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234화 (234/306)

235. 서브 남주나 엑스트라의 운은 믿는 게 아니다. (1)

“?! A, A 팀 그러니까… 서이나 학생 굉장하네요! 안 무거우신가요?!”

내 행동에 사회자가 깜짝 놀랐는지 황급히 다가왔다. 나는 그 모습에 얼굴을 대번에 찌푸렸다.

“…무거우니까 빨리 시작하시죠.”

지금 이게 안 무거워 보여? 거의 내 두 배 몸집인 애를 들었는데 빈말로도 못 할 얘기였다. 내가 정색하며 게임 재개를 독촉하자 사회자가 흠칫 몸을 떨며 내게서 멀어졌다.

“하, 하하. 그, 그럼 다시 시작하도록 할까요? 아, 이번 판부턴 이전과 달리 난이도를 좀 더 높이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미친. 나는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욕을 꾹꾹 억눌렀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선 여기서 팀이 걸러지지 않을 테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였다.

‘…얼마나 버티려나.’

겨우 한 다리로만 이 무게를 감당하고 있으려니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나름 꾸준한 운동과 기가 막힌 인소 세계의 버프로 피지컬이 좋아진 건 사실이었다. 실은 이전의 삶을 생각하면 억울하게도 운동량에 비해 턱없이 좋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계는 있었다.

다른 이들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예전에 최강혁과 한판 뜰 때 다리로 내려찍힌 팔은 아직 다 낫지도 않았다. 몸 상태가 나빠 체육 대회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핑계는 그리 거짓이 아니었다. 저 양심 없는 최강혁이란 놈은 제 피지컬을 십분 활용하여 내 몸을 흠씬 두들겼기 때문이었다. 나는 중심이 흔들리지 않도록 신경을 쓰면서 반휘혈을 놓치지 않도록 팔에 단단히 힘을 줬다.

‘좋아. 아직은 괜찮아.’

버텨라, 팔아. 버텨라, 다리야. 너희들에게 산토리니가 달려 있다. 나는 내 팔과 다리에 암시를 걸며 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건 그렇고 진짜 불편하네.’

반휘혈의 몸집이 나보다 거의 두 배 가까이 돼서 그런지 안는 게 참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새삼 내 작은 몸이 불만스러워 입을 삐죽였다.

“…….”

…어쩐지 묘하게 옆얼굴이 따가웠다. 무시할까 말까 고민하길 잠시, 계속 외면하고 있을 노릇도 아니라 나는 한숨을 참으며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그런데 의외로 정색하고 노려보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반휘혈은 평소와 다름없는… 아니, 평소보다 더 멀뚱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어쩐지 그 눈망울이 순진하게 다가와 홀린 듯 바라보고 있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많이 불편해?”

역시 공주님 안기는 좀 그랬나 싶어 조용히 속삭이자 반휘혈은 잠깐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고개를 저었다.

‘음? 생각보다 덤덤하네.’

아닌가. 원래 이런 녀석이었나? 생각해 보니 반휘혈은 외부의 자극에 그렇게 예민한 녀석이 아니었다. 반응이 무딘 편이긴 했지만 요즘 날 선 반응만 봐서 그런지 새삼 그가 이런 자극에 둔한 녀석이란 걸 떠올렸다. …물론 그를 날 서게 만든 주된 원인이 나라는 게 참 난센스였지만 말이다.

왠지 기분이 복잡해져 반휘혈을 힐끗 보는데 그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움직였다. 뭔가 살피는 것처럼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던 그를 잠자코 지켜보는데 돌연 반휘혈이 다시 나를 돌아봤다. 그러곤 덥석, 내 목을 끌어안았다.

“?!”

말릴 틈도 없이 일으킨 돌발 행동에 내 눈이 홉떠졌다. 한 차례 몸이 휘청거려 위험할 뻔했으나, 몸에 긴장을 푼 적이 없던 탓인지 큰 반동을 일으켜 종이 위를 이탈해 실격당하는 일은 없었다.

“뭐, 뭐야???”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닥친 상황이 바뀌는 건 아니었다. 너무 당황해서 말까지 버벅거렸다. 그러나 반휘혈은 뭐가 잘못됐냐는 것처럼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렇게 하는 게 더 낫잖아.”

아니, 틀린 말은 아닌데…! 나는 당황스러움에 차마 대꾸도 못 하고 있는데 그런 와중에 반휘혈은 내게 더 상체를 찰싹 들러붙어 왔다. 그러곤 뭔가 만족스러운 기색으로 내 머리에 제 턱을 얹었다.

“????”

그 자연스러운 태도에 홀로 경악하고 있는데 뒤이어진 사회자의 목소리가 그런 내 정신을 일깨웠다.

“그럼 여기서 미션 룰렛을 시작하겠습니다-!”

“예?”

무슨… 룰렛? 당황해서 사회자를 보고 있자 대형 스크린에 커다란 룰렛이 등장했다.

“이제부터 A 팀부터 차례대로 화살표가 멈춘 곳의 지시 내용을 이행하시면 됩니다. 우선 A 팀! 원하시는 타이밍에 스톱해 주시길 바랍니다!”

사회자가 지시를 내리자 룰렛이 돌아갔다. 내밀어진 마이크와 룰렛을 멀뚱히 지켜보다가 나는 심각한 얼굴로 반휘혈에게 말했다.

“휘혈아, 네가 해.”

내 운은 글렀다. 방금 무슨 벌칙…이 아니라 미션이 적혀 있는지 확인도 제대로 못 했다. 확인했어도 결과가 그리 달라질 일은 없을 것 같았지만 내 빌어먹을 운으로 인해 여기서 더 괴로워지는 건 사양이었다.

“음.”

반휘혈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러곤 덤덤히 스톱, 을 외쳤다. 그러자 요란하게 돌아가는 효과음을 내던 룰렛의 소리가 차츰 잦아지더니 서서히 그 원형이 드러났다.

“…A 팀의 미션은 종이 위에서 스쿼트 1분!”

“…예?”

방금… 뭐라고요? 나는 믿기지 않은 현실에 사회자를 보았다. 하지만 사회자는 뻔뻔한 미소를 달며 손짓했다. 믿기지 않은 말에 떨떠름히 화면을 돌아봤으나 화면엔 당당히 ‘종이 위에서 스쿼트 1분’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행하지 않으면 모두 탈락입니다.”

더불어 사회자의 단호한 촌철살인까지. 나는 허망한 시선으로 반휘혈을 보았다.

“…….”

반휘혈은 슬쩍 내 시선을 외면했다. 옆에서 웃음보가 작게 터지는 소리가 들려온 것 같았으나 지금 이 순간 그건 중요치 않았다.

“허허….”

나는 이 아찔하고도 아득한 현실에 눈을 감으며 허망한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다시 뜨며 잔뜩 흐려진 시야로 전방을 보며 생각했다.

망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30분. 그렇게 나는 예정에 없던 지옥 훈련을 하게 되었다.

***

“네, I 팀 탈락입니다. 여기서 게임 종료-! 남은 열 팀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10분간 잠시 쉬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자가 막을 내리는 것과 동시에 반휘혈이 빠르게 내 품에서 내려왔다. 나는 그제야 반휘혈을 내려놓고 철푸덕, 하고 바닥과 눈물겨운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흐억, 허억, 커헛….”

주, 죽겠다. 진짜 죽을 거 같아. 나는 입안에 도는 피 맛을 느끼며 숨을 몰아쉬었다. 팔다리가 잘게 떨리는 것이 내일이면 근육통으로 전신이 비명을 지를 건 확정인 듯싶었다.

젠장, 아직 최강혁이랑 싸웠던 후유증도 덜 가셨는데! 나는 단시간에 혹사당해 찌르르 울리는 근육, 특히나 팔 쪽에서 통곡을 하는 듯한 비명에 잠시 바닥과 반갑게 인사하며 숨을 몰아쉬었다.

“누나-! 수고 많았어요-!”

“으헉.”

그때 내 뒤를 습격하는 이가 있었으니, 그것은 프리패스를 받아서 몸도 마음도 편히 뒤에서 구경하던 이윤이었다.

“누나, 진짜 짱이에요! 완전 대박!!”

이윤은 구경의 흥분이 가시지 않았는지 엎어진 내 등 뒤에서 매달리며 꺄꺄거렸다. 그 덕분에 실시간으로 내 얼굴은 사색이 되어 갔지만 치울 기력도 없어서 그냥 엎어져 있었다.

“특히 아빠 사자 아기 사자 포즈할 때가 가장 대박이었어요!!”

이윤이 말하는 것은 모 유명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이었다. 아빠 사자가 아기 사자를 드는 것처럼 공중에 띄우는 동작은 ‘이 동작을 1분간 따라 해 봅시다.’에 걸린 순간에 그 전까지 내걸었던 내 희망을 처절히 박살 냈던 미션이기도 했다.

“저도 그거 해 주세요-!!”

“누굴 죽이려고…?”

이 솜사탕 녀석, 나한테 무슨 원한이라도 있었나? 나는 정색하며 이윤을 보는데 갑자기 몸이 훅 가벼워졌다.

“앗.”

누군가 했더니 반휘혈이었다. 그는 이윤의 목덜미를 잡고 내 몸에서 그를 떼어 낸 후 싸늘히 이윤을 노려보며 나와 이윤의 사이에 꼈다.

“이윤, 넌 좀 적당히 꺼져. 눈치가 없어도 정도껏 없어야지.”

그리고 물을 들이켜던 한도훈마저 성큼 다가와 이윤을 내게서 더 멀리 밀어냈다.

“그리고 그걸 해 준다면 나한테 해 줘야지, 왜 누나가 너한테 해 줘? 꿈도 크다.”

“…도훈아, 너도 꿈이 큰 거 같다?”

이윤을 떨어트려 준 것은 고맙다만, 쓸데없는 말이 붙어 힘든 와중임에도 입을 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것도 좀 힘들어서 숨을 몰아쉬다 이내 나는 바닥이든 말든 상관없이 그냥 바닥에 철퍽 누웠다.

“누나, 괜찮아요?”

콕콕, 한도훈이 그런 나를 손가락으로 찌르며 안부를 확인했다.

“…넌 이게 괜찮아 보여?”

“아뇨.”

대뜸 정색하며 되묻자 한도훈의 천연덕스러운 대답이 이어졌다.

“알면 좀 조용히 있어, 이놈아. 나 잠깐만 좀 쉬자, 어?”

게다가 따지고 보면 내가 이렇게 파김치가 된 것도 한도훈의 지분이 없잖아 있었다. 아니, 어떻게 저딴 선택지들을 늘어놔서 이런 고문을 시킬 수 있는가.

종이 위에서 스쿼트 1분

이 동작을 1분간 따라 해 봅시다. -상세 : 업은 사람-아빠 사자, 업힌 사람-아기 사자

업은 사람-플랭크 1분, 업힌 사람-위에서 차 마시기.

바닥에서 앉았다 일어나기 10회.

그 외 기타 등등.

하나같이 다 힘들어 죽을 것 같았으나 가장 어이없던 건 바로 반휘혈이 차 마실 때였다. 힘들어서 죽을 것 같은 와중에도 화면에 비친 그의 모습은 땀을 흘리며 열을 뿜어내는 나완 달리 이질적이게도 심히 우아했으니 말이다. 상황만 몰랐다면 사람을 깔고 앉은 게 아니라 고급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신다고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 덕에 정작 플랭크 하는 게 나란 것도 잊고 잠시 어처구니를 상실해 홀린 듯 화면을 볼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 외에도 하나같이 내 관절을 혹사시키는 종목들만 줄줄이 걸려들었다. 덕분에 나는 때아닌 지옥 훈련을 겪어야만 했다.

“하하, 갑자기 추억이 막 나네. 하하하.”

“예?”

몸과 함께 너덜너덜해진 멘탈에 내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오는지도 모르고 중얼거렸다. 한도훈이 그 소리를 듣고 반응했지만 이내 내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깨닫곤 스스로 납득한 얼굴로 더 캐묻진 않았다.

“근데 두 사람 너무 심각하게 똥…, 운이 안 좋은 거 아니에요?”

“그러게 말이…. 야, 너 방금 똥손이라고 하려고 했지.”

“착각이에요.”

한도훈이 싱긋, 웃으며 뻔뻔스럽게 대꾸했다. 차마 반휘혈을 똥손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았던지 자연스럽게 말을 돌리는 한도훈의 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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