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 이벤트 경기, 스타트! (3)
‘저 녀석이 또….’
쟨 대체 어디까지 계획해야 직성이 풀리는 걸까. 나는 그의 머리를 한번 열어 보고픈 충동에 휩싸이며 툭툭, 반휘혈을 건드렸다.
“야, 휘혈아. 도훈이는 어릴 때부터 저 모양이냐.”
짜게 식은 눈으로 한도훈 몰래 그를 가리키며 묻자 반휘혈은 내 손가락을 따라 흘긋 보곤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그러곤 음, 하고 의미 모를 소리를 내더니 입을 열었다.
“몰라.”
“…….”
그래. 너한테 물은 내 잘못이지. 나는 눈을 흐리며 이 무신경한 놈을 어릴 때부터 졸졸 따라다니던 한도훈을 동정해야 될지 말아야 될지 갈등이 일었다.
“아, 거의 다 왔나 보네요. 남은 팀은… G 팀? G 팀은 아직인가요??”
G팀? 나는 그게 누군가 싶어 명단을 확인했다.
“어?”
확인을 마침과 동시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G 팀 : 서이수(1-5)/서강이(1-6)]
“…뭐야, 얘네들 대체 왜 안 와?”
특히 서이수. 이 자식은 이 엄청난 경품이 걸린 이벤트에 왜 이리 늦게 오는가. 나는 못마땅함에 얼굴을 찌푸렸다.
“음. 시간이 너무 지체되면 곤란하니 1분만 더 기다려 보겠습니다. 그 이후로도 안 오면 자동 탈락되고 다른 학생이 랜덤으로 배정하게 되니 참여자분은 어서 올라와 주세요.”
얼마 안 가 사회자의 곤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올라오라는 재촉에 나도 모르게 계단을 보게 됐다.
“…왜 안 와?”
아니, 진짜 왜 안 와?! 탁탁탁, 발이 조급하게 바닥을 두드렸다. 서이수, 이놈의 자식은 대체 어디서 한눈을 팔고 있는 건가. 그리고 서강이 이놈은 또 어디 갔는가.
“슬슬 시간이 다 됐네요. 10초 안에 나타나지 않으시면 자동 탈락 처리시키겠습니다.”
헉, 나는 숨을 들이켰다. 사회자가 카운트를 세기 시작하자 나는 재빠르게 이재현과 김시원을 불렀다.
“재현아, 시원아! 둘 어디 갔는지 알아?!”
급히 두 사람의 행방을 물었으나, 그들도 영문을 모르겠던지 난색이 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5, 4….”
앗, 안 돼! 서이수 놈이 와야 내 산토리니 여행 확률이 높아지는데…!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있었다면 당장이라도 온 학교를 이 잡듯 뒤졌을 터였다. 하지만 시간은 겨우 3초. 나는 서이수와 서강이를 만나면 기필코 족치겠다는 마음으로 이를 갈고 있는데,
“2, 1…!”
“잠시, 잠시만요-!!!!!”
저 멀리서 큰 외침이 들려왔다.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거기엔 급하게 사람을 비집고 나오고 있는 서이수가 있었다. 게다가 그 뒤로 덩치가 큰 서강이의 머리통이 빼꼼 튀어나온 것도 말이다. 둘 다 키도 크고 덩치도 있어서인지 멀리서도 꽤나 잘 보였다.
“아,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나 보네요. 어서 무대 위로 올라와 주시길 바랍니다.”
다행히 사회자도 서이수와 서강이를 발견했나 보다. 그 소리에 험악히 굳혔던 낯을 풀어 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여간 빈둥거리고 있긴.”
정신머리가 빠졌어, 아주. 나는 나중에 저놈들에게 한 소리를 해야겠다 다짐하며 노려보고 있는데 서이수가 서강이의 팔을 잡아끈 채 서둘러 무대 위로 올랐다.
“아, 좀! 제대로 걸어-!!”
그런데 어째 두 사람 상태가 이상했다. 아니, 특히 서강이가. 서강이의 몸은 연신 위태롭게 흔들거리며 비틀비틀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서이수는 그런 서강이를 보며 잔뜩 성질을 내며 그를 재촉했다.
“아, 좀 깨라고-!!!!”
나는 그 말에 그제야 서강이의 얼굴을 확인했다. 자세히 보니 서강이는 눈이 거의 감긴 채였다.
…아니, 잠깐만. 쟤 지금 졸고 있는 거야?
나는 어이가 탈출하는 기분에 반사적으로 김시원을 보았다. 평소 서강이를 챙기는 김시원은 익숙한 듯 질린 낯으로 녀석을 보고 있었다.
“제발 좀…! 네 발로…! 걸어…!!!”
서이수는 위태롭게 조는 상태로 걷는 서강이를 거의 짊어지다시피 옮기며 자리를 이동했다. 그러곤 그는 도착하마자자 서강이를 내동댕이…치려다가 겨우 참아 내며 그 커다란 몸을 제게 기대게 만들더니 체념한 듯 얼굴을 두 손으로 벅벅 문질렀다. 멀리서 봐도 벌써부터 피로한 그 얼굴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쓸데없이 착한 녀석 같으니….’
나 같았으면 그냥 집어 던졌다. 평소 틱틱거리는 말과 행동과 달리 이상한 곳에서 마음이 여린 놈이었다. 오늘도 그로 인해 사서 고생하는 동생 놈을 보며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다 불현듯 피구 시합 이후로 현재 내 동생에게 기대어 졸고 있는 커다란 덩치가 잘 안 보였던 게 떠올랐다.
혹시 학교 어딘가 구석에 박혀서 자고 있었던 걸까. 그렇다면 정말 용케 발견해서 데려온 건데.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늦지 않고 도착했으니 된 거 아닌가. 나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동생의 앞날을 응원하며 눈을 흐린 채 고개를 돌렸다.
“그럼 드디어 고대하시고 고대하시던 이벤트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참여자들이 모두 올라오자 곧 사회자가 이벤트의 시작을 알렸다. 나는 환호성을 한 귀로 흘리며 멍하니 있다가 문득 아직까지 붙잡힌 손을 보았다. …얜 대체 언제까지 잡고 있으려나. 그렇다고 또 말해 봤자 무시만 당해 진만 빠질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포기하고 경기 내용을 듣기로 했다.
“본격적인 경기에 앞서! 우선 팀을 걸러 내도록 해 볼까요! 자, 스태프분들은 각 팀에게 종이를 배부해 주시길 바랍니다-!!”
종이? 나는 멀뚱히 건네주는 종이를 받았다. 종이는 A4 용지였다. 이걸로 뭘 하려고 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얼마 안 있어 사회자가 경기 내용을 설명했다.
“다 받으셨죠? 그럼 이제부터 참여자분들은 그 종이 위에 같이 서 주세요!”
“?!”
나는 그 말 덕에 이제야 이 게임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버티기 게임이구나.’
그것도 커플 게임에 흡사한… 그 종이접기 게임이 틀림없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나는 반사적으로 한도훈을 노려봤다. 한도훈은 나와 시선을 마주치곤 화사하게 웃어 보이며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파이팅.
그의 응원에 나는 화답하듯 환히 웃으며 입을 벙긋거렸다.
죽을래.
친히 그와 반대로 엄지까지 아래로 내려 주었다. 나는 저 새끼를 기필코 죽이겠다는 살심이 들끓는 걸 억누르기 위해 애써야만 했다.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도훈은 재밌어 죽겠는지 입가에 환한 웃음이 떠날 줄 몰랐다. 진짜 언젠가 저 새끼를 족치리라 거듭 다짐하며 나는 반휘혈과 A4 용지 위에 나란히 섰다.
“음.”
벌써부터 빼곡하게 들어차네. 그동안 못 느끼다 새삼 반휘혈의 커다란 덩치가 커다랗다는 걸 느끼며 나는 한 발로 섰다. 당연하지만 아직까진 여유로웠다. 그래서 다른 팀은 어떻게 섰나 확인했다. 다른 팀도 우리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으나, 한 팀만 예외였다.
바로 G 팀인 서이수네였다. 현실을 빠르게 체념한 얼굴의 서이수는 졸… 아니, 자고 있는 서강이를 등에 업은 채였다. 그것은 나라도 했을 법한 선택에 나는 녀석에게 동정을 금치 못했다.
‘…힘내라.’
갑자기 내 짝이 반휘혈이란 게 이렇게 다행일 수가. 한도훈의 주작을 이 순간만큼은 감사히 여기며 동생 녀석에게 응원을 날렸다.
“네, 역시 처음은 다들 쉽게 넘어가는군요. 그럼 종이를 반 접어 볼까요!”
다들 평이하게 통과하자 바로 다음으로 넘어갔다. 대기하고 있던 스태프들이 종이를 반 접었다. 훅 적어진 면적이었지만 이 정도도 아직까진 괜찮았다. 이번에도 다들 쉬이 통과하자 사회자는 가차 없이 면적을 또 반으로 줄였다.
“음.”
나는 확 줄어든 종이의 면적을 잠시 유심히 보았다. 갑자기 내 발보다 작아졌네. 이건 어쩔 수 없이 한 명이 안고 한 명이 짐이 되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휘혈아, 누나 무겁다.”
“?”
“알고 업으라고.”
당연히 키가 작고 상대적으로 체중도 적은 내가 짐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지극히 당연한 논리에 나는 어서 등이나 대라며 녀석의 등을 두드렸다.
반휘혈은 내 말에 눈썹을 잠시 살짝 휘었다가 이내 별다른 군소리 없이 허리를 숙였다. 그래서 냅다 업히자 반휘혈은 힘들이지 않고 몸을 일으켰다.
오, 시야가 높은데?
이게 바로 키 큰 자의 시각인가. 좋네, 좋아. 나는 평소와 30cm 더 높아진 시야가 신기한 마음에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뭔가 경치가 탁 트인 것 같은 착각도 드는 기분에 어쩐지 조금 들뜨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업혀 본 건 아주 어릴 때 아빠를 제외하곤 처음이었다.
‘흐음-. 나쁘지 않네.’
아직 완벽하게 여문 몸은 아니지만 단단한 등과 팔이 마음에 들었다. 안정적인 자세가 편안해서 나도 몸에 긴장이 들어가질 않아 피곤할 일은 딱히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여유가 생긴 나는 다른 팀을 구경했다.
한도훈 쪽을 돌아보니 당연히 그가 안경희를 업었다. 안경희는 그 사실이 심히 부담스러웠는지 굉장히 쩔쩔매며 한도훈에게 계속 안 무겁냐며, 괜찮냐며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하고 있었다. 한도훈은 그에 짓궂은 미소를 달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렇게 미안하면 바꿀래요? 통과할 수 있죠?”
“…….”
안경희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안경희의 운동 신경은 똑똑한 머리와 비견되게 최악이었기에 그녀는 바뀌자마자 떨어질 것임을 직감했으리라. 그러니 한도훈의 의도대로 안경희의 입이 다물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두 사람을 떨떠름하게 웃으며 바라보다가 다른 사람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바로 보이는 광경에 몸을 움칫 떨었다.
“불편하면 말해 줘. 그리고 목에 팔을 두르는 게 더 편하지 않겠어?”
“허어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나긋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는 이는 고찬영이었고, 그 팔 안에는 공주님 안기로 들려 있는 남학생이 입을 두 손으로 가리며 신음을 죽이고 있었다.
‘…쟤 지금 뭐 하냐?’
멀리서 보면 꽃이 휘날리는 순정 만화의 한 장면인 줄 알겠다. 고찬영은 아무 생각 없을지 모르겠지만 그가 주는 배려와 나긋한 음성이 착각하게끔 만들었다. 남학생을 보건대 지금 이 순간 첫사랑이 고찬영이 됐을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아니면, 고찬영의 친구인 이현호처럼 팬이 된다든가.
나는 저 죄 많은 놈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 뒤로 서이수네는 여전히 한결같았고, 다른 팀은…,
“유, 윤아! 내가 들게!! 내가!!!”
“웅-? 하지만….”
“어떻게 감히 널…! 내가 들게 해 줘!!!”
사정을 해 가며 이윤을 업고 있는 여학생이 있었고,
“힘들면 다음번엔 내가 들게.”
“응. 부탁할게.”
훈훈한 분위기를 내며 서로를 배려하는 다정한, 이재현 팀과
“불편하면 말해 주세요.”
“어, 아, 응…!”
분위기가 가장 이 이벤트에 적합할 것 같은 10대의 풋풋함을 보여 주는 김시원과 여학생이 있었다. 아니, 뭐 김시원은 아무 생각 없어 보였지만 여학생은 달랐던 모양인지 얼굴을 연신 붉히며 긴장한 티가 팍팍 났다. 또 다른 팀의 여타 학생들도 남녀일 경우엔 어딘가 긴장하고 있는 게 꽤나 귀여웠다.
“흐음~. 청춘이네~.”
저절로 미소 지어지는 광경에 능글맞은 웃음이 자꾸만 지어졌다. 아가들이 귀엽게 노는구나. 나는 히죽 웃으며 그들을 구경하다 대망의 마지막 팀은 어쩌고 있나 확인했다.
“……?”
으음??? 그리고 나는 눈앞에 보이는 광경을 보곤 짓고 있던 미소를 삐끗했다.
“…허어? 저건 또 뭐야.”
나는 삐질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튀어나왔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제 어깨에 포대 자루마냥 주연희를 짊어지고 있는 최강혁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