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 최강혁 VS 반휘혈 (3)
최강혁과 반휘혈이 다시 맞붙자 관객석에선 열렬한 반응이 쏟아졌다. 명실공히 도방고 최강자들이자 라이벌의 대결이었다. 입학을 맞이하고 두 사람이 마주하는 순간 언젠가 서열 싸움이 일어날 거란 예상과 달리 조용했던 나날이었다. 작은 마찰은 있었긴 했으나 이렇게 제대로 붙은 건 처음이니만큼 관중들의 기대는 컸다. 그것도 HD 그룹이 주관하는 체육 대회의 무대에서라니! 상상을 뛰어넘는 빅 이벤트에 객석 곳곳에선 한도훈을 향한 찬양의 소리도 들려올 정도였다.
과연 누가 도방고 1인자의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두 사람, 최강혁과 반휘혈은 그러든 말든 앞다투어 진로를 방해하고 장애물을 헤쳐 나갔다. 곧 두 사람은 골 지점에 거의 근접한 장애물 구간에 다다랐다. 듬성듬성 면적이 좁고 각기 높낮이가 다른 기둥이 곳곳에 늘어선 코스로 반휘혈이 그곳에 먼저 한발 앞서 도착해 건너고 있었다. 그 중간쯤 다다랐을까, 돌연 몸을 돌려 가까이 있던 기둥 하나를 강하게 쳤다.
“?! 이 개…!”
그곳은 다름 아닌 최강혁이 막 발을 딛던 곳이었다. 지면이 충격으로 거세게 흔들리자 최강혁의 몸이 휘청이며 한순간에 기우뚱 기울였다. 이대로 떨어진다면 탈락인 순간이었다.
“…칫!”
하지만 최강혁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 발에 힘을 줘 옆을 향해 힘껏 도약했고, 떨어지기 전에 다른 기둥을 손으로 잡아챘다. 그 반동으로 기둥이 흔들렸으나 최강혁은 손아귀 힘으로만 그것을 버텨 냈다. 흔들림이 멈추자 그는 곧장 그 위로 훌쩍 올라섰다.
“쯧.”
최강혁이 버텨 내자 반휘혈이 혀를 찼다. 흔들리는 기둥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거리를 벌렸던반휘혈이 아직도 안 뒤졌냐는 눈빛으로 쳐다보자 그 시선과 마주친 최강혁의 이마에 핏대가 울컥 섰다. 최강혁은 이를 강하게 빠득 갈며 자리를 박찼다. 반휘혈은 그에 코웃음을 치며 보란 듯이 점프해 장애물 코스를 벗어나는 장치인 손잡이를 붙잡았다.
촤르륵-! 손잡이는 와이어를 타고 매끄럽게 다음 코스로 이동했다. 반휘혈은 바닥에 착지한 후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제한 시간 1분 남짓.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는 지체 없이 바로 그 자리에서 도약해 한순간에 중간 이상을 뛰어넘은 후 언덕에 놓인 밧줄을 가로채듯 한번 잡아 목적지 부근에 이르렀다. 꽤 높은 언덕이었음에도 거의 정상에 도달한 점프력에 곳곳에서 탄성이 울렸다. 하지만 반휘혈은 무관심한 얼굴로 묵묵히 정상에 오르려 팔에 힘을 준 순간이었다.
“…….”
미세한 금이 간 것처럼 그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하, 내 앞에 서게 둘 줄 알고?”
어느새 뒤쫓아 온 최강혁이 반휘혈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반휘혈은 밧줄을 잡은 채 몸을 돌려 시선을 내렸다. 최강혁은 눈을 날카롭게 치뜨며 숨을 작게 몰아쉰 채 반휘혈을 노려보고 있었다.
“…….”
끈질기군. 반휘혈은 최강혁을 물끄러미 보며 생각했다. 어차피 우승은 자신의 것. 저희들의 신혼여행을 방해하려는 녀석이 불쾌했다. 반휘혈은 아래쪽으로 자꾸만 끌어 내리려는 그의 손을 떨치기 위해 다른 발을 올렸다. 저 손가락이 으스러진다면 잡고 싶어도 잡을 수 없겠지. 반휘혈은 무감히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실천하려고 하는 그때.
“반휘혈, 30초-!!!”
그의 귀를 강타하는 외침이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발에 제동을 걸며 시선을 돌리자 서이나가 그를 향해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서두르라는 몸짓이 왠지 모르게 자꾸만 시선을 끌어당겼다. 그 모습을 계속 보고 싶었지만 점점 험악해지는 서이나의 표정에 반휘혈은 어쩔 수 없이 시선을 돌렸다.
“하, 이대로 둘 다 떨어지는 것도 재밌겠네.”
최강혁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반휘혈에게 조소를 던졌다. 반휘혈은 그 말에 서늘히 눈을 가라앉히며 단조로운 어투로 말했다.
“숨조차 버거운 녀석에게 질 것 같진 않은데.”
“…뭐?”
시비 같은 말에 최강혁의 얼굴이 험악히 구겨졌다. 하나 그의 반응을 하등 신경 쓰지 않는 반휘혈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덤덤히 말했다.
“난 안 피우거든.”
담배.
한순간 최강혁의 얼굴이 벙쪘다. 예상치 못한 기습처럼 다가온 말에 당황한 건지 그의 손에서 힘이 일순 빠졌다.
반휘혈은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재빠르게 발을 빼내며 한순간에 언덕 위를 올랐다. 그러자 마주한 건 대치하고 있던 서강이와 다정한이었다.
“!”
다정한은 반휘혈이 자신의 근처에 다다른 걸 목격하곤 그를 제지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서강이가 그 사이를 파고들어 그의 손이 닿지 못하게 막았다. 평소 잠만 자던 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재빠른 몸놀림이었다.
그 틈에 골 지점에 순식간에 다다른 반휘혈이 깃발을 뽑았다.
“…A, A 팀! 통과! 통과입니다-!!!!”
경기의 양상을 숨죽이며 지켜보던 사회자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결과를 외쳤다. 반휘혈은 15초 남짓한 시간을 보며 숨을 작게 몰아쉬며 자연스럽게 서이나가 있을 방향을 보았다.
그때였다.
“아, Z 팀! Z 팀 아직 포기하지 않은 건가요!!! 한 번의 도약으로 바로 언덕을 올랐습니다-!!!”
‘굉장한 점프력입니다!’ 하며 감탄을 내뱉는 듯한 사회자의 목소리가 잇따랐다. 사회자의 말대로 언덕을 한순간에 오른 최강혁은 성큼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그 앞으로 커다란 덩치가 막아섰다.
“비켜.”
“…….”
조용한 경고였다. 하지만 서강이는 저도 모르게 몸에 힘이 들어갔다. 위험하다. 그의 본능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은 10초 남짓. 정말 조금만 더 버티면 되는 상황이었다.
‘강이, 네가 할 일은 다정한이랑 최강혁을 막는 거야. 알았지?’
서강이는 서이나의 당부를 다시금 떠올렸다. 침을 삼키며 눈앞에 있는 이, 최강혁의 발을 아주 잠시만 붙잡기로 마음먹었다.
“야.”
그렇게 다짐하던 때 그의 어깨가 돌연 붙잡혔다.
“?!”
채 반응하기도 전에 다가온 손에 서강이의 몸이 움칫 굳어졌다. 최강혁과의 거리가 한층 가까워지며 앞머리로 가려진 그의 눈을 마주 보았다.
“비키라는 말, 안 들려?”
핏빛과도 같은 안광이 기이하게 일렁였다. 그와 마주친 서강이의 눈이 커다래지며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무언가를 막으려던 순간,
“……!”
“세이프.”
서강이의 몸이 강한 힘에 의해 끌어당겨졌다. 한순간에 중심을 잃은 그가 바닥에 넘어진 채 어리둥절한 시선으로 제 위를 올려다보았다. 다정한이 멍한 서강이를 보고 싱긋 웃으며 그 몸을 제압하듯 눌러 최강혁에게 말했다.
“5초 남았어, 혁아.”
고갯짓으로 골을 가리키자 최강혁이 잠시 그들을 물끄러미 보다가 혀를 차며 나아갔다. 최강혁은 성큼 발을 내디디며 깃발을 들기 전, 그 앞에 선 반휘혈을 향해 냉랭한 시선을 쏘아봤다. 그 상태로 그는 깃발을 보지도 않은 채 그것을 뽑아냈다.
“…아, 어, 네! 제한 시간 1초! 1초 남기고 Z 팀 통과-!! 결승 진출은 A 팀과 Z 팀이 되겠습니다-!!!!”
1초의 시간을 남기고 Z 팀이 통과하자 잠시 그 광경을 굳은 채 바라보고 있던 사회자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외치자 곧 관객석에서도 반응이 나타났다. 마른침을 삼키며 그 광경을 보던 이들은 곧 열광하며 함성을 내질렀다. 끝나지 않은 결투의 현장에 다들 들뜬 듯했으나 무대의 분위기는 그 양상을 달리했다.
“…….”
“…….”
고요한 시선이 두 사람 사이를 오갔다. 하지만 그 사이엔 그 누구도 감히 끼어들기 힘든 묵직하고 냉엄한 기류가 오갔다. 다정한은 그 모습을 조금 먼발치에서 보며 난처히 웃음을 흘렸다.
‘큰일이네.’
이대로라면 게임이고 뭐고 정말 한 판 붙게 생겼다. 아래쪽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반휘혈이 최강혁을 자극한 건 틀림없었다.
원래라면 최강혁이 왔을 타이밍에 맞춰 서강이가 최강혁을 잠시라도 상대하고 있을 때 빈틈을 노려 깃발을 쟁취하려 했다. 하지만 최강혁의 분위기가 평소보다 더 살벌했다. 다정한은 그 모습이 위험하다고 판단했고 사태가 커지기 전에 서강이를 끌어당겼다. 그렇게 양보한 승리건만 저래서야 이 이벤트가 난장판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길일 것만 같았다.
“그래서,”
최강혁이 잔뜩 가라앉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너보다 약하다?”
그것은 확인이 아니었다. 헛웃음이 섞인 듯하였지만 그의 입가는 조금도 올라가지 않은 채였으며 그의 붉은 눈은 서슬 퍼렇게 안광을 발하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그 위압감에 눈도 못 마주쳤을 테고 기력이 약한 이는 두려움에 혼절을 했을지도 모를 숨 막히는 압박감이 그를 통해서 전해졌다.
“흠.”
하지만 그의 앞에 있는 건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사실을 굳이 재확인하는 건 멍청해서인가?”
반휘혈이 마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처럼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러곤 그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은 시선으로 단조로이 입을 열었다.
“애처롭군.”
뚝. 최강혁의 머리에서 무언가 가볍게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분위기가 급변했다. 단숨에 날카로워진 분위기에 반휘혈은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본능처럼 주먹을 내질렀다.
팟-!!
하지만 그의 주먹은 최강혁의 얼굴에 닿지 않았다. 그것은 반대편에서 그와 같이 주먹을 뻗던 최강혁도 마찬가지였다.
“스탑-!!”
“읏차.”
“!”
“?!”
바로 두 사람을 붙드는 두 존재 때문이었다. 반휘혈은 강하게 미는 힘에 발을 몇 번 주춤거리다가 시선을 내렸다. 그곳엔 제 품에 파고들어 마치 껴안은 것처럼 막고 있는 서이나가 있었다. 그 사실에 저도 모르게 몸이 굳어 어정쩡히 손이 들려 이도 저도 못 하고 있자 서이나가 얼굴을 퍼뜩 들며 그를 쏘아봤다.
“설마설마했더니 진짜 싸울 생각이야? 장소 생각하고 싸워, 이 자식아!”
아까도 교내 한복판에서 싸웠었다며! 적당히 해! 하고 작은 소리로 자신을 타박하는 목소리를 반휘혈은 멍하니 들었다. 작은 품이 제 안에서 조잘조잘 떠드는 게 뭔가 이상했다. 그는 눈을 천천히 깜빡이며 느릿하게 손을 내렸다.
“이게 뭔 짓거리…!”
반휘혈이 전의를 완전히 상실했을 때 제 행동을 제지하려는 듯이 누군가가 최강혁의 목과 팔을 제압하고 있었다. 최강혁이 고개를 돌려 살벌히 눈을 치떴다가 그 정체를 확인하곤 움찔 몸을 굳혔다.
“어이쿠, 진정하자, 후배님. 이렇게 즐거운 날에 사고 쳐서 뭐 해? 너보다 연약한 선배님을 봐서라도 힘 좀 풀자.”
“여언약…?!”
최강혁이 그 말에 어이없다는 것처럼 강한 헛웃음을 흘렸다. 숨통을 조이는 것처럼 제 목을 억죄어 오는 것도 모자라 움직이지 못하게 들고 있는 제 팔을 제압한 이 건장한 팔뚝은 무엇인가. 최강혁이 황당함을 가감 없이 전하자 고찬영이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그에게 대꾸했다.
“왜~. 너한테 졌으니까 내가 연약한 건 맞지. 불쌍하지 않아? 그러니까 머리 좀 식혀 주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