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213화 (213/306)

214. 우당탕탕 체육 대회 (9)

“…뭐야, 엄청 수상한데.”

나는 조용히 중얼거리며 그쪽을 주시했다. 행색을 가린 수상한 인간은 주위를 휙휙 보며 얼빠지게 굴고 있었다. 마치 나와 눈이 마주친 게 꽤나 당황스러웠나 보다. 나는 석연찮은 기분에 그를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 이혜인이 질문을 던졌다.

“이나야, 왜 그래?”

“아니, 저기에 웬 수상한 사람이 있어서.”

“수상한 사람?”

이혜인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가 턱 끝으로 지목한 곳을 보았다.

“어, 진짜네? 뭐야, 저 사람.”

“…뭐 있어?”

핸드폰을 꼼지락거리며 만지던 안경희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슬쩍 고개를 빼 우리들이 가리킨 곳을 보았다.

“어, 음…?”

안경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는 입을 모으며 눈살을 살풋 찌푸리더니 어딘가 긴가민가한 얼굴로 수상한 사람을 빤히 보았다.

“아는 사람이야?”

“응…? 아, 아니, 근데 뭔가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이….”

나는 그 말에 눈을 깜빡였다. 저렇게 얼굴을 가렸는데 인상착의가 익숙하다고? 진짜 아는 사람인가 싶었지만 이미 아니라고 하니…. 그렇다면 혹시 유명한 사람인가? 아까 백설이라는 전적이 있던지라 갑자기 호기심을 불쑥 차올랐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정태우…라고 하기엔 저 카메라가 굉장히 거슬리는데.’

정태우란 녀석에게 사진이란 취미가 있던가. 그것도 저런 본격적인 모습으로 말이다. …음. 이럴 땐 역시 안경희의 정보지! 나는 오래 고민할 것도 없이 안경희에게 물었다.

“경희야, 정태우한테 사진 취미가 있던가?”

“음? 정태우면… 사, 사대천왕??”

“정태우? 그 서열 1위??”

“어, 어…. 걔.”

어우…. 이렇게 직접적으로 사대천왕이나 서열 1위란 단어가 귀에 꽂히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안경희와 곁에 있던 이혜인이 놀라며 반문하는 그 모습에 오그라든 손을 티 낼 순 없어 억지로 펴 내었다.

“음…. 나, 나는 그런 정보는 못 들었….”

안경희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을 해 주려던 중, 돌연 그녀의 말을 자르는 음성이 들려왔다.

“안내 말씀 드립니다. 곧 운동장에서 무대가 있을 예정이오니 각 학급의 학생들은 자리로 돌아와 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안내 말씀 드립니다. 곧…,”

“…무대?”

나는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늘 무대가 있던가?’

회의 때만 해도 그런 소식은 못 들었었다. 물론 일정 공지를 받을 때 점심시간이 지나치게 길다는 생각이 들기야 했다만….

‘아니, 그럼 혹시 저게 그 무대 설치를 위한 거였나?’

나는 떨떠름한 시선으로 운동장에 쳐져 있는 천으로 덧댄 가림막을 보았다. 어쩐지 쿵쾅쿵쾅 시끄럽다 싶었다. 이번엔 과연 무슨 엄청난 기획을 펼치려 하길래 저렇게 요란하게 구나 싶었더니 무대 설치하느라 그런 거였구나?

근데 뭘 저렇게 거창하게 하는 거지. 아, 혹시 연예인이라도 오나? 왠지 한도훈이라면 그 정도쯤은 아주 쉬울 것 같았다. 왠지 설레는 마음에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분명 남은 감자튀김을 내가 이 근방에 뒀을 텐데. 손이 큰 한도훈은 음식에도 아끼지 않고 투자한 덕에 치킨, 피자, 햄버거를 배불리 먹은 후였지만 공연을 보며 먹는 건 또 다른 일이었다.

“아, 찬영이한테 빨리 오라고 연락해 봐야…,”

팡-!

워 씨! 깜짝아! 나는 기습적으로 들려 온 소음에 화들짝 놀라며 몸을 튀었다. 하마터면 내 소중한 감자튀김 쏟을 뻔했네! 나는 말하다 말고 놀란 심장을 누르며 소음의 진원지인 운동장을 보았다.

“으엑.”

대체 뭔 짓을 했길래 무슨 먼지가 이렇게? 게다가 아까까지 있던 가림막의 일부도 보이질 않는다. 아무래도 무너진 듯한데…. 사고라도 난 건가? 불안한 마음에 그 자리를 주시하는데, 돌연 조명이 팟, 하고 그 안을 비췄다.

“어?”

그 조명 사이로 나타난 건 한 사람의 인영이었다. 저게 뭔가 싶어 눈을 깜빡이고 있는 사이에 자욱한 먼지가 가라앉고 그 정체가 드러났다. 그리고,

와아아아아아-!!!!!!

온 운동장에 설렘이 가득 찬 비명 소리가 메아리쳤다. 그도 그럴 것이….

“찬영이?!”

그 정체가 바로 고찬영이었기 때문이었다. 또 그의 차림새도 방금과 달랐다. 멋들어진 셔츠와 가터벨트를 착용한 그 모습은 마치 그 무대의 주인공임을 알려 주는 것 같았다.

“쟤가 왜 저기 있어…?!”

흥분으로 가득 찬 운동장 속에서 홀로 당황한 나는 서둘러 이혜인과 안경희를 돌아봤다. 혹시 뭐라도 알까 싶어 보자 그들도 영문 모를 일이었던지 어안이 벙벙해 보였다. 하나 그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안경희가 무언가 짐작이 가는 게 떠오른 모양인지 그녀가 탄성을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아, 요즘 그럼 쉬는 시간마다 안 보였던 건… 저거 준비하느라?”

“아.”

“아.”

그 말에 나와 이혜인이 동시에 대답을 내뱉었다. …설마 우리 몰래 이런 걸 준비하고 있었다니.

“미쳤다, 고찬영. 존나 잘생겼어…!!!!”

“내가 이걸 보기 위해 여기 온 거야….”

“오빠아아아-!!!!”

잠시 벙찌고 있는 사이에 흥분 어린 목소리들이 더 거세졌다. 뭔가 싶어 다시 운동장을 보자 대기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대형 스크린에 잡히고 있었다. 그 모델 같은 자태에 나도 속으로 몰래 감탄하고 있는데 돌연 그의 얼굴이 클로즈업된 화면으로 전환되었다. 원래도 잘생긴 얼굴이긴 했으나 도대체 언제 메이크업이라도 받은 건지 머리며 얼굴이며 한층 더 화려하고 세련되게 변해 있었다. 그 덕분에 뭇 여성들의 마음이 이리저리 격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내 친구지만 새삼 잘났군. 그런 생각을 조용히 하고 있는데 고찬영의 시선이 카메라를 향했다. 그리고 그가 싱긋, 웃었다.

“꺄아아아아아아-!!!!!!!!!!!!!!!!!”

“찬영아아아아악!!!!!!!!!!!!!”

“제발 날 가져어어어-!!!!!!!!!!!!!”

폭발적인 비명이 온 학교에 울려 퍼졌다. 당장이라도 무대로 난입할 것 같은 팬도 속출하기 시작하자 경호원들이 비상을 외치며 그들을 막기 시작했다. 게다가 어떤 팬은 벌써부터 코피까지 터져 이런 난리가 또 없었다. 그 기세가 너무나 커 나도 모르게 위축이 되려던 순간이었다.

딱-.

맑게 튕기는 소리가 소음을 뚫고 울렸다. 그러자 언제 시끄러웠냐는 듯 고요한 침묵이 차차 운동장 안을 감싸기 시작했다. 무대를 재차 확인하니 고찬영이 팔을 살짝 든 채 주먹을 살며시 쥐고 있는 게 보였다. 그 덕에 난 방금 그 소리가 고찬영이 손가락을 튕기면서 낸 소리였음을 깨달았다.

고찬영은 다시 카메라를 주목하더니, 들었던 손을 살짝 내려 검지를 자기 입가에 갖다 대었다.

쉿.

“!!!!!!!!!!!!!!!”

소리 없는 아우성이 운동장을 감쌌다. 당장이라도 사방에서 하트가 쏟아져 나올 것 같은 위세였다.

“…….”

그리고 여기, 홀로 적응 못 한 사람이 한 명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나. 이것저것 따질 부분이야 많다지만, 가장 어이없는 건 이거였다.

‘…아니, 너 일반인 아니냐고.’

뭘 그리 자연스럽게 무대 위에 서서 그런 잔망을 아무렇지도 떨 수 있는 건데.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바로 즉결 심판이 내려질 극악무도한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소화해 낸 녀석의 모습에 나는 새삼 느꼈다. 한때이긴 하나, 저놈이 그 유명한 사대천왕이 맞았노라고.

눈을 흐리며 잠시 한눈을 팔고 있는데, 갑자기 음악의 전주가 시작되었다. 첫 반주는 템포가 느렸으나 리드미컬한 느낌을 주었다. 그에 고찬영은 절제된 동작으로 음악을 유연히 타며 박자에 맞추기 시작했다.

섬세한 듯하면서도 경쾌한 발재간이 박자를 가지고 노는 것만 같았다. 큰 움직임은 없었지만 몸짓 하나하나에 세련됨이 넘쳐흘렀다.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는 것까지 모두 어우러지니, 왠지 그 손짓에 맞춰 나까지 공연에 대한 기대감으로 심장이 두근거려 왔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

그런데 그때 요란한 셔터음이 내 귓가에 파고들었다. 뭔가 싶어 보자 그곳엔 방금 전 보았던 수상한 행색의 인간이 있었다. 어느샌가 근방으로 다가온 그는 열정적으로 무대를 향해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저 수상한 인간의 정체를 이젠 파악할 수 있었다.

‘뭐야, 찬영이 팬이었구나?’

다행히 별거 아니군. 아무래도 같은 남자라서 밝히기 부끄러웠었나 보다. 하긴, 고찬영은 김시원과 달리 남자보단 여자 팬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꺄아…!!!”

내가 풀리는 오해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갑자기 이혜인이 새된 비명을 질렀다. 깜짝 놀라 이혜인을 보자 그녀는 내 시선도 눈치채지 못하고 입가를 가린 채 눈을 부릅뜨며 무대를 보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뿐 아니라 주위의 반응도 어수선했다. 뭔가 엄청난 게 나온 눈치라 서둘러 다시 무대로 눈길을 향했다.

그리고 나는 기함했다.

무대 위에 나타난 건 다름이 아니라…

“이수, 쟤가 왜 저기 있어…?!”

바로 내 동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친, 시원아-!!!”

“재현아!! 악!! 재현아아!!!”

“으아아아!! 도훈이다, 도훈아!! 여기 좀 봐 줘-!!!”

“오빠아아악-!!! 잘생겼어요-!!!!”

게다가 거기에 그치지 않고 음악의 박자에 맞춰 김시원과 이재현, 그리고 어디 짱박혀 있다 나온지 모를 한도훈까지 나타났다. 고찬영의 강렬한 등장에 뒤이은 교내…가 아니라 어쩌면 지역 단위 스타들의 등장에 학교는 완전히 뒤집혔다.

…진심으로 어떤 연예인이 와도 이렇게까지 열광적이진 않을 것 같았다. 나는 고막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아 귀를 막으며 무대를 보았다.

모든 인원이 모인 듯하자 음악의 박자가 빨라졌다. 그리고 이어진 건 그들의 칼군무였다. 자연스레 대형을 만들고 치고 빠지는 게 아주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누가 보면 진짜 아이돌인 줄. 솔직히 말해서 대체 저걸 어느 세월에 준비한 건지 궁금해질 정도로 각 잡힌 무대였다.

“실례합니다.”

“오오…. …예?”

나도 모르게 감탄하며 어느새 주위에 동화돼 무대를 즐기고 있는데, 난데없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남정네 두 명이 내 두 팔을 잡았다. 그리고 번쩍 들어 올려져 어딘가로 이동했…, 이동해?!

“잠깐, 이게 뭐 하는 짓…!”

“한도훈 도련님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뒤늦게 반항을 하며 나는 그 팔들을 뿌리치려 했으나, 그들은 흐트러짐 없이 침착히 대응했다.

‘도훈이의 지시라고?’

나는 그 말에 반항하던 힘은 풀었으나, 어처구니없던 게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게 무슨 개소리냐고 대꾸했지만 그들은 별일 아니라며 얼버무리며 날 대롱대롱 든 채 무대 뒤편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갑자기 의자에 앉히더니 무전기에 ‘목표물 이동 완료.’ 하고 보고를 올렸다.

“자, 잠시만…! 왜 갑자기 여기로 데려온 건지 설명 좀…!”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럼.”

아니, 그니까 뭘…! 야, 이 양반들아. 설명을 하고 가!!

나는 황급히 나를 들어 올리고 가 버린 이들을 붙잡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목적을 완수하고 매정히 떠나 버렸다.

‘불길해, 엄청 불길해!’

아무리 생각해도 불길한 기운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지금이라도 떠나고자 의자에서 일어서려는데, 돌연 앞쪽이 확 열리더니 번쩍, 하고 강한 불빛이 나를 향해 정면으로 뻗어 왔다.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빛에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그 빛을 막았다. 그리고 차츰 돌아온 시야에 슬며시 눈을 뜨는데,

“……??????”

어느샌가 내 주위를 둘러싼 채 색이 다른 보석을 각기 다른 포즈로 내밀고 있는 녀석들이 있었다.

“이런, 미친….”

그러니 내게서 욕설이 속절없이 나오는 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