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 같은 길, 다른 선택 (1)
“야, 너. 아까부터 나에 대해서 뭐라 구시렁거리고 있는데…. 무슨 착각을 하고 있는 거야?”
나는 우선 한숨을 돌리고자 그녀의 관심을 돌렸다. 조선지는 내 말에 다가오려던 몸짓을 멈추고는 못마땅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착각?”
“그래. 난 너랑 다르게 연약한 소시민이라고? 그러니까 어깨에 힘 좀 빼는 게 어때?”
“연약해?”
허, 하고 그녀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내가 말했지만 안 믿기는 거 알아.
“그런 녀석이 내 공격을 다 피해?”
그도 그럴 게 한 대도 맞지 않고 다 피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실력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오버 떨면서 피하고 있긴 하나, 어느 정도 수준에 달하면 그게 우연이 아님을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내가 좀 재빨라서 말이지?”
그렇다고 내가 솔직하게 말하진 않겠지만. 능청스럽게 뻔뻔히 웃으며 진정하란 듯 두 손을 뻗었다. 조선지는 그런 나를 날카롭게 노려보며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더니 이를 아득 깨물며 소리쳤다.
“…웃기지 마. 그건 빠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아, 역시 안 통하나. 나는 멋쩍게 미소 지으며 뒷목을 문질렀다
“에헤이. 진정해, 진정. 그렇게 인상 쓰면 이마에 일찍 주름진다?”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이며 그녀를 진정시키려 들자 조선지의 얼굴이 더 험악해졌다.
“남이사, 너랑 무슨 상관인데?!”
“으왓.”
팟, 하고 주먹이 코앞에 스쳤다. 재빠르게 피하자 조선지는 그게 더 열이 났는지 곧장 다리를 휘둘렀다.
‘…빈틈.’
나는 내지르는 다리에 큰 공백을 곁눈질로 보며 몸을 크게 뒤로 젖혔다. 그러면서 다급한 것처럼 모래 위를 굴렀다.
‘이거 참. 난감하네.’
확실히 공격 하나하나에 위력은 굉장했다. 만약 맞으면 골로 갈 것 같은 위협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동작이 너무 커.’
그래서 피하기가 쉽다. 복싱이란 건 세계의 온갖 기술이 난무하는 장이다. 개중엔 당연히 태권도도 있었다. 물론 복싱 룰에서 태권도의 모든 기술이 허용되는 게 아닌 만큼 모든 것을 본 게 아니지만, 그 발차기만은 나도 상대할 때마다 위협적이라 신경 써서 피할 정도였다.
공격 동작 범위가 큰 만큼 최상의 타이밍일 때 발차기가 내질러진다. 주 공격기가 큰 위력을 가졌기에 잘못 맞으면 그 상태로 바로 K.O.였다. 내 분야는 아니지만 그건 태권도 경기 안에서도 마찬가지겠지. 그런데 어쩐지 세계 랭킹 3위라는 녀석을 상대하면 상대할수록 자꾸 거슬리는 게 있었다.
‘뭐랄까, 동작이 좀 굳어 있는 것 같단 말이지.’
오랜만에 몸을 움직이기라도 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러고 보니… 방금 전, 사회자가 2년 전 대회라고 했었나?
‘혹시 그 이후에 그만뒀나.’
그렇다면 일반고에 진학한 것도 이해가 간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자리에서 살짝 몸을 일으켰다. 당장이라도 피할 준비를 마치며 그녀의 자세를 유심히 관찰했다. 오랜 시간을 걸쳐 완성한 만큼 단단했지만, 그렇다고 2년의 공백은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나도 그걸로 얼마나 힘겨워했던가. 물론 이 몸은 근육부터 끄집어내느라 바빠서 더 힘겨웠다만… 아무튼, 그렇다면 저렇게 몸이 굳을 만도 했다. 상대가 내가 아니라 일반 시민, 아니 웬만한 일진은 상대도 안 됐을 거다. 그러니 저 녀석이 저렇게 이를 갈며 황당해하는 거겠지.
‘그렇다고 응수해도 문제고. 이걸 어쩌냐….’
하지만 이러한 생각도 내가 제대로 상대가 가능할 때의 이야기다. 지금은 아무리 생각해도 도망치는 것밖에 답이 안 나왔다. 내 눈엔 빈틈뿐이지만, 일반인의 눈엔 전혀 아닐 터였고, 그 빈틈이 보이는 실력자들, 예를 들어 저기 관람석에 있는 아빠나 김서연이라면 내가 움직여서 대응하는 순간 분명 이상하게 볼 것이 뻔했다.
“난감하네….”
쩝, 하고 입맛을 다시며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하면 좋을까.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야, 진정해. 보다시피 난 이렇게 피하기 바쁘다고. 뭐 때문에 내 실력을 그렇게 치켜세워 주는 건지 모르겠다만 너무 그리 예민하게 굴지 마~. 나같이 평범한 사람한테 기 써 봤자 득될 게 뭐 있다고 그래?”
물론 내 실력은 조금도 평범하지 않지만. 약간의 틈만 제대로 보여 봐라. 바로 장외 시켜 주마. 나는 속에 칼을 품고 뻔뻔하게 말했다. 어차피 도발은 경기에서 기본 소양이나 마찬가지. 이 정도야 우습지도 않고 그냥 넘기겠지만….
“아니, 내 눈은 절대 틀리지 않아!!”
“엥?”
뻔뻔히 웃는 낯이 살짝 삐끗했다. 하지만 조선지는 진지하게 폭탄을 투하했다.
“내가 널 지켜봐 온 이 1년! 넌 절대로 평범한 녀석이 아니야!!”
“…1년?”
아니, 잠깐. 1년이나 지켜봐 왔다고?!
“왜?! 할 짓 더럽게 없네!!”
아차, 말하고 나서 나는 입을 가렸다. 너무 당황해서 본심이 튀어나와 버렸다.
“으윽…! 나라고 해서 널 지켜보고 싶었는 줄 알아!!”
쾅쾅! 조선지가 신경질적으로 발을 굴렀다. 그러곤 그녀는 나를 척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다 네가 체육 시간마다 불성실하게 참여해서 그런 거잖아!”
“뭐?”
나는 그 황당한 소리에 얼굴을 찌푸렸다. 아니, 이게 무슨 개소리야.
“내가 가장 열심히 하는 과목이 체육인데 뭔 개소리야!”
가장 좋아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과목 1순위가 체육인데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그 황당무계한 소리를 곧장 반박하자 조선지는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리며 대꾸했다.
“그럼 반 대항 피구나 농구, 육상 왜 이런 데엔 참여 안 하는데?! 매번 아프다, 상태가 안 좋다! 오늘 컨디션이 영…! 하면서 다 빼놓고!!”
조선지는 말하면서 성질이 났는지 주먹과 발을 내 쪽으로 휘두르며 그 스트레스를 발산했다.
“네가 그렇게 피하지만 않았어도 나도 이렇게까지 안 했어!”
나는 주먹을 반사적으로 피하면서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핑계야!”
그게 왜 내 탓인데?! 내가 체육 시간 빠진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이렇게 화풀이를 하는 거냐고!
“네가 날 작년부터 어떻게 봐 왔는지 모르겠다만…! 네 승부욕이나 채우고자 한다면 다른 놈 알아봐!!”
날 끌어들이지 말라고 정색하자 조선지의 공격이 일순 멈췄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와다다 말을 쏟아 냈다.
“널리고 널린 게 일진이잖아! 보아하니 선수 생활은 그만둔 것 같은데 차라리 그쪽을 노려! 네 실력이라면 입지 정도는 충분히….”
“닥쳐-!!!!”
훙-!!!!!
“으왁-!!”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강도였다. 나는 아찔하게 그 발차기를 피하며 거리를 벌렸다. 조금만 더 얕게 피했다면 큰일 날 뻔했다. 나는 놀란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가슴에 손을 얹었다.
“웃기지 마. 웃기지 말라고…!”
조선지는 고개를 숙이며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곤 번뜩 고개를 들어 올리며 외쳤다.
“그런 수치를 저지를 바엔 내 다리를 분지르겠어!”
“!”
정신이 찬물을 끼얹은 것 같았다. 나는 눈을 부릅뜨며 그녀를 보았다. 조선지는 그런 내게 성큼 다가왔다.
“설령 이 길을 그만뒀어도, 나는 그런 명예를 더럽히는 짓 따위 하지 않아.”
그리고 그녀는 내 멱살을 잡아채며 내게 강하게 시선을 부딪쳤다.
“난 너와 달라. 서이나.”
“…….”
나는 말없이 그녀를 보았다. 태워 죽일 것 같은 강한 열기가 담긴 시선이었다. 나는 그 눈을 피하지 않고 보다 이내 어떤 깨달음이 뇌리를 스쳤다.
‘아, 그렇군.’
그런 건가. 나는 픽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멱살을 가로챘다. 그러곤 낮게 속삭였다.
“알겠어. 너, 날 발판 삼고 싶은 거구나?”
네 그 알량한 자존심을 채우기 위해.
“?!”
조선지가 내 말에 몸을 크게 떨며 내 옷깃을 놓쳤다. 하지만 나는 싸늘하게 눈을 가라앉히며 그녀를 향해 조소를 그렸다.
“너, 3위란 게 마음에 안 들었나 보지? 왜 더 넓은 세계를 마주하니 쫄렸나? 그래서 도망쳤어? 어?”
성큼 그녀에게 다가갔다. 조선지는 내가 다가간 만큼 발을 뒤로 주춤거렸다.
“좌절을 맛보고 내려왔지만, 그 길을 포기하긴 싫었나 봐?”
하지만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진 자존심을 회복하기란 쉽지 않았을 거다. 그렇기에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 타깃이 바로 나였다.
다름 아니라, 내가 조커이니까. 언제부터 그렇게 생각해 왔는지, 언제부터 눈치를 챘는지 모른다. 하지만 조커라고 여기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공격 태세를 갖추기도, 1년 동안 지켜봐 올 일도 없었겠지. 그 이름이 유명세를 탄 건 얼추 작년부터라 했으니 시기적으로도 맞았다.
조커는 강하다. 그러나 그 조커의 정체는 불분명하다. 그렇기에 그 프레임을 단 한 명을 향해 씌우는 건 손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가장 유력한 이의 운동 신경도 나쁘지 않았으니 그녀의 타깃이 정확히 꽂힌 건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그런데 이걸 어쩌지?”
나는 그녀의 어깨를 꽉 잡았다. 그러곤 억지로 나와 시선을 맞추며 그녀만 들리게 조용히 속삭였다.
“난 너한테 질 생각이 없는데.”
너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 조커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녀가 고른 게 나라는 게 문제였다.
“난 네 발판이 아니야. 조선지.”
그녀의 자존심을 채워 줄 생각은 없다. 무엇보다 그런 문제는,
“네가 알아서 극복해.”
타인이 아닌 스스로의 극복 과제였으니 말이다. 그 열등감은 타인을 짓눌러서 채워 봤자 한계가 있었다. 나는 그러한 선수를 많이 봐 왔고, 상대도 해 봤다. 그렇기에 나는 이 길을 먼저 갔던 선배로서 그녀에게 충고했다.
나는 꽉 잡고 억누르던 그녀의 몸을 해방시켰다. 조선지가 그 반동에 몸을 잠시 휘청였다. 이 정도 말했으면 내 의도가 전달됐을 거다. 나는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보다가 숨을 내쉰 후 분위기를 환기시킬 겸 가볍게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네가 무슨 거대한 착각을 한 모양인 것 같아서 말하는데, 난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빠.”
“어?”
방금 뭐라고 한 거지? 나는 말을 하다 멈추고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이를 아득 깨물며 팟, 하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강하다고 생각하는 상대를 이겨서 자존심 채우는 게 뭐가 나쁜데!!”
한순간이었다.
“어.”
그녀의 발이 한순간에, 단 1초의 딜레이도 느껴지지 않는 공격이 내게 직격했다. 피할 새도 없이 가격된 공격에 몸이 붕 떠올랐다. 반사적으로 막은 팔과 다리가 있었으나, 공중으로 떠오른 몸까진 막을 수가 없었다.
‘아, 장외다.’
그리고 나는 직감했다. 이 공격으로 나는 장외가 될 것임을. 한순간의 방심으로 실격패가 될 것임을. 나의 머리가 차갑게 그 사실을 알려 왔다. 나는 싸늘하게 식은 심장을 느끼며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등 뒤로 덮쳐질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 머리를 감쌌다.
쿠당탕-!!!
요란한 소리가 경기장에 울렸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충격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몸을 웅크렸다.
“……?”
그런데, 왜 아프지 않지? 게다가 뒤에서 뭔가가 날 감싼 게 느껴졌다. 나는 감고 있던 눈을 어리둥절하게 떴다. 이게 뭔 상황인가 싶어 멀뚱히 눈을 끔뻑이고 있는데, 뒤에서 앓는 소리가 불쑥 들려왔다.
“으아아, 삭신아아….”
나는 그 익숙한 목소리에 퍼뜩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뒤를 보자, 익숙한 얼굴이 낯을 일그러트리며 허리를 짚고 투덜거렸다.
“아, 시발. 존나 무거워. 누나 살쪘어? 왜 이렇게 무거워?”
그 투덜이의 정체는 다름 아닌 내 동생인 서이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