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 이게 무슨 개판인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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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엑, 켁, 커헉…!”
“아, 더럽게-!!”
아니, 이 망할 놈이?! 내가 물을 뿜어내자 서이수가 질색하며 거리를 벌렸다. 나는 그런 서이수를 노려보고픈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코 안쪽이 지나치게 쓰려 와 그럴 정신이 없었다.
“괜찮아, 친구님?!”
“누나, 괜찮아요???”
아, 젠장. 코에 물 들어갔어! 나는 입을 틀어막으며 거칠게 튀어나오는 사레를 잠재우기 위해 노력하는데 고찬영이 부산을 떨며 내 등을 두드려 주었다. 연이어 이재현의 다정한 안부가 들려왔고, 그들에게 감사의 눈빛을 전하며 김시원이 건네주는 손수건을 받아 얼굴을 정리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바, 방금 뭐라, 크흠, 뭐라고…?”
아직까지도 코가 시큰거리고 잔기침이 계속 튀어나왔지만 억지로 내리눌렀다. 관중석으로 돌아가며 한창 나 몰래 이런 무대를 기획한 녀석들을 향해 툴툴거리고 있던 와중에 이게 뭔 날벼락인가. 도무지 예상할 수 없었던 연이은 상황에 내 어이가 자꾸 탈출을 강행하려고 할 지경이었다.
‘…깔? 최강혁의 깔이라고?’
지금? 지금 이 순간에?! 아니, 그게 누군지 짐작이 안 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타이밍이 너무 갑작스럽지 않은가! 나는 떨리는 동공을 주체하지 못하고 좀 더 정보가 필요함을 느끼고 있는데 다행히 주위에 있던 학생들이 알아서 정보를 정리해 주기 시작했다.
“최강혁 깔???”
“아, 혹시 백장미? 방금 학교에 왔단 소식은 들었는데.”
“하긴. 이전부터 두 사람 사이 수상하다고 소문 있긴 했잖아.”
최강혁의 깔이 백장미란 게 당연시되고 있는 분위기였다.
‘아니, 그건 아니지.’
하지만 나는 그 답에 동조하지 않았다. 명실공히 여자 주인공은 다름 아닌 단 한 명이었고, 이런 행사에서 이런 소문이 날 만한 인물은 역시 그 사람뿐이었다.
“백장미 아니래-! 웬 생뚱맞은 여자애라던데?!”
아니나 다를까, 금세 반론이 들어왔다. 그 말에 흥미가 식으려던 학생들이 먹이를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어? 뭐?!”
“진짜?!”
“그게 누구야?!?!”
새로운 자극에 아이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달려들었다. 마치 학생들은 불륜 스캔들을 목격한 것처럼 급속도로 흥미가 불타올랐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최강혁과 백장미의 사이가 그렇게 기정사실화되어 있었나 뒤늦은 깨달음이 찾아왔다. 아마 이 모든 건 백장미가 하나하나 공들여 쌓아 온 탑이었겠으나… 이 순간 그 공든 탑이 흔들리려 하고 있었다.
“몰라. 아무튼 처음 보는 애였어!”
음? 주연희를 모른다고? 나는 그 말에 의외로이 그 학생을 보았다. 잘 보니 그가 입고 있는 교복은 우리 학교가 아니었다.
‘아하…. 그럼 모를 만하지.’
아무래도 그녀와 같은 학교면 주연희의 얼굴을 모르는 이가 우리 학교에 없을 터였다. 학기 초부터 주연희를 둘러싼 화제도 화제였거니와 그 소문이 퍼지면서 야, 그 왕따 피해자 걔 꽤 예쁘다던데? 예뻐서 여자애들이 질투했다, 라는 둥 별 같잖은 말들이 아이들 사이로 퍼져 갔기에 알게 모르게 그녀는 우리 학교의 유명인이었다.
“근데 예쁘긴 존나 예쁘더라.”
바로 이런 식으로. 남자애의 말에 주변이 흥미롭다는 듯 호응을 보였다. 이런 빌어먹을 외모 지상주의 같으니. 나는 눈을 짜게 식히며 성가신 걸 마주한 기분으로 머리를 헝클였다.
‘연희야, 너 이번엔 대체 무슨 일로 엮인 거야….’
이제 좀 조용해지나 싶더니 다시 소란의 중심에 섰네. 그것도 최강혁의 깔… 아니, 애인… 아무튼 그거로서 말이다. 최강혁이 누군가와 사귄다는 게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아 나는 눈을 살짝 흐리며 잠시 그 단어를 외면했다.
아무튼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이 갑작스러운 흐름을 어떻게 따라가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는데 불쑥 곁에 있던 서이수가 중얼거렸다.
“근데 최강혁 깔인 건 어떻게 안 거야?”
“어, 그러게.”
무슨 증거로 갑자기 저런 결론이 나온 건가. 핵심을 찌르는 그의 의문에 나도 같이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씩 쓸데없는 부분에서 예리한 서이수는 이번엔 좀 쓸 만했다. 내겐 이 소문이 너무 뜬금없긴 해도 대강의 운명을 알고 있던 만큼 그리 이상하지 않았던지라 그 부분에 대해선 생각지 못했다.
“흐음-.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걔가 누구랑 사귀는 게 무슨 상관이야~. 빨리 돌아가기나 하자. 옷 갈아입고 싶어~.”
그런데 초를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그 인물은 고찬영이었다. 이런 쪽으로 흥미가 매우 많을 것 같은 놈이 이렇게 시큰둥하다니. 조금 당황스러워져 눈을 끔뻑이고 있는데 마침 서이수가 던졌던 질문이 대화의 화제로 나오고 있었다. 자연스레 내 귀가 그쪽으로 향하였고, 곧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여자애가 최강혁이 입고 있던 학교 체육복 들고 있던데?”
……?
나는 움직이던 발을 멈추었다. 방금… 뭐라고?
“아, 그럼 깔이지.”
“맞아. 감히 쉽게 만질 수 있는 옷이 아니긴 해.”
게다가 주위의 반응은 더 가관이었다. 나는 경악을 담아 주위를 둘러봤다. 어느새 주변의 모든 학생이 동조를 하고 있었다.
“아, 뭐야. 그런 거였어?”
게다가 믿고 있던 내 동생마저 방금까지 같은 의문을 던졌으면서 납득하고 자빠졌다! 나는 아찔해지는 시야에 두 눈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정말이지 이 세계는 경악과 공포뿐인 지독한 세계란 걸 다시 상기해 내는 순간이었다.
“아, 근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여기서 뭐 얼마나 더 나오려고! 나는 긴장인지 두려움인지 모를 감정에 심장이 다 떨려 왔다. 그리고 폭탄은 순식간에 터졌다.
“최강혁이랑 그 여자애랑 반휘혈이 삼각관계래!”
“뭐, 이 미친….”
휘혈아, 넌 거기서 대체 왜 나오는 건데…?! 막을 새도 없이 욕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번만은 줄곧 감흥 없던 고찬영과 김시원마저도 반응을 보일 정도였다.
“…누가 누구랑?”
“……삼각?”
고찬영과 김시원이 중얼거리다가 흘긋 나를 보았다. …아니, 잠깐만. 왜 거기서 나를 봐? 어처구니가 없어 따지려 들려 할 때 고찬영이 빙긋 미소 지으며 수군거리는 학생들 무리로 향했다.
“애들아, 잠깐 실례~.”
“누구… 헉!”
“미, 미친….”
서슴없이 불쑥 끼어든 고찬영의 등장에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설마 자신들에게 말을 걸 줄 상상도 못 했던 모양인지 그들은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고찬영은 그런 이들 사이에서 대화의 중심이었던 남자아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를 향해 몸을 기울이며 싱긋, 미소 지었다.
“방금 그 얘기, 자세히 좀 해 줄래?”
그러자 이상하리만치 반짝이는 착시가 보이는 건… 기분 탓일지도, 아닐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데 남자애를 상대로 저게 뭐 하는 짓인지, 원. 저런 미인계는 여자애한테나 잘 통하는 거…,
“네에….”
…미인계가 통했다! 남자애가 홀린 듯 말하는 그 모습은 내 편견을 산산이 부숴 버렸다. 아니, 지금 한껏 꾸며 놓긴 했지만 저렇게 정통으로 통할 줄 몰랐지! 역시 사람이 미인에게 약한 건 남녀를 막론한 불변의 이치가 아닌가 심각하게 고민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지나가는 일반인 1과도 같은 남학생에게서 들은 정보는 상상 이상이었다.
다름 아니라 반휘혈과 최강혁이 싸웠… 아니, 현재 진행형으로 싸우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싸움을 멈췄다는 제보가 잇달아 잠시 한시름을 놓긴 했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두 사람이 싸운 이유가 그 여자애, 주연희 때문이라는 점이다.
“대체 왜?!”
앞뒤 맥락을 모르겠네, 이거! 최강혁이랑 주연희가 구설수에 오른 건 그렇다 쳐도, 왜 반휘혈 네가 거기에 껴 있는 건데?!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얼굴을 구기며 의문을 표했다.
그러자 남자애가 자신이 들었다며 내 의문을 해소시켜 주었다.
“그 여자애가 그러던데? 나 때문에 너희들이 다치는 걸 보고 싶지 않다고.”
“??????”
아니, 더 오리무중인데…? 그 자연스러운 여자 주인공 같은 대사는 도대체 어느 맥락에서 튀어나온 건가. 나는 아파 오는 골에 머리를 짚었다.
“이거야, 원…. 뭐가 맞는지 모르겠네.”
그리고 이런 상황을 같이 전해 듣던 고찬영도 수수께끼를 들은 것처럼 골치 아픈 듯 이마를 찌푸렸다. 하지만 그와 상반되게 서이수는 마침 잘됐다는 것처럼 코웃음을 쳤다.
“흥. 알 바냐고. 어차피 이젠 누나랑 상관없…, 아파! 왜 때려!”
“누가 상관없대? 조용히 해.”
“절교당했으면 깔끔히 포기를…, 악-!!!”
저놈의 입, 입, 입! 나는 서이수의 머리통을 가볍게 후려치며 그 입을 다물게 했다. 이재현이 고통으로 주저앉은 동생 놈을 걱정했고, 김시원이 그런 서이수를 한심하게 보았다.
“아무리 둔치여도 그 녀석이 그럴 리 없을 것 같았는데…. 내 감이 틀렸던 건가?”
그럴 때, 고찬영이 입매를 어루만지며 작게 중얼거렸다. 나는 그 말에 서이수를 노려보던 시선을 고찬영에게 돌렸다. 그러자 내 시선을 느낀 고찬영이 나를 돌아봤다. 그러곤 그가 씩 웃었다.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확인하러 가 볼까?”
“어?”
갑작스러운 제안에 멈칫했다. 고찬영은 그런 내 어깨를 붙잡으며 앞으로 억지로 밀어 댔다.
“자, 자. 가자고.”
“자, 잠깐??”
어리둥절해하며 머뭇거렸으나, 고찬영은 내가 생각할 틈도 없이 끌고 가 버렸다. 아, 아니, 안 간다는 게 아니라 이렇게 갑자기 찾아가도 되는 거?! 불현듯 반휘혈이 나를 보며 어떻게 나올지 걱정이 앞섰다.
‘…아냐. 그래도 부딪혀야지.’
그러나 그 걱정은 찰나였다. 아까 대화를 나눠 보기로 결심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지금이 기회일지 모른다. 나는 각오를 다지며 더듬거리던 속도를 제대로 놀리기 시작했다.
“아, 잠깐! 같이 좀 가!”
뒤에서 서이수의 목소리가 들려오며 뒤쫓아 오는 여러 개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곧 우리는 그 소문의 장소에 다다랐다.
“…….”
그리고 나는 기함했다. 소문의 자리에 함께하고 있는 것은 그 세 명뿐만이 아니었다.
“…….”
“…….”
“어, 어…?”
“…….”
상황은 상상 이상으로 더 개판이었다.
“…혁아, 그 여자애는?”
그곳엔 백장미까지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