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195화 (195/306)

196. 애들 상대로 진심인 게 웬 말인가. (2)

“왜-?!”

고찬영이 경악하며 내 어깨를 덥석 붙잡았다.

“어째서? 왜?! 체육 대회야말로 친구님을 위한 무대 아니야?? 난 친구님 엄청 좋아할 줄 알았는데!!”

“윽, 억, 악, 억…!”

커다란 손에 의해 몸이 짤짤짤 흔들렸다. 덕분에 지난 주말 최강혁과의 싸움의 여파로 혹사한 몸이 짜릿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대비할 시간도 갖추지 못하고 습격당한 나로선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지, 진정, 진정해, 찬영아!”

그러한 내 고통을 알아준 건 이혜인이었다. 이혜인은 우리 사이에 황급히 끼어들며 중재에 나섰다.

“답답한 심정은 나도 잘 알아. 찬영아. 이나만 나서면 반 1등은 따 놓은 당상이지! 내가 그렇게 4년을 놓쳤으니까 아주 잘 알고말고!”

“음? …4년?”

고찬영의 손이 뚝 멈췄다. 이혜인은 그를 향해 고개를 깊이 끄덕였다.

“그래! 난 그때 진짜 그런 줄 알고 찰떡같이 믿었는데! 다 거짓말이었어!!”

“응? 거짓말?”

이어진 말에 그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가, 거짓말을 했다고?’

나는 황급히 과거를 돌이켜 봤다.

‘…뭐라 했더라? 중학교 때는 내가 서이수 잡으러 다니고 이래저래 바빠서 피곤하단 이유로 뒤로 뺐던 거 같고, 고등학교 1학년 때는 그냥 관심이 없단 이유로 뺐던 것 같은데….’

그나마 거짓말에 적합한 게 있다면, 몸이 안 좋다고 핑계를 대며 뺐던 중학교 2학년 때려나? 그런데 그걸 따지자면 나도 할 말이 많았다. 그때는 이 세계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무렵이라 정신도 없었고, 컨디션도 말이 아니었다. 막 운동을 시작한 물 근육은 처참하기 짝이 없는데 그 몸으로 서이수 갱생 프로젝트와 하지 않던 공부를 병행해야만 했다. 거기에 서이수 잡으러 패싸움에 휩쓸려 버릴 때는 오죽했겠는가. 어우, 또다시 돌아가라 하면 치를 떨며 하기 싫다고 혀를 내두를 것만 같은 기억이었다.

“내가 들었던 말 중에서 가장 황당한 건 운동을 싫어해서, 라는 거였다고!”

“…뭐?”

과거를 돌이키던 정신이 급격히 끌어 내려졌다. …방금 무슨 얘기를 들은 거지? 나는 있을 수 없는 내용을 들은 탓에 귀를 후빈 뒤, 재차 물었다.

“혜인아, 다시 말해 줄래? 내 귀가 잘못됐나 봐. …내가 무슨 말을 했다고?”

“네가 운동을 싫어해서, 라는 이유로 체육 대회 때 빠진 이야기?”

“……내가?”

“응. 네가.”

“…진짜?”

“진짜라니까?”

너무나 믿기지 않는 현실에 자꾸만 반문을 던졌다. 하지만 이혜인 단호했다. 당황스러웠다. 몇 번이나 과거를 돌아봐도 결론은 같았다.

“난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없는데?”

그래서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곤혹스러운 감정을 참지 못하고 난처히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야. 너.”

그러자 이혜인이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것처럼 고개를 갸웃거린 채 인상을 살풋 찡그렸다.

“중학교 1학년 때 운동 싫어한다고 말한 적 있잖아. 그것도 엄~청 정색하면서.”

“…1학년?”

“그래. 그래서 내가 너 체육관 다닌다는 얘기 듣고 얼마나 놀랐는데.”

아-. 그런 거였나. 나는 그제야 그녀의 말이 납득이 갔다. 그렇구나. 1학년 때란 말이지.

“그럼 맞아.”

“엥?”

내 긍정에 이혜인이 눈을 크게 떴다. 나는 몸을 뒤로 젖혀 등받이에 편히 기대며 말을 이었다.

“그럼 내가 말한 거 맞을 거라고.”

정확히는 이 세계의 서이나, 겠지만 말이다. 나는 손을 들어 올렸다. 이 세계에 막 왔을 당시의 그 굳은살 하나 없이 매끈하고 여렸던 손은 이제 없었다.

‘그렇군. 넌… 운동을 싫어했구나.’

참 이상하다. 다른 건 잘만 기억하면서 막상 이 몸의 주인이 되는 주체에 대한 호불호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오로지 기억하는 건 그 삶을 증명해 주는 단편적인 것들뿐이었다. 그것도 내 의지완 별개로 불쑥 찾아오는 아주 불친절한 놈으로 말이다.

뭐, 나 또한 운동을 좋아해서 했다고 말할 순 없었다. 그냥 기억이 있던 그 순간부터 내 인생엔 운동이 빠진 적이 없다 보니 그냥 그게 당연했기 때문이었다. …내게도 선택이 있었다면, 이 세계의 나와 같은 선택을 하였을까.

‘아니, 너무 무의미하네.’

곰곰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 내 모습을 보라. 결국 돌고 돌아 또 이렇게 되지 않았는가. 그러니 이미 답이 나온 문제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가볍게 웃으며 생각을 털어 냈다.

“흐음. 친구님이 운동을 싫어한 시절이 있을 거란 게 안 믿기는데?”

그때 우리들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던 고찬영이 불쑥 중얼거렸다.

“나, 나도 잘 상상이 안 가. 이나 너 체육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사실 왜 지금껏 체육 대회에 그리 참여를 안 했는지 줄곧 궁금하긴 했어. 그… 소문 때문에 그런 거라면, 별개가 아닌가 싶고.”

안경희는 마지막 한마디를 할 때 주위를 의식하며 말을 줄였다. 그 반응에 나도 모르게 반을 살피자 어느샌가 반의 이목이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쏠렸음을 발견했다.

‘…하여간 이런 쓸데없는 데에 관심이 많다니까.’

그럴 시간에 공부라도 하지, 그러냐. 라고 핀잔을 주고 싶었으나, 꾹 참으며 모른 척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 뭐. 컨디션이란 게 그렇잖아? 언제나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고~. 뭐, 그런 거지.”

“하지만… 그럼 이번은 왜?”

안경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질문에 나는 씩 웃었다.

“경희야, 나를 봐 봐.”

“어, 으응. 보, 보고 있어.”

“자세히 봐 봐.”

“으응…?”

그녀의 눈이 동그래지며 나를 보았다.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빤히 마주쳐 주자, 안경희가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점점 얼굴이 빨개…, 응? 빨개?

펑! 돌연 그녀의 얼굴이 터졌다. 나는 불시에 일어난 일에 깜짝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겨, 경희야! 괜찮아?!”

“으, 아, 억, 괘, 괜찮…! 악!!!”

서둘러 부축해 주자, 안경희가 눈을 뱅글뱅글 돌며 파드득 나와 거리를 벌리더니 기어코 주변에 있던 책상에 부딪히며 고통을 호소했다.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기겁한 내가 그녀의 안부를 걱정하고 있으니, 곁에 있던 고찬영이 혀를 끌끌 찼다.

“방금 건 친구님이 나빴다.”

“동감.”

게다가 이혜인의 동조까지. …왜 상황이 이렇게 된 건지. 나는 곤혹스러웠지만, 안경희가 회복이 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크흠. 미, 미안. 그러니까, 어…. 무, 무슨 말 했었지…?”

통증이 나았는지 안경희는 홍조가 채 가지 않은 얼굴로 분위기 전환을 시도했다. 그런데 먼저 말을 꺼낸 것과 달리 그녀는 좀체 내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말 꺼낼 상대를 잘못 골랐군.’

아무래도 안경희는 그냥 내게 적응이 좀 됐던 거지, 팬심이 사라진 게 아니었었나 보다. 의도치 않게 또 무신경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미안하고 난처한 마음에 저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이나가 체육 대회 참여 안 하는 이유에 대해 얘기 중이었어.”

“아, 마, 맞아. 그렇지, 참.”

이혜인이 안경희의 질문에 답해 주었다. 안경희는 그제야 방금의 문답을 떠올리곤 감탄사를 내뱉었다.

“근데 친구님 얼굴이랑 그게 무슨 관련…, 음?”

상황을 지켜보던 고찬영이 갑자기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곤 내게 얼굴을 드밀면서 덥석 내 양 볼을 부여잡았다.

“아, 설마? 설마??”

“으억.”

야, 이…! 나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두 번째 통증에 그의 손목을 반사적으로 붙잡았다. 그러나 고찬영은 자신은 내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황당한 얼굴로 말을 내뱉었다.

“친구님, 지금 이깟 상처 때문에 그런 거야?!”

“…즘끈. 이끗 그르니…!!!”

너 지금 누른 곳 나 다친 데인 거 알아, 몰라?! 주말 동안 열심히 냉찜질을 하며 가라앉힌 부기가 다시 도질 것 같았다. 나는 갑작스레 올라온 통증에 생리적인 눈물이 고이며 빠르게 그의 손을 쳐 냈다.

“으어, 존나 아파…. 여기서 덧나면 너 때문이야, 고찬영.”

볼을 문지르며 째려보자, 고찬영은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알아챘는지 재빠르게 두 손을 들어 올리며 항복의 제스처를 보였다.

“아, 미안. 미안. 너무 말 같지도 않아서 그만.”

…이거 사과 맞아? 어쩐지 한 방 먹은 기분이었다. 언짢은 시선으로 그를 보자, 고찬영은 모른 척 시치미를 떼며 말을 돌렸다.

“그래도 이상하잖아. 체육 시간은 그렇게 날아다니면서 대회는 싫다니. 말이 안 맞잖아. …아, 아니면 그사이에 마음이 바뀐 건가? 싫었는데 좋아진 걸로 말이야.”

“……그, 그런 거지.”

이 예리한 자식 같으니. 훅 들어오는 말에 난 순간 당황했으나, 다행히 고찬영은 이상히 여기진 않았는지 별말 없이 넘어갔다. 뭐, 이 세계의 나면 모를까, 확실히 난 체육 시간을 좋아하는 편이기도 했다. 그 시간만큼 공부 스트레스 풀기에 제격인 건 없었으니…. 대충 상황이 무마된 것 같아 안도하는데, 뒤이어진 말은 나를 다른 의미로 당혹시켰다.

“그럼 괜찮지 않아? 뼈에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아무튼 봐 봐. 반 애들은 네가 출전하길 기대할걸? 그렇지?”

“엇…?”

고찬영은 내가 말릴 새도 없이 휙 주위를 둘러보며 동조를 구했다. 그러자…,

“맞아! 이나 네가 안 나가면 누가 나가!”

“반 1등 좀 하자!!”

“재능을 썩히지 말라!!!”

기다렸다는 듯 반 아이들이 일제히 의견을 피력했다. 그 단호한 화합은 놀랍기 그지없었으나, 나로선 참 난처할 따름이었다.

“부상자한테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리고 찬영이도 있잖아.”

굳이 내가 아니어도 충분히 1등을 할 수 있음을 피력해 보았으나, 아이들은 만만치가 않았다.

“우리는 완벽한 우승을 바란다!”

“너까지 합류하면 우리 반은 최강이라고!!”

“부상이 웬 핑계냐! 그런 나약한 정신으로 체육 부장이라고 할 수 있냐-!”

“그럼 체육 부장 그만둘….”

“너 아니면 누가 체육 부장을 해!! 이의 있는 사람?!”

“없어!!”

우! 우! 벌떼처럼 몰려드는 야유와 단합에 나는 기가 질려 버렸다. 어우, 왜 이런 데 진심이냐고. 이 자식들은. 우리 반이 원래 이렇게 승부욕이 강했던가? 의문이 일 정도였으나, 고등학교란 공간에 갇혀 버린 청춘들의 이성은 돌아올 생각이 보이질 않았다. 점점 과열되어 가는 양상에 나는 식은땀만 뻘뻘 흘렸다.

“친구님, 그냥 참여해. 그게 가장 편하다니까?”

“아, …읍.”

그런 와중, 고찬영은 내 어깨를 두 손으로 턱, 짚은 채 살살 웃으며 나를 꼬드겼다. 그… 달콤한 속삭임은 하마터면 알겠다고 할 뻔했다. 나는 바로 입을 틀어막은 자신을 칭찬하며 고찬영을 외면했다. 회유에 실패한 고찬영이 아깝다는 듯 혀를 차며 내게서 물러섰다.

“진짜 이해가 안 되는데. 왜 그렇게 안 나가려 하는 건데?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거 아냐?”

“……!”

움찔. 나는 반사적으로 몸이 튀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수상한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나는 입을 꾹 틀어막은 채 고찬영의 시선을 외면했다.

“에잇.”

“야, 잇…!!”

그의 질문을 회피하고 침묵을 택하자 고찬영이 내 볼을 쿡 찔렀다. 습격당한 통증에 쌍욕을 삼키며 그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참 얄밉게도 고찬영이 아슬아슬하게 내 주먹을 피해 버렸다.

“오, 방금 그거 진짜 아찔했어.”

“쯧.”

아까움에 혀가 저절로 차였다. 그러나 고찬영은 내 반응에도 개의치 않고 질문을 재차 던졌다.

“그래서 왜 그런 건데, 응?”

그 집요한 자세에 이젠 나도 귀찮음이 올라왔다.

“그게 그렇게 중요해?”

“중요하지. 친구님이 그렇~게 체육을 잘하는데 나서지 않는 게, 난 도무지 이해가 안 돼서 말이야?”

고찬영이 싱긋 웃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웃질 않았다. 대답하라는 압박이 강하게 느껴졌다. 도저히 물러날 기미가 보이질 않는 모습에 나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나도 모르게 한숨 쉬듯 중얼거렸다.

“…그게 문제인 거야.”

“응?”

“어?”

“엥?”

그러자 곳곳에서 반응이 터져 나왔다. 나름 작게 대답했는데 어떻게 들었는지. …여기 진짜 인소 세계 맞아? 대놓고 말해도 못 듣는 곳 맞냐고. 아니면, 뭐 주인공들에게만 벌어지는 예외다 그거냐…. 정말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으나, 이내 찾아온 현실이 급 곤혹스러워졌다. 아, 이거 진짜 말해야 되나. 말하기 부끄러운데. 나는 민망함에 얼굴을 벅벅 문질렀다. 그리고 입을 삐죽이며 못다 한 말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너무 잘하니까, 그게 문제란 말이야아….’

그도 그럴 게, 진짜 이유는 누가 들어도 재수 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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