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233화 (233/306)

234. 이벤트 경기, 스타트! (4)

***

“…꼭 이래야 돼?”

주연희가 조용히 최강혁에게 물었다. 그녀도 지금 그 상태가 꽤나 언짢았는지 묘하게 굳은 얼굴이었다.

“어.”

그러나 최강혁은 주연희에게 맞춰 줄 배려 따윈 일절 없는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으익!!! 그렇다고 이렇게 짐짝처럼 짊어지는 게 어딨어-!!! 그냥 평범하게 업어 주면 덧나?!”

결국 주연희가 발끈했다. 그녀가 상체를 들어 올리며 항의하자 최강혁은 성가시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최대한 떨어트렸다.

“아-. 존나 시끄럽네. 그렇게 불만이면 네가 업든가.”

“으이이익…!!!”

주연희는 이 순간 이 노란 머리통을 한 대만 때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상품은 완전히 물 건너가는 일이었기에 그녀는 인내할 수밖에 없었다. 이 분통 어린 현실에 그녀가 주먹을 꽉 쥐며 최강혁을 노려봤다.

“안 그래도 무거워 죽겠구만 시끄럽기까지 하네. 뭘 먹었길래 이렇게 무거워? 안 던진 걸 감사히 여겨라, 호박.”

빠직. 최강혁의 심드렁한 투덜거림에 주연희 이마에 핏대가 섰다. 주연희는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꽉 쥐며 마음속으로 강하게 외쳤다.

‘진짜 짜증 나-!!!!’

***

“?”

뭐지. 왠지 연희가 되게 화난 것 같은데. 당장이라도 열을 뿜어낼 것처럼 얼굴을 붉으락푸르락 불태우며 일그러트린 주연희의 낯을 보고 있자니 아무래도 최강혁이 주연희의 성질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하여간 저놈 한시라도 가만히 있질 못하다니까.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최강혁과 짝이 된 주연희의 혈압의 건강을 조용히 응원했다.

“하하, 다들 개성적이네요! 그럼 이대로 5초간 버텨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사회자는 착실히 진행을 이어 갔다. 우리 팀이야 당연히 여유롭기 짝이 없었으나 다른 몇 팀 중에선 불안한 팀이 보였다. 아무래도 사람을 짊어진 채 한 발로 버티는 건 나름 힘든 일이니 말이다.

“…1! 네, 이번에도 탈락 팀은 나오지 않았군요.”

그래도 이번에도 탈락자는 나오지 않았다. 다들 이번 경품이 눈이 돌아갈 만한 경품이다 보니 꽤나 열을 내는 모양이었다.

‘이번에도 접으려나.’

하지만 그렇게 되면 종이의 면적이 지나치게 좁아졌다. 그게 과연 진행이 될까 염려가 되려는데 그때 사회자가 타이밍 좋게 입을 열었다.

“다들 꽤나 여유로운 것 같네요~. 그럼 여기서 돌발 뽑기를 진행해 보도록 할까요?”

음? 뽑기? 나는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보통 여기선 서 있는 사람을 체력적으로 열심히 굴릴 차례가 아니던가. 갑자기 왜 뽑기를 진행하는 건지.

“각 팀은 여기 캡슐을 하나씩 뽑아 주세요.”

사회자는 A 팀인 나부터 캡슐을 뽑게 했다. 나는 상자 안에 손을 넣어 잡히는 걸 바로 꺼내 들었다. 그렇게 하나둘, 손이 자유로운 팀의 멤버들이 캡슐을 뽑아 갔다.

“찬영아, 네가 할래?”

“아… 아니. 이번엔 됐어. 네가 뽑는 게 더 나을 거 같아.”

그런데 의외인 건 이런 쪽으론 타고난 운을 보인 고찬영이 이번 뽑기를 사양했다는 점이었다. 그의 짝도 400m 경주에서 보인 그의 운을 알고 있기에 당연히 고찬영에게 제안했을 터였다. 하지만 고찬영이 그것을 거부했다. 의외의 행동에 눈살을 찌푸리자 불현듯 그의 표정이 살짝 굳어 있는 게 보였다. 어딘가 불안한 듯 자꾸만 흘깃거리는 것도 그렇고… 아까부터 왜 저러는 걸까.

저절로 시선이 미심쩍어지는데 캡슐이 든 상자는 고찬영 팀의 차례를 지나고 다른 팀으로 향했다. 차례대로 손이 빈 짝들이 캡슐을 뽑아 갔으나, 짝이 자고 있는 서이수나 한 손이 자유로운 최강혁의 경우엔 상대방의 의견 따윈 없다는 듯 본인이 스스로 캡슐을 꺼냈다.

“그럼… 다들 개봉해 주세요!”

전원 뽑기를 마치자 사회자가 개봉을 촉구했다. 그런데 왠지 열기에 앞서 떨떠름한 기분이 들었다.

‘…불안한데.’

이런 쪽으론 운이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한 편이라 뭐가 나올지 불안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다들 여는 것 같은 분위기에 어쩔 수 없이 캡슐을 열었다.

“…….”

그리고 나는 보이는 내용물에 소리 없이 굳어 버렸다. 믿기지 않는 현실에 종이를 뒤집어도 봤으나 그 내용은 그대로였다. 나도 모르게 충격으로 손이 떨려 오는데 사회자는 매정하게도 그 종이를 뺏어 갔다.

“다들 내용을 전부 확인하셨을까요? 그럼 A 팀부터 공개하겠습니다! A 팀은… 와, 이거 좀 힘들겠는데요! 다음 타임에 업고 있는 사람과 업힌 사람 교체하기입니다-!”

나는 절망적인 확인 사살에 얼굴을 싸매며 소리 없는 절규를 내뱉었다. 어떻게 걸려도 저딴 게 다 걸릴 수가 있지?! 믿기지 않은 현실에 반휘혈의 등에 얼굴을 박았다.

“…누나 진짜 어디까지 똥손이에요?”

“시끄러어….”

그런 와중에 한도훈의 어처구니없는 목소리가 들려오니 내 속은 배로 더 뒤집혔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됐는가.

“C 팀은 종이 전부 펼치기 당첨!”

“D, E 팀은 앉았다 일어났다 열 번!”

“G 팀은… 아, 이런. 생수 1.25L 들기가 걸렸군요~. 힘내시길 바랍니다.”

“H 팀은… 패스입니다! 축하드려요! 다음 경기까지 뒤에서 쉬시면 됩니다!”

“L 팀은 귀여운 고양이 머리띠를 착용해 주시면 되네요! 그리고 O 팀은 이번 타임은 휴식입니다!”

각각 지옥과 천국, 또는 기묘한 걸 얻었다는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특히 대망의 마지막의 팀인 Z 팀은…,

“서로 5초간 눈 마주 보기!”

…라고 해서 두 사람의 표정이 진심으로 썩어 들어가는 걸 목격할 수 있었다.

허허, 그래 봤자 뭐 하나. 내 눈엔 그저 부러울 뿐인 것을. 나는 반휘혈의 등에서 주르륵 내려와 힘없이 섰다. 그러곤 멀대같이 큰 놈을 올려다보았다. 갑자기 평소에 그리 의식하지 않았던 녀석의 키가 훨씬 더 커 보였다. 아니, 중학교 때보다 좀 더 컸나?

“…휘혈아, 너 키랑 몸무게가 몇이야.”

떨떠름하게 묻자 반휘혈은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중얼거렸다.

“…182?”

“아니에요, 누나~. 휘혈이 186에 85킬로예요~.”

정말 당당한 오답에 근처에서 자신의 팀에 속한 종이가 전부 펼쳐지는 걸 지켜보던 한도훈이 그 답을 재빨리 정정했다. 나는 어째서 몸무게까지 알고 있냐는 의문이 들었으나 더 깊이 파헤치지 않고 눈을 흐리며 난처히 반휘혈을 보았다.

그럼 31cm인가. 나는 대충 녀석을 업었을 때를 상상해 보았다. 들 수는 있겠지만 어떻게 해도 발이 땅에 닿을 것만 같았다. 나는 그 모습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망했네.”

그것도 제대로 망했다. 나는 찾아온 낭패감에 허탈한 웃음은 속절없이 흘러나왔다.

“누나, 파이팅-!”

그때 뒤에서 나를 응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곳엔 패스를 뽑은 이윤이 팔을 흔들며 강하게 자기주장을 하고 있었다.

‘크윽, 부럽다…!’

나도 저기에 있고 싶어! 어째서 나는 똥손인가. 이렇게 억울할 수가 없다. 하다못해 저기 있는 서이수처럼 물병이라도 들고 싶었다. 서이수야 이를 박박 갈며 죽을 맛을 겪고 있는 것 같긴 했지만 어차피 드는 건 반휘혈이었을 터였다. 그리고 반휘혈은 그 이름 높은 반휘혈이니 다 쉽게 했을지 누가 알겠는가.

“꺄아아…!”

그런 와중에도 착실하게 임무를 이행하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고찬영, 그리고 다정한과 이재현이었다.

고찬영은 아주 쉽게 남학생을 안은 채 앉았다 일어나기를 열 번 이행했다. 같이 앉았다 일어나기를 시작한 팀이 다섯 번째에서 무너져서인지 관객석에서의 환호는 더 커다랗게 들려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태프가 고양이 머리띠 두 개를 가지고 올라왔는데 그것을 착용한 것은 이재현과 다정한이었다. 두 사람이 고양이 머리띠를 쓰자마자 고찬영보다 더 폭발적인 반응이 터졌다.

“두 분…!! 정말 잘 어울리네요!!”

저거 진심이다. 목소리에서 진심이 느껴진다. 사회자마저 눈 호강 제대로 했다는 얼굴로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하하, 부끄럽네요….”

“감사합니다.”

그에 이재현이 꽤 민망했는지 눈을 옆으로 돌리며 얼굴을 붉혔다. 그에 반해 다정한은 싱긋 웃으며 감사를 전했다. 그 상반되는 반응에 여론이 또 들끓은 것 같지만 관객석에서 멀리 있어서 잘 들리진 않았다.

“자, 그럼 남은 건 Z 팀인가요!”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팀이 다가왔다.

으.

최강혁과 주연희는 똥이라도 씹었는지 서로 극혐하는 얼굴로 떫게 서로를 마주 보았다.

“자, 그럼… 시작!”

사회자가 종이를 그 사이에 끼워 잠시 벽을 만들더니 곧 그것을 빠르게 치우며 시작을 알렸다. 두 사람은 어떤 말도 주고받지 않고 서로를 보았다.

“…….”

“…….”

“…5초 끝!”

그리고 얼마 안 가 사회자가 끝을 알렸다. 최강혁과 주연희는 당장이라도 토할 것같이 질색한 얼굴로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5초라는 시간은 굉장히 짧았으나 어쩐지 묘하게 길었다. 게다가 왠지 두 사람 사이에서 오만 욕이 소리 없이 서로에게 오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뭘까.

“네. 수고하셨습니다. 하, 하. 서로 잡아먹을 듯한 강렬한 눈 맞춤이 인상적이었네요~!”

아무래도 그것은 내 기분 탓만은 아니었나 보다. 사회자가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상황을 무마시키기에 이르렀다. …아니, 진짜 쟤네들은 왜 걸려도 저런 게 걸리지? 이게 바로 운명인가, 싶다가도 서로 너무 치를 떨며 싫어해서 안쓰러운 기분도 들기까지 하였다.

“자, 그럼 이번 탈락 팀은… D 팀과 Y 팀인가요? 네 분 모두 수고 많으셨고 관중석으로 돌아가시면 되겠습니다.”

거른다더니 첫판부터 벌써 두 팀이나 떨어졌다. 냉정한 탈락이 떨어지고 오래지 않아 게임이 재개됐다.

“그럼 다시 종이 위에 올라 서 주세요!”

…결국 이때가 왔나. 나는 기어코 닥친 상황에 검지와 엄지로 눈을 꾹 누르다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도 무심하지, 어떻게 이런 작은 몸뚱어리에게 저런 멀대를 짊어지라 할 수 있는가. 하지만 하늘은 구름이 좀 많이 끼긴 했으나 여전히 맑았고, 내 상황은 변하질 않았다.

‘집에 가고 싶다.’

덕분에 귀가 본능만 더 자극당하고 있었다.

“A 팀? 어서 준비해 주시길 바랍니다.”

“…….”

나는 그 말에 잠시 눈을 퀭하니 떴다. 그리고 반휘혈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쫙 훑었다.

‘…어쩔 수 없나.’

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허리에 손을 얹은 채 바닥을 향해 숨을 깊게 내쉬었다.

“휘혈아.”

“응.”

그를 부르자 곧장 대답이 들려왔다. 나는 그런 반휘혈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누나 원망하지 말기다.”

“?”

내 말에 반휘혈의 얼굴에 의문이 어렸다. 하지만 나는 숨을 한 번 더 깊게 쉬어 몸에 긴장을 불어넣었고, 그런 후 번쩍 반휘혈을 들어 올렸다.

“?????”

한순간에 우리의 시야는 뒤바뀌었다. 반휘혈의 얼굴은 당황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보기 힘든 큰 변화였지만 나는 즐길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 커다란 몸뚱어리를 두 팔로 한가득 끌어안고… 즉, 일명 공주님 안기로 이 게임을 버텨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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