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 방황하는 마음. (6)
“…….”
“…….”
얼얼하다. 저릿한 감각이 어깨에 전해졌다. 빠르게 멱살을 놓고 어깨를 올려 반사적으로 그의 주먹을 막아 충격을 줄였으나, 통증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보다 시선을 잡아채는 건 다른 부분이었다.
나는 막힌 주먹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최강혁도 나와 같은 판단을 했던 모양인지 한순간에 멱살을 잡던 손을 풀고 공격을 막았다. …나름 타격 속도가 장점이었는데, 이렇게 막힌 건 또 오랜만이었다.
‘…역시 남주는 남주인가.’
재밌네. 나는 웃음을 피식, 흘렸다. 그리고 선수를 쳐 녀석의 배를 재빠르게 걷어찼다.
퍽-!
“……!”
최강혁이 인상을 살풋 찡그리며 물러섰다. 그러나 나는 만족스럽지 못한 타격감에 혀를 가볍게 찼다.
‘덜 들어갔어.’
녀석이 재빠른 건지, 내가 느렸던 건지. …아니, 둘 다인가. 최강혁은 내 공격과 동시에 몸을 뒤로 빼 충격을 줄였다. 이번에도 공격이 미스로 뜨자,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생겼다. 그동안 이 세계에선 거의 한두 대면 싸움이 끝났던 만큼 이번 상대는 그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한 합을 주고받았을 뿐인데도 느껴지는 스펙에 저절로 혀가 내둘러졌다. 역시 이 세계는 너무 불공평하다. 미모, 재력, 신체 능력 모든 걸 갖추다니. 참 부러운 일 아닌가.
뭐, 그래도 그 덕분에 잠시 돌아 버렸던 이성이 돌아왔다. 나는 몸을 살짝 숙여 팔을 내밀어 자세를 잡았다. 침착하게 그의 움직임에 따라 차분히 이동하여 거리를 유지했다. 그러면서 눈은 그의 기량을 빠르게 체크했다.
‘키는 대략 184… 아니, 185. 그렇다면 리치는 187~9 정도.’
…하하, 미친 거 아냐? 나는 한층 차분해진 머리로 그의 체급을 가늠하다 헛웃음을 흘렸다. 저 자식은 아무리 좋게 쳐 줘도 미들급이고, 최대로 보면 헤비급이었다. 나의 최대 체급을 라이트급으로 가정해도… 3~4체급 이상의 차이라니. 이건 무슨 농담이지?
‘화를 낼 때가 아닌데?’
갑자기 찬물이 머리 위로 쏟아진 것 같았다. 와, 진짜 잘못하다 골로 가겠네. 물론 저 녀석보다 더한 놈도 있었으나, 상대가 상대이다 보니 좀체 안심할 수가 없었다. 또한 그의 성향을 고려해 봐도, 딱 봐도 최강혁은 나와 같이 공격형인 스트라이커일 것 같았다.
‘그렇다면… 지금의 내 피지컬로는 제대로 맞붙는 건 거의 불가능하니깐, 단기간에 승부를 봐야 해. 그럼 적당히 회피하면서….’
툭, 발에 무언가가 차였다. 뭐지? 내 시선이 그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내려갔다.
“…….”
“…….”
딱, 눈이 마주쳤다. 내 눈동자가 요란하게 흔들리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그것은 상대측도 마찬가지인지 입을 뻐끔거리며 덜덜 떨고 있었다.
‘왜 안 도망치고 여기 이러고 있어…?’
그 정체는 바로 최강혁에 밟힌 양아치 중 한 놈이었다. 그런데 이놈은 여기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최강혁이 나에게 관심을 돌린 틈을 타 눈치 빠르게 도망이나 갈 것이지, 왜 여기 이렇게 드러누운 채 있는 건가. 나는 황당함에 망연히 입만 벌렸다.
“큭….”
그때, 최강혁이 긁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그 소리에 화들짝 정신을 차리며 황급히 다시 그를 견제했다. 최강혁은 이마를 부여잡고는 뭐가 그리 우스운지 웃음을 실실 흘리고 있었다.
“아-. 그래. 이거지.”
킥. 최강혁의 미소의 살기가 얹어졌다.
“!”
동시에 그가 빠른 스텝으로 내 쪽을 향해 파고들어 다리를 휘둘렀다.
‘피해야…! 아니, 안 돼!’
뒷발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판단을 즉각 수정했다. 위험 부담이 컸으나,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나는 이를 악물며 휘둘러지는 다리를 같이 걷어찼다.
따앙-!!
강한 울림이 골목에 퍼졌다. 나는 바로 그 반동을 이용해 몸을 회전시켜 녀석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가격했다.
“큿…!”
“윽…!”
욱신, 다리에서 전해져 오는 통증에 눈살을 찌푸렸다. …젠장. 뒤쪽에 있는 놈 때문에 시야가 좁아져서 그런지 녀석의 공격을 보질 못했다. 최강혁은 내가 옆구리를 공격하는 사이, 그도 내 다리를 공격했다.
‘거리를…!!’
뒤에 있는 놈이 이 대결에 휩쓸리면 안 된다. 나는 그 생각만으로 이를 악물며 그대로 최강혁의 멱살을 잡아채 뒤로 힘껏 밀었다. 최강혁은 한순간 미는 힘에 뒤로 두세 걸음 주춤하는가 싶더니, 곧 뒷발을 주축 삼아 버티며 나를 던지듯 치워 냈다. 나는 그 손놀림에 크게 반항하지 않고 그에게서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하아, 하아….”
마스크 안이 답답하다. 최강혁은 역시 쉬운 놈이 아니었다. 체격은 서이수와 비슷하지만, 근육의 질량과 힘이 다른 게 온몸에서 전해졌다. 마치 바위를 움직이는 기분이었다. 덕분에 숨이 벌써부터 차기 시작했다. 역시 남주 정도면 저 정도는 되어 줘야 하나. 나는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거리를 가늠한 채 뒤쪽으로 손을 뻗어 조용히 휘저었다. 지금을 틈타 어서 도망가란 의도였다.
‘쓰읍, 어쩔 수 없지.’
나는 자세를 다시 잡았다. 이번엔 팔을 교차시킨 후, 무게 중심을 좀 더 낮췄다.
‘그래플러는… 주특기가 아니지만.’
지금은 어쩔 수가 없었다. 내 방식대로 밀고 나가면 주변에 널브러진 놈들이 휘말리고 말 거다. 최소한의 거리로, 최대한의 방어를.
“후우….”
아득한 체급 차도 모자라 저런 야수를 상대로, 이렇게 모자와 마스크로 중무장한 채라니. 핸디캡 너무 많은 거 아니야? 정말 헛웃음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내 온몸의 근육은 점점 열기를 띠며 수축되기 시작했다.
타닥,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빠른 스텝으로 다가온 최강혁이 주먹을 먼저 내질렀다. 탕-! 나는 그것을 재빨리 안쪽에서 쳐 내며 궤도를 옆으로 꺾었다. 그대로 녀석의 팔을 잡아채려 했으나, 최강혁의 이어진 움직임에 나는 눈을 부릅떴다.
“!”
훅(hook)…! 최강혁은 팔을 쳐 낸 반동을 이용해 연타를 노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뒤로 발을 뻗어 그와 간격을 벌리기 위해 움직였으나, 이내 뒤에서 전해지는 인기척에 그마저 오래가지 못했다.
‘젠장…!’
타앙-!!
“으극…!!”
끝내 선택한 건 허리를 젖혀 그의 공격을 빗맞게 만들었다. 하지만 스친 것만으로도 상당히 저릿한 충격에 낯이 저절로 일그러졌다.
빡-!!
“!!”
그러나 정신을 수습하는 시간이 한 템포 늦고 말았다. 게다가 최악이게도 이어지는 연타에 가드가 풀렸다. 뼛속까지 느껴지는 울림이 심상치가 않았다. 나는 대차게 휘청이는 몸을 억지로 지탱하며 팔 너머에서 전해지는 통증에 이를 악물었다. 다시 한번 가드를 올리기 위해 팔을 올리는데,
빠악-!!!!
“……?!”
고개가 돌아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한순간 정신이 아득히 날아갔다. 눈꺼풀을 반사적으로 깜빡였다. 새하얗게 점멸된 시야를 다시 확보했을 땐 주먹이 내 코앞까지 와 있었다.
퍼억-!
“윽…!!”
타닥, 탁. 잔걸음이 바닥을 잘게 울리며 뒤로 물러섰다. 나는 멀어진 최강혁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숨을 몰아쉬었다.
‘…아슬아슬.’
조금 더 늦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위험한 적신호에 몸이 즉각 반응했다. 본능적으로 뻗은 다리가 그의 배를 가격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K. O. 당했으리라. 나는 올렸던 다리를 내렸다.
‘…답답해.’
마스크 안이 답답하다. 천이 이상할 정도로 축축했다. 아무래도 코피마저 터진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숨 쉬기 힘든데 더 불리한 상황에 직면했다. 게다가 이런 하나가 거슬리기 시작하니 모자도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숨이 막히니 체력이 두 배는 더 빠르게 소진되는 것 같았다. 이거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 건가.
“…젠장.”
진짜 더는 못 해 먹겠다. 역시 핸디캡이 너무 많아. 고인 피를 뱉고 싶어도 누구 한 명 남아 있을까 싶어 벗지도 못하다니. 정말이지, 다 때려치우고 싶다.
‘후우…. 그래도 진정하자. 이젠 슬슬 정리가 됐을 테니까.’
도망치는 데 시간이 걸린다면 또 얼마나 걸리겠는가. 나는 나름대로 희망을 걸며 주변을 눈짓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티면 되려…,’
응…?? 그러나 이어 보이는 광경에 나는 아연하게 입을 벌렸다. 할 말을 잃고 입을 뻐끔거리길 잠시, 솟구치는 혈압에 이를 으득 갈며 버럭 외쳤다.
“빨리 안 튀어 가냐!! 짜식들아-!!!”
“히익…!!”
“흐이잇!!”
그러자 곳곳에서 새된 비명이 울렸다. 하나 그것은 내 짜증을 더 부추기는 꼴이었다.
“도망칠 시간을 벌어 주는데, 구경을 해?!”
적당히 시간 좀 벌어 주려 했건만! 망할 것들이 협조를 안 해 줘서 다 글러 먹었다. 도와주고 싶지 않은 걸 불쌍해서 도와줬더니, 아주 은혜를 원수로 갚네, 이 새끼들이?!
“……허?”
그런 내 외침에 반응한 건 주위에 포진된 개자식들뿐만이 아니었다. 최강혁은 벙찐 얼굴로 나를 보며 어이없단 탄식을 흘렸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반응을 신경 쓰지 않았다. 뭐 때문에 내가 활동 반경을 좁힌 것도 모자라 피할 수 있는 걸 굳이 막았겠는가.
‘젠장! 도움 전혀 안 되는 새끼들!’
이래서 일진 놀이나 하는 양아치 새끼들이란! 나는 혀를 강하게 차며 그들에게 서늘히 최후통첩을 날렸다.
“셋, 셀 동안 여기 드러누운 놈들 포함해서 전부 다 안 튀면… 이번엔 내 손에 뒤진다.”
그저 경고가 아닌 진심이었다. 사람의 선의를 뭘로 보는 것인가. 나는 그리 인내심이 좋은 편이 아니다. 만약 이번에도 구경하겠다고 남으면… 이번엔 친히 내 손으로 정리해 주리라.
“하나.”
“헉, 시, 시발.”
“야, 야! 쟤, 쟤 들어!”
지체치 않고 숫자를 세기 시작하자, 드디어 정신이 제대로 박히기 시작했는지 하나둘 분주하게 떠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그들의 기척을 몸의 감각으로 살피며 전방의 최강혁을 주시했다. 최강혁은 황당한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둘.”
“밀지 마, 새꺄!”
“야, 앞에 빨리 가!!”
하지만, 나와 똑바로 시선이 마주치니 그의 표정이 점점 지워졌다.
“셋.”
“…….”
소란은 한순간이었고, 뒤이어 찾아온 것은 적막이었다. 나는 완전히 한산해진 주위를 한 차례 둘러보곤 콧방귀를 세차게 뀌었다.
‘이렇게 빨리 정리될 줄 알았으면 진즉 이럴걸.’
괜히 아까운 시간만 버렸다. 몇 대 맞지 않았는데도 몸이 너덜너덜한 것도 모자라 온몸이 비명을 질러 댔다. 더 맞았다가는 정말 황천길 갈 것 같았다.
‘…맷집이 너무 약해.’
그러한 스스로를 돌아보자니, 탄식이 절로 나왔다.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맷집 훈련을 하지도 않은 몸이 단련이 되어 있어 봤자 얼마나 단련됐겠는가. 최근 그나마 맞아 본 기억은 김시원과 스파링 해 봤을 때뿐이었다. 물론 그것도 내가 녀석을 빠르게 K. O.를 시켜 주다 보니 얼마 맞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게다가 요새 여러 이유를 대며 운동을 게을리해서 그런가, 근손실이 어마어마했다.
즉, 현재 내 몸 상태는 쓰레기였고, 지금 나는 엄청 지쳤다.
“…설마, 봐주고 있었던 건가?”
잠시의 틈을 타 한숨을 돌리고 있는데, 최강혁이 헛웃음을 흘리며 낮게 중얼거렸다. 굉장히 언짢아 보이는 그 모습에 나는 뻐근한 어깨를 돌리며 귀찮음을 가릴 마음 없이 대꾸했다.
“그래서 엄청 후회하고 있으니까 너무 열 올리지 마.”
젠장. 입 안이 제대로 터졌나. 입을 벌릴 때마다 찌르르한 통증이 느껴졌다. 시간이 좀 지나면 엄청 부으면서 큰 멍이 들 것을 직감했다. …이걸 가족들에게 어떤 식으로 변명해야 될지 벌써부터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래도 우선은… 이 몹쓸 몸뚱어리부터 어떻게 해 봐야겠지. 나는 뻣뻣해진 몸을 풀기 위해 쭉, 팔을 폈다.
“이건 또… 재밌는 경험이네.”
말의 내용과 달리 최강혁의 눈이 싸늘히 가라앉았다.
“그래, 그래.”
하나 나는 모른 척 능청스레 허리를 쭉 늘렸다.
“날 이렇게 얕잡아 보는 건 처음인데.”
“아, 얕잡아 보진 않았는데… 뭐, 상황으로 따지면 얘기가 그렇게 되긴 하겠네.”
덕분에 내 얼굴은 쥐어 터졌고 말이다. 정말 누구를 위한 희생이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다리를 양쪽으로 벌려 상체를 반쯤 돌린 채 고관절을 스트레칭했다.
하나, 둘. 하나, 둘. 좋아, 됐다.
“하…. 그럼 지금도 봐줄 생각인가?”
뚜둑, 관절이 살벌하게 꺾이는 소리가 들렸다. 내 쪽에서 난 소리는 아니었다. 최강혁을 힐끔 보니, 그의 손등의 힘줄과 목의 핏대가 잔뜩 불거져 있었다.
“설마, 그럴 리가.”
나는 그런 그의 심기를 달래기 위해 고개를 내저으며 자세를 바로 했다. 그리고 모자의 끝과 마스크의 윗부분을 부여잡았고,
“지금부터 더…”
단번에 모자와 마스크를 벗겨 냈다.
“더 재밌어질 거란다.”
당돌한 미소를 띠며, 썼던 모자와 마스크를 저 멀리 구석에 휘릭, 던져 버렸다. 아, 드디어 살 것 같네. 숨통이 트이니 한결 몸이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다.
“호-?”
최강혁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서려 있던 살기가 사라지고 흥미가 어린 걸 보면 그 또한 내 의도를 눈치챘나 보다. 나는 그와 시선을 똑바로 마주한 채 혈관이 터져 흐르는 코피를 한 번에 풀며, 입 안에 고인 피를 뱉어 냈다. 그리고 입으로 숨을 크게 들이쉬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이번엔 두 팔을 앞으로 내민 나의 정자세였다. 그러자 최강혁의 미소가 짙어졌다.
“자-. 그럼.”
땡-.
제2 라운드.
F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