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226화 (226/306)

227. FAKER (3)

***

퍽-!! 짧고도 둔탁한 충격이 뒤를 습격했다. 나는 갑작스러운 타격에 몸을 휘청이다 뒤를 돌았다.

“…무슨 짓이야?!”

“흐익…. 미, 미안.”

아차. 당황해서 나도 모르게 소리 지르고 말았다. 나는 굳은 얼굴을 황급히 풀었다. 그러나 안경희의 울상은 풀릴 기미가 없었다.

“하, 하지만 그래도 안 돼애….”

그러면서도 여전히 나를 말렸지만. 나는 그 모습에 이해할 수 없단 시선으로 그녀를 보았다.

“왜?”

왜 안 되는 건데? 누가 보아도 이들은 안경희를 괴롭히고 있던 중이었다. 나는 그녀의 친구였고, 친구인 내가 어째서 이 상황을 방관해야만 하는 건가. 도무지 납득이 가질 않는 상황에 내 미간이 좁혀지자 안경희는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트리더니 내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그, 그렇지만 난 네, 네 손을 더럽히고 싶지 않아…. 너, 넌 여자 안 때리잖아. 그리고 겨우 이런 일로 정체를 드러내게 하고 싶지 않단 말이야….”

나는 그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예상치 못한 말에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그리고 점점 내 얼굴이 험악하게 가라앉았다.

“너, 지금 그게 중요한…!”

“그러니까!”

무어라 말하려던 순간, 안경희가 고개를 퍼뜩 들며 외쳤다.

“내, 내가 할게…!!”

“뭐?”

“내가… 해결할게!”

나는 그 말에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무슨 수로? 망연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안경희도 도도도 무리 속으로 가더니, 휙 하고 무언가를 가져왔다.

“?”

그것은 핸드폰이었다. 왜 저걸…? 왜 남의 핸드폰을 가져가는 걸까. 곰곰이 그 연유를 떠올리다가 뒤늦게 그 핸드폰의 생김새가 익숙하단 걸 떠올렸다.

“어? 경희 핸드폰이 왜 쟤들한테… 혹시 빼앗겼었어?!”

“어? 어어? 벼, 별거 아니야~.”

“별거 아니긴, 무슨!”

퍼뜩 드는 가정에 얼굴을 굳히며 묻자 안경희가 삐질삐질 웃으며 내 눈을 피해 버렸다. 덕분에 상황이 생각보다 더 심각했음을 깨닫고 다시 속이 부글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폭발할 것 같은 분노에 잠식된 이성이 툭, 끊기려 하고 있었다.

“내 이것들을 진짜…!!!”

“아, 안 돼!”

성큼성큼 다시 그들에게 다가서려 하자, 안경희가 내 팔을 붙잡았다.

“경희야, 잠깐 좀 놔 봐. 어? 그럼 한 대만. 한 대만 때릴게.”

“한 대가 그냥 한 대가 아니잖아…!”

안경희는 그 몸이 질질 끌리면서도 내 팔을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그 강경한 그 손길은 혹여 잘못 뿌리치게 되었을 땐 다칠까 염려가 돼 매몰차게 뿌리칠 수도 없어 난처히 인상을 찌푸렸다.

“해, 핸드폰 있으니까 괜찮아! 그, 금방 도와줄 사람 올 거야!”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될지 망설이고 있는데 안경희는 기회다 싶었는지 제 핸드폰을 번쩍 들어 보이며 나를 설득했다.

“도와줄 사람?”

“으, 응! 굉장한 사람들이야! 방금 불렀어! 그, 그러니까 걱정 마!”

굉장한 사람? 그게 누군….

“네, 네-. 학생 여러분. 거기까지-.”

한창 안경희의 말에 아리송해 있을 때, 짝- 하는 경쾌한 박수 소리와 함께 낯선 목소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갑작스러운 불청객에 놀라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정장과 선글라스, 그리고 무전기 이어폰을 착용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경호원?”

남자는 한도훈이 배치한 경호원이었다. 그는 서글서글한 미소를 달며 이쪽으로 성큼 다가왔다.

“자, 자. 어서 각자 반으로 돌아가세요. 아, 특히, 거기.”

“예? 저요?”

갑자기 경호원에게 지목당했다. 나는 멀뚱히 스스로를 가리켜 보이자 그는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훌쩍 다가왔다.

“시합 잘 봤어요. 활약이 아주 멋지던데요?”

“예? 아, 예. 가, 감사합….”

어. 날 아나? 갑작스러운 칭찬에 나는 멍청히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를 표하는데,

“이왕 만난 거 사인 좀 해 줄래요?”

“…예?”

경호원이 생뚱맞은 소리를 했다. 그 말에 당황한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경호원이 씩 웃으며 내게 거리를 벌렸다.

“후후, 농담이에요.”

뭐, 뭐지. 이 마이페이스는.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장난으로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게 굉장히 당혹스러웠다.

“뭐, 그건 그렇고~!”

그러든 말든 경호원은 유들거리는 미소를 단 채 상큼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거기 불량 학생들. 네, 거기~. 튀려고 하는 너도요. 어허. 제자리 스탑.”

아차. 나는 경호원의 말에 황급히 정신을 차리며 양아치 무리를 보았다. 양아치들은 경호원의 말대로 슬금슬금 도망치려던 기색이었다.

“이 새끼들이 감히 어딜 튀려고…!”

“네, 네. 진정하시고요. 정의감에 불타는 그 모습. 아주 바람직하고 멋지지만, 지금 해야 할 일은 따로 있지 않을까요?”

“…예?”

나는 그 말에 양아치들에게 다가가려던 몸을 멈추고 경호원을 보았다. 남자는 내게 싱긋, 웃더니 휙, 하고 손가락으로 건물 뒤편을 가리켰다.

“경기 곧 시작할 것 같던데요? 학생은 학생답게 축제를 즐겨야죠. 이런 일은 어른인 저에게 맡기시길.”

“엇….”

방금까지 가볍게만 느껴지던 남자의 모습이 조금 다르게 와닿았다. 순식간에 듬직한 어른이 옆에 선 듯한 기분에 나도 모르게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경호원이 내 시선을 느꼈는지 내 쪽을 다시 흘긋 보더니, 방긋, 크게 웃었다.

“좀 멋있었나요?”

“?”

“그럼 사인 하나 해 줄래요?”

“?????”

아니, 얘기가 왜 그렇게 되는 건데. 그리고 보통은 그 반대 아닌가…?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 남자의 사차원적인 발언에 내 얼굴이 점점 기괴하게 구겨져 갔다. 그런데 남자가 문득 시선을 돌리더니, 난처한 듯 미소를 그렸다.

“어이쿠, 알았어요. 그만할게요.”

어라, 왜 저러지. 갑자기 발을 빼는 모습이었지만 그 행동조차도 장난기가 다분했다. 뭔가 싶어 미심쩍게 보자 남자는 싱글벙글 웃으며 능청스레 어깨를 으쓱였다.

“무서워라~. 이야-. 남친 시선이 참 살벌하네요.”

“예? 남친???”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하지만 뒤이어진 그의 말은 내 머릿속을 한층 더 꼬아 놨다.

“아, 남친이 아니라 약혼자라 했던가요?”

“예????”

“야, 약혼???”

“약혼자?????”

남자가 대뜸 던진 말에 반응한 건 나뿐이 아니었다. 안경희와 고찬영도 갑작스러운 단어에 굉장히 당황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아니, 웬 약혼자?! 나한테 약혼자가…, 어?

“설마….”

나는 떨리는 시선으로 경호원이 보고 있는 곳을 보았다. 그리고 그곳엔 당당히 팔짱을 낀 채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반휘혈이 있었다. 덕분에 난 남자가 한 오해를 깨닫곤 아찔한 시야를 감으며 버럭 소리쳤다.

“…쟤, 제 약혼자 아니에요!!!”

“아니, 맞아.”

“아니, 넌 내 의견 무시하지 말라니까?!”

“흥.”

저, 저놈의 자식이?! 나는 내 말을 콧방귀 하나로 날려 버리는 작태에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그런 내 어깨를 누군가 텁, 짚었다.

“…친구님. 진짜 나 없는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야?”

고찬영의 얼굴은 흔치 않게 꽤 당황한 낯이었다. 그는 도무지 그 잠깐 사이에 일어난 일의 갈피를 잘 모르겠던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시선으로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그게…, 잠깐. 따지고 보면 이거 네 탓도 있는 거 아냐?!”

“응?”

고찬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내 손은 가감 없이 고찬영의 멱살을 잡아끌어 녀석의 귀를 내 입가에 가져다 대며 빠르게 속삭였다.

“너 아까 휘혈이한테 대체 뭔 말을 한 거야?? 어???”

반휘혈의 상태가 이전부터 이상하긴 했다만, 고찬영이 반휘혈에게 무슨 말을 한 이후로 더 폭주하는 것 같았다. 상황의 전후도 고찬영과 대화한 이후에 결혼이니 뭐니 했으니 우연일지 몰라도 굉장히 의심스럽지 않은가! 내가 눈을 부라리며 어서 설명하라고 독촉하자 고찬영은 무언가 납득한 기색으로 탄성을 내뱉었다.

“…아하?”

“아하는 무슨 얼어 죽을 놈의 아하야! 그러니까 대체 뭔…, 으극!”

고찬영의 멱살을 잡고 항의하려고 들자 돌연 내 목덜미가 잡혔다. 그리고 번쩍 들려진 내 몸은 순식간에 누군가의 품 안에 있었다.

“붙지 마.”

“?!”

“…오호-.”

어리벙벙하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을 때, 고찬영이 의미심장한 소리를 내뱉으며 히죽, 웃었다.

“그렇군. 그렇게 된 거구나-.”

고찬영은 무언가 알아차린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반휘혈을 향해 의외란 듯 말했다.

“너 보기와 달리 되게 옆도 뒤도 없구나?”

그 말대로였다. 반휘혈은 차가워 보이고 이성적인 외형과 달리 굉장한 다혈질에 다분히 충동적인 놈이었다. 치밀하고 냉정한 한도훈과는 전혀 상반되는 타입이었다. 그 덕분에 지금도 내 심장은 남아나지 않지만! 내가 심장 마비 걸리면 다 반휘혈 때문이다. 나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그 품에서 재빨리 벗어났다.

“아무튼! 난 얘랑 결혼 안 해! 안 할 거라고!”

나는 그 말을 하곤 뒤도 안 돌아보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방금까지 느꼈던 분노는 경호원이 등장하면서부터 거의 사그라들었다. 저 양아치들은 경호원이 알아서 처리해 주겠지. 무엇보다 안경희가 사람을 불렀다고….

“음?”

잠깐. 안경희가 부른 사람은 대체 누구지?

나는 불현듯 이상함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휘혈아.”

꽉, 하고 내 손을 강하게 잡고 있는 반휘혈로 인해 내 정신은 다시 반휘혈에게로 돌아가고 말았다. 떨떠름히 그를 보고 있자, 반휘혈은 나를 부루퉁한 시선으로 내려다보며 단호히 말했다.

“난 할 거야.”

하여간 반휘혈 이 녀석은… 지독한 애새끼였다.

***

“후후, 역시 재밌는 사람이네요~.”

“…….”

서이나와 반휘혈이 떠나는 뒷모습은 보며 경호원이 낮게 웃음을 흘렸다. 안경희는 그런 그를 떨떠름한 시선으로 보다가 힐긋, 옆에 선 이를 보였다.

“저기, 찬영이 너는… 안 가?”

“음? 아아.”

고찬영은 자신을 부르는 말에 두 사람이 사라진 곳을 조용히 지켜보던 시선을 돌렸다. 그는 멀뚱히 눈을 몇 번 깜빡이다 빙긋, 웃었다.

“당연히 가야지~. 나도 이벤트 경기 궁금한걸?”

“그런데 왜….”

아직도 여기 있어? 안경희의 소리 없는 물음이 눈동자에 담겼다. 고찬영은 방글방글 웃으며 시선을 들어 올렸다.

“그야~,”

그러곤 전방을 주시하는 그의 시선이 한순간 날카로워졌다.

“수상한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어떻게 널 두고 가?”

“엇.”

“음?”

그 말에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소린지?”

“이봐. 연기는 그만하지?”

고찬영이 슥, 하고 남자의 머리부터 발끝을 쫙 훑었다. 이 남자, 아까부터 수상한 게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위에 있는 놈들도 슬슬 나오는 게 어때?”

아까부터 신경에 거슬리는 기척도 포함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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