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246화 (246/306)

246. 최강혁 VS 반휘혈 (2)

***

두 번째 관문의 종목은 장애물 경주였다. 이전과 달리 양쪽 모두 종목이 같았으나 그 내용이 달랐다. 하지만 그 끝에 다다르는 골 지점은 같아 가장 먼저 도착하는 두 팀이 골 지점에 있는 깃발을 뽑으면 끝나는 게임이기도 했다. 물론 제한 시간도 있어서 한 팀만이 뽑았을 경우엔 그 한 팀이 최종 우승이었고, 시간을 넘겼을 시엔 가장 먼저 깃발을 뽑는 팀이 우승이었다. 즉, 머리싸움도 들어가는 치열한 게임이었다.

A 게이트 : 한도훈, 서강이, 다정한, 이윤, 김철수

B 게이트 : 반휘혈, 최강혁

쟁쟁한 인선이 명단에 오르자 관객이 들썩였다. 하지만 이 게임을 보는 대부분의 이들이 나같이 생각하는 바가 있었다. 이 게임의 주연은 당연히 반휘혈과 최강혁일 것이라고. 많은 이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그럼 준비…, 출발!”

탕-! 사회자의 신호에 맞춰 두 번째 게임이 시작됐다. 인선이 인선인 만큼 초반부터 난전이었다. A 게이트, B 게이트에 선 이들은 서로 앞다투어 다리를 건너고 그물을 헤집고 오르며 날아다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재빠른 몸놀림으로 장애물을 넘어섰다. 그 가운데 가장 치열한 건 당연 반휘혈과 최강혁이었다.

쾅-!

“!”

건너던 다리를 반휘혈이 무너트렸다. 최강혁은 눈살을 찌푸리며 재빨리 도약해 그곳을 넘었다. 그러곤 그대로 몸을 날려 반휘혈에게 다리를 내리꽂았다.

“……!”

빡-!!

반휘혈이 그 공격을 피하자 강한 타격음이 바닥에서 퍼졌다. 최강혁은 바닥에 부딪힌 반동을 이용해 가볍게 몸을 물렸다. 그러곤 공격하는 것처럼 골 지점을 향해 돌진했고, 반휘혈은 그 진로를 방해하는 것처럼 다리를 걸었다.

최강혁이 다리를 피하자 반휘혈은 그가 주춤거리는 사이 다시 골 지점으로 뛰어갔다. 최강혁이 머뭇대는 건 아주 찰나였고 그 뒤를 다시 바짝 쫓았다. 그렇게 서로에게 접근하려 하면 두 사람은 틈을 보아 그 행로를 방해했다. 설치된 장애물들이 하나둘씩 부서지고 망가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반휘혈과 최강혁은 서로 죽일 듯 노려보며 앞다투어 치열하게 경쟁했다.

B 게이트가 이렇게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는 와중, A 게이트에서도 꽤나 흥미로운 접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읏!!”

“어딜…!”

이윤이 가로막힌 앞을 보며 신음을 내뱉었다. 그는 난처하게 얼굴을 찌푸리며 거세게 발을 굴렸다.

“으웃…! 나도 지나갈래!”

“하, 누구 맘대로?”

다름 아니라 이윤과 한도훈은 다른 참여자들과 달리 무대의 초입부에 발이 묶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이 여간 답답했는지 이윤이 볼을 부풀리며 항의하자, 지형을 이용해 이윤의 진로를 적극 막고 있던 한도훈이 한껏 이죽거렸다.

“넌 그냥 여기서 분수에 맞게 떨어지면 돼.”

그의 얼굴은 마치 이윤을 괴롭히는 것에 있어서 깊은 희열을 느끼는 모양새였다.

“도훈이는 맨날 나한테만 이래!!”

그런 집요한 방해에 이윤이 우는소리를 외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한도훈의 이윤 방해 공작을 즐기고 있을 때 그 누구보다 수월히 경주를 하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다정한과 서강이었다.

두 사람은 딱히 부딪히는 일 없이 경주하듯 빠르게 넘어섰다. 그러다 보니 B 게이트에서 경쟁을 펼치던 반휘혈과 최강혁보다 먼저 앞설 수밖에 없었다. 흥미로운 경쟁인 것을 떠나서 허무하게 우승을 빼앗길 위기였다.

그렇게 다정한이 깃발에 거의 다다를 즈음,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변수 하나가 출몰했다.

촤아악-!

“!”

다정한은 저를 가로 막아선 이를 보곤 눈을 크게 떴다.

“…강이?”

그것은 바로 서강이었다. 서강이는 깃발로 향하는 길목을 수비하는 것처럼 자리를 지키듯 서 있었다. 다정한은 그의 돌발 행동에 꽤나 놀랐으나, 이내 침착함을 되찾고 차분히 입을 열었다.

“네가 이렇게까지 움직이다니, 저 선배 볼수록 대단한걸.”

다정한은 싱긋 웃으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빈틈이 생기는 순간 뚫고 지날 생각이었다. 하지만 서강이는 말없이 다정한을 보며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다정한은 그 빈틈없는 자세를 보며 난처한 미소를 그렸다.

‘곤란하네.’

평소의 멍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총기가 깃든 눈동자, 힘이 들어간 몸은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 묵직한 위압감을 주었다. 저런 상태면 쉽게 뚫고 지나갈 수가 없음을 알기에 다정한은 슬며시 발을 움직이며 탐색했다. 하지만 다정한이 움직인 만큼 서강이도 그 방향을 따라갔다. 대충 넘어갈 생각이 전혀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조용하고 지루한 대치가 이어지자 관객석에선 의구심이 번져 갔다. 쉽게 끝을 맞이할 거라 여겼던 경기에 예상치 못한 변수의 등장으로 들떴던 관객들이었으나, 다른 참여자들과 달리 적극적으로 몸을 부딪치지 않는 다정한의 소극적인 태도는 그들로 하여금 점점 불만이 쌓이게 했다.

“뭐라도 해라-!!”

“재미없게 뭐 하는 짓이야-!!”

곧 그를 향해 야유가 터져 나오는 건 순식간이었다. 다정한은 곳곳에서 들려오는 야유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은 채 빙긋 웃으며 서강이에게 말했다.

“강이야. 그냥 보내 주면 안 될까? 아니면 우리 둘이 깃발을 나누는 게 가장 이상적이지 않아?”

“…….”

다정한의 말에 서강이의 눈이 좁혀졌다. 그것은 긍정의 뜻이 아니었다. 역시 그렇겠지. 다정한은 평소 그의 성정을 생각건대 다음 관문까지 경기를 할 의향이 없는 서강이의 생각을 읽어 냈다.

“그럼 나라도 보내 주는 건? 아니면 내가 아닌 혁이를 붙잡고 반휘혈만 보내도 좋지 않아? 그럼 너도 쉬고, 저 선배가 원하는 대로 반휘혈 팀도 통과일 텐데.”

당연히 궤변이었다. 그렇게 되면 서강이가 이렇게 그를 막고 있을 이유 따윈 없었다. 항복을 권유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말이었으나 만사 귀찮음을 달고 다니는 그에겐 솔깃한 말이기도 했다. 싱긋, 웃으며 뻔뻔히 말하자 서강이는 차분히 눈을 끔뻑이더니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아니.”

다정한은 오랜만에 듣는 그의 목소리에 잠시 놀란 듯 눈을 떴다. 하지만 이어지는 서강이의 말에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무서워서, 안 돼.”

앞뒤 맥락이 다 잘린 말이었다. 하나 그 말로써 다정한은 서강이가 움직인 원인을 완전히 이해했다. 서강이는 당장 끝낼 수 있는 이 게임을 이렇게 유지하는 이유. 그것은 다름 아니라 서이나가 무섭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저 선배는 둔한 제 친구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는 데 성공한 모양이었다.

‘…그럼 웬만한 말론 안 움직이겠는걸.’

아무래도 서강이는 제한 시간까지 버티다가 반휘혈만 보내어 그 팀을 단독 우승으로 만들어 줄 모양이었다. 아마 제가 아닌 최강혁이 이 자리에 왔어도 서강이는 최강혁도 보내 주지 않았겠지. 이대로 항복하고 패배하는 게 가장 쉬운 길임을 알면서도 이렇게 버티고 있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서강이는 승리에 대한 야망도 없으며, 그렇다고 쉬이 져 닥쳐올 위기를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던 모양이었다.

‘딱히 상품에 욕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되면 나도 오기가 생기는데.’

이제껏 넘어온 장애물보다 더 험준한 벽이 생겼다. 그 사실이 어쩐지 승부욕을 자극해 다정한은 눈을 차갑게 빛내며 슬그머니 미소를 그렸다.

“!”

다정한과 서강이가 조용한 대치를 벌이던 그 와중, 최강혁이 문득 골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덕분에 그는 자신이 뒤처졌음을 깨달았다.

‘쯧, 머저리같이…!’

그는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 눈살을 찌푸렸다. 반휘혈과 맞붙게 되면 이상하게 머리에 열이 오를 때가 있었다. 평소라면 무시를 했을 터지만 그와 경쟁 구도가 되니 온갖 신경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마치 손에 찔린 작은 가시처럼. 그러다 보니 앞선 상황을 눈치채지 못했다. 최강혁은 반휘혈을 무시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섰다.

훙-!!

“……!”

그러나 그것은 반휘혈의 공격으로 인해 무산됐다. 최강혁은 박차던 걸음을 물리며 반휘혈을 노려봤다.

“너…, 지금 이럴 때가 아닌 거 알고서 하는 짓거리냐.”

“…….”

반휘혈은 그를 무덤덤히 보았다. 그러곤 힐끗 골 지점을 한 번 본 후 다시 최강혁을 말없이 보았다. 그 무관심한 태도에 최강혁은 헛웃음을 흘렸다.

“아, 그렇군.”

그렇게 된 거군. 최강혁은 반휘혈의 태도에서 그의 의중을 읽고는 입꼬리를 삐뚜름하게 올렸다. 그는 눈매를 확 좁히며 으르렁거리듯 스산하게 중얼거렸다.

“저 둔탱이를 잘도 구슬렸네, 땅콩.”

진로가 막혔다면 그 벽을 부수어 뚫고 지나가면 그만이었다. 최강혁은 곧장 자리를 박차려 했다.

“…땅콩?”

최강혁의 중얼거림을 들은 반휘혈이 그 단어를 되뇌었다. 그 말에 최강혁이 일순 몸을 멈춰 세웠다. 이제껏 감정이 없는 것처럼 무감정한 얼굴로 최강혁을 상대하고 있던 반휘혈이 눈매를 살짝 좁혔다. 최강혁은 그런 그를 향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뭐야, 그 와중에 누굴 부른지는 기가 막히게 아는 건가? 진짜 유별난 집착이네.”

소름 끼치게. 최강혁이 반휘혈을 향해 이죽거렸다. 반휘혈은 그런 최강혁을 물끄러미 보며 싸늘히 눈을 가라앉힌 채 경고했다.

“부르지 마.”

“뭐?”

“부르지 말라고, 두 번씩이나 말해야 들리나?”

최강혁은 그 오만한 말투로 내리꽂는 명령 같은 어조에 잠시 벙쪘다. 하나 이내 불쾌함이 전신을 감싸 그의 낯은 냉랭히 변했다.

“지랄도 적당히 해라. 차이기까지 해 놓고 찌질하게 저 혼자 약혼자 행세라니, 꼴사나운 것도 정도껏이지.”

“…….”

그 말에 반휘혈의 얼굴에도 한기가 깃들었다. 서늘한 위압감이 두 사람이 선 공간을 지배했다. 반휘혈과 최강혁은 서로를 노려보길 잠시, 곧 너 나 할 것 없이 동시에 자리를 박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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