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245화 (245/306)

245. 최강혁 VS 반휘혈 (1)

***

두 번째 관문이 시작됐다. 이번 게임의 종목은 설명을 듣지 않아도 대강의 내용을 유추할 수 있을 정도로 확연했다.

이번 종목은 장애물 경주로 그물망이나 외나무다리 같은 설치물과 여럿 함정이 설치되어 각 게이트마다 내용이 달랐다. 그러나 목적지로 보이는 곳이 한 곳인 걸 보면 골 지점은 하나인 듯싶었다. 이전 관문보다 한층 더 높아 보이는 난이도였으나 이번 참가자들의 명단이 범상치가 않은 만큼 다들 한마음으로 이번 경기에 크나큰 기대를 품은 게 전해졌다. 특히 그중에 가장 주목받는 것은 단연 두 사람이었다.

“꺄아아아아!!!! 최강혁 화이팅!!!!”

“반! 휘! 혈! 반! 휘! 혈-!!!!”

이 우렁찬 응원 소리를 보아라.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명히 들려왔다. 게다가 언제부터 들고 있었는지 모를 응원 현수막까지 있었다.

[최강은 곧 최강! 얼음 왕자님을 찬양하라!!! -노예 일동-]

[지존이여 영원하라! 마왕님께 충성충성-!! By. 마족 무리들.]

…덕분에 그리 알고 싶지 않았지만 두 사람의 별명과 팬클럽 회원 명칭을 알게 되었다. 얼음 왕자…, 마왕…. 마왕은 아까 있었던 일련의 사건을 통해 알게 되었으나 최강혁의 별명은 처음 알았다. 얼음 왕자라니. 정말 상상도 못 한 이명이었다. 아니, 얼음 왕자치곤 웃고 있던 모습을 자주 봐서 그런지 썩 와닿지 않았다. 물론 그게 거의 다 비웃음이긴 했지만, 아무튼 그러했다.

“후끈한 성원 감사합니다! 그럼 팀원과 상의가 끝난 참여자분들은 원하는 게이트 앞에 서 주세요!”

내가 눈을 흐리고 있는 와중에도 경기는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반휘혈과 최강혁은 같은 게이트에 섰다. 어차피 우승 후보인 만큼 반휘혈에겐 아무 곳이나 서라고 했지만 어떻게 저리 마주칠 수 있을까.

“…….”

“…….”

한 치의 망설임도 없던 선택에 두 사람은 서로 시선을 마주했다. 그러곤 불쾌한 것처럼 얼굴을 구기더니 각자 위압적인 시선이 오갔다.

‘음. 어떻게 보면 공식전인가.’

역시 라이벌 대결이려나. 나는 흥미로운 시선으로 두 사람을 보았다.

“오, 역시 저 둘이 붙는 건가? 이거 재밌겠네~.”

고찬영이 경기장을 벗어나려다 말고 내 곁에 서며 말을 걸었다.

“누가 이기려나~. 친구님은 누가 이길 거 같아?”

“물론 휘혈… 아니, 잠깐. 넌 네 팀 응원해야지.”

“하하, 친구님. 농담도.”

고찬영이 너털웃음을 흘렸다. 그는 이미 자신의 팀의 승패 유무를 예측했는지 경기를 포기한 상태였다. 사실 이렇게 될 거란 걸 알았다나, 뭐라나. 게다가 이미 그의 팀원에겐 무리해서 쟤네들한테 휩쓸려 다치지 말라고 조언까지 해 두고 왔다고 한다. 어쩐지 그의 파트너인 남학생이 해탈한 듯 있던 것도 그 이유였나 보다.

“흠. 넌 산토리니 안 가고 싶어?”

이미 패배를 예견한 걸 떠나서 그의 반응이 너무 산뜻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하나 나는 별달리 안타까움을 느끼지 못하는 그의 반응이 의아해 물었다. 나라면 땅을 치며 미련을 철철 흘리고 있을 텐데 너무 깔끔하지 않은가.

“당연히 가고 싶지. 그것도 공짜 호화 티켓인데. 난 쟤네들처럼 재벌이 아니란 말이지~. 그리고 내가 쓰는 돈은 누나 돈이라 그렇게 펑펑 쓸 수도 없어.”

고찬영은 손을 저으며 태평히 대답했다. 누나 돈이란 말에 나는 순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순간 어떤 가정이 스쳤지만 나는 굳이 더 캐묻지 않고 말을 넘겼다.

“어.”

고개를 돌렸다가 불현듯 마주친 시선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지?’

왜 최강혁이 여길 보고 있었지. 그는 나와 시선이 부딪히는 것과 동시에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리며 고개를 돌려 버렸기에 그 마주침은 오래가지 않았다.

‘혹시 얘기가 다 들렸나.’

그럼 누가 이길지 말지도 하는 소리도 다 들렸을지도. 아니, 그렇다고 저렇게 기분 나쁜 티를 내다니. 저놈의 싸가지는 여전하구나. 나는 뚱하니 얼굴을 구기며 그를 향해 속으로 혀를 차 주곤 경기장을 벗어나기 위해 몸을 돌렸다.

“어, 그런데 경희는?”

문득 고찬영과 자리를 이동하다가 안경희가 보이지 않음을 깨달았다. 어디로 갔지? 하고 의아해하는데 고찬영이 툭툭 어깨를 건드렸다.

“저기 아냐?”

“음?”

나는 그 말에 그가 가리킨 곳을 확인했다. 그러곤 이상한 광경에 눈살을 찌푸렸다.

“쟤 저기서 뭐 해?”

“글쎄?”

타인의 시선이 닿지 않는 으슥한 곳에서 안경희가 바쁘게 손을 놀리며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다. 뭔가 급하게 알아볼 게 있었나?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고찬영에겐 먼저 가 보라고 말한 후 그녀에게 다가가려는데,

“일~어~나아아아악!!!”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버럭 외쳐 왔다. 그 소리에 놀라 안경희에게 가려다 말고 고개를 돌리니 서이수가 온갖 성질을 내며 큰 몸뚱어리를 흔들고 있었다. 그 정체는 바로 동생의 파트너인 서강이였다. 서강이는 몸을 웅크린 채 돌이라도 된 것처럼 서이수가 아무리 멱살을 잡고 흔들고 시끄럽게 굴어도 꿈쩍도 하질 않았다.

아니, 저놈의 자식. 이렇게 시끄러운데 어떻게 잘 수 있는 거지? 미동도 하질 않아 혹시 죽었나 의심이 될 정도였다.

“완전 기절했네. 저 상태론 일어나기 힘들 텐데….”

내 근처에 있던 다정한이 중얼거렸다. 그 소리를 듣고 나는 심각하게 얼굴을 굳혔다. 곤란하다. 저 녀석이 일어나지 않으면 이번 경기에 강적이 너무 많았다. 승률을 높이려면 서강이가 필요했다. 물론 우리 휘혈이가 이길 거라 장담하지만 혹시 모를 보험이 필요했다. 때마침 김시원이 서이수 곁에서 그를 깨우는 걸 돕고 있었기에 서강이를 일으킬 방법이 어떻게 없겠냐고 물어봤다.

“하아…. 이어달리기는 약속한 게 있으니 깨긴 할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아무래도 이번 이벤트 자체에 관심이 없는 것 같은데요.”

즉, 당장은 일어나기 힘들단 소리다. 김시원은 젖은 옷의 물을 신경질적으로 털었다. 조선지가 막아 주긴 했지만 그래도 전부 피할 순 없어 조금 젖어 있었다. 구름이 조금 끼긴 했지만 날은 아직 맑아 감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아 보여 나는 턱을 쓸며 고민했다.

‘어쩔까…. 그 방법을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나는 눈썹을 모으며 고민했다. 사실 내겐 저 녀석을 일으킬 카드가 딱 하나 있었다. 다만, 이게 리스크가 좀 있다 보니 함부로 꺼내기가 난감했다.

“G 팀 아직인가요? 슬슬 나오지 않으면 실격입니다!”

“악!! 야!!!! 네가 이러면 내가 고생한 건 뭐가 돼!!!”

사회자의 재촉에 서이수가 울분을 터트리며 서강이의 멱살을 짤짤짤 흔들었다. 하지만 서강이는 굳건히 일어나지 않았다. 입가에 침까지 흐르는 게 제대로 곯아떨어진 모양이었다. 정말 저놈도 난놈이었다.

음. 어쩔 수 없지. 나는 하는 수 없이 어깨를 으쓱이며 그쪽으로 다가갔다.

‘이수가 저렇게까지 해서 안 깰 정도면… 내가 위협해도 소용이 없겠지.’

그렇다면 방법은 역시 그것뿐이다.

“서강이.”

나는 서이수를 물리며 녀석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서강이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다고 걔가 일어날 리 없잖아! 걍 한 대 쥐어박아, 그냥!!”

서이수가 내가 얌전하게 깨우는 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항의했다. 이제 정말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나 보다. 김시원도 깨우면서 짜증이 났던지 동조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나는 흥분한 동생들에게 진정하라는 의미로 손을 저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 일어나면…,”

잠시 뜸을 들였으나,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결심을 마치고 말을 툭 내던졌다.

“다음 계주에서 빼 줄게.”

움찔. 서강이의 몸이 일순 튀었다. 잠에 빠져 있던 것 같던 낯도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방금 한 말로 잠에서 살짝 깼나 보다. …아니, 이 새끼 그냥 자는 척한 거 아닌가 의심을 품었으나 나는 눈을 흘기기만 하며 트집 잡지 않고 말을 이어 갔다.

“혹시 반대하는 애들이 있어도 걱정 마.”

나는 말을 잠시 멈춘 후 그에게 확고히 말했다.

“내가 다 막아 줄게.”

“!”

서강이의 몸이 크게 덜컹였다. 이젠 완전히 잠이 깬 듯한 몸짓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그러니 나는 녀석이 듣고픈 말로 마지막 쐐기를 박아 넣으며 손을 내밀었다.

“조기 퇴근… 하고 싶지 않니?”

번뜩. 굳게 감겨 있던 그의 눈이 떠졌다. 그러고 커다란 손이 내 손을 덥석, 하고 팔씨름하듯 굳건히 맞잡았다.

작전명, 채찍이 안 되면 당근을 들어라. 가 훌륭히 들어 먹히는 순간이었다.

“헐…?”

“…….”

서이수가 이 모습을 보며 황망한 탄식을 내뱉었다. 김시원도 잔뜩 떫어진 시선으로 서강이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무시하며 그의 몸을 일으켰다. 서강이는 잠자코 일어나 자리에 똑바로 섰다. 평소 잠이 가득 담긴 눈빛이 아닌 또렷하고도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역시 조기 퇴근이란 건 학생과 사회인을 뛰어넘어 모두에게 통하는 만고불변의 최고의 카드다. 특히 서강이처럼 잠자고 쉬는 걸 좋아하는 애라면 통할 줄 알았다.

서강이와 제대로 알고 지낸 지는 일주일도 되지 않았지만 김시원과 함께 그를 체육 대회에 참여시키기 위해 윽박…이 아니라 설득을 했었다. 그 기간 동안 난 대충 이 녀석이 어떤 놈인지 파악했다. 서강이 이 녀석은 잠과 휴식을 지나치게 좋아한다. 아니, 그냥 사랑하는 것 같다. 그렇기에 애매하게 쉬고 다음 계주를 할 바엔 지금 제대로 뛴 다음에 이후 마음 편히 계속 쉬는 게 그에게도 솔깃하리라. 그러한 내 예상은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적중했다.

“근데 조건이 있어.”

하지만 인생사 그렇게 쉽게 휴식을 얻으란 법이 있던가. 그가 휴식을 제공받기 위해선 내가 원하는 조건을 통과해야만 했다.

“아, 걱정 마. 그렇게 어렵진…, 아마 어렵진 않을 거야.”

나는 그의 어깨를 내리누르며 조건을 속삭였다. 내 얘기를 듣는 서강이의 표정엔 딱히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잠시 눈썹을 휘며 뭔가 할 말이 있는 눈빛이긴 했지만 그는 끝내 별다른 의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잘 생각했어!”

그의 긍정에 기분이 좋아진 내가 등을 팡, 하고 시원하게 두드렸다. 서이수가 어이없는 얼굴로 보는 게 느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럼 너만 믿을게.”

다시 한번 당부하자 끄덕. 하고 서강이가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러곤 드디어 게이트 앞에 섰다. 그러자 주위에 함성이 더 커다래졌다.

“아니, 누나. 잠깐만. 쟤를 계주에 뺄 정도야? …물론 체육 대회야 우리가 다 이긴 거긴 하지만 한도훈이 또 무슨 꿍꿍이를 숨겼을 줄 알고.”

이제 정말로 가야겠다 싶어 떠나려는데 서이수가 나를 붙잡으며 미심쩍게 항의했다. 그것은 순간적으로 내 발을 세울 만큼 굉장히 합리적인 말이었다.

“그리고 한도훈이야 이윤한테만 집중할 것 같으니 괜찮다 쳐도, 누나 말대로라면 쟤 상대는….”

서강이에게 한 말을 함께 들은 서이수가 눈짓으로 어느 한쪽을 힐끗 가리키며 불신의 시선을 보냈다. 그 상대는 보지 않아도 일목요연했기에 나는 굳이 그곳을 보지 않았다. 아무래도 서이수는 계속 잠만 퍼질러 자고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지 못한 그에게 불신이 쌓인 모양이었다. …물론 앞선 이벤트로 인한 분노도 포함되어 있었을 테고 말이다.

“음. 그건 걱정 마.”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까지 그를 참여시키고자 하는 데엔 다 이유가 있었다. 나는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그의 어깨를 툭 두드렸다.

“무슨 근건데? 시원이 너는 왜 가만히 있어?!”

“음.”

서이수가 답답해 소리쳤다. 화살이 김시원에게도 향했으나 김시원은 어딘가 심란한 표정으로 날 보다가 이내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내 생각에 동의한다는 뜻이었다.

“…아니, 진짜 뭔데? 나만 따돌리지 마!”

서이수가 씩씩거리며 발끈했다. 나는 슬슬 시작하려는 분위기를 눈치채곤 자리를 옮기며 서이수를 진정시켰다.

“뭐, 진정해. 곧 알게 될 테니까.”

그리고 내가 장담한 대로 서이수의 의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펼쳐진 경기로 금방 풀리게 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