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 FAKER (5)
“?!”
안경희의 눈이 당황으로 커졌다. 생각지 못한 기습에 놀란 그녀가 입을 벌렸다.
“아, 알고 있었…?”
당황스러운 시선이 그에게 닿자, 고찬영은 씩 웃었다.
“역시, 맞구나?”
“?!”
“이야-. 혹시나 싶었는데, 진짜였네~.”
당했다! 안경희는 입을 벌리며 경악한 시선으로 그를 보았다. 고찬영은 그런 안경희를 뻔뻔한 미소로 대응했다. 그동안 아는 게 많아 보이는 것도, 또 필요한 순간마다 친구님이 안경희를 찾으며 물어보는 것도 이상하다 싶어 관찰한 끝에 도출한 결론이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고찬영은 함정에 걸린 사냥감을 보는 만족스러운 시선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히죽, 웃었다.
“어쩐지 그 싸가지한테서 얻은 것 같진 않더라니. 그 정보들, 너였구나?”
그동안 한도훈 그 녀석에게서 모든 정보를 얻은 것 같진 않았다. 물론 친구님도 한도훈을 너무 의지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많이 보이기도 한 탓도 컸다. 오히려 무언가 궁금한 게 있으면 친구님의 시선은 이 순진무구한 친구에게 자연스럽게 가 있었고 말이다. 고찬영은 그간의 수수께끼가 퍼즐처럼 들어맞자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게다가 그 편의점 CCTV도 네가 딴 거 맞지? 너 진짜 재주 좋다~.”
또한 겸비한 기술 실력까지. 혹시 얘는 천재인가? 고찬영은 진심으로 감탄 어린 시선으로 그녀를 보았다.
“…부, 부, 부, 불쾌했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안경희는 그 칭찬의 몸짓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히려 안경희의 몸이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덜덜덜 떨리고 있었다. 창백한 낯은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가는 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누가 봐도 겁을 잔뜩 먹은 모습이었다.
‘크, 큰일이다!’
사실 중간부터는 고찬영이 한 말의 반도 제대로 못 듣고 있었다. 그만큼 그녀의 머릿속은 현재 엉망이었다. 자신도 그렇게까지 남의 뒷조사를 하는 건 좋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서이나도 그걸 인지하고 있기에 그간 이것저것 조사를 부탁할 때 그와 관련된 이야기는 밖에서 일절 꺼내질 않았다. 그것은 두 사람의 암묵적인 합의였다.
그런데 고찬영이 자신의 뒷조사를 했음을 알아차렸다!
‘어, 어, 어, 어, 어, 어떡하지-?!’
스스로도 인지할 정도로 눈동자가 세차게 떨렸다. 안경희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자신이 조사한 그에 대한 모든 것이 순식간에 나열되었다. 방대한 정보 속에서 빠르게 처리된 그의 정보는 제 입으로 직접 꺼내기 어려운 것들이 많았다. 특히나 그의 가정사와 연애사는 더더욱!
혹여 자신에게 자기의 정보를 어디까지 알아냈냐고 하면 무슨 대답이 좋을까. 감도 눈썰미도 좋은 그로선 그녀의 얄팍한 연기 따윈 금세 간파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사실을 그대로 일러바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이 사실로 인해 고찬영과 서이나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건 싫으니까!
서이나는 고찬영을 친구로서 신뢰하고 좋아한다. 이것은 고찬영도 마찬가지였다. 인간관계에 둔한 저로서도 이 사실은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곁에서 보는 이로서도 저절로 웃음이 나오고 흐뭇해지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이 순간 말 한번 잘못한다면, 그 사이에 금이 생길지도 몰랐다. 안경희는 두 눈을 질끈 감고 떨리는 두 손을 마주 잡았다.
‘…아, 안 돼. 그, 그러면 안 돼.’
초조하게 맞잡은 손을 꾹 눌렀다. 입술이 짓씹어지며 고통이 얼핏 들었으나, 신경 쓸 새가 없었다. 생각해야 돼. 어떻게 하면,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번뜩, 그녀의 머릿속으로 하나의 방안이 떠올랐다.
“나, 나야!”
“…음?”
갑작스러운 외침에 고찬영이 의아한 듯 눈을 크게 떴다. 안경희는 그 얼굴을 보지 못한 채 말을 더듬으며 이어 갔다.
“내, 내가 멋대로 조, 조사한 거야!”
어차피 자신에겐 그들과의 친구 관계는 과분한 자리였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참으로 즐거웠다. 이런 보잘것없는 자신에게 친구라고 말해 준 고찬영에게도 참 고마웠다. 홈 스쿨링을 그만두고 다시 학교로 나오길 참 잘했다고 생각이 드는 2개월이었다.
“이, 이나는 관계어, 없으니까…!”
그렇기에 안경희가 각오를 다지듯 맞잡은 두 손을 강하게 꾹 쥐었다.
“그, 그러니까 이나 미워하지 마….”
하지만 끝을 맺는 말은 얄팍하게 흔들렸다. 당장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지만 그녀는 코를 훌쩍이며 꾹 참아 냈다. 이로써 최애의 우정을 지킬 수만 있다면… 자신 따윈 상관없었다. 그러니 제발 그의 친구님에게 노여움이 생기질 않길 바랐다. 그 모든 분노가 자신에게 쏟아져도 상관이 없으니, 원한다면 눈앞에 얼씬거리지도 않을 테니 부디 두 사람의 사이가 앞으로도 원만하길 바랐다.
“…….”
고찬영에게선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학교를 다시 다니기로 마음먹고 첫 등교를 했을 때보다 더한 긴장감이 그녀를 옥죄었다.
“……?”
그런데 침묵이 길어도 너무 길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노여움도, 실망도 담긴 대답이 들려오질 않았다. 안경희는 무언가 이상하단 생각에 숙이던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렸다.
“…!…!!”
그리고 보았다. 입을 꽉 틀어막은 채 어깨를 떨며 숨죽인 채 웃고 있는 그의 모습을. 안경희는 전혀 예상치 못한 그의 모습에 벙찐 얼굴이 되었다. 얼마 안 가 고찬영은 안경희가 제 모습을 발견했음을 눈치챘는지 이내 소리를 터트리며 깔깔 웃기 시작했다.
“푸흣-!! 큭, 으하하하핰!! 아, 미치겠, 앜, 으하하하하!!”
난데없이 터진 그의 웃음보에 안경희의 낯이 아연해졌다. 도무지 멈출 기미가 보이질 않는 그의 방정맞은 웃음에 되레 안경희의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왜, 왜 웃는 거…야…!”
있는 용기 없는 용기 전부 쥐어짜 내서 말한 건데! 안경희는 입을 삐죽 오므리며 속상함에 저도 모르게 울먹였다. 그 모습에 고찬영이 아차 싶었는지 숨넘어가리만치 웃던 웃음이 그제야 잦아들기 시작했다.
“아-, 미안, 미안. 너무 애처롭게 변명하는 게 귀엽고 웃겨서 그만.”
“애처, 귀… 뭐?”
고찬영의 말에 안경희는 제 귀를 의심했다. 도대체 어떤 포인트에서 그렇게 보였는가 그의 시력이 의심될 지경이었다.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으로 그를 보자, 고찬영은 되레 씩 웃더니,
팡-!
“뭘 그리 죽상이야, 죽상은.”
시원스럽게 그녀의 어깨를 내려쳤다. 그에 안경희가 으악, 하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으나 고찬영은 웃음을 거두지 않고 되레 그녀의 어깨에 능청스럽게 팔을 걸쳤다.
“경희야, 그런 걸 보고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하는 거야.”
“으왓.”
훅 무거워지는 어깨에 안경희가 잠시 중심을 잃고 휘청였다. 이내 겨우 중심을 다시 잡고 그를 올려다보자 고찬영은 이번엔 그녀의 머리를 세차게 헝클였다.
“도대체 이 머리에 든 비상식량이 얼마나 많길래 그런 결과가 나온 건지~.”
“으, 아아-.”
가감 없는 손길에 안경희가 당황스러워하며 발버둥 쳤다. 하지만 고찬영은 그녀를 놓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오히려 그녀의 말랑한 볼을 쭉 잡아당겼다.
“너도 친구님 닮아 가는 거야? 그런 쓸모없는 잔걱정은 하는 게 아니야~.”
“으우…, 흐, 흐, 즈믄….”
하지만 그게 어떻게 쓸모없는 잔걱정이야…. 안경희가 고통에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반박하려 들자, 고찬영은 더 볼을 잡아당기며 그 입을 막았다. 그에 그녀의 얼굴이 더 일그러지며 눈꼬리에 눈물이 설핏 맺혔다. 고찬영은 잠시 그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화 안 낼 거야.”
“으, 어…?”
멈칫, 울상을 짓던 그녀의 얼굴이 멍해졌다. 고찬영도 그 얼굴을 마주하다 픽, 웃으며 그 볼을 놔주었다. 안경희는 얼얼한 제 볼을 어루만지다 멀거니 그에게 되물었다.
“화… 안 내?”
“그래.”
“왜?”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는 그 순수한 질문에 이번엔 고찬영이 오히려 말이 막히었다. …뭐라고 말해야 하지. 그는 잠시 난처히 볼을 긁으며 고민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길래 제가 화를 낸다는 귀결이 났는지는 몰랐다. 자신은 그저 저를 배신한 이들의 정보를 제공해 준 게 너냐고 물었을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안경희의 반응은 굉장히 석연찮았다. 마치 저 머릿속에 더 엄청난 게 들어 있는 것처럼.
…어쩌면 이 녀석이 가지고 있는 정보는 제 상상 이상일지도 모른다. 그 입장을 생각해 본다면,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화를 내도 이상하지 않은 처지이긴 했다.
‘정말이지, 너무 순수하다니까~.’
그냥 뻔뻔하게 모른 척해도 됐을 텐데. 그럼 자신은 그저 그녀의 기술에 감탄만 하고 끝났을 터였는데 말이다. 저 순진무구한 친구는 그녀가 가진 많은 정보만큼 생각이 지나치게 많을지도 모르겠다. 고찬영은 흐음, 낮은 숨을 쉬며 턱을 쓸었다.
“뭐, 확실히 네가 그렇게 말하니 갑자기 얼마나 알고 있을지 궁금해지긴 했어.”
“?!”
그의 말에 안경희가 몸을 크게 떨었다. 그제야 제 실수를 눈치챈 듯한 모양이었다. 고찬영은 그런 그녀를 보며 생각했다. 저 머리에 들어 있는 것은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일까. 저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 뒤편엔 얼마나 방대한 것들이 담겨 있을까.
그리고 그 안에 자신에 대해선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지 않으면 당연 거짓말일 거다. 하지만,
“그런데 묻진 않을 거야.”
“어어?”
그는 굳이 물어볼 생각이 없었다. 그녀의 어리벙벙한 시선이 닿는 게 느껴졌다. 고찬영은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친구님도 굳이 다 묻진 않을 거 아냐?”
또 그가 알기론 제 친구님도 안경희가 이 많은 정보를 내재하고 있음을 알고 있을 터였다. 그 대상은 친구님 자신도 포함해서 말이다.
“나도 같아. 때론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는 법이잖아?”
수많은 생각이 그를 스쳐 지나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하나 그것은 굳이 꺼낼 사안이 아니었다.
“하, 하지만 기분 나쁘지 않아? 내가 너에 대해… 말하지도 않은 걸 알고 있다고 한다면….”
그러나 도무지 납득이 되질 않는지 안경희가 반박해 왔다.
“아니?”
하지만 고찬영은 여전히 천연덕스러웠다. 왜냐하면 그녀의 예상과 달리 진심으로 불쾌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오히려…,
“오히려 더 편하다고 할까….”
“으응…?”
엉뚱한 대답에 안경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찬영은 그에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잖아?”
“…….”
“네가 나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는 모르지만… 음. 그래. 다 안다고 가정을 둔다고 해도 말이지~.”
고찬영은 거듭 생각해 봐도 똑같이 나오는 결론에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괜찮은데?”
“아니, 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결론에 되레 안경희가 답답한 듯 소리쳤다. 하지만 고찬영은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로 휘휘 손을 저으며 대답했다.
“그야 아는데도 그 태도인 거잖아.”
그리고 그는 성의 없는 손길로 제 머리를 매만지며 툭, 하고 말을 던졌다.
“내가 부모님 없는 거라든지, 여자들 문제로 골머리 썩였다든지? 뭐, 아무튼 그런 걸 아는데도 넌 그 모습이란 거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