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206화 (206/306)

207. 우당탕탕 체육 대회 (2)

훅 가까워진 얼굴에 깜짝 놀라 고개를 뒤로 뺐다. 그러나 그러한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백설은 신기한 걸 관찰하는 것처럼 얼굴을 더 드밀며 가까이 다가왔다.

“그렇구나아-. 네가 바로 그…, 읍.”

“…이게 뭐 하는 짓거리야, 백설?”

“?!”

텁, 그의 얼굴을 한 손으로 부여잡은 이가 있었다. 바로 고찬영이었다. 그는 삐뚜름한 미소를 억지로 매단 채 백설의 얼굴을 저 멀리 쑥 밀어 버렸다. 하지만 나는 백설의 처우에 대한 것보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에 주목했다.

‘찬영이 너…?’

백설인 걸 바로 알아차렸단 말이야?! 놀란 마음에 그를 보자 역시나 고찬영은 확신 어린 눈빛으로 백설을 보고 있었다.

“엇.”

“배, 백설…?”

“방금 고찬영이… 백설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러한 고찬영의 말은 다시 파장을 일으켰다. 학생들이 수군거리며 백설을 보았다. 백설은 머리를 긁적이더니 매우 귀찮다는 듯 말했다.

“…그-러니까아- 난 그 백설 아니야아.”

그러곤 흘끗 뒤쪽을 보았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자 그곳엔 여자아이가 입을 떡하니 벌리며 아직도 충격으로 굳어 있었다.

‘뭐지…?’

왜 방금 저 여자애를 본 거지? 혹시 동생한테 비밀로 하고 있던 건가. 그리고 저 여자앤 왜 저러는 걸까. 아, 혹시 찬영이 보고 놀랐나? 그럼 얘 팬? 아니면, 혹시 이젠 오빠가 그 사대천왕의 백설이란 걸 눈치채서 그런 걸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저렇게 혼란으로 굳어 있는 것도 납득이 되었다.

“뭔 헛소리야?”

혼자서 추측하고 있는데 고찬영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으음?’

뭐지. 평소라면 예쁜 여자애가 관심 가져 준다고 그 뻔뻔한 웃음을 그려 댈 텐데. 고찬영은 답지 않게 얼굴을 구기며 짜증을 내비치고 있었다.

“뭐가 됐든 내 친구님한테 그렇게 얼굴 들이밀지 마. 퍼스널 스페이스 몰라? 퍼스널 스페이스-.”

…아니, 찬영아. 그건 정말 네가 할 말은 아니지 않니? 어이가 탈출해 버린 난 고찬영의 뒤통수를 보며 황당한 웃음을 그렸다. 어차피 이걸 말해 봤자 또 그놈의 베프 타령 하면서 유야무야 넘기겠지만. 그리고 나도 저 녀석의 스킨십에 점점 면역이 됐는지 이젠 그리 당황스럽지도 않았다. 하여간 넉살 하나는 끝내주게 좋은 놈이었다.

“끄아악-!!!”

한창 고찬영이 띠껍게 백설을 대하고 있을 때 난데없이 비명이 울렸다. 갑자기 울리는 소음에 깜짝 놀라 그 진원지를 보았다. 그곳엔 그 독특한 여자아이가 조급하게 품을 뒤적이며 울상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아까부터 쟨 또 뭐야?”

고찬영이 여자아이를 보고 의아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아니, 찬영아. 너 진짜 왜 그래…? 그의 반응이 여간 낯선 게 아니었다. 저렇게 예쁜 애는 흔치 않기 때문에 더 당황스러웠다.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를 보고 있는데, 여자아이가 또 소리를 질렀다.

“어, 없어…!!!!”

없다고? 뭐가? 난데없는 소리에 여자애를 보자, 여자애가 벌떡 일어섰다. 그러곤 이쪽을 향해 똑바로 보며 급박하게 외쳤다.

“자, 잠시만! 자, 잠시만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그리고 바람같이 사라졌다. 너무 한순간에 일어난 일인지라 반응도 못 했다.

“…쟨 진짜 뭐야?”

그것은 고찬영도 마찬가지였는지 멍하니 중얼거렸다.

“으음-.”

그러자 백설이 사라진 여자아이 방향을 살짝 흘끗대더니 눈을 데록 굴리며 입을 열었다.

“내 동생-.”

“…동생?”

“으응-. 정신없지-?”

그는 난처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니, 넌 왜 앉아? 황당히 그를 보고 있는데 고찬영은 시큰둥하게 눈을 뜨며 말했다.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꼴이 그게 뭐야?”

“으음…. 아니라고 해도 안 믿을 거지…?”

백설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지만 고찬영은 이미 확신을 하고 있었다. 어라, 나 이거 어디선가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어디서였지.

“누구 눈을 속이려고.”

…아, 기억났다.

‘그러고 보니 나도 엄청 쉽게 걸렸었지.’

고찬영의 병문안을 하러 갔을 때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백설만큼이나 어이없이 정체가 탄로 나 얼마나 당황했던지. 하여간 고찬영 저 녀석의 눈썰미와 감은 혀를 내두를 만큼 예리했다.

“…넌 너무 예리해. 그래서 짜증 나아….”

백설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안경에 가려져 얼굴 절반이 거의 보이질 않았지만 유일하게 보이는 그 예쁜 입이 뾰로통하게 나오니 어쩐지 눈길이 갔다. 그러든 말든 고찬영은 재차 백설에게 왜 이런 꼴을 하고 있냐고 질문했다.

“편해서…?”

나는 홀린 듯 바라보다가 백설이 불쑥 말하는 대답에 살짝 몸을 휘청였다.

“펴, 편해서라고…?”

“으응-.”

끄덕, 백설이 느릿하게 고개를 움직였다. 이젠 고찬영이 그 예쁜 여자애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백설의 대답에 나는 황당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아, 그래서 공주님은 이 학교엔 무슨 일로 온 건데?”

고, 공주님? 그 와중에 너무 거부감 없이 나온 호칭에 나는 고찬영을 뜨악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공주님이라고 불린 백설은 별다른 반박도 하지 않고 태연히 대답했다.

“동생이 오고 싶어 해서어-.”

“동생이?”

“응.”

“흠.”

고찬영은 그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외라는 듯 중얼거렸다.

“너 밖에 돌아다니는 거 안 좋아하지 않았던가? 전에 현호가 말했던 걸 들은 것 같은데?”

음? 이건 또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물론 내가 아는 게 많이 없다지만 정말 의외네…. 잠깐 의외는 아닌가? 그의 행색을 보아 한두 번 해 본 모습이 아닌 것 같은 데다가 활동적으로 보이진 않았으니 말이다.

“지금도 집에 가고 싶어….”

백설은 이 상황이 보통 언짢은 게 아닌지 대놓고 싫다는 기운을 뿜었다. 이렇게 오기 싫어했는데도 이 학교에 온 이유는 대체 뭔지. …음. 방금 동생이 오고 싶다고 했지? 그렇다면,

‘시스콤인가?’

“시스콤이구나, 너?”

생각과 동시에 고찬영의 입에서도 똑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내가 놀란 눈으로 보았지만 고찬영은 내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 듯 귀찮은 놈을 보는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며 백설을 보고 있었다.

“으음-.”

그런데 어쩐지 백설이 난처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곤 볼을 긁적이며 씁쓸히 중얼거렸다.

“차라리 그러면 더 좋겠네에….”

“엥?”

“뭐?”

도무지 내막을 알 수 없는 그 중얼거림에 나와 고찬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소리냐고 더 캐묻기 위해 입을 열려고 하는 그때였다.

“비켜, 시발!”

“야, 안 꺼지냐?”

“죽기 싫음 길막하지 말고 꺼져라~.”

갑자기 뒤쪽에서 저열한 욕설과 함께 학생들의 불안한 웅성거림이 퍼졌다. 뭔가 싶어 그쪽으로 시선을 던지자 웬 낯선 교복 무리가 척, 하고 등장했다.

“뭐야, 저건?”

그걸 보며 서이수가 중얼거렸다. 앗. 그 소리에 그제야 여기가 학생들이 지켜보는 한복판이란 걸 새삼 깨달아, 나는 뒤늦게 멋쩍어져 얼굴을 붉히며 자리에서 후다닥 일어섰다. 두 사람의 페이스에 완전히 말려들고 말아 버렸다. 하여간 무서운 녀석들 같으니. 이래서 얘들이랑 있을 때 방심하면 안 된다니까. 재빨리 내 마음의 안식처인 친구들 곁으로 가자, 양아치 일행 중 덩치 큰 놈 하나가 히죽거리며 나타났다.

“어-이.”

양아치는 껄렁껄렁한 발걸음으로 아직도 쭈그려 앉아 있는 백설에게 다가섰다.

“네가 그 사대천왕 백설이라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쫙 훑는 눈빛이 구렸다. 누가 보아도 얕보는 듯한 눈빛에 내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저 새낀, 대체 뭐지. 새로운 자살 시도를 선보이려는 놈인가?

“으음-. 목소리 좀 낮추면 안 될까아. 동생이 들으면 곤란해애….”

백설은 불안한 듯 뒤를 흘끔대며 동생이 돌아오는지 안 오는지 연신 확인했다. 그 수상쩍은 모습이 정말 들켜선 안 되는 것처럼 보였다.

“흐음…?”

고찬영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있었…, 어, 잠깐. 너 언제 왔어…?

“하! 그 백설이 이렇게 찌질한 새끼일 줄이야. 그것도 뭐, 동생? 푸하하!!!”

그러거나 말거나 양아치 놈은 낄낄거리며 백설을 비웃기 시작했다. 아니, 저런 예의를 밥 말아 먹은 새끼를 다 보았나….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저런 수준 낮은 시비를 걸고 지랄은 지랄인가. 그것도 남의 학교에서 말이다. 덕분에 이 학교 출신인 우리 애들 표정이 심히 좋지 않았다.

“저 새낀 뭐야. 왜 남의 학교에서 지랄이지? 죽고 싶나?”

“그러게.”

“…….”

서이수가 당장이라도 후려갈길 표정으로 양아치를 보며 중얼거리자, 기분이 나쁜 건 매한가지인 이재현이 동조를 표했다. 그리고 그동안 조용히 상황을 관전하던 다정한도 입을 열진 않았으나, 웃고 있는 입매가 살짝 굳어 있었다.

“으음-.”

그리고 백설도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간다는 걸 느꼈는지 난처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잠시 골똘히 생각하다가 품을 뒤적였다.

“자.”

“? 뭐야, 이건.”

“이거 줄 테니까 가아-.”

휘적휘적, 흔들며 내어 준 건 바로 지갑이었다. 나는 그 모습에 헛웃음을 흘렸다. 아니, 저건 대체 뭐람. 적선하는 건가? 그런 건가? 그리고 이렇게 느낀 건 당연히 나뿐만이 아니었다.

“시발-! 누굴 거지로 아나-!!!”

탁!! 남자가 그 손을 강하게 쳤다. 그는 얼굴을 시뻘겋게 달아오르며 씩씩거렸다.

“으음~? 이게 아닌가~? 보통 이거 주면 다 떨어졌는데에….”

그러자 백설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나는 그것을 보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야, 너 그동안 그런 식으로 돈을 준 거였냐. 갑자기 그가 그동안 삥을 뜯긴 게 진짜 맞나 의심이 될 지경이었다. 왜냐면 그의 분위기가 마치 구걸하는 거지를 보는 사람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사대천왕에는 정상이 없나…? 아, 아니야. 그래도 고찬영은 그나마 정상적인 축에….

“왜 안 죽이지? 나라면 바로 죽일 텐데.”

…아니군. 나는 아주 서슴없이 말하는 살인 예고에 생각을 정정했다. 그렇지, 참. 얘도 미친 들개라거나 싸움광이라는 이상한 별명을 달고 다녔던 애였지. 요즘 들어 헤실거리는 모습만 봤더니 나도 참. 까먹을 게 따로 있었다. 아무튼 역시 이 세계는 이상하다. 폭력이 이렇게 비일비재하다니. 참으로 통탄스러운 일이었다.

“하, 씨발. 내가 그딴 푼돈에 관심 있을 거 같냐고!”

“그럼?”

백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맹한 모습에 나까지 없던 긴장이 다 풀릴 지경이었다. 나는 그냥 그 모습들 팔짱을 끼며 구경하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큰일 따윈 일어나지 않겠…,

“사대천왕 자리를 걸고 나와 승부다! 백설!!”

…미친. 일어났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