 눈을 굴리며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떠올리려 애썼다.
‘그, 그래 봤자 고등학생이야! 한 놈 늘었다고 해서 입장이 바뀌는 게….’
“아, 이게 그거구나?”
남자는 그 말에 눈을 굴려 한도훈을 보았다. 한도훈은 달칵이며 자신의 컴퓨터를 조작하고 있었다.
“아, 잠깐, 그, 그건 안 돼!”
황급히 만류해 보려 했지만 최강혁에 잡힌 몸은 쉬이 움직이질 않았다. 그래도 벗어나고자 발버둥을 쳐 보았으나 오히려 다리를 걷어차여 넘어진 남자의 등을 짓밟는 발길에 남자는 더 옴짝달싹 못 하게 되었다.
“우-와. 여기 진짜 대박이네. 저 개새끼 정보는 당연하겠고… 오, 여기 거북이 경주 사이트 관리자 모드도 있잖아? 아저씨, 이러면 안 되죠. 정보 하나하나에 비밀번호를 걸었어야지.”
한도훈이 모니터를 두드리며 그를 깔보듯 비웃었다.
“뭐, 그래 봤자 쓸모없었겠지만.”
많은 의미가 내포된 그 말에 남자는 얼굴을 굳혀 멍하니 한도훈을 올려다보았다. 한도훈은 원래라면 자신의 자리인 의자에 앉아 그 주인인 것처럼 당당히 다리를 꼬며 오만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 순간 남자는 깨달았다. 지금 눈앞에 있는 존재는 자신을 짓밟고 있는 최강혁보다 더 위험인물임을.
‘HD 그룹의 한도훈과는 되도록 엮이지 마. 골치 아파질 테니까.’
또 지난날 자신에게 단단히 경고를 일렀던 고용주의 비서가 알렸던 말의 의미를. 그는 뼈저리게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
육체적인 실력이나 정보전이나 그 어떤 것도 이길 수 없던 남자의 항복을 얻어 내는 건 꽤나 쉬운 일이었다. 한도훈은 그의 컴퓨터에 있는 모든 정보를 복사했으며, 최강혁은 남자의 실토를 얻어 냈다.
“…….”
그리고 지금 최강혁은 안색을 서늘하게 굳히며 눈앞에 널브러진 이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보를 다 듣고 난 이후 그는 믿을 수 없는 현실로 인해 분노에 휩싸였다. 그로서 그의 분풀이가 된 사무실의 남자들은 처참한 형태로 널브러져 있었으나 그의 분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시발….”
어쩐지 이상하더라.
한도훈이 떠나고 난 후에도 최강혁은 그 자리를 쉬이 떠나질 못하고 거칠게 발을 굴렸다. 자연스레 희생양이 된 남자 한 명이 신음을 흘렸으나 그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체 언제부터야.”
대체 언제부터 간섭해 왔는지.
최강혁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남자가 말한 이는 자신이 아는 사람이었다. 사람을 잘 기억하지 않는 자신에게 있어서도 그녀는 꽤나 인상적이었으니까.
불현듯 잊고 있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그것은 고찬영을 상대한 그날, 아니, 일방적으로 이성을 잃고 자신이 그를 공격한 날이었다. 고찬영의 상태가 어딘가 이상했음을 눈치챘지만 한순간의 분노에 눈이 돌아 그를 무참히 짓밟았다.
그는 왜 그때 분노에 휩싸였는가. 그 답은 금방 나왔다.
‘오~. 이거 그 유명한 최강혁 아니신가?’
‘이렇게 만나니 존나 영광이다? 킥킥.’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무료한 일상을 보내며 시내를 거닐던 도중이었다. 난데없는 양아치 놈의 시비에 최강혁의 시선이 돌아간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최강혁의 관심을 사는 데 성공하자 더욱 이죽거리며 시비를 걸었다. 하지만, 최강혁은 곧 흥미를 잃고 다시 떠나려 했다.
‘야, 네 여친 존나 예쁘더라?’
‘얼굴도 예뻐, 몸매도 죽여, 진짜 존나 부럽다? 킥킥.’
‘게다가 내조도 존나 잘하잖아, 와, 이거 계 탔네, 이 새끼.’
이건 또 무슨 시답잖은 개소리인가.
‘그 백화 재단의 장녀랑 사귄다며? 존나 대박이네~. 역시 끼리끼리 논다 이거야? 야, 나도 좀 여자 소개시켜 줘 봐. 너 주변에 돈 많고 예쁜 여자 많을 거 아니야.’
그러나 그 방향이 누구를 향하는지 깨닫자 그의 기분은 순식간에 꺼져 들어갔다.
‘입 닥쳐.’
그 이상 개소리를 지껄이면 그 주둥아리를 부숴 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왜, 존나 잘난 부자 새끼는 이런 천박한 소리는 못 듣나? 아, 인생이 금 길이니 당연하겠지.’
‘뭐 하나 아쉬울 게 있겠어? 잘난 집, 여친, 외모, 싸움 시발 진짜 다 가졌네.’
‘와, 시발. 인생 존나 쉽겠네. 존나 부럽다? 최.강.혁.’
그의 인내는 거기까지였다. 그는 당장에 눈앞에 있는 놈을 날려 버렸다. 그에 그치지 않고 완전히 작살을 내기 위해 발을 뻗었으나,
퍽-!!
그의 발을 걷어차며 재빠르게 막은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고찬영이었다. 고찬영은 넘어진 자신의 동료를 한번 흘긋 보곤 최강혁을 향해 침착히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내 동료가 실례되는 말을 한 것 같은데. 대신 사과할 테니 진정 좀 하는 게 어때.’
고찬영은 그들이 하는 말을 들었던지 최강혁이 아닌 그들의 잘못임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자극하지 않기 위함인지 최대한 차분히 그에게 말을 걸어 왔으나 이미 머리끝까지 열이 오를 대로 오른 최강혁에겐 씨알도 안 먹힐 개소리였다.
‘하…!’
최강혁은 강한 실소를 내뱉었다. 그러곤 얼굴을 싸늘히 굳히며 고개를 모로 까닥였다.
‘그럼 네가 내 상대하면 되겠네.’
‘…….’
고찬영은 그 말에 얼굴을 굳혔다. 그러나 주변의 뻗은 자신의 동료에게 눈길을 주곤 그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알겠으니까 그럼 애들은 놔줘.’
결국 고찬영은 그 협박 어린 제안을 승낙했다. 그러나 너무나도 쓸데없는 말이 뒤에 덧붙여지자 최강혁은 조소했다. 그와 동시에 싸움이 시작을 알리는 주먹이 날려졌다.
고찬영은 불시에 습격한 주먹을 피했다. 그리고 반격하기 위해 바로 자신도 주먹을 날렸다. 최강혁은 그것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몸 안쪽으로 파고들어 무릎을 날렸다. 고찬영은 그 무릎을 피하기 위해 몸을 옆으로 돌려 빠지려 드는 순간이었다.
‘어…?’
고찬영의 반응이 이상했다. 몸을 움칫, 굳으며 그가 몸을 비틀거렸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을, 최강혁이 놓칠 일은 없었다. 최강혁은 곧장 그에게 발길질을 날렸고, 고찬영은 반응할 새 없이 나가떨어졌다. 최강혁은 바닥을 구르는 고찬영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는 냉랭한 시선으로 발을 들어 올렸다.
두 사람의 승부가 허무하게 결정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