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있는 인소 세계 인물 1. 그럼에도 세계 랭킹이라는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굉장히 컸다. 이전의 세계에서도 그만한 실력이면 굉장한 선수였다.
두근.
가슴이 크게 술렁였다. 손이 근질거린다. 이런 두근거림. 얼마 만인가. 잠들어 있던 호승심이 일깨워지며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왔다.
“…누나?”
그런 날 발견한 서이수가 나를 불렀다. 하지만 나는 대답지 않고 눈앞에 있는 자를 직시했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나와 시선을 똑바로 마주친 조선지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녀가 자세를 잡았다. 그에 나도 자연스럽게 자세를 잡았…,
“서이나, 파이팅-!!!!!!!”
“?!”
돌연 커다란 응원이 내 귀를 강타했다.
‘이, 이 목소리는?!’
벼락에 맞은 것처럼 정신이 확 드는 익숙한 목소리였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그 인물을 확인했다.
“어, 어, 어, 언니?!”
그러곤 확 잡힌 인물에 경악하며 외쳤다.
“서연 언니가 왜 여기 있어?!”
도대체 언제부터 있었던 거야? 내가 알기론 오늘 오후에 경기가 있던 걸로 알고 있는데! 나는 재빨리 서이수에게 눈짓했다. 서이수는 저도 모르는 것처럼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젓다가 아, 하고 무언가 생각난 것처럼 말했다.
“오늘 경기 오전으로 바뀌었었어.”
“그걸 왜 이제 말해!!!”
그렇다면 경기 일정을 끝내고 바로 이곳으로 온 것이란 뜻이었다. 대체 왜 고등학교 체육 대회에 방문했나 이런 의문은 이 학교에선 이젠 쓸데없는 질문이었다. 이미 이 학교엔 외부인으로 넘쳤고, 화려하게 한다는 소문이 잔뜩 퍼지기라도 했는지 별별 사람들이 다 모인 상황이었으니까 말이다. 아마 김서연도 경기가 끝난 후 이 근처를 지나가다 사람이 많이 모인 걸 보고 놀러 온 모양이었다.
“어, 잠깐. 그렇다는 건….”
오싹, 불길한 기운이 전신에 타고 흘렀다. 김서연이 경기를 끝내고 왔다. 학교 근방의 도로는 체육관으로 가는 길목 중 하나였다. 즉, 그 뜻은…!
“우리 이나, 이수 파이팅-!!!!!!”
우렁찬 응원이 힘차게 들려왔다. 나는 경악한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다시 관중석을 보았다.
“아빠?!”
그곳엔 아니나 다를까, 아빠가 서 있었다.
“아빠가 여기 왜 있어?!”
서이수도 그 사실에 기함하며 고개를 돌렸다. 관중석엔 아빠뿐만 아니라 코치님도 함께 있었다.
“아, 씨발. 쪽팔리게….”
서이수가 그들을 외면했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에라이, 젠장-!!! 그냥 휘혈이 내보낼걸-!!!!’
깊은 후회를 맛보며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생각해 보니 고찬영이 운이 좋은 거지, 내 운이 좋은 게 아닌데! …음? 잠깐, 찬영이?
“아. 찬영, 찬영아!!!”
“응?”
나는 퍼뜩 든 깨달음에 황급히 고찬영을 불렀다. 고찬영은 내 부름에 어리둥절한 얼굴로 대답했다. 나는 그런 그에게 재빨리 말했다.
“너 한가하지?! 나 좀 도와줘!”
아빠와 김서연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로 인해 내가 이 경기에 진심으로 임한다는 선택지는 완전히 지워졌다. 분명 내가 진지하게 경기에 임한다면 그 반응은 불 보듯 뻔했다. 몇 날 며칠을 선수 데뷔하자고 들들 볶을 게 확실했기에 고찬영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고찬영은 잠깐 눈을 깜빡이다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님이 원한다면 당연….”
삐익-!
그때, 그의 말을 가로막는 휘슬 소리가 짧게 울렸다.
“고찬영 학생은 통과입니다! 그대로 경기장으로 나와 주시길 바랍니다.”
“예?”
“어?”
…뭐라고? 나는 그 소리에 입을 망연히 벌렸다. 고찬영도 이 상황은 예상치 못했는지 당황스러움이 얼굴에 번졌다. 그리고 그는 심판의 인도하에 얼떨떨히 끌려 나갔다.
“허, 허허.”
나는 그 뒷모습을 허망히 바라보다 남은 선택지인 서이수를 보았다. 하지만 보이는 광경에 내 얼굴은 다시 아연해졌다.
“아, 안 봐줄 거야!”
“두 명이서 상대하면 어떻게든 될 거야!”
“어, 어어….”
여자애 두 명이 힘찬 파이팅을 서로 주고받으며 서이수의 앞길을 막아서고 있었다. 글러브의 색은 검정. 아무래도 둘이서 연합해 서이수를 이길 모양이었다. 서이수는 자신을 가로막는 여학생들을 보며 난처한 얼굴이 되어 내게 도움의 시선을 보냈다.
야, 나도 그럴 처지 아니야. 나는 얼굴을 굳히며 고개를 돌렸다. 원래라면 내가 도와줬을 테지만,
“자세 잡아, 서이나.”
눈앞에 있는 이가 그것을 허용하질 않았다. 나는 이 현실에 잠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다시 떠 보았으나 코앞에서 위협스럽고도 듬직한 기운을 뿜어내는 무도인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하….”
좆 됐네.
나는 영혼 없는 눈으로 이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잠시 후,
쿵-!!
나는 죽기 살기로 모래 위를 굴러다니는 중이었다.
‘저건 대체 뭐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정체였다. 직접 그 실력을 체감하니 그녀가 이 학교에 있다는 사실이 더더욱 믿기지가 않았다. 물론 체육 시간에 얼핏 스치듯 감상으로 운동 신경이 좋다고 생각한 적은 있었지만… 설마 저런 굉장한 인재일 줄은 몰랐다. 아니, 진짜 왜 이딴 학교에 온 건데?!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인상을 굳히고 있자 조선지가 아스라이 퍼진 모래바람을 가르며 다가왔다.
“이제 좀 적당히 피하는 게 어때?”
무엇보다 그녀의 공격을 피하면서 굉장히 거슬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슬슬 승부를 보자고. 서이나”
조선지는 마치 내 실력은 알고 있는 것처럼 내게 승부를 던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