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224화 (224/306)

225. FAKER (1)

***

서이나와 반휘혈이 사라지고 덩그러니 남겨진 서이수와 친구들은 잠시 그들이 사라진 흔적을 멍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방금, 뭐야?”

특히, 얼결에 제 누나의 프러포즈 현장을 목격하게 된 서이수의 표정이 가장 가관이었다.

“하아….”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김시원이었다. 그는 한 손으로 피로한 얼굴을 쓸었다.

“괜히 끼어들었어….”

피곤하게. 김시원이 짧게 투덜거리자 이재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 그래도 나름 통한 거 아닐까? 휘혈이가 저렇게까지 나오는 거 보면 말이야.”

설마 정말 이 작전이 통할 줄은 몰랐는데. 이재현은 아직도 어색한 세팅된 머리를 어루만졌다.

“? 무슨 소리야?”

하나 한도훈의 내밀한 의도를 혼자만 모르고 있던 서이수만이 그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김시원과 이재현은 잠시 시선을 주고받다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몰라도 돼.”

“음. 그런 게 있어.”

“?? 뭐야? 왜 너희들만 아는 건데! 나도 알려 줘!”

혼자 따돌림을 받는 기분에 서이수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항의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알려 줄 생각이 티끌만큼도 없었다.

“아, 옷이 불편하네. 어서 옷이나 갈아입으러 가자.”

“응.”

그들은 서이수를 외면하며 먼저 자리를 벗어났다.

“야!!”

서이수는 그들을 향해 버럭 외치며 쫓아가려 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을 잡아끄는 한 존재가 있어 발을 멈춰 세웠다.

“어, 너 아직도 있었냐?”

“어? 아, 하하. 뭐, 그, 그러게?”

멀뚱히 자리에 서 있던 주연희가 눈을 크게 깜빡이다가 멋쩍게 웃어 보였다. 서이수는 그런 그녀를 의아한 듯 바라보았다.

“이제 너도 반으로 돌아가. 이벤트 경기 시작한다잖아.”

“아, 그, 그렇지? 가야, 가야지, 응…!”

주연희는 서이수의 말에 당황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하지만 그 발은 좀체 떨어지질 않는지 자꾸만 그 자리를 서성였다. 서이수는 그런 그녀를 잠시 물끄러미 보다가 이내 아, 하고 깨달음의 탄성을 속으로 삼켰다.

‘그런 건가.’

서이수는 지난 몇 주간 주연희의 상황을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그녀가 최강혁이랑 잘못 엮여 2학년 일진 무리에게 지독한 괴롭힘을 당했던 일은 그에게도 꽤 인상적인 일이었다. 설마 뺨 한 대 잘못 때렸다고 그렇게까지 악질적일 줄 누가 상상했을까. 게다가 학교뿐 아니라 가게까지 찾아가 난동까지 부렸다고 했다. 그 트라우마는 꽤 깊은 것일 터였다.

‘반에서 누구 하나 안 도와준 거 같고.’

문득 서이수는 그녀의 처지에 자신을 한번 대입해 보았다. 믿었던 친구가 자신을 괴롭히는 걸 방관한다. 그리고 그 누구도 도와주질 않고, 그 괴로움을 가족에게도 알릴 수 없는 현실을.

“으, 시발. 좆같네.”

“어?!”

“아, 너한테 한 말 아니야.”

서이수는 단번에 얼굴을 찌푸리며 아주 거지 같은 기분에 욕설을 내뱉었다. 그에 주연희가 깜짝 놀라 버려 바로 해명했으나, 그의 얼굴은 여전히 풀릴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다름 아닌 첫 전제부터가 아주 지랄맞았다. 이재현이 자신을 배신하고 괴롭힘을 방관하는 것부터 어불성설이긴 하다만, 그렇다고 생각하니 아주 고역이지 않은가. 서이수는 인상을 확 찌푸리다가 주연희를 다시 보았다. 그러자 그의 눈에 들어온 건 품이 넓은 체육복 너머로도 보이는 가냘픈 몸뚱어리였다.

‘…한 대 치면 부러지게 생겼네.’

다른 남학생이었다면 보호 본능을 자극한다고 두근거려 했을 미소녀였으나, 이미 주변에 널리고 널린 게 미인들뿐인 서이수의 입장에선 감흥이 크지 않았다. 비록 그게 남자 한정이란 게 난센스였지만 그는 딱히 개의치 않았다.

무엇보다 서이수는 저 뼈밖에 없는 몸뚱어리가 굉장히 못마땅했다. 그가 아는 여자들은 대부분이 체육관을 다니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건강한 체육인들이었고, 특히 제 누나는 그 누구보다 튼튼한 근육 덩어리였기에 주연희 같은 몸으로 대체 이 험한 인생사 어떻게 사나 걱정마저 들 정도였다.

‘어쩔 수 없지.’

아직 경기까지 시간 있겠지? 서이수는 핸드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하곤 끝내 결심한 듯 주연희에게 손짓했다.

“야, 너 잠깐 나 좀 따라와 봐.”

“어?”

“잠깐이면 돼. 잠깐이면.”

주연희는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일인가 쪼르르 다가가자 서이수가 몸을 틀어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어… 어디 가는 거야?”

“사람 없는 데.”

“사람 없는 데?”

“어.”

왜? 주연희의 얼굴에 의문이 잔뜩 깃들였다. 어차피 반에 돌아가기 싫었던 처지라 딱히 불만은 없긴 했으나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 그런 주연희에게 서이수가 고개를 살짝 돌리더니, 그의 낯에 심술궂은 미소가 씩 어렸다.

“좋은 거 배우러.”

***

서이수와 주연희가 뜻밖의 친분을 가질 즘,

‘어떡하지….’

서이나의 친구인 안경희는 지금 난처함에 식은땀을 주르륵 흘리고 있었다.

“지금 이거 무슨 상황이야, 경희야?”

서이나는 주변을 주욱 훑으며 영문을 모르겠단 시선으로 안경희를 보았다. 비록 뒤에 커다란 덩치의 후배를 대롱대롱 달고 있는 모양새이긴 하나 안경희의 눈에 비치는 서이나의 위엄이 깎이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저런 거물을 달고서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있는 것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선망과 동경을 더욱 키우는 데 일조할 정도였다.

하나, 그렇기에…

‘마, 말 못 하겠어….’

그녀는 더더욱 더 입을 열지 못했다.

다름이 아니라 이 현장은 그녀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

지금으로부터 약 10분 전.

“아, 얘가 그 재수 없는 년 친구야?”

“야, 야. 쫄았냐, 어? 킥킥.”

“으우으….”

남자와 여자 여럿에게 홀로 둘러싸인 채 안경희가 울상을 짓고 있었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건가. 안경희는 몸을 벽에 딱 붙은 채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분명 자신은 경기 시작 전 쉬는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급히 화장실을 다녀오려던 참이었다. 최애의 새로운 사진과 영상을 잔뜩 득템했다는 마음에 한껏 들뜬 채로 반으로 돌아가던 중,

‘아, 여기 있었네?’

‘한참 찾았잖아~.’

‘어? 어어??’

돌연 두 사람이 자신을 친한 척 붙잡더니 반항할 새도 없이 어딘가로 속수무책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학교의 후미진 뒤편이었다. 안경희는 도착하고서 무리 진 음산한 풍경에 본능적으로 망했음을 느꼈다.

“하, 시발. 내가 어이가 없어서. 내가 시발, 그딴 년 때문에 이 꼴을 당해야겠냐고. 야, 보여? 이 얼굴 보이냐고.”

“풋, 존나 호빵 같아.”

“닥쳐, 시발 놈아.”

그중, 한 여자가 잔뜩 부은 얼굴을 안경희에게 들이밀었다. 그녀는 굉장히 화가 났는지 제 얼굴을 가리키며 성질을 냈다. 그러곤 안경희의 이마를 콕콕 찔러 댔다.

“야, 네가 왜 여기 왔는지 이제 알겠냐?”

“모, 모르는데….”

여자의 위협에 안경희가 어깨를 움츠러들며 소심하게 대꾸했다.

“모른다고? 하, 시발. 끼리끼리 노네. 진짜.”

사실 알고 있었다. 어떻게 잊겠는가. 자신의 우상을 욕하다가 반휘혈과 사이트 회원에게 얻어터진 인간을. 또 그들은 모르겠지만 안경희는 눈앞에 있는 이들의 신상까지 족족 꿰고 있었다.

‘분명 약채고등학교 3학년의….’

몇 개월 전, 노래방에서 시비를 건 이들이 한도훈에 의해 숙청을 당하고 난 이후 교체된 새로운 무리들이었다. 설마 또 약채고등학교라니. 원래 질이 안 좋은 학교란 건 알고 있었지만 남의 학교에서 이런 시비를 걸 줄이야. 잠깐 틈이 나 미리 조사해 두길 잘했다. 학교 안이라 잠시 내버려 두긴 했지만, 이 학교를 벗어나는 순간 그들에게 다가올 미래는 꽤나 암운이 드리워진 것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안경희는 잠시나마 지켜보기로 하였던 건데….

‘…연락하면 와 주려나.’

안경희는 비상 연락처에 등록된 이를 떠올렸다.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자리 잡아 있던 번호가 이렇게 쓰일 줄이야. 안경희가 힐끗 그들을 흘겨보곤 핸드폰 비상 버튼을 빠르게 연타하던 순간…

“야, 잠깐. 너 뒤에 뭐야.”

“엇…!!”

빠르게 가로채였다. 안경희의 눈동자가 당황스러움에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여자는 픽, 웃더니 핸드폰을 흔들었다.

“누구한테 연락하려고? 안 됐네?”

그리고 휙, 하고 뒤에 있던 일행에게 핸드폰을 던졌다. 안경희는 그쪽을 향해 손을 뻗었으나, 닿을 리가 만무했다.

‘망했다.’

허망히 빼앗긴 핸드폰을 보며 그녀의 안색이 핼쑥해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최악이었다. 비상 연락을 사용하기도 전에 핸드폰을 빼앗겼다. 어, 어떻게 하면 좋지…?!

“아, 다시 생각해도 진짜 재수 없네. 내가 왜 반휘혈한테 그딴 꼴을 당해야 돼! 아, 짜증 나!!”

“반휘혈한테 차였죠? 그렇죠? 미친, 졸라 웃겨. 킥킥.”

그러든 말든 눈앞에 있는 일진들은 안경희를 두고 저들끼리 시시덕거렸다.

‘어, 어쩌지.’

예전에 한도훈이 등록해 준 비상 연락망을 사용하기도 전에 당하게 생겼다. 이럴 줄 알았다면 잡혔을 때부터 누를걸.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해선지 아무 조치도 하지 않고 와 버린 셈이었다.

“풋, 야, 네 면상으로 퍽이나 먹히겠냐?”

“아, 닥쳐! 그 계집앤 내 발끝에도 못 미쳤다고, 시발!!”

“네네, 패배자의 소리죠? 푸훗.”

“아, 닥치라고-!!!”

여자는 신경질적으로 일행에게 대꾸하더니, 안경희를 홱 하니 노려봤다.

“야, 다른 거 필요 없고. 너 나한테 좀 뒤지게 맞자.”

“?????”

왜 그렇게 되는가. 불똥이 완전히 이상하게 튀었다. 안경희는 떨리는 동공을 느끼며 벽에 더 바짝 붙어 섰다.

‘지, 진짜 어쩌지?!’

싸움 같은 거 하나도 못 하는데. 안경희는 울상을 지으며 다가오는 위협에 벌벌 떨었다.

“야, 나 얼굴 안 나오게 잘 찍어라.”

“어, 알았다고~.”

게다가 저 뒤에 있는 핸드폰의 카메라. 굉장히 불안했다. 저것은 녹화인가, …아니면 실황인가. 카메라의 렌즈를 힐끗 바라보는 그녀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아, 아니다.”

그런데 팔을 걷어붙이며 성큼 다가오던 여자가 불쑥 중얼거렸다.

“야, 커터 칼 있는 사람?”

“?!”

안경희는 그 말에 오싹함을 느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단 눈으로 여자를 보았다.

“나.”

“오, 잘됐네. 흠~. 그냥 때리는 건 재미없지.”

히죽, 볼이 퉁퉁 부은 여학생이 입가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건네받은 커터 칼에서 드르륵, 하고 위협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이왕 찍을 거 더 재밌게 가 보자고.”

툭, 하고 안경희의 쇄골 부근에 칼이 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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