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230화 (230/306)

231. 이벤트 경기, 스타트! (1)

‘…내 손이?’

왜? 이해할 수 없는 그 모습에 나는 땀을 삐질 흘렸다. 황당한 시선을 금치 못하고 그를 보고 있는데 반휘혈은 나를 보지 않은 채 내 손을 꾹 쥐었다. 하지만 그 힘은 약했고, 그것도 얼마 안 가 풀리었다.

“…….”

“!”

파아아-. 그리고 그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살풋 맺혔다. 무거웠던 그의 분위기는 사라지고 봄날의 꽃이 휘날리는 것처럼 산뜻한 공기가 그의 주변에 머물렀다. 급변한 그의 분위기에 놀라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하지만 그 놀라움도 오래가진 않았다. 손에서 느껴지는 타인의 손, 정확히는 나보다 훨씬 큰 손이 내 손을 어루만지는 감각에 정신을 차렸기 때문이었다.

나보다 두껍지만 예쁜 손이 찬찬히 손의 마디를 건드렸다. 쭉 뻗은 그의 손가락과 달리 내 손은 운동으로 마디가 굵고 거칠었다. 그는 제 손과 다른 내 손이 신기한지 몰라도 그 마디 하나하나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의 유려한 손길이 내 손등과 손바닥을 타면서 마치 모형을 본뜨려는 것처럼 섬세한 스침이 손에 퍼져갔다. 나는 그 간질거리는 감각에 반사적으로 움츠리자 반휘혈은 내가 손을 빼는 줄 알고 빠져나가지 못하게 힘을 주었다. 그러곤 제 볼 근처로 끌어당기며 내게 눈을 강하게 부라렸다.

빼지 마.

그의 안광에서 강한 의사가 전달되었다. 만약 빼기라도 하면, 당장 손톱을 세우거나 하악질이라도 할 것 같은 기세였다.

‘…뭐지. 이 기분은.’

마치 어린아이에게 사탕을 뺏는 기분, …아니, 고양이인가? 나는 이 설명하기 난해한 상황을 떨떠름히 바라보다가 이내 머리를 긁적였다.

…이러니까 내가 착각한다는 건데. 나는 한숨이 당장이라도 튀어나오려는 걸 꾹 눌러 참았다. 저렇게 소중히 어루만지는데 어떻게 마음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이건 내가 너무 불순한 눈으로 보는 건가? 어쩌면 내 마음이 너무 더러운 걸지도. 어휴, 더러운 어른인 내가 싫다. 나는 탄식 어린 한숨을 내쉬며 공허하게 스크린을 보았다.

이젠 뭐든 됐으니 경기나 시작했으면.

그런 심정으로 화면을 보고 있는데, 돌연 팟, 하고 화면이 전환되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드디어 기다리시고 기다리시던 이벤트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화면에 나타난 건 사회자였다. 이제껏 없던 사회자의 등장에 주위가 웅성거렸다. 저게 뭐지? 뭐 하려는 거지? 사회자는 방금 전 아이들이 무대를 하던 곳에 서 있었다. 아무래도 저기가 본무대인가 싶어졌다. 그건 그렇고 이제야 겨우 시작하다니. 거참 오래 걸린다 싶어 나는 짧게 혀를 차며 무대 인사를 귓등으로 흘렸다. 얼마 가지 않아 이벤트 경기에 대한 소개가 펼쳐졌다.

“그럼 경기를 소개하기에 앞서, 화면을 잘 봐 주시길 바랍니다!”

“?”

아니, 그 앞에 뭔가가 또 있었다. 나는 뭔가 싶어 스크린을 보는데 화면엔 A부터 Z까지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단어 바로 밑엔 빈 슬롯이 각 두 개씩 자리했다.

“혹시 눈치채셨나요? 이번 경기는 바로 짝을 이룬 경기입니다! 반별 대항이 아닌 개인전이자 팀전이며 또한 이번 경기는 별개의 상품이 증정될 예정입니다!”

“오오??”

나는 그 말에 솔깃해져 몸을 기울였다. 왠지 이런 말을 들으면 관심이 생긴다. 특히 한도훈이 주최한 거니만큼 더더욱.

“상품은 바로-!!”

사회자가 화면을 가리켰다. 그와 함께 화면이 또 전환되며 푸른 바다를 보여 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바다를 타고 카메라가 이동되더니 아름다운 하얀 벽면의 건물들이 바닷가에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배경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화면을 향해 사회자가 말했다.

“아름다운 신비의 섬! 산토리니 5박 7일 여행 패키지입니다-! 그것도 동반 1인 포함, 각 개별상품-!!”

“?!”

나는 뒤이어 밝혀진 상품의 이름에 기함했다.

아니, 체육 대회 우승 상품보다 더 좋잖아?! 엄청난 상품의 등장에 주위가 웅성거렸다. 그것은 들뜸이기도 하고, 당황스러움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나도 예외는 아니었기에 어리벙벙하니 듣다가 그저 반사적으로 반휘혈을 보았다. 하지만 반휘혈은 관심이 전혀 없는지 내 손만 조물조물 만지고 있었다. 그게 어린애가 찰흙 놀이를 하는 것 같아 보여 나는 상황에 맞지 않게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네가 기분 좋다면 된 거지.

나는 간만에 찾아온 그의 행복한 분위기에 될 대로 되란 심정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다만 안타깝지만 모든 학생분들이 참여할 순 없는 점 양해드립니다. 대신! 이번 팀 배정은 A부터 Z 팀 모두 랜. 덤. 으로 배정되었음을 꼭! 꼭! 유념해 주세요!”

아, 전부 참여하는 게 아니구나. 하긴, 학생들 전부 다 참여하기엔 인원이 지나치게 많긴 하지. 나는 납득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추첨한 명단을 공개하겠습니다-!”

두구두구두구.

긴장감을 울리는 BGM이 학교에 울렸다. 하지만 나는 시큰둥했다.

‘어차피 난 아니겠지.’

왜냐하면 이런 쪽으론 운이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과연 저 엄청난 상품을 탈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그 행운의 참여자는 누굴까 구경이나 하자는 심산으로 기다렸다.

그러나 나의 평정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자, 명단을 공개합니다-!!!”

촤르륵-. 하고 명단이 줄지어 공개되었다. 그리고 내 표정은 믿을 수 없는 걸 본 것처럼 멍청해졌다.

[A팀 : 반휘혈(1-4)/서이나(2-6)]

“……???????”

아니, 시발. 저게 뭐야.

앞으로 굴러도 뒤로 굴러도 내 이름이 버젓이 첫 번째로 공개되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반휘혈이란 이름을 달고.

“…랜덤이라며?!”

상황을 겨우 깨우친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도훈 저놈의 자식! 누가 봐도 조작의 흔적이 느껴지는 팀 배정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떡하니 나랑 반휘혈을 붙여 놓을 수가! 졸지에 손을 뺏…, 놓친 반휘혈의 나를 못마땅히 바라보았지만 이내 화면을 보곤 무슨 상황인지 금세 파악했는지 눈썹을 살짝 휘었다.

“아.”

그리고 그는 무언가 헤아린 것처럼 덤덤히 중얼거렸다.

“신혼여행이군.”

“아냐-!!!”

말도 안 되는 소릴 당당히 하지 마! 내가 도끼눈을 뜨며 대번에 부정했으나, 반휘혈은 시큰둥하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서, 싫어?”

그가 무심히 물었다. 마치 당연히 내가 참여할 거란 태도였다.

“그읏….”

방금 소리친 것이 무색하게도 그것은 정답이었다. 나는 이를 악물며 눈을 꽉 감았다.

“당연히… 참여해야지…!”

산토리니 5박 7일 여행 패키지! 그것도 한도훈이 전액 부담한다고 하는데 내가 망설일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비록 부정이 판친 명단 배정이었으나, 나는 굳이 거절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도 너랑은 안 갈 거야.”

하지만 이 말은 똑똑히 해 둬야지. 나는 입을 삐죽이며 미리 선포하자 반휘혈이 눈썹을 까딱였다. 그러곤 낮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건 두고 봐야지.”

파지직. 이상한 신경전에 스파크가 튀었다. 나와 반휘혈은 잠시 서로를 맹렬히 노려보다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망할 애새끼.’

두고 보자. 내가 너한테 넘어가나 봐라. 저 오만한 콧대를 반드시 짓뭉개 버릴 것이다. 기어코 나의 자존심이란 심지에 승부욕이란 불이 붙어 버리고 만 순간이었다.

***

“엥?!”

그리고 여기, 명단을 보고 기함한 이가 또 한 명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주연희였다. 그녀는 경악한 시선을 무르지 못하고 얼떨떨하게 화면을 바라보다가 눈을 벅벅 비볐다.

하지만 현실을 부정해도 눈앞에 보이는 명단은 변하질 않았다.

“마, 말도 안 돼…!”

주연희는 울상을 지으며 경악했다.

“왜 내가 최강혁 그 자식이랑 같은 팀인데!”

그녀가 본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운동장 중앙을 당당히 차지한 대형 스크린이었다.

[Z팀 : 최강혁(1-1)/주연희(1-2)]

그리고 그 명단의 끝자락엔 그들의 이름이 버젓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벤트 경기에 늦을까 싶어서 조급하게 운동장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것이 이거라니. 서이수는 옷을 갈아입는다고 옆에 없어서 이 속상함을 털어놓을 곳도 없어 더 답답함이 치밀었다.

‘쟤랑 더 엮이기 싫단 말이야…!’

주연희는 의도치 않게 계속 그와 엮이니 환장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번 상품의 정체를 두 귀로 똑똑히 들었는데 놓치기는 아쉽고! 그녀는 머리를 싸매며 번뇌에 휩싸였다.

‘아, 잠깐!’

주연희가 문득 깨달음이 스친 것처럼 고개를 퍼뜩 들어 올렸다.

‘그러고 보니 걘 이번에 경기 참여도 안 했잖아!’

생각해 보니 최강혁은 오전부터 줄곧 이 대회에 나오질 않았다. 주연희는 그 사실을 상기해 내자 갑자기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아, 뭐~. 그, 그럼 어쩔 수 없지. 자연스럽게 기권이 되는 거긴 하지만 짝이 안 나오는데…!”

상품에 대해 아쉬운 마음이 들긴 했지만 최강혁과 더는 엮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후련한 미소를 지으며 응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맞아. 짝이 안 나오면 다시 배정해 줄지도 몰…!”

“아-. 진짜 시끄럽네.”

나름대로 희망 어린 시각으로 바뀌려는 그때, 그녀의 뒤로 낮은 미성이 들려왔다.

“앗?!”

그러곤 불시에 목덜미까지 잡혔다. 뭐, 뭐야?! 갑작스러운 기습에 놀란 주연희가 새된 비명을 작게 내지르며 발버둥을 치다가 그 정체를 확인했다.

“꺄…! 뭐, 뭐야! 최강혁 왜 네가…!!”

갑작스럽게 나타난 이는 바로 최강혁이었다. 생각도 못 한 정체에 주연희가 놀라 버둥거리던 몸도 멈추고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최강혁이 떨떠름한 눈으로 자신을 흘긋 내려다보더니 휙, 하고 시선을 돌렸다.

“혼자서 종알종알 시끄러. 고막 울리니까 닥쳐, 좀.”

“이익…! 그럼 그냥 놓고 가면 되잖아!”

시끄럽다면서 붙잡는 건 뭔데! 그것도 목덜미를! 그녀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최강혁이 설명이라는 친절을 발휘할 리 없었다. 그는 그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휘적이더니 그대로 주연희를 잡아끌었다.

“됐고, 그냥 잠자코 따라와.”

“뭐? 어, 어딜 가는 건데!”

난데없는 소리에 주연희가 다시 반항했다. 팔다리를 휘저으며 버둥거려 보았으나 자존심 상하게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바보냐? 어디긴 어디야. 저기밖에 더 있냐고.”

쯧, 하고 그가 신경질적으로 혀를 차며 말했다. 그 말에 주연희는 그가 턱짓으로 가리킨 방향을 보았다. 그곳은 바로 운동장 한복판을 차지한 무대였다.

“엥…?”

네가 저길 왜 가? 그런 의미를 가득 담아 보자 최강혁은 그녀를 한심한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넌 눈깔도 병신이야? 아니, 됐다. 말을 말자.”

그는 더 이상의 설명이 귀찮았는지 그대로 주연희를 끌고 갔다. 주연희는 갑작스러운 욕에 다시 발끈했지만 이미 최강혁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있었다. 그는 앵앵거리는 여자의 말을 무시하며 주머니에 든 핸드폰을 꽉 쥐었다.

‘망할 또라이 새끼….’

눈앞에 있다면 당장이라도 쥐어패고 싶은 놈의 면상을 떠올리며 그는 욕을 뇌까렸다.

[한 방 먹이고 싶지 않아?]

그것은 방금 전 제 핸드폰에 도착했던 메시지였다. 원래대로라면 주연희의 예상대로 그는 이 같잖은 경기 따위 참여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간파한 것처럼 타이밍 좋게 온 한도훈의 메시지는 그의 생각을 바꾸었다.

짜증 나는 새끼. 그는 강하게 혀를 찼다. 하지만, 그의 입가엔 미소가 삐뚜름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뭐, 좋아.’

이번만은 어울려 주지. 그는 붉은 안광을 빛냈다.

“아, 좀 놓으란 말이야-! 내 발로 간다니까, 내 발로!”

그리고 상황도 모르고 화풀이처럼 끌려가는 주연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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