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167화 (167/306)

167. 장미의 유혹. (7)

***

왜 최강혁은 주연희에게 깔려 있고, 고찬영은 최강혁과 같이 있는가.

나는 이 난처하고도 황당한 광경에 소리 없이 굳어 버렸다.

“어, 친구님!”

그럴 때, 고찬영이 날 발견하고 얼굴을 환히 밝히며 내게 다가왔다.

“어디 다녀온 거야? 나 빼고 놀다 온 거야?”

그는 이 어처구니없는 타이밍에 나와 마주친 것만이 마냥 반가웠는지 신이 난 듯 웃으며 내게 친근하게 붙어 왔다. 그 덕에 정신을 차린 나는 황급히 녀석의 팔을 붙잡으며 상황을 물었다.

“야, 이거….”

“으응…? 어? 꺄악-!!!”

주연희가 자신의 상황을 막 파악한 것 같은 새된 비명을 내지르는 소리만 아니었으면 말이다.

“…뒤지기 전에 내려와라.”

최강혁은 그런 주연희의 비명이 거슬린 모양인지, 아니면 그냥 이 상황 자체가 전부 마음에 안 든 건지 얼굴을 서늘히 굳히며 그녀를 보지도 않은 채 경고했다.

“어, 아, 어! 미, 미안…!”

그의 말에 겨우 정신을 차린 주연희가 후다닥 몸 위에서 내려왔다. 최강혁은 느릿하게 몸을 일으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방금 입 열 타이밍을 놓쳤던 나는 지금이 기회다 싶어 빠르게 고찬영에게 재차 물었다.

“야, 야. 이거 무슨 상황이야?”

“응? 아~.”

고찬영은 내 질문에 싱긋 웃으며 답했다.

“보시다시피 저 여자애가 담벼락에서 떨어져서 최강혁이 깔린 상황이지.”

“아니, 그게 아니고…!!”

그건 나도 봐서 알거든?! 나는 답답함에 가슴을 두드리자, 고찬영이 입을 가리며 풋, 하고 작게 실소했다.

“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친구님은 역시 놀리는 재미가 있다니까~.”

“…….”

아니, 이 자식이…? 오만 욕을 눈에 담으며 고찬영을 쏘아보자 고찬영이 하하, 하고 너털웃음을 흘리면서 내 어깨에 자신의 몸을 기댄 채 척, 하고 최강혁을 가리켰다.

“쟤랑 리매치 때문에 같이 있었던 거야.”

“아, 리매치…. 응? 리매치??”

잠깐, 잠깐. 리매치라면 내가 아는 그 리매치? 다시 싸우는 그거…? 너무 난데없는 말에 눈을 홉뜨며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럼에도 끝내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너희 둘이 왜? …어, 잠깐. 설마 너 리벤지하고픈 마음이 드디어 든 거야?!”

그렇게 싫어하더니! 드디어 리벤지 신청을 한 거구나! 반갑고 대견한 마음에 대번에 얼굴을 밝혔다.

“으음….”

그런데 어쩐지 고찬영의 반응이 이상했다. 마치 난처한 말을 들은 얼굴로 변하고선 스륵 내 시선을 피했다. 그러곤 볼을 멋쩍게 긁으며 잠시 뜸을 들이는가 싶더니,

“…아니.”

라고 부정을 내놓았다. 나는 순간 그 대답의 의미를 파악하질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곧 그 뜻을 깨닫곤 황당히 입을 벌리며 그를 올려다봤다.

“왜…?”

최강혁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기만하는 것도 아니고 대체 왜…? 내가 부탁한 적은 없지만 그동안 여러 번 도와준 전적이 있어서일까, 최강혁이 괜히 그럴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행동이 쉬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난들 아나. 반에 쳐들어와서 다시 싸우자는데.”

고찬영도 그런 최강혁의 의중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나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최강혁에게 시선을 던졌다.

“…네가 원래 그런 애였던가?”

딱히 이곳저곳에 시비를 걸어 싸우는 타입은 아니었던 거 같은데…. 오히려 개학 초의 고찬영이면 모를까. 최강혁은 예상외로 꽤 조용했다. 그래서 의아하게 바라보자 최강혁이 가볍게 코웃음을 치더니 내게 순식간에 성큼 다가와 얼굴을 불쑥 드밀었다.

“당신 눈에 비친 나는 어떤데 그런 말을 하는 걸까.”

어우씨. 얼굴이 너무 가까워 나도 모르게 기겁하며 몸을 뒤로 뺐다.

“어허. 여자한테 함부로 얼굴 가까이하는 거 아니다.”

그러자 고찬영이 내 마음을 알아줬는지 불쑥 자신의 손을 우리들의 얼굴 사이에 집어 넣더니 강제로 거리를 벌렸다. …그런데,

“야, 네가 할 말은 아니지 않냐…?”

“난 친구님의 사랑스러운 친구잖아? 그러니 당연히 괜찮고말고.”

찡긋, 고찬영이 내게 능청스러운 윙크를 보냈다. 순식간에 어이가 탈출해 버렸다. …아니, 그보다 얘 저번부터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아? 뭐랄까. 이전보다 더… 격이 없어진 기분이랄까? 원래부터 표현이 직설적이긴 했지만, 이렇게까지는 아니었다. 내가 미심쩍게 그를 보고 있던 중, 최강혁이 다시 무심한 얼굴로 숙였던 몸을 일으켰다.

“지랄한다, 아주.”

그것도 상스러운 욕을 달고서. …거참, 귀족적인 얼굴과는 다르게 입이 참 걸었다. 질린 낯으로 그를 보고 있자, 최강혁이 시큰둥하게 내 곁을 지나치게 말했다.

“땅콩은 빠져.”

“뭐, 인마?”

서슴없이 나를 치워 버리는 발언에 내가 발끈하자 그는 서늘히 시선을 내리깔며 말했다.

“그럼 네가 내 상대해 주게?”

그러더니 픽, 하고 조소를 흘리며 덧붙였다.

“아, 그것도 나쁘진 않겠네.”

“너….”

대놓고 도발하는 행위에 자연스럽게 얼굴이 굳어졌다. 조용히 입을 다물고 그를 노려보았다. 서늘한 공기가 순식간에 우리 사이를 메꾸었다.

“너 진짜 성격 별로다.”

그런 공기 사이로 또렷한 음성이 우리 사이를 날카롭게 가로질러 들어왔다. 나는 예상치 못한 목소리에 놀라며 그 소리의 진원지를 확인했다. 그곳엔 최강혁을 똑바로 노려보고 있는 주연희가 있었다.

“……뭐?”

최강혁도 그 소리를 듣지 않을 리 만무했다. 그는 몸을 돌려 자신을 겨냥해 욕을 한 주연희를 돌아봤다. 주연희는 그의 서늘한 시선에 잠깐 움찔거리나 싶더니, 곧 자세를 다잡고 최강혁을 향해 성큼 다가갔다.

“너, 진짜, 성격, 별로라고.”

게다가 방금 한 욕을 다시 강조하기까지…! 나는 급변한 상황에 떨리는 동공을 감추질 못했다.

“하. 야, 너 죽고 싶어?”

역시나 최강혁이 주연희에게 위협을 가했다. 반사적으로 막기 위해 팔을 뻗는데 고찬영이 그런 내 팔을 붙잡았다. 당황하며 그를 보니 고찬영은 재밌는 걸 목격한 것처럼 방글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재밌어 보이니까 놔두자.’

‘미쳤냐…?’

말리고 싶은 나와 내버려 두고 싶어 하는 고찬영과 잠시 치열한 눈싸움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굴욕적이게도 진 것은 나였다. 천연덕스럽게 페이스를 잃지 않고 웃고 있는 녀석을 보자니, 억울하게도 승부욕이 꺾여 나가 버리고 말았다. 나는 패배감이 주먹을 꽉 쥐며 침통을 흘렸다. 고찬영은 그런 날 보며 헤실 웃더니 내가 방심한 틈을 타 내 몸을 덜렁 들곤 방관하기 좋은 최적의 장소로 끌고 가기까지 하였다.

“흥. 넌 죽고 싶단 말밖에 못 해? 왜 매번 보면 그 말밖에 없어? 그럼 내가 쫄 줄 알아?!”

“…아까 그냥 봐줬더니 내가 우습냐?”

“어! 엄청 우스워! 같잖게 협박해서 더!!”

그런 와중에도 최강혁과 주연희 사이의 갈등도 점점 더 심화되고 있었다. 아니, 주연희 쟤가 대체 왜 저래. 원래 성격이 좀 불같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최근 들어 위축된 모습만 보다가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라 그런지 낯설 게 다가왔다. …아니, 그 전보다 더한가? 조금 있으면 진짜 큰 사달이 날 것 같아서 내가 더 안달복달할 지경이었다.

‘야, 저거 진짜 말려야 되는 거 아니냐고!’

‘더 심해질 때 말리면 되지.’

너 이 새끼. 남 일이라 이거지?! 고찬영이 내가 나서지 못하게 어깨를 꽉 누르고 있어서 쉽게 벗어나기도 힘들었다. 얘도 가만 보면 정상적으로 굴다가도 이렇게 이해 안 되는 행동을 한다. 혈압이 오른 내가 뒷목을 문지르고 있던 중, 참다못한 최강혁이 주연희의 멱살을 잡아챘다.

“너 진짜 저번부터 거슬렸어. 계속 알짱알짱! 그냥 넘어가 주니깐 아주 한도 끝도 없이 기어오르네, 이거?!”

“윽…!!”

갑작스러운 충격에 당황했는지 주연희가 낯을 찌푸리며 신음을 흘렸다. 그러나 그녀는 곧 당당한 눈초리로 그를 곧게 노려보며 대꾸했다.

“그건 내가 아니라 너겠지! 넌 화나면 주먹부터 드니?! 어? 돈 많다고 유세야?! 돈으로 다 해결되니깐 좋아? 이 왕재수야!!!”

“이게…!”

“거참 인생 탄탄대로라 참 부럽다-!! 누군 주먹 한번 잘못 들었다고 한 달을 개고생을 했는데…!!!!”

악이 받친 소리가 강하게 울렸다. 나는 그 말에 아연해져 잠시 멍해졌다가 금세 정신을 붙들었다. 이젠 진짜로 막아야겠다고 나서려는데, 이번에도 팔이 강하게 잡히었다. 그 손에 항의하듯 고찬영을 보자 그가 턱으로 고갯짓을 해 보였다. 그 방향을 따라가자 보이는 건 어딘가 충격을 받은 것처럼 굳어 있는 최강혁이 있었다.

‘…뭐지?’

분명 이번엔 참지 않고 한 대 갈길 줄 알았다. 그런데 되레 저런 반응이라니. 그의 혼란스러운 모습에 나마저 당황스러워졌다.

“뭐라 말 좀 해 보지? 왜, 내가 틀렸어?”

“…그건,”

최강혁의 입이 달싹였다. 심란한 감정이 그의 낯을 스쳐 지나가…

딱-!!

“?!”

“어.”

“???????”

…려는데, 갑자기 작은 물체가 최강혁의 머리를 강타했다. 갑작스러운 기습 공격에 지척에 있던 주연희가 기겁해 했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저건 대체 어디서 날아온 어떤 물체인가. 데구르르 구르는 그것을 눈으로 좇자, 보이는 것은 바로… 지우개였다.

“왜 지우개가….”

어처구니없는 물건의 등장에 황망히 중얼거리고 있자, 고찬영이 콕콕 내 어깨를 건드렸다. 왜 그러냐고 보자, 그는 내게 말없이 검지를 살짝 꺾어 위쪽으로 가리켰다.

“…….”

자연스레 뻗어 간 시선의 끝엔 의외의 인물이 있었다.

“휘…! 읍…!”

놀라서 비명을 지르다시피 반휘혈을 부르려는데, 그와 동시에 고찬영이 내 입을 틀어막았다. 마치 그에게 내 존재를 가리려는 것처럼. 들켜서는 안 되는 것처럼, 그렇게 말이다. 그래서 이게 무슨 짓이냐고 고찬영을 바라보자, 고찬영은 눈을 잠깐 굴리더니 짓궂은 미소를 씩 그리며 검지를 입가에 가져다 대곤 입을 뻐끔거렸다.

‘조금 더 지켜보자.’

그게 무슨 소리냐고 되묻고 싶었지만 입이 막히어 불가능했다. 그래서 눈을 부라리며 당장 놓으라고 내 의사를 완강히 전달하고 있는데, 돌연 익숙한 음성이 말했다.

“꼴사나워.”

감정이 서리지 않은 차가운 비평이었다. 나는 그 냉대에 놀라 잠시 반휘혈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고찬영이 내 뒤에서 내 어깨를 눌러 제압하고 있었고, 그뿐만 아니라 그가 몸으로 반휘혈이 보이지 않게끔 다시 내 시야를 막아 서 있어서 반휘혈의 모습이 잘 보이질 않았다. 나는 저리 치워 보라고 고찬영에게 손짓했으나 그는 방긋 웃기만 할 뿐 내 뜻을 전부 무시했다.

‘너 진짜…!’

이젠 발로 걷어차는 한이 있어도 이 자식을 치워 버릴까 진심으로 고민했다.

“…반휘혈. 이게 무슨 개짓거리지?”

당장이라도 반휘혈을 죽일 기세였다. 잘못하면 진짜 일이 커지겠다 싶을 정도였다.

“글쎄.”

그러나 반휘혈은 그의 마음을 알 길 없이 여전히 시큰둥한, 아니, 귀찮음마저 내포된 목소리로 최강혁의 말에 대꾸했다.

“후-. …내가 생각하기에도 지금 나, 굉장히 많이 참고 있거든? 진짜 죽여 버리기 전에, 당장 내려와.”

저런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내려오라니… 저건 죽이겠다는 거야, 뭐야. 아, 반죽음 만들겠다는 건가. 물론 반휘혈이 그렇게 쉬이 당할 놈이 아니긴 했지만 어폐가 있는 최강혁의 말에 내 눈이 차게 식었다.

“…….”

반휘혈은 말이 없었다. 그보단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창가에서 멀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내 짐작건대 방금 들린 소리는 내려가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제가 들을 가치도 없다는 의미의 진정한 개무시일 게 분명했다. 그러니 이대로라면 반휘혈은 최강혁은 뭔 짓을 하든 간에 제 할 말만 내뱉은 채 그냥 사라질 게 뻔했다.

“야…!!”

그리고 그걸 눈치챈 건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최강혁이 빡친 목소리로 그를 불러세웠다. 그 모습이 어쩐지 통쾌해 속으로 반휘혈 나이스, 하면서 그를 칭찬하고 있는데, 불현듯 최강혁과 나와 눈이 마주쳤다.

“…흠?”

게다가 흥미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것처럼 비소를 그리기까지…. 갑자기 불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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