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220화 (220/306)

221. 이게 무슨 개판인지 (4)

갑자기 웬 시비인데…?! 이 갑작스러운 상황을 못 따라가고 입만 뻐끔거렸다.

반휘혈의 돌발 행동에 같이 놀랐던 고찬영은 눈을 두세 번 깜빡이는가 싶더니 씩, 웃으며 두 손을 들여 보였다.

“워, 워. 진정해. 뭘 그리 화를 내실까-.”

“닥쳐.”

고찬영은 특유의 유들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손바닥을 보이는 게 신경이 날카로워진 짐승을 앞에 둔 조련사를 연상케 했다. 하지만 반휘혈은 얼굴을 풀지 않고 오히려 제 쪽으로 나를 더 당기며 그에게서 나를 가렸, …야, 너 진짜 왜 그래?? 좀체 적응하기 힘든 반휘혈의 당혹스러운 태도에 자꾸만 경악으로 입이 벌어졌다. 그러나 반휘혈은 내 시선을 못 느끼는 건지 아니면 깡그리 무시하는 건지 좀체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어, 언니??”

그리고 드디어 내 존재를 눈치챈 주연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연희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내게 도도도 달려오다가 현재 내 꼴을 마주하곤 멈칫, 몸을 굳혔다.

“어….”

지금 이건 무슨 상황인가요? 하고 주연희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묻고 있다. 그에 대한 내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나도 몰라. 눈을 감은 채 심각히 고개를 저어 보이자 주연희의 얼굴에 떠오른 의문이 더 짙어져 갔다. 그녀는 차마 더 다가오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뒤에 있던 서이수 일행을 발견하곤 반갑다는 듯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빠졌다.

‘연희야…?’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그 행동 덕에 이번엔 내 동공이 심하게 요동쳤다.

“음? 호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순간 전혀 반갑지 않은 소리까지 들려왔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일까-.”

…자, 잠깐. 이러면,

“이건 또 걸작이네.”

이, 이러면…!!

“땅-콩?”

내가 주목을 받게 되잖아…!!!! 나는 절규하고픈 마음에 얼굴을 찡그리며 이마를 붙잡았다. 갑자기 뒤바뀐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니, 그 와중에 최강혁 이 자식….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오…!”

선배라는 아름다운 호칭은 어디다 팔아먹었니. 이 버릇없는 놈아. 반휘혈도 나한테 누나라고 꼬박꼬박 불러 주는데! 게다가 땅콩이 뭐야, 땅콩이. 안 그래도 작은 키인데 더 없어 보이지 않은가. 내가 얼굴을 구기며 항의하자 최강혁이 코웃음을 치며 선심 쓰듯 말했다.

“아, 그래. 땅콩 선배.”

에이씨.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망할 놈아. 너한테 입 아프게 항의해 본 내 잘못이지. 여기서 더 이 문제로 실랑이를 해 봤자 들어 먹질 않고 내 기운만 빠질 것 같아 나는 빠른 체념을 하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하여간 반휘혈보다 못생긴 놈. 인성도 반휘혈에 못 미치는 게 확실했다.

“…왠지 되게 기분 나쁜 생각을 한 거 같은데.”

움찔. 최강혁이 불쑥 중얼거렸다. 그런데 그 내용이 속을 읽어 낸 것처럼 예리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수상한 반응을 해 버리고 말았다.

“하하, 무, 무슨 소린지…?”

“…….”

덕분에 최강혁의 시선이 짙어졌지만 끝내 나는 그 눈을 보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에 최강혁이 눈썹을 씰룩이며 내게 뭐라 따지려 들던 순간이었다.

“너도 꺼져, 최강혁.”

돌연 텁, 하고 내 얼굴이 커다란 손에 의해 덮어졌다. 동시에 잔뜩 낮게 깔린 위협적인 음성까지 들려왔다.

“…허?”

그 돌발적인 행동에 최강혁이 황당해했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황당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휘혈아? 나 지금 이 상황이 너무 이해가 안 가는데 말이지…?”

너 몇 시간 전에 나한테 절교 선언하지 않았니…? 근데 지금 이건 무슨 의민지 도무지 모르겠구나.

하고픈 말이 굉장히 많았지만 우선 이 손부터 치워 내야겠다. 손은 더럽게 커선 진짜 시야가 하나도 안 보였다. 나는 반휘혈의 손을 치우기 위해 그의 손을 붙잡았다.

“?”

그런데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너무 힘을 약하게 줬나 싶어 다시 시도했다.

“?????”

그러나 다시 시도해도 똑같았다. 게다가 힘을 준 만큼 반휘혈이 내 얼굴을 꽉 붙잡아 아프기까지 했다.

“…휘혈아, 나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좀 놔주…지…! 으그극…!!!”

그래도 어떻게든 떼어 내기 위해 힘을 줘 보는데 반휘혈이 버텼다. 덕분에 힘은 힘대로 빠지고 아프기만 한 악순환이 생기는 이상한 상황이 와 버렸다.

“아오! 안 보인다고! 좀 놓으라고-!!”

결국 화가 잔뜩 머리끝까지 치달은 내가 신경질을 내며 버럭 소리 질렀다. 그러나 반휘혈의 대응은 가관이었다.

“흥.”

…흥? 너 지금 흥이랬냐, 어?? 그의 연이은 황당무계한 행동에 헛웃음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아까부터 잔뜩 오해하게 행동을 하면서 지금 이렇게 나한테 박하게 구는 건 대체 뭐지? 나 이거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 거냐고-!!

“…음. 저기 말이지. 내가 아까 친구를 통해서 너희들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었었거든? 근데…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

“그래, 내가 묻고 싶은 게 그거야!”

나이스, 고찬영! 내가 궁금한 걸 정확히 짚어 줘, 나는 보이지 않지만 고개를 적극 끄덕이며 고찬영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네가 뭔 상관이야. 신경 꺼.”

하지만 반휘혈은 여전히 쌀쌀맞았다. 게다가 누군가의 손에 의해 내 엄지까지 억지로 고이 접혀졌다. 차가운 말투와 달리 그 손은 참으로 따뜻하기 그지없었으나…! 내 신경에 가장 거슬린 건 그게 아니었다.

‘…나 또 무시당한 거?’

이번에도 말의 방향이 나를 향하지 않고 있었다. 나, 지금… 무시당하고 있는 거 맞지? 아니, 근데 행동을 보면 또 아닌 것 같고…. 무시를 당하는 것 같으면서 안 당하는 것 같은 이 기분은 대체 뭐지…?

나는 이 괴상망측한 상황에 혼란이 찾아왔다.

“무슨 상관이냐니. 내 친구님이 그렇게 거칠게 다뤄지고 있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잖아?”

반휘혈의 싸늘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고찬영의 목소리는 여전히 능청스럽기 짝이 없었다.

“…내 친구님? 하.”

그러나 반휘혈의 태도도 여전히 바뀔 구석이 없었다. 오히려 고찬영이 부른 호칭을 뜬금없이 짚어 내더니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곤 나를 더 꽉 잡으며 말했다.

“웃기지 마. 네 거 아니니까.”

“?!”

나는 그 말과 행동에 기함했다. 그 안에 담긴 것은 이런 쪽에 둔한 나라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지독한 독점욕이었다. 무슨 의도로 이딴 말을 하는지 모르겠으나…!

“아니, 난 누구의 것도 아니거든…?!”

아까부터 뭔 헛소리를 그렇게 진지하게 하고 있는 거야, 너희들!

“하하, 무슨 소리야. 친구님. 친구님은 내 하나뿐이고 가장 소중한 친구님인걸.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이상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거고… 그렇지?”

“망상에 빠진 것도 적당히 하지. 그런 건 나 혼자면 충분하니까.”

“내 말 무시하지 마-!!!!”

끝내 참다못해 반휘혈의 손을 강하게 뿌리치며 벗어났다. 그리고 이를 악물며 아까부터 이상한 궤변을 늘어놓던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누가 들으면 우리가 삼각관계인 줄 알겠다, 어?!”

정작 누군가와 사귄 적이 한 번도 없는 내가 말이다! 정작 삼각관계로 발전되어야 할 주연들보다 왜 내가 더 주목을 받는 건데?! 무엇보다 이쪽이 관계적으로 훨씬 더 그럴싸해 보여 더 열불이 뻗쳤다.

물론 잘생긴 놈들이 날 둘러싸고 언쟁하는 건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게 그 뜻이 아니란 걸 너무 잘 알아서 그런지 화만 치밀었다. 물론 어린놈들을 상대로 관계를 진전시킬 생각은 요만큼도 없다만, 기분이 그렇다는 거다. 기분이! 게다가 반휘혈 이놈, 이거. 그동안 억제해 왔던 게 터지기라도 했는지 나오는 말들이 하나같이 심상치가 않았다. 누가 들어도 명백하게 의심이 되는 말투에 내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아니었어?”

거봐, 의심하잖아! 아니나 다를까, 누군가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휙, 하고 반사적으로 그쪽을 보자 이 개판을 구경하던 관중들이 내 눈을 피하며 모른 척했다. …왜 내가 이 부끄러움을 모두 감당해야 하는데! 말은 쟤네들 다 했는데…!!

얼굴이 자연히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정작 이 상황을 만든 놈들의 낯짝은 뻔뻔하기 그지없으니 이렇게 억울할 수가. 이를 벅벅 갈며 분을 삭이고 있자, 고찬영의 멋쩍은 웃음이 들려왔다.

“하핫, 미안 미안. 친구님. 말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욱해 버렸네~. 오해하지 마, 얘들아~. 우리 얘랑 안 사귀고 그런 의미도 아니야~.”

그나마 다행히도 내 의중을 파악한 고찬영이 빠르게 상황을 정돈하기 시작했다. 내가 입을 세모꼴로 삐죽이며 못마땅한 듯 그 광경을 지켜보는데… 돌연 반휘혈이 불쑥 입을 열었다.

“누가 그렇다지?”

“……?”

“응?”

반휘혈은 싸늘한 반박에 고찬영이 행동을 멈추었다. 고찬영은 잠시 입을 다물며 반휘혈을 보더니, 차분히 입을 열었다.

“그거, 무슨 의미….”

“안내드립니다. 곧 이벤트 경기가 시작되오니 모든 학생분들은 자리에 앉아 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안내드립니다. 곧 이벤트 경기가 시작되오니 모든 학생분들은 자리에 앉아….”

하지만 그의 말은 맺음을 짓지 못하고 끝나고 말았다. 고찬영은 음향 스피커 쪽을 보다가 다시 반휘혈을 향했다. 검고 짙은 눈이 고요히 바라보길 잠시. 이내 고찬영이 흐음, 하고 나직한 숨을 내뱉고 어깨를 으쓱이더니 반휘혈 쪽으로 성큼 다가왔다. 그러곤 그는 돌연 내 귀를 두 손으로 감싸 막았다.

“…음?”

어, 잠깐. 갑자기 왜 내 귀를…? 이건 또 뭔가 싶어 고찬영을 보았으나 금세 다시 귀가 트였다.

“뭐야?”

“후후, 글쎄-. 뭘까?”

미심쩍게 고찬영을 보자 그가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말 돌리지 말고 제대로….”

“아, 시간이 너무 늦었네~. 그럼 나 옷 갈아입으러 갈게~. 이따 보자, 친구님~.”

그래서 내가 얼굴을 구기며 제대로 설명하라고 말하려 들자 고찬영이 뻔뻔한 미소를 달며 신속히 내 말을 자른 채 사라졌다.

“…뭐야?”

황당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는 반휘혈을 보았다. 그리고 그의 표정에 흠칫 몸을 떨었다.

“…….”

그의 얼굴에서 감정이, 보이질 않는다. 보이는 건 잔뜩 가라앉는 눈동자뿐.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진 채 그 뒷모습을 주시하는 그 모습은 어쩐지 섬뜩하게 느껴졌다.

두근.

그와 동시에 심장이 기이하게, 또 불안하게 요동쳤다.

‘어…?’

방금, …뭐지? 나는 방금 느낀 기묘한 감각에 심장을 어루만졌다. 낯선 그의 모습을 봐서, 놀란 걸까? 그런데 내려다본 손끝이 어쩐지 축축했다.

‘…식은땀.’

언제 흘린 거지. 나는 멍하니 손끝으로 손바닥을 어루만졌다. 자세히 보니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건….’

대체 뭐지. 이해할 수 없는 내 반응에 눈살을 살풋 구겼다. 나는 그것을 잠시 빤히 보다가 이내 주먹을 꽉 쥐며 떨림을 상쇄시켰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계속 고민해 봤자 시간 낭비였다. 그보다 당장은 다른 문제를 파악해야 했다.

“휘혈아, 방금 찬영이가 너한테 무슨 말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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