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222화 (222/306)

223. 이게 무슨 개판인지 (6)

***

“방금은 얼어 죽을…. 그리고 말로 해, 이 자식아!”

이 자식이 갑자기 사춘기가 다시 도졌나. 왜 그간 안 하던 메시지 대화를 다시 하는 건데?! 그러나 반휘혈은 내 성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툭툭, 핸드폰을 두드렸다.

지잉-.

그리고 도착한 하나의 메시지.

[반휘혈(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싫어]

“싫…, 야!!”

나는 문자를 읽다가 발끈 소리쳤다. 하지만 반휘혈을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릴 뿐, 내게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이 새끼를 죽여, 살려?’

이게 방금 결혼하겠다고 한 놈의 태도인가. 정말 의심이 들 정도였다. 나는 부글부글 끓는 속에 두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때 툭, 하고 어이없단 목소리 하나가 끼어들었다.

“…결혼?”

그는 헛웃음을 흘리더니 살풋 고개를 기울였다.

“야, 내가 보기엔 네 일방적인 생각인 것 같다만?”

“같은 게 아니라 맞아.”

최강혁의 말에 내가 단번에 대답했다. 그에 최강혁이 픽, 웃더니 반휘혈을 향해 잔뜩 이죽거렸다.

“성격도 지랄맞더니 망상증까지 도졌나?”

나는 그 말에 얼굴을 굳혔다. 왠지 나도 모르게 욱, 하고 기분이 상했다. 욕먹은 건 반휘혈이었고 틀린 말이 아닌데 왜 기분이 나쁘지? 나는 최강혁의 말에 뭐라도 반박하기 위해 입을 열었으나, 나보다 더 빠른 이가 있었다.

“상관없어.”

“…최강, 어?”

“흠?”

반휘혈은 담담히 말을 이었다.

“현실이 될 테니까.”

“…….”

“…….”

너무 당당한 말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벙찐 얼굴로 그를 보고 있는데 돌연 서이수가 소리쳤다.

“야, 잠깐. 잠깐. 그 중간 단계는 어디다 팔아먹은 건데?!”

서이수는 혼란스러운 머리를 벅벅 흩트리며 버럭 외쳤다.

“그게 중요한가?”

“그럼 중요하지, 안 중요해?!”

“별로.”

벼, 별로?? 나는 눈을 부릅떴다. 그러나 반휘혈은 여전히 태연했다.

“상관없지 않나? 그런 거.”

빠직, 그 말에 혈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 아니겠냐고-!!!”

“장난하냐!!!”

나와 서이수가 버럭 외치자 반휘혈은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 모습은 아주 지독한 독불장군과 같았다.

“야, 누구 멋대로?! 왜 우리 누나랑 네가?!”

“내 마음.”

“야, 잇…!!!”

서이수가 격분한 채 삿대질을 하며 항의했으나 반휘혈은 여전히 태연했다.

“내 의견은??? 내 의견은???!!!!”

“…….”

“야, 반휘혈!!! 왜 내 말은 무시하는 건데!!!”

연이어 나 또한 눈에 쌍심지를 켜며 외쳤으나, 반휘혈은 이번에도 내 말만은 개무시였다. 그에 머리끝까지 화가 나 버린 난 녀석의 멱살을 붙잡으며 성질을 냈다.

“흥.”

“으이이익-!!!!!”

하지만 이번에도 그는 코웃음만 쳐 내 분개를 샀다. 점점 험악해지는 얼굴을 주체하지 못하고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는데, 현재로서 나와 한마음 한뜻인 서이수가 버럭 소리쳤다.

“야! 그럼 프러포즈나 제대로 하든가! 아니, 그 이전에 너 우리 누나 그런 눈으로 안 본다며-!!!”

“그래! 너 나 안 좋아한다며?!”

그래서 내가 얼마나 어? 얼마나 흔들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나는 울컥 치미는 억울함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고 멱살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반휘혈은 그 말에 눈가를 살짝 찌푸리더니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그게 중요한가?”

“뭐…?”

그 말에 내 손이 움찔했다. 하나 이어진 반휘혈의 말은 상상 이상으로 가관이었다.

“꼭 그런 의미로 좋아해야만 결혼하는 건 아니지 않나?”

나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눈과 입을 멍하니 벌렸다. 반휘혈이 그런 날 힐끗 보더니 정말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사랑 따위 없어도 결혼은 할 수 있잖아.”

그 진심 어린 대답에 좌중엔 경악이 휩쓸고 지나갔다. 그것은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빠져 잡고 있던 멱살을 놓쳤다. 하지만 다시 잡을 의욕은 들지 않고 망연히 반휘혈을 보았다.

“휘, 혈아. 너 그게 무슨….”

그것은 가만히 있던 이재현까지 나설 정도였다. 이재현은 얼굴을 한껏 굳힌 채 말을 되물었다.

“아, 아니지? 어…. 그, 그러니까… 그게….”

하지만 들은 게 있어서인지 이재현도 혼란스러워 보였다. 그는 오히려 반휘혈보다 내 눈치를 보며 답지 않게 말을 버벅거릴 정도였다.

“…야, 반휘혈. 너 말 똑바로 해.”

그리고 잠자코 지켜보던 김시원도 반휘혈에게 다가섰다. 그는 굉장히 가라앉은 얼굴로 반휘혈을 또렷이 노려봤다.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어. 지금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서 지껄여.”

김시원은 화를 억지로 억누르는 듯 주먹을 꽉 쥐었다. 잔뜩 불거진 그의 손등이 그가 얼마나 분노하는지 보여 주고 있었다.

“알아.”

반면 반휘혈은 여전히 태연했다.

“…알아?”

김시원의 얼굴이 분노로 점점 일그러졌다. 그의 주먹에 힘줄이 꿈틀거리더니, 순식간에 들어 올려졌다.

“!”

하지만 그 주먹은 반휘혈의 얼굴에 닿지 않았다. 김시원의 날카로운 시선이 내게 곧장 향했다.

“왜, 말리는 거예요.”

짓씹는 듯이 억눌린 분노가 여실히 느껴졌다. 김시원은 당장이라도 반휘혈을 죽이고 싶은 눈빛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고개를 살며시 젓고 그 사이를 비집고 섰다. 김시원은 잠시 버티나 싶더니 이내 혀를 차며 뒤로 물러섰다. 나는 그에게 고맙다는 의미로 살풋 웃어 주곤 다시 반휘혈을 보았다.

“하아….”

그리고 내 입에서 나오는 건 한숨이었다. 나는 피로를 굳이 감추지 않고 뒷목을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너도 참…, 그게 열일곱 살 입에서 나올 말이냐.”

“…….”

반휘혈이 내 말에 입을 삐죽였지만 곧 죽어도 입을 열진 않았다. 그래, 나랑 얘기하기 싫다 이거지. 거참. 시위하는 것도 아니고…. 뭐, 상관없었다. 지금부터 말하는 건 나 혼자면 족하니까. 오히려 입을 열면 더 골치 아파질 것 같았고 말이다.

“그래, 뭐. 결혼이란 게 굳-이 사랑이 필요하지 않긴 하지.”

반휘혈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세상 사람 모두가 사랑해서 결혼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누나?!”

“누나, 그게 무슨…!”

서이수와 이재현이 내 말에 기겁했다. 지척에 있던 김시원도 몸을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지만 나는 그들을 한 손으로 제지하며 말을 이었다.

“근데 휘혈아.”

그리고 나는 그 손을 자연스럽게 들었고,

짝-.

가볍게 그의 뺨을 내려쳤다.

“정신 차리자.”

“!”

나는 차분히 그를 똑바로 보았다. 주위에는 숨을 들이켜는 소리들이 들렸다. 반휘혈은 돌아간 얼굴 그대로 굳어 자신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 좀체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를 향해 코웃음을 흘리며 시큰둥히 설명을 추가했다.

“너 선 세게 넘었다고 말하는 거다. 이 자식아.”

그리고 그 머리를 한 대 콩, 하고 내려찍었다.

“??????”

반휘혈은 그 공격에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물음표 가득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오. 이제야 똑바로 보네.”

아까부터 더럽게 눈도 안 마주치더니. 맞아야 보냐? 나는 질린 얼굴로 그를 보며 툴툴거렸다.

사실 반휘혈의 입장? 그리 이해 못 할 일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내가 그와의 관계를 놓치기 싫었던 것처럼 반휘혈도 그랬던 거겠지. 동생을 그만둔다고 했으니, 나름대로의 방안을 떠올린 게 결혼일지도 몰랐다.

‘…근데 왜 하필 떠올려도 결혼이냐고.’

그만큼 나와의 연결 고리가 간절했나. 그것도 사랑 없는 결혼이라니.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작게 저었다.

“그런 슬픈 말 하지 말자. 우리.”

그것은 그의 가정 환경을 알고 있기에 서글프게 닿아 오는 말이었다.

“……!”

반휘혈의 눈이 커졌다. 그의 입이 꾹 다물리며 눈가가 일그러지더니, 삽시간이 그 얼굴이 붉어졌다.

난 그런 그의 얼굴을 씁쓸히 지켜보다 몸을 돌렸다. 더 있다가는 서로 얼굴 붉힐 일만 생길 것 같았다. 나는 좀 더 차분해지면 그때 다시 얘기해야겠다 생각하며 떠나려는데,

“……?”

몸이 안 움직인다. …마치 누군가가 내 목덜미를 잡아챈 것처럼 말이다.

‘설마.’

나는 혹시나 싶은 가정이 머리를 스쳤다. 에, 에이. 아니겠지. 설마 이 순간에 걔가 내 목을 잡아챌 리 없지.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돌렸다.

“…휘혈아, 손 좀 놓지?”

그리고 역시나. 내 불길한 예상은 빗나가질 않았다. 떨떠름한 시선으로 녀석을 보고 있자 반휘혈은 입꼬리를 삐죽 내린 채 나를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싫어.”

“뭐?”

“싫다고.”

반휘혈은 못마땅한 듯 잔뜩 일그러트리며 내게 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내게 단호히 말했다.

“할 거야. 결혼.”

“…뭣.”

딱딱한 두 음절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나는 잠시 그 말에 아연해졌으나, 이내 뒤늦게 치솟는 분노에 얼굴을 찌푸렸다.

“야, 너 내 말을 귓등으로…!”

“누나는!”

화를 내려던 내 말을 반휘혈이 싹둑 잘랐다. 그리고 척, 하고 어딘가를 겨냥하며 소리쳤다.

“가족한테 약하잖아!”

“엥?”

그가 가리킨 곳은 다름 아닌 서이수였다. 대뜸 지목을 당한 서이수가 얼뜬 소리를 내며 자신을 가리켰다. 나도 황당한 건 매한가지였기에 눈이 휘둥그레진 상태였다.

“그러니까 그 가족! 나도 되겠다는 게 뭐가 잘못된 건데-!”

“뭐, 뭣….”

반휘혈의 강한 기세에 순간 몸이 움찔거렸다. 하나 반휘혈은 둑이 터진 모양인지 우다다 말을 쏟아 냈다.

“누나 동생이 되어도 결국 난 남이란 거잖아, 저 녀석보다 못한 게 보인다고!”

“야, 무슨 말 같지도 않은 개소릴…! 누나가 널 얼마나 편애, 으읍…!”

“이수야, 잠깐. 조용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 말에 서이수가 발끈하며 항의하려 들었으나, 이재현이 그 입을 막으며 뒤로 물러나게 했다. 반휘혈은 그들이 뭐라 하든 말든 하등 신경 쓰지 않은 채 제 말을 이어 갔다.

“뭐든 오해된다고? 그럼 오해돼도 이상하지 않은 관계가 되면 그만이야. 사귀는 거? 상관없어. 그렇지만 누나는 싫을 거 아니야.”

“그, 그렇지만…?”

서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왜 사귀는가. 나도 모르게 떨떠름히 고개를 끄덕이자 반휘혈이 그에 힘입어 당당히 말했다.

“그러니까 결혼하자고.”

“…무슨 논린데?!”

영문을 알 수 없는 막장 같은 말에 내가 버럭 소리쳤다. 하지만 반휘혈은 굴하지 않고 대답했다.

“결혼하면 가족이 되잖아.”

“……?”

“그리고 사랑 없이도 할 수 있는 게 결혼이고.”

이 이상 무슨 이유가 필요하지? 반휘혈의 시선이 그리 말하고 있었다. 그 기적의 논리에 나는 할 말을 잃고 입을 떡 벌렸다. 그러자 내 얼굴을 마주하던 반휘혈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러곤 초조한 듯 눈을 내리깔더니 슬쩍 시선을 올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누나는, 싫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