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164화 (164/306)

164. 장미의 유혹. (4)

***

다음 날, 학교는 떠들썩해졌다.

가장 먼저는 주연희를 괴롭힌 가해자들의 신상이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전 일짱의 패거리는 세 명이 아닌 총 다섯이었고, 그 외에도 전 일짱이라는 양아치에게서 콩고물을 얻기 위해 도와준 외부 조력자들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듯 나타났다. 그것은 한도훈과 안경희가 굳이 밝혀낸 것이 아닌 혼자서 죽기 싫었던 그들 스스로 무덤을 판 행위였다.

이러한 실태가 드러나자 학부모들의 항의 연락이 빗발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청와대엔 왕따 사주를 받고 수백, 수천만 원의 이득을 취한 가해자들을 엄격히 처벌해 달라는 민원까지 올라갔고, 결국 이 사건은 뉴스에까지 보도되기에 이르렀다.

끝내 가해자들은 학교 내부적으론 퇴학 또는 전학, 그리고 근신 처분 등 다양한 판결이 나왔고, 외부적으론 주연희와 그녀의 집안에 물질적인 수백만 원의 피해 보상으로 합의를 보았다고 한다.

이 사실로 인해 가장 격분한 건 주연희 왕따 사건의 가해자로 몰렸던 최강혁의 팬들이었다.

“아, 그러니까 우린 아니라고 했잖아-!!”

“성주찬 그 새끼, 감히 최강혁 팬인 척해서 사람 존나 이상하게 몰아가고!! 아오, 그 새끼 퇴학만 안 당했어도 한 대 패 버리는 건데!!!”

그들은 퇴학당해 더 이상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 성주찬, 그러니까 전 일짱이자 양아치들의 우두머리를 격렬히 욕했다. 성주찬은 그렇게 학교 최대의 악질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 속에서 유일하게 욕을 먹지 않는 존재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문설희였다.

그녀는 최종적으론 우리를 도와주고 주연희에게 직접적으로 사과를 했다는 면죄부로 인해 이 사건에서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이름이 구설수에 오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야, 근데 성주찬이 문설희 걔도 가담했다고 하지 않았어?”

성주찬이 떠나기 전 문설희에게 패악을 부리고 갔기 때문이었다.

***

“문설희, 왜 넌 면죄야?! 너도 같이 했잖아!! 이 배신자 새끼야!!!”

광기 어린 목소리가 복도를 지나던 문설희를 잡아 세웠다. 왜 그녀가 그 자리에 있었는지는 몰라도 상황을 조금이라도 엿듣기 위해 교무 회의실 근방을 서성이던 학생들 무리 속에서 바로 잡아채는 성주찬의 시력에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악에 받친 그는 대번에 그녀를 위협하듯 달려들었다.

“성주찬, 거기까지 해라.”

하지만 그것은 회의실에서 같이 나오던 학생 주임 선생님에 의해 막히었다. 선생님은 단호히 그를 잡아 문설희에게 그가 다가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 커다란 근육질 몸을 이용해 길을 막았다. 그런 후, 주임 선생님은 문설희에게 시선을 주며 물었다.

“그게 사실이니?”

“그, 그게….”

문설희는 그 질문에 어버버하며 말을 쉽게 잇지 못하였다. 그 모습은 마치 성주찬의 말이 맞다고 증명하는 것만 같아 주위에 몰려 있던 학생들의 시선이 그녀를 하나둘 의심의 눈초리로 보기 시작했다.

“쟤네 둘, 전에 사귀었다고 하지 않았어? 지금은 헤어졌고.”

“헤어졌는데 둘이 작당해서 여자애 한 명 괴롭혔다는 거야?”

“어? 잠깐. 그럼 두 사람 사이는 뭐야? 문설희 쟤 지금 찬영이랑 사귀잖아.”

말은 말을 타고 순식간에 복도를 지배했다. 눈과 입에서 나온 모든 시선과 말들이 문설희에게 칼날이 되어 겨누어졌다. 문설희는 창백한 낯으로 덜덜 떨며 고개를 푹 숙였다.

“아니에요.”

그때, 수많은 칼날 속에 침몰해 가는 문설희를 구해 주는 이가 있었다.

“…선배는, 절 괴롭히지 않았어요.”

그 정체는 바로 주연희였다.

“그걸 어떻게 아니?”

왕따 사건 피해자로서 회의실에 같이 나오던 주연희는 그녀에게 질문을 던지는 주임 선생님에게 담담히 말했다.

“선배는…, 선배는 같은 피해자면서, 오히려 저를 도와주었으니까요.”

그녀의 설명은 이러했다. 문설희는 성주찬과 헤어진 뒤, 그에게 수시로 협박을 받았다. 그러면서 자신을 겨우 ‘흥미’라는 이유만으로 그녀에게 가담하라 억압을 해 왔다. 그리고 문설희는 자신을 괴롭히는 가해자가 이들임을 알게 되어 오히려 자신에게 이 사실을 알리러 온 것이라고.

“…그러니까, 선배는 아니에요.”

그녀의 그 말을 끝으로 문설희는 죄인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났다. 오히려 그녀는 불쌍한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가 되었다. 그러나 성주찬은 꽤 끈질긴 놈이었다. 그는 주연희가 문설희를 보호하려 하자 입을 벌리다 말고 버럭 반박했다.

“하, 하지만, 방금 말 못 한 건 뭔데!! 야, 말해 봐, 문설희-!! 네, 네가 저년 책상 긁고 그랬잖아-!!”

“그만하세요!”

주연희가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그녀는 척척 걸음을 옮기더니, 떨고 있는 문설희의 어깨를 감싸며, 그를 혐오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당신 때문에 무서워서 떨고 있는 거잖아요.”

꽉, 그녀의 손이 문설희의 어깨를 강하게 붙잡았다.

“읏….”

문설희는 그 손길에 신음을 흘렸다. 반사적으로 그 손을 붙잡았으나, 주연희의 손길은 풀릴 기미 없이 더 강하게 파고들었다.

그것은 실상을 알고 있는 자, 모르고 있는 자에게 있어선 참으로 상반된 해석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허, 허, 하…! 이거, 이거 미친년이네! 완전 미친년이네!!”

“성주찬, 그만해라. 이만 다들 들어가!”

실상을 알고 있는 자, 성주찬은 자신이 되레 미친 것처럼 실성을 시작했다. 그 모습에 영문을 몰라 웅성거리는 학생들의 모습에 보다 못한 주임 선생님이 해산을 명했다. 쉬이 발을 떨어트리지 못하던 학생들은 하나둘 떠나갔다.

“하아…. 너희들도 이만 들어가라. 이 녀석은 내가 보내 주고 오마.”

주임 선생님은 주연희와 문설희에게도 반으로 돌아가라 권했다.

“이나야, 둘 좀 부탁한다.”

주임 선생님이 회의실 안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내게 두 사람을 부탁했다. 나는 이 피해 사실에 대해 증거를 같이 모아 준 조력자…라는 컨셉이었기에 나는 줄곧 이들과 함께 있었다.

한도훈이나 다른 애들 전부가 관여했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면 그녀의 입장이 또 난처해질 것 같아 어쩔 수가 없었다. 이에 대해서 한도훈이 돌연 심통이 난 얼굴로 그러면 더 잘된 거 아니냐고 쓸데없는 개소리를 해서 내게 빈축을 샀던 사소한 해프닝이 일어났었지만 말이다.

…걔는 왜 뜬금없이 그런 심술을 부리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어차피 친하지 않은 타인에게 야박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그였기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나는 아직도 씩씩거리는 성주찬을 흘끗 본 뒤 학생 주임 선생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나는 두 사람을 데리고 각자의 반으로 배웅을 해 주러 갔다. 먼저는 문설희였고, 그다음이 주연희였다. 나는 무심히 문설희를 반까지 바래다준 후, 1학년 교실로 가기 위해 계단을 향했다.

막 1층에 다다라 2반으로 향하기 위해 코너를 꺾으려는데, 주연희가 덥석 내 손을 붙잡았다.

“응?”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놀라 그녀를 보자 주연희가 쭈뼛거리며 밖을 기웃거렸다. 그러곤 결심한 듯 얼굴을 굳히며 내게 조심스레 제안을 꺼냈다.

“…저기, 언니. 저랑 잠시 나가지 않을래요?”

***

“여기요, 언니.”

“아, 고마워.”

“별말씀을요. …저야말로 고맙죠. 이런 막무가내 이야기를 들어 주셔서.”

우리는 현재 학교를 나와 사람이 없는 작은 놀이터 벤치에 앉아 있었다. 당연히 사람 인적이 드문 학교 뒤편으로 갈 줄 알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작게 가로저으며 말했다.

‘학교는… 싫어요.’

나는 그 부탁에 잠자코 그녀의 말을 들어 주었다. 내신 출석이 신경 쓰이긴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녀의 지친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그 제안을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충 교무 회의가 늦어서 참석하질 못했다든가, 동정에 호소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게다가 시간도 대략 10분 정도 지나면 쉬는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이것보다 더 비싼 것도 사 줄 수 있는데….”

“됐네요, 됐어. 난 이게 좋아.”

나는 주연희가 사 준 이온 음료를 흔들어 씩 웃어 보이며 한 모금 들이켰다. 입 안이 아릴 듯한 시원함과 청량한 맛이 입 안을 채우고 목을 타고 흘러들어 갔다. 날이 부쩍 더워지니 더 이상 겉옷은 불필요해졌다. 아무래도 내일부턴 반팔 교복으로 입어야겠다. 나는 따사로운 햇살에 긴 교복의 팔뚝을 걷었다.

“와….”

주연희가 내 팔뚝을 보더니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런데 주연희는 자신의 반응에 깜짝 놀랐는지 입을 턱 막으며 얼굴을 붉혔다.

“아, 죄, 죄송해요. 제가 무례했죠.”

“음? 아냐, 아냐. 괜찮아.”

아무래도 여학생, 아니, 일반적인 여자들에게서 흔히 보기 힘든 근육질의 팔뚝에 그녀가 놀란 듯싶었다. 신체적 체형의 한계로 남자처럼 울퉁불퉁하게 뚜렷하진 않았지만, 이것은 프로 시절만큼 단련된 건 아닐지 몰라도 이건 내가 이 세계를 살아오면서 만들어 낸 노력의 산물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런 내 팔이 자랑스러웠다.

나는 잠시 주먹을 쥐락 펴락 하면서 팔을 유심히 들어 보다가 장난스럽게 씩, 웃으며 주연희에게 팔을 스윽 내밀었다.

“만져 볼래?”

“어…. 그, 그래도 돼요?”

“그럼. 되고말고.”

내 제안에 주연희가 눈을 빛내며 되물어 왔다.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답에 주연희가 얼굴을 환히 밝히며 내 팔을 조심스레 붙잡았다.

“와, 되게 단단하구나…. 제 팔이랑 완전 달라요.”

“후후. 당연하지. 매일 팔 굽혀 펴기 100개밖에 못 하긴 하지만…. 그래도 꾸준히 하는 거니깐.”

현역 시절엔 훨씬 더했다. 물론 팔 굽혀 펴기는 워밍업이고 말이다. 그렇지만 야자하는 학생이라는 신분의 한계론 일일 운동량이 팔 굽혀 펴기 100개 정도만 하는 게 다였다. 좀 아쉬운 감이 있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더 운동할 시간에 다음 날 등교를 위해 잘 준비를 해야 되니 말이다.

“배, 백 개나요?! 짱이다…. 저는 하나도 제대로 할까 모르겠던데.”

“어? 그 정도야?”

주연희가 내 말에 깜짝 놀란 듯 눈이 커졌다. 그러곤 뒤이은 그 말에 되레 내 눈도 커졌다. …아니,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적어도 하나는 할 줄 알았던 나는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갑자기 눈앞에 있는 아이가 지나치게 연약하게 보였다. 그런데도 그렇게 힘든 일을 겪고 나서도 이렇게 의연하구나. 정말 대견해서 눈물이 조금 나올 것 같았다. 아닌 게 아니라 진짜 눈물이 핑 돌았다.

“모, 모르겠다는 거지, 못 한다는 건 아니에요!”

그런 내 얼굴을 보고 내 생각을 읽은 모양인지 주연희가 얼굴이 시뻘게지며 반박했다. 하지만 이미 내 머릿속에서의 그녀는 팔 굽혀 펴기 하나도 못 하는 연약한 생물이라고 낙인찍힌 지 오래였다.

“으으…! 정말! 언니가 엄청 센 거지, 제가 이상한 게 아니라구요! 저 남들 정도는 해요!”

“어어. 그래, 근데 나 아무 말도 안 했어….”

녀석, 괜히 그렇게 부정 안 해도 되는데. 하긴, 체력이나 근력이 무시당해 기분 나쁜 건 거의 만국 공통 아니겠는가. 나는 굳이 말을 덧붙이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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