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 승부 앞에선 애고 어른이고 없는 법. (1)
기실 이 팀을 짜기까지 수많은 말이 오갔다. 처음엔 합동으로 펼친다고 했을 때, 출전하는 팀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반별 대항은 어떻게 할 것인지 정말 많은 토의가 이뤄졌다.
원래는 청 팀과 백 팀으로 1-4반, 5-8반으로 해서 팀을 그냥 두 개로 편성하는 것. 이게 가장 이상적이긴 했으나, 최대 스폰서인 한도훈이 회의 중 가장 질색을 표해서 바로 기각당했다.
그렇다면 짝수 홀수 팀은 어떤가? 이런 제안이 나왔으나, 이렇게 구성될 시엔 무슨 종목이든 간에 다른 학생들의 참여율이 확연히 저조함을 띠어 불만이 우려될 터라 보류했다. 그렇다고 1반은 1반끼리. 이렇게 할 수도 없었다. 이런 식으로 숫자에 맞춰 팀을 짜면 팀 밸런스 패치가 이게 뭐냐고 거센 항의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럼 랜덤 뽑기로 짝이 되는 반을 배치하는 건? 경기를 하는 쪽도 지켜보는 쪽도 팀이 헷갈린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아무튼 그런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최종 편성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우리 팀의 인원이 체육을 잘하는 애들이 많다곤 해도 방심할 순 없었다. 앞 반은 최강혁과 다정한뿐이었으나, 그 둘만은 강해중 출신 1, 2인자였다. 특히, 이미 한 번 붙어 본 최강혁의 운동 신경은 이미 측정이 끝났다 쳐도… 문제는 다정한이었다.
웃긴 이유긴 하나, 바로 저 녀석이 실눈 캐라는 이유 때문이다. 게다가 미소가 디폴트인 실눈 캐라니. 그런 캐릭터는 어떤 장르에서도 방심하면 안 되는 부류였다. 그러다 보니 쟨 왠지 웃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1등 해 먹을 거 같은 그런 이미지가 있었다.
그리고 중간 반인 주요 멤버는 반휘혈, 한도훈, 이윤이다. …뭐, 이거 때문에 한도훈이 이를 바득바득 갈긴 했으나, 결국 이 방안이 최선이란 걸 깨닫고 이를 악물며 최종 승인을 하였다. 정말 여러모로 말 많고 탈 많을 것 같은 팀 구성이긴 하나…, 어느 쪽이나 위험한 건 마찬가지였다.
“단, 종목은 이전보다 줄여 개인 종목인 육상 50m와 400m, 남녀 단체 종목인 피구와 줄다리기, 또 이어달리기가 있으며, 피구 결승 이후 이벤트 경기가 두 번 실시될 예정입니다. 이 종목은 시작 전까지 발표되지 않으니 많은 관심 가져 주시길 바랍니다.”
이미 공지했던 이야기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고찬영에게 피구에 대해 다시 의논을 나누기 위해 작게 소곤거렸다.
“또한 각 경기에 배정된 점수는 그때그때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네가…, 엥?”
나는 말을 하다 말고 홱, 하고 한도훈을 돌아봤다.
아니, 저게 무슨 개떡 같은 소리야…? 이벤트 경기? 그런 것도 있어? 아, 아니, 그보다 점수를 안 알려 준다니! 경기당 점수는 오늘 공지한다며! …아, 이 젠장할! 오늘 공지한다는 게 경기 끝날 때마다였냐!!
배정된 점수를 보며 계획을 정확히 구상하려 했던 게 다 무너졌다. 당황스러움에 동공이 저절로 떨리고 뒷목이 잡혔다. 하나 기획자인 한도훈은 뻔뻔한 낯으로 진행을 이어 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HD 그룹의 스폰을 주축으로 진행되는 이 체육 대회는 각 종목에 맞는 카메라를 배치해 시계탑 아래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으로 그 진행 현황 확인이 가능합니다. …그럼, 이상입니다.”
발표를 마무리한 한도훈이 미소를 지으며 마이크를 내렸다.
그리고,
우와아아-!!!!!!!!!!!!
답답한 내 속과는 달리 곳곳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본격적인 체육 대회를 알리는 서막과 같았다.
“하하, 이야~. 여러모로 굉장한 대회가 되겠는데?”
“…….”
고찬영이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내 심정도 모른 채 싱글벙글 웃었다. 나는 얼굴을 와락 구기며 얼굴을 두 손으로 쓸어내렸다.
“…뭐, 됐어.”
다 이기면 그만이니까. 나는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고찬영에게 경고했다.
“찬영이, 너 건성건성으로 하면 나한테 죽는 걸로 생각해라.”
“하하하, 그런 걱정은 하지 마~.”
고찬영이 팔을 내 어깨에 완전히 기댄 채 얼굴을 가까이 하며 속삭였다.
“그 상품을 기대하는 건 친구님뿐이 아니니깐.”
짙은 미소를 그린 그는 야생의 짐승처럼 눈을 빛냈다. 평소 보기 힘든 투지였다. 좋아. 만족스럽군. 나 또한 그에 맞춰 미소를 깊게 그렸다. 예상외로 심각하게 많은 인파에 잠시 흐트러졌던 투지가 다시 불타오르는 순간이었다.
***
흠칫. 이재현은 고개를 돌려 서이나가 있는 반을 확인하다가 심상치 않은 두 사람의 분위기에 잠시 몸을 떨었다.
‘와…. 두 사람 오늘 기합 엄청 들어갔네.’
멀리 있는데도 불구하고 두 사람에게서 매서운 투지가 느껴졌다. 이재현은 그들을 난감히 웃으며 바라보다 같은 팀이 된 김시원과 서강이를 찾았다.
활활활.
아앗. 이재현은 고개를 돌렸다가 반사적으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거기엔 방금 두 사람보다 더 뜨겁게 타오르는 김시원이 있었다. 김시원은 제대로 이를 갈기라도 했는지 평소보다 눈빛이 더 날카로웠다.
“…이수야. 시원이 진짜 진심으로 임할 건가 봐.”
“그렇겠지. 상대가 대부분 강해중 출신인 데다 반휘혈, 한도훈이잖아. 또 쟤가 보통 승부욕이야?”
이재현이 식은땀을 흘리며 말하는데 서이수는 시큰둥하게 목을 꺾으며 대꾸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피로한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야, 그보다 우리 걱정부터 해라.”
“응?”
이재현이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이수는 힐끗, 2학년 무리에 시선을 던지더니, 질린 낯으로 얼굴을 구겼다.
“지는 순간, 우린 누나한테 주옥 되는 거야.”
“하하….”
그 말에 이재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눈빛을 흐렸다.
‘…하여간 도훈이는 뭘 하든 과하다니까.’
국가 대표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중압감을 느낄 일인가. 이번 상품도 원래는 해외여행을 가려다가 학교 측에서 너무 과하단 이유로 반려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만약 승인이 됐다면, 그땐 또 무슨 꼴이 났을지….
이재현은 밀려오는 부담감에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 6반을 보았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김시원의 타오르는 불꽃을 정면으로 받으며, 어딘가 깊은 체념을 한 것 같은 낯을 한 서강이가 있었다.
‘…이번엔 나오려나 보네?’
자신도 서강이에 대한 소문은 들은 적 있다. 그를 응원하는 팬들의 말마따나 서강이는 이런 행사에 나서는 걸 극도로 귀찮아했다. 그래서 매번 구석에 박혀서 잠만 자는 게 그라고 했다. 하지만…,
‘누나랑 시원이가 멱살 잡았단 게 사실이려나.’
이재현은 소문으로 들었던 일을 떠올리며 난감한 미소를 그렸다. 서이나는 같은 중학교 때 이런 행사에 출전했던 걸 본 적이 없었고, 고찬영의 보고대로라면 이번 체육 대회도 그럴 예정이었다고 한다.
[찬영이 형 : 친구님이 이번 체육대회 참여 안 한다는데?! 아니, 원래 참여 자체를 잘 안 했다는데 이게 무슨 말이야???]
그 연락에 이재현은 그제야 중학교 때 서이나를 체육 대회 같은 학교 행사에서 마주한 적이 없음을 깨달았다. 어, 그럼 문제 있는 거 아냐? 이재현은 앞으로의 일에 착오가 생길까 급 염려가 몰려오는데, 때마침 한도훈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도훈이 : ㄱㅊ 이미 알고 있었음]
[도훈이 : 회의 이후에 맘 바꿀 거니깐 반에서 얌전히 기다리기만 하면 됨]
[찬영이 형 : ?????]
[나 : ??????]
[이수 : 넌 대체 이번엔 뭘 꾸미는 거야]
[시원이 : 네 맘대로 해라...]
그리고 한도훈이 장담한 대로 되었다. 이번 상품 소식과 경기 방침 소식에, 회의적이었던 누나가 두 눈에 불을 켠 것도 모자라 만사 귀찮아하던 김시원의 투지마저 불태웠다. 정말 사람 움직이게 하는 데 도가 튼 친구였다. 또 무엇보다 이렇게 질린다는 듯 구는 서이수도 슬쩍슬쩍 몸을 계속 풀고 있는 게 은근히 승부욕을 불태우고 있었다. 이재현은 그들을 둘러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참 대단하단 말이야.’
새삼 한도훈의 영향력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뭐, 그래도 그 녀석에 있어서 이 모든 계획의 최종 종착지는 단 하나겠지만. 이재현은 자연스럽게 4반으로 시선을 돌렸다.
“?!”
그러다 보이는 광경에 그는 반사적으로 흠칫, 몸을 떨었다.
“세상에….”
“응? 왜 그래?”
이재현의 나직한 감탄 소리를 들었는지 서이수가 그를 돌아봤다. 이재현은 쓴웃음을 그리며 눈짓으로 옆 반을 가리켰다. 그에 서이수도 그쪽을 바라보니 그도 예외 없이 몸을 움찔거렸다.
“…….”
그곳엔 바로 검은 안개가 낀 것처럼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반휘혈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어느 한 곳을 뚫어져라 보면서 말이다.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마주보았다가 그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따라갔다.
“허….”
“하하….”
그리고 둘은 동시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 시선의 끝엔 다름 아닌 가까이 붙어서 아까와 별다를 바 없이 스산하게 미소를 지으며 어떤 공모를 꾸미고 있는 듯한 서이나와 고찬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휘혈이도 참.”
“저 새낀 대체 뭐가 문젠지 모르겠다, 이젠.”
이재현은 고개를 내저었고, 서이수는 혀를 차며 질색을 표했다. 반휘혈의 얼굴은 잘 보이질 않았지만, 그가 뿜어내는 분위기와 그 주변에 서 있는 애들이 시선도 못 마주치는 걸 보면 그 낯이 어떠할지 왠지 모르게 상상이 갔다.
서이수는 이젠 자신이 왜 저런 자식을 동경했었는지 눈이 삐었었나, 진지하게 의심을 품을 지경이었다. 아무래도 일짱이란 이유로 콩깍지가 단단히 씌었던 게 분명했다. 이제라도 유치한 그 모습을 알아차려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왠지 엄청난 체육 대회가 될 것 같아.’
어쩌면 제 인생을 통틀어 가장 인상 깊은 대회로 남지 않을까. 이재현은 난감한 미소를 띠며 긴장을 낮추기 위해 숨을 크게 내쉬었다.
***
첫 종목은 50m 달리기였다. 보통 달리기 종목은 오후에 하는 편에 속했지만, 오늘 일정이 타이트하단 이유로 가장 먼저 끝낼 수 있는 종목이 오전에 배치되었다. …대체 한도훈은 무슨 속셈인가 다시 생각하게 되었지만, 우선 나는 경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우리 팀에서 선발된 남자 첫 대표 주자 중 한 명이…,
“서이수!!!! 지면 넌 내 손에 뒤진다-!!!!!!!!!!!!”
내 동생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두 손을 모아 버럭 응원을 외쳤다. 서이수는 몸을 풀다 말고 반가이 소리쳤다.
“시끄러-!!!!!!!!”
하하, 저 개놈의 자식 같으니. 우리는 서로에게 가차 없이 응원의 쌍엿을 날렸다.
“…둘 다 아침부터 목청이 참 좋네~.”
그리고 그런 우리를 보며 고찬영이 귀를 막은 채 감탄 어린 휘파람을 불었다. 나는 그것을 귓등으로 흘리며 남은 한 명도 응원에 박찼다.
“시원아!! 파이팅-!!”
이번에 50m 경기는 각 반별로 대표가 뽑혔기 때문에 우리 팀은 서이수와 김시원이었다. 김시원은 이름처럼 빠른 편이었고, 서이수는 놀랍게도 달리기 하나만큼은 발군이었다. 나도 저 녀석이 잡으러 다닐 때 그거 하나만큼은 애를 먹었으니 말이다.
뭐, 아무튼.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문제는 다른 반 대표였다.
다른 주자는 바로 시그니처인 웃음을 달며 대기를 하고 있는 다정한. 그리고 제자리에서 통통 튀며 준비를 하고 있는 이윤이었다. 참 당연하다면 당연한 인선이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남은 주자들을 확인하곤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2반이나 7, 8반은 원래 이렇다 할 인물이 없다 쳐도, 4반 인원 편성이 왜 저러지? 당연히 한도훈이나 반휘혈이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모르는 인물이었다. 즉, 평범한 일반 학생이란 뜻이었다.
“완전 수상한데….”
“그러게.”
고찬영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우리는 눈을 가늘게 뜨며 의심을 품었다.
“경희야, 넌 뭐 아는 거 없어?”
“어, 어?? 그, 글쎄…??”
혹시 몰라 안경희에게 정보를 물었으나 안경희도 모르는 것처럼 고개를 저었다. …한도훈, 이 자식, 대체 이 대회에 얼마나 작정한 건지. 안경희의 정보망을 피할 정도면 굉장히 공을 들였단 뜻이었다.
“그래도 큰일이야 벌어지려고~.”
“그건 그렇지만….”
이혜인이 그런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어깨를 두드렸다.
“그보단 우린 응원! 응원해야지!! 이수야!!!! 힘내-!!!!”
꺄아아, 하며 뒤에서 아우성을 치며 응원을 내뱉은 팬들과 함께 엄청 들뜬 듯한 소리를 내지르는 이혜인을 보며 나는 잠시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그녀의 말이 맞았다. 나는 의심을 잠시 내려놓고 응원에 전념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불길함은 경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해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