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 장미의 유혹. (6)
***
퍽-!! 빡--!! 강한 타격음이 넓은 사무실 안을 울렸다. 사무실 안에서 골프채를 휘두르던 커다란 덩치의 남자는 숨을 크게 내쉬며 가벼이 등을 뒤로 젖혔다.
“훠…. 이 씨, 미친 새끼들이 말야, 어? 정신 빠져 가꼬 말야….”
“끄, 끄으읍…. 죄, 죄셔…, 함다….”
남자는 툭툭, 골프채로 땅을 두드렸다. 그 앞으로 피를 흘리며 곤죽이 되어 있는 장정이 쓰러져 있었다. 하지만 골프채를 든 남자는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은지 이마에 선 핏대가 뚜렷이 있었다.
“좀 쓸 만하다 싶어 가꼬 맡겨 놨더니, 어?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남자가 음절을 끊을 때마다 골프채가 인정사정없이 내려쳐졌다. 둔탁하고 위협적인 소리가 울렸으나 남자는 개의치 않았다. 결국 성질을 이기지 못한 남자는 여러 번 내리치다가 쓰러진 남자가 옴짝달싹도 못 할 지경에 이르자 그제야 골프채를 저 멀리 던져 버렸다.
“쯧…!”
그는 혀를 강하게 차곤 털썩, 하고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그러곤 전화의 다이얼 하나를 누르곤 짧게 명령했다.
“들어와서 치아라.”
일방적인 호령이 있고 얼마 후, 장정 두 명이 들어와 피로 온몸을 뒤덮은 남자를 끌고 갔다. 상석에 앉은 이는 그런 그를 본 체도 하지 않고 손수건으로 묻은 피를 슥 닦으며 말했다.
“일을 저리 처리해 가꼬 어따 쓰나. 안 그러나, 율아.”
“네.”
남자의 말에 언제부터인지 문가에 서 있던 김율이 대답했다. 그는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는가. 사실 김율은 끌려간 남자가 들어오기 전부터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그저 조용히 일이 끝날 때까지 무감정한 얼굴을 유지한 채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아무 말도, 아무 표정도 없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김율은 남자가 호명하고서야 그 무거운 입을 열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 입을 열고서도 그의 표정은 일말의 동요조차 내비치질 않고 있었다. 마치 표정이 없는 마네킹처럼 말이다.
남자, 지차용은 김율의 그 가면 같은 얼굴에 잠시 질린 낯을 했다가 곧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재차 투덜거렸다.
“하여간 쓸모있는 것들이 읎다, 읎어.”
“…….”
“내가 저 새끼 때문에 그딴 년한테 욕을 처먹은 게 아직도 화딱지가 나가꼬 어제 먹었던 게 내려가질 않는다, 내려가지 않아.”
김율은 그 말에 조용히 생각했다. 분명 어제 그가 여자를 양팔에 끼고 술 처먹었단 보고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굳이 입에 담을 필욘 없기에 김율은 침묵을 택했다.
“김 비서 그년 존나 맘에 안 든다, 아이가. 그놈의 고삐리 연애 놀음에 와 내가 욕을 처먹어야 되는데? 어? 시발. 이러니까 계집이 권력을 쥐면 안 되는 거야, 안 그러냐, 율아.”
지차용의 시선이 김율에게 향했다. 김율은 이번에도 침묵을 택했다. 그의 낯은 변함이 없었으나, 뒤로 감추어진 가죽 장갑을 낀 두 손은 터질 듯 꽉 쥔 채였다. 그런 김율의 모습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차용은 히죽, 웃으며 턱을 괴며 그에게 물었다.
“아, 그러고 보니 요즘 아가씨는 어찌 지내나, 잘 지내시나?”
“아가씨는 요즘 미국에서 클럽에 재미를 붙였다고 하더군요. …제가 아는 건 안타깝게도 형님이 아시는 바보단 부족하다 생각합니다만.”
난데없는 아가씨의 안부였다. 김율은 서늘히 낯을 굳히며 지차용에게 쓸데없는 걸 물을 생각 말라는 것처럼 차갑게 선을 그었다.
“아? 아아, 맞다, 그렇지. 내 깜빡 잊었다 아이가~.”
그런데 지차용은 오히려 재밌는 걸 물었다는 것처럼 더 깊게 히죽거렸다. 그는 능청스레 어깨를 으쓱이더니 의자에 몸을 깊게 뉘며 오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래, 그럼 네가 모시는 도련님은… 어찌 지내나?”
마치 업신여기는 것처럼 비웃는 모양새였다. 김율은 그런 지차용의 거만한 태도에 별다른 자세를 취하지 않고 차분히 자신이 아는 것을 보고했다.
“똑같습니다.”
“…그기뿐이가?”
“네.”
여기서 더 할 말이 필요한가. 김율은 생각했다. 어차피 도련님의 일거수일투족은 자신이 굳이 보고하지 않더라도 다 그에게 보고될 터였다. 다름이 아니라 눈앞에 있는 남자는 자신과 도련님이 소속된 조직 흑룡파의 간부였으니 말이다.
“으하하하하!!!”
그런데 돌연 지차용이 웃음을 거나하게 터트렸다. 그는 뭐가 그리 우스운지 이마를 잡고 꺽꺽대며 웃더니 박수를 짝짝 쳐 댔다.
“그래그래. 남자가 돼 가꼬 입방정을 떨면 쓰나! 니처럼 묵직~해야제!”
“…….”
“근데 말이다.”
빡-!!
그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은색의 재떨이가 김율의 머리를 강타했다.
“니 태도가 쫌 마~이, 건방지네?”
그러나 김율은 그것이 날아올지 알고 있었는지 그리 놀란 기색 없이 조용히 손수건을 꺼내 피가 흐르기 시작하는 머리를 조용히 지혈할 따름이었다. 지차용은 이런 상황에서조차 신음 한번 내지르지 않는 김율의 기계적인 반응에 혀를 크게 차며 손을 내저었다.
“이만 가 봐라.”
“네.”
김율은 축객령에 지체 없이 방을 나서려 했다. 하나 문을 완전히 열고 나가기 전, 돌연 지차용이 그를 불러 세웠다.
“야, 율아.”
“네.”
김율이 바로 걸음을 멈춰 그를 보았다. 그 각 잡힌 자세는 그의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완벽했다. 지차용은 그런 그를 보며 눈을 이질적으로 빛냈다.
“니 증말 내 밑으로 들어올 생각 읎나?”
김율은 그런 남자의 말에 단호히 말했다.
“없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제 주인은 도련님 한 분이십니다. 그럼.”
그는 꾸벅 인사를 마치곤 문을 닫고 나섰다. 그 버릇없는 행동에 지차용은 헛웃음을 크게 흘렸다.
“허, 참나. 아깝다, 아까워.”
지차용은 김율을 높이 평가했다. 열아홉이라는 나이에 맞지 않게 완벽한 일 처리를 하는 김율이었다. 언제나 포커페이스를 잃지 않고 그 자세를 무너트리지 않는다. 게다가 주인을 향한 그 충성심은 참으로 칭찬할 만했다. 그렇기에 그는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왜 하필 주인을 모셔도 그런…. 쯧쯧.”
그의 불만족스러운 혀 울림이 사무실에 퍼졌다. 그러다 곧 그의 폰이 사무실에 울리기 시작했다. 지차용은 자연스레 화면을 확인했다가 와락 얼굴을 찌푸렸다.
[김 비서]
“에이, 씨발….”
지차용이 욕을 중얼거리길 잠시, 곧 목을 큼큼 가다듬더니 활짝 웃으며 통화를 연결시켰다.
“예~ 예. 김 비서님. 저 지차용입니다!”
한순간에 낯을 바꾼 가증스러운 그의 목소리가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예예. 쓸 만한 놈이요? 아, 예. 알겠십니더. 예예~. 아유~ 그럼요! 아주 튼실한 놈으로 준비하겠십니더! 걱정 마십쇼! 옙!”
그 알량한 소리는 통화가 이어지는 내내 계속되었다.
***
김율은 뚜벅뚜벅, 고요한 계단을 올라섰다. 그리고 다다른 옥상의 문을 열기 전, 한번 자신의 차림새를 정돈하곤 그 문을 열었다.
끼이익-.
낡은 경첩이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김율은 주위를 무언가를 찾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율이냐.”
그때, 그의 머리 위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율은 고개를 들어 그쪽을 확인했다. 그러자 삐죽 나와 까닥이고 있는 발이 보였다.
“…왜 거기 올라가 계십니까, 도련님.”
김율은 왜 쓸데없이 저런 곳에 올라가 있는 건가 싶어졌다. 저곳은 청소가 되어 있질 않아 더러울 텐데…. 그의 얼굴이 자연스레 구겨졌다.
“왜긴 왜야. 날도 좋고~ 하니, 기냥 여서 쪼매 잠 좀 잤다.”
그러나 정태우는 날이 맑아서인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의 목소리와 그의 흔들리는 발끝이 그 감정을 전달해 주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일까, 김율은 그의 도련님이 더러운 곳에 몸을 뉘었다는 사실에 굳었던 낯을 슬며시 풀었다.
“그렇습니까.”
“그래. 니도 좀 잘래? 여 자리 비었다.”
“싫습니다.”
정태우의 기분 좋은 제안은 단칼에 거절당했다. 정태우는 이마를 슬쩍 찌푸렸지만, 그의 깔끔한 성정을 알고 있기에 더 제안하지 않고 툴툴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자슥, 까탈스럽긴. 근데 니 어데 다녀…, 야, 니 이마에 그기 뭐꼬.”
자연스럽게 그를 내려다보던 시선이 김율의 이마에 자리 잡은 상처를 발견했다. 거즈로 덧댄 곳은 꽤 큰 데다 번진 피가 심상치가 않았다. 정태우는 김율이 어디 가서 쉬이 맞고 올 놈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태우는 그 상처의 출처에 대해 바로 날을 세우며 물었다.
“별거 아닙니다.”
“별거 아니라꼬?”
“네.”
정태우는 그를 조용히 내려다보다가 이내 훌쩍 그 자리에서 내려와 착지했다. 그 가벼운 몸놀림은 감탄을 방불케 했지만 김율은 그리 놀랍지 않은지 그저 위협스럽게 성큼성큼 제게로 다가오는 그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김석태냐, 박길현이냐, 아니, 지차용 그 새끼가?”
“괜찮습니다.”
빡-!! 차분히 물어 오는 질문에 대답을 하는 것과 동시에 김율의 머리가 돌아갔다. 그는 아찔한 통증에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안 괘안타! 내가!!”
“……도련님이 치신 게 더 아픈 것 같습니다만.”
“니는 좀 아파도 싸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앞의 말과 너무 다른 말에 김율의 얼굴이 어이없다는 듯 물들어 갔다.
“하여간, 그 새끼들은 가만히 있는 아는 와 건드리노. 내가 조직 잡으면 진짜 싸그리 수… 수청?을, 암튼 그걸 해야만….”
“숙청입니다. 도련님.”
“닌 입 다무라.”
“네.”
진짜 하여간 말은 존나게 잘하는 새끼. 정태우는 김율을 질린 듯 바라보다가 휙, 몸을 돌렸다.
“아, 됐다, 마. 말하기 싫은 새끼 붙잡아도 시간 낭비 아이가. 니 멋대로 해라.”
정태우는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흩트렸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김율은 조용히 바라보다가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찰나의 순간이었기에 정태우도, 또 그 본인조차도 느끼지 못한 것이었다.
“빨리 안 온나!!”
“네. 도련님.”
정태우는 자신을 따라오지 않는 김율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버럭 성질을 냈다. 김율은 곧장 대답하며 그 뒤를 따랐다.
“…그러고 보니 도련님께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김율은 최근에 들려왔던 소식 하나를 떠올렸다. 원래는 바로 보고할 생각이었으나, 중간에 지차용에게 불려 가 타이밍을 놓쳤다. 그래서 그는 떠오른 지금 그 소식을 보고할 참이었다.
“머꼬. 쓰잘데기없는 거면 디진다.”
정태우는 감흥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김율은 그런 정태우를 향해 그가 들었던 소식을 보고했다.
“최근 조커와 싸웠다고 한 이가 조직의 말단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뭐?”
우뚝, 그 말에 정태우의 발이 반사적으로 멈췄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뒤따라오던 김율을 돌아보았다.
“조커랑 싸웠다고…. 사실이가?”
조커와 싸워 봤다고 하는 이는 무성했다. 하지만 정작 정면에서 제대로 싸워 본 이는 극히 드물었다. 그를 찾기 위해 나름 이 잡듯 뒤져 보았지만 이렇다 할 정보는 건질 수가 없었다. 그런데 조커랑 싸웠다고 자랑스레 말한다, 라…,
“그 자슥도 한 대 맞고 뻗은 거 아이가.”
“그건 아니라고 합니다.”
“호오?”
나름대로 쓸 만한 놈인가. 아니면 그저 허세에 불과한 거짓말인가. 정태우는 턱을 짚으며 곰곰이 생각하다가 그에게 물었다.
“이름은?”
“강태석. 올해로 스무 살인 신입입니다. 현재 경기도 지부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그으래?”
정태우의 말꼬리가 늘어지며 흥미를 띄웠다. 그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김율에게 명했다.
“그 자슥, 내 앞으로 불러온나.”
정태우의 입가엔 어느새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와 같은 미소가 어려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김율은 당연하단 듯 그의 명령에 고개를 숙여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