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227화 (227/306)

228. FAKER (4)

“오?”

그 말에 선글라스를 쓴 남자가 의외라는 듯 입을 모았다. 역시나. 고찬영의 시선이 의심에서 확신으로 변하였다.

“저, 저게 무슨 소리야?”

하지만 그 기어드는 소리는 뒤에 있던 무리들에게 닿지 않았다. 양아치 한 명이 고찬영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지금 주위에 자신들밖에 없는데 누가 또 있단 말인가. 그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주위를 힐끗거렸다.

“몰라, 시발…. 야, 근데 지금이 기회 아냐? 반휘혈도, 그 이상한 여자도 없잖아.”

“아, 그러네?”

수군수군. 두 사람이 사라지자 기회란 것처럼 양아치들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정작 그 소리는 선글라스를 낀 남자와 고찬영에게도 다 들려왔고, 고찬영에 의해 멀찍이 거리를 벌어졌던 안경희에게도 다 들릴 정도로 컸다.

“하…! 어차피 어른 남자 한 명이랑 고찬영 한 명이 무슨 대수라… 어, 뭐야?”

안경희를 위협했던 여자애가 코웃음을 치려던 순간, 불현듯 찾아온 거대한 그림자가 느껴졌다. 그래서 뒤를 돈 순간,

“히이익…!!!”

커다란 거구에 기함했다.

“당신이군요. 저희 조… 아니, 훌륭한 선수를 욕하신 분이.”

“누, 누구세요?!”

“알 거 없습니다.”

높다랗게 묶은 머리와 살짝 둥근 몸의 곡선으로 보아 여성으로 추정되는 이가 담담히 입을 열었다. 개선장군 같은 그 듬직한 자태에 기가 질려 버린 여자가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손님은 그자뿐이 아니었다.

깡-깡-.

“와- 우리 장님이 왜 급히 호출했나, 싶었더니…. 반가운 얼굴에 있네?”

“그러게.”

그러자 이번엔 다른 곳에서 음산한 쇳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남학생 두 명이 있었다. 한 명은 캡 모자와 야구 배트를 들었고, 다른 이는 검은 마스크만 쓰고 있었다. 하지만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음에도 그 앳된 티는 사라지지 않아 나이가 어림을 짐작할 수 있었다.

“너, 너희들은 또 뭔데?!”

“알 거 없고.”

척, 그중에 캡 모자를 쓴 남학생이 야구 배트를 척 들어 올려 여자를 가리켰다.

“우리, 저어-기 가서 오순도순 얘기나 좀 할까?”

씩, 하고 캡 아래로 드러난 얼굴이 스산하게 미소 지었다.

“시, 시발. 갑자기 나타나서 뭔 개지랄이야?!”

여자가 버럭 성질을 냈다. 하지만 나타난 이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들을 주시했다. 그 박력에 압도된 여자는 비상구처럼 경호원을 돌아봤다.

“아, 아저씨! 여기 웬 깡패가 있다고요! 좀 말려 봐요-!!”

경호원이면 이 상황을 어떻게든 수습해 줄 거라 믿은 여자는 상황이 바뀐 것처럼 그를 의지했다.

“…아저씨?”

그러자 아저씨로 불린 선글라스남이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그러곤 머리를 긁적이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왜요?”

“예? 왜, 왜긴… 그야, 경호원이잖아요!”

“나 경호원 아닌데요?”

“예…?”

그 여상한 대답에 한순간에 양아치들의 얼굴이 벙찐 표정이 되었다.

“이상하네~. 난 단, 한 번도 내 입으로 경호원이라고 한 적이 없는데~. 아, 물론 그거랑 비슷한 일은 하지만요.”

“그, 그게 무슨…. 그, 그럼! 그 귀에 단 그건 뭔데?!”

“음? 아, 이거?”

여자가 당황해서 남자가 귀에 꽂은 무전기 이어폰을 지적하자 남자는 자신의 귀를 가리키며 능청스레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장식이에요. 장식. 신경 쓰지 마세요.”

“?!”

누가 장식을 그딴 걸로 껴?! 양아치들은 다 같이 기함했으나 너무 황당해 다들 하나같이 입이 막히고 말았다. 그런 그들을 향해 남자는 뻔뻔한 말을 이어 갔다.

“아, 어른은 맞으니까 의심은 거둬 줘요. 학생 말대로 아저씨…라고 불리기엔 좀 젊다 생각하지만, 나이 생각하면 맞긴 하니깐.”

선글라스남은 묘하게 투덜거리는 어투로 대답했지만 점점 사태를 파악하기 시작한 여자의 표정은 점점 파리하게 변했다.

“그, 그럼… 당신들은 누구….”

도대체 이 사람들은… 누구야? 알 수 없는 정체에 양아치들은 술렁이며 혼란스러워했다. 그때,

“아쵸옷-!!!!”

“꺄악-!!!!!”

가벼운 날아차기가 여자에게 직격했다. 여자는 기습적인 공격에 바닥을 나뒹굴었다. 오늘만 해서 벌써 두 번째였다. 그녀는 당황스러움과 분노와 수치로 벌게진 얼굴이 되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든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너, 너, 너는…!!!”

그곳엔 긴 붉은 머리. 그리고 앞머리를 모아 하나로 묶은 한 소녀, 즉 아까 자신을 죽어라 팼던 여자애가 그곳에 서 있었다.

“하, 또 너임까? 아주 질리지도 않네! 이번에야말로 정의의 쓴맛을 보여 주겠슴다.”

뚜둑, 붉은 머리의 소녀, 백사과가 살벌하게 목과 손을 꺾으며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그 살기 넘치는 시선에 여자는 기가 질려 신음을 삼켰다.

“자, 그럼-.”

그때,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해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리끼리 돈독히 얘기 좀 나눠 볼까요?”

짝-. 그와 함께 내려친 박수는 그들에게 사형 선고와 같았다.

***

안경희는 사라지는 이들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래서 학교 밖에서 해결하려고 한 거였는데….’

다들 튀어도 너무 튀는 사람들이었다. 되도록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움직이고 싶었는데 상황이 여의치가 않았다. 무엇보다…. 특히, 문제가 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설마 사이트장님이 당신일 줄이야.’

‘…….’

‘조커님과 가장 가까운 친구인 당신이 설마 그분일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네요. 어떻게 내 눈을 피한 건지 정말 감탄이 나오는데.’

그것은 선글라스남이 떠나기 전에 저와 나눴던 말이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건 이런 거겠죠?’

‘…나라님.’

‘역시 제 별명도 아네요?’

‘…….’

모를 리가. FAKER 회원 중, 가장 요주의 인물 중 하나인데. 그는 바로 ‘조커사랑나라사랑’이란 닉네임을 단 이였으나, 자신의 사이트 회원 중 가장 의미 불명의 존재였다. 확인한 바론 굉장히 평범한 이였으나… 기묘하게 석연치 않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딱히 사이트 안에서도 밖에서도 피해를 준 적이 없었기에 별다른 간섭을 하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너무 열성적으로 덕질을 해서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동안 아무 말 않고 넘어갔으나, 역시 직접 보니 위험한 인간이란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특히, 그가 남기고 간 마지막 말은 더더욱 석연치 않았다.

‘아, 진짜 이러면 곤란한데. 탐나는 인재가 너무 많은데~.’

…뭐가요? 안경희는 튀어나올 것 같은 말을 목 끝까지 꾹 눌러 참았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그의 말에 반응하게 되면 자승자박을 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방금 나타난 이들은 모두 FAKER의 회원이다. 그들을 부른 건 다름 아닌 FAKER의 사이트장인 안경희였고. 왜 안경희는 굳이 한도훈이 아닌 그들을 불렀는가. 그 이유는 단순했다.

바로 서이나가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친구인 서이나가 왔다는 건 바로 그녀를 덕질하는 FAKER의 회원들이 근처에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 되며 바쁜 한도훈보다 더 빨리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서이나를 바로 막아 줄 방패가 되어 줄 사람이기도 했다. 서이나가 혹여 분노에 이성을 잃고 날뛰어 정체를 들켜도 괜찮은 인물들이라면 그들밖에 없었기에 선정된 인원이었다.

‘그래도 역시 조합이 너무 눈에 띄어.’

안경희는 사라진 그들을 보며 땀을 삐질거렸다. 부디 되도록 누구에게도 들키질 않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방금 그 사람들은…?”

그리고 이번엔 새로운 시련이 안경희에게 찾아오려고 하고 있었다. 안경희는 자신을 집요하게 보는 고찬영의 시선을 슬쩍 피하며 입을 꾹 다물었다. 말을 하고 싶지 않다는 분위기를 팍팍 풍기는 안경희의 태도에 고찬영은 눈을 슬며시 가늘게 떴다가 크게 중얼거렸다.

“흐음. 친구님은 굉장한 친구를 사귀고 있던 건가-?”

“그, 그렇게 굉장하진….”

안경희가 몸을 크게 움찔거리며 말을 부정했다. 고찬영은, 흐음, 하고 한 번 더 숨을 낮게 쉬더니 시선을 낮춰 안경희에게 물었다.

“아니긴? 딱 보니 꽤 굉장한 사람 같은데. 방금 그 사람들, 네가 부른 거지?”

“그, 그건….”

“후후, 역시. 아까 거기에 백설 동생도 있었지? 흐음-. 역시 친구님이랑 관련된 건가-? 어쩐지 그 남자, 완전 수상하더라니.”

고찬영은 눈을 가늘게 뜨며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사라진 방향을 보았다. 선입견일지 모르나 왠지 모르게 경호원치곤 지나치게 껄렁하다 싶었다. 물론 그 분위기 자체가 평범한 사람치고 너무 위험해서 경호원이 아닐 거라 의심은 했지만 말이다.

뭐, 그건 그렇고. 그럼 기묘한 조합의 인원을 총칭하는 말은 뭘까. 고찬영은 그들이 사라진 방향을 보았다가 안경희를 물끄러미 보았다. 고찬영이 알기로 안경희는 소심하지만 아는 게 많은 아이였다. 그리고… 친구님을 굉장히 좋아했다. 마치 제가 아는 누구처럼. 그렇다면….

“혹시 친구님의 팬클럽? 뭐, 그런 건가?”

고찬영이 불쑥 떠오른 답을 중얼거렸다.

“히익…. 어, 어떻게…?”

그러자 안경희가 곧장 반응을 보였다. 떨리는 동공이 그 답을 여실히 알려 주고 있었다. 고찬영은 역시나, 싶은 생각에 싱긋,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 친구님에겐 비밀로 해 줄게. 아, 이거 비밀 맞지?”

“어? 어, 음…. 팬이 있다고 전에 내가 얘기는 해 주긴 했는데… 정확히는 잘 모를 거야.”

딱히 알려 줄 만한 곳도 아니긴 했다. 사이트에서 일어나는 광경을 본다면 그녀가 무슨 반응을 보일지 벌써부터 눈앞이 캄캄해졌다. 무엇보다 그들과 안경희 자신이 그리 다른 인간도 아니라서 왠지 치부를 보이는 것 같아 낯부끄럽기 때문에 되도록 알려 주는 걸 삼가고 있었다. 이전에 서이나와 처음 대화한다는 긴장감과 두근거림에 그만 팬이 더 있다는 말실수를 했던지라 그 이후, 괜한 말을 꺼냈다고 후회했기에 더 그랬다. 물론 자신의 우상이 원한다면 당연히 알려 주겠지만…! 그것은 아직 제가 감당하기 힘든 문제였다.

“아, 그런데. 저, 저기…! 방금, 비상식량! 비상식량 그건 대체 무슨 말이야…?”

“응?”

안경희는 이 주제를 더 이상 거론하고 싶지 않아 황급히 말을 돌렸다. 그에 고찬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아, 하고 무언가 생각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그 말 그대로인데?”

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빙긋 지었다. 하지만 그것을 듣는 안경희의 표정은 기묘했다. 그녀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에게 물었다.

“난… 먹을 거 잘 안 들고 다니는 거 알잖아. 오히려 너나 이나가 더 많이 들고 다닐 텐데….”

사실 그녀는 그가 말한 대로 간식을 잘 들고 다니지 않았다. 들고 다니는 기기에 혹여 음식물을 흘릴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또 오히려 서이나와 고찬영이 들고 다니는 간식들이 자신에게 더 도움이 됐던 적이 많았기에 그것은 꽤나 이상한 말이었다.

“음? 하지만~.”

그러자 고찬영이 능청스러운 얼굴로 툭, 하고 안경희의 머리를 짚었다.

“여기에 있는 비상식량, 정말 중요한 거잖아? 친구님한테.”

“?”

대수롭지 않은 말이었으나, 안경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혹시 볼 빵빵한 햄스터가 그런 의미? 그녀는 그제야 고찬영이 방금 그녀를 칭했던 별명을 이해했다.

“아, 이 생각난 김에 묻는 건데 나 사실 전부터 계속 궁금한 거 있었어.”

“응?”

난데없는 질문에 안경희가 고개를 들었다. 고찬영은 돌연 씩 웃더니 불쑥 그녀에게 얼굴을 가까이했다.

“뭐, 뭐야??”

갑자기 들이밀어진 그의 얼굴에 안경희가 뒤로 주춤했다. 하지만 고찬영은 개의치 않고 씩 웃으며 질문을 던졌다.

“내가 배신당한 거. 그거 알려 준 거 너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