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250화 (250/306)

250. 격동하는 운명의 수레바퀴 (3)

‘아-. 젠장.’

나는 그 질문을 보자마자 실망으로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질문이 쉬워도 너무 쉬웠다.

‘들으나 마나 없다, 겠지.’

그동안 주연희에게 이렇다 할 연애 기류 같은 게 없었으니 당연한 일 아닌가. 한때 반휘혈과의 관계도 의심해 보고 이렇게 최강혁과 붙어 있는데도 별다른 반응이 없던 그녀였다. 그러니 난 당연히 그녀가 아니요, 라고 말할 거라 생각했다.

“…패, 패, 패, 패스…!”

그건 그렇고 참 여주에 걸맞은 질문이네~, 라고 생각하던 순간, 들려온 외침에 나는 귀를 의심했다. 놀라서 눈을 부릅뜨며 쳐다보자 주연희는 잔뜩 벌게진 얼굴로 거짓말 탐지기에서 손을 파드득 떼어 내고 있었다.

“엥?”

그 의심쩍은 광경에 내 입에선 나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니, 너? 주연희, 너어…?

“흥. 바보 같긴. 비켜.”

그러자 최강혁이 한심하단 듯 주연희를 치우며 탐지기 위에 손을 얹었다. 주연희는 울상을 지으며 열을 식히기 위함인지 저 구석에 처박혀 손부채질을 연신 했다. 너무 놀라운 사실을 들은 기분에 굳어 있는 사이에 최강혁은 무심하게 질문 버튼을 눌렀다.

[Q. 요즘 들어 자꾸 생각나는 상대가 있나요?(*없을 시엔 없다, 도 가능)]

아, 저건 통과겠네. 나는 이번에도, 아니 이번만큼은 답이 훤히 보이는 질문에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최강혁도 당연하단 것처럼 당당한 얼굴로 대답을 내놓았다.

“하, 당연히 있을 리 없잖아.”

삐-.

“네, 거짓입니다!”

“뭐?”

“엥?”

그런데 거짓이란다. 단호하게 울리는 거짓의 전자음과 사회자의 진행에 최강혁을 포함한 나도 벙찌고 말았다.

“무슨 개소리야! 이 기계 순 엉터리 아냐?!”

그러자 결과에 도무지 순응할 수 없었던 최강혁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항의했으나 그런 놈을 반휘혈이 밀어서 치워 버렸다.

“비켜.”

“뭐 이 새꺄?!”

“워, 워. 싸움은 다 끝나고. 다 끝나고 하자.”

최강혁이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아 내가 그를 진정시키고 있을 때 반휘혈이 척, 하고 거짓말 탐지기 위에 손을 얹은 후 자연스럽게 버튼을 눌렀다.

[Q. 좋아하는 사람의 문제로 질투하는 사람이 있나요? 있다면 누군지 말해 봅시다!(*없을 시엔 없다, 도 가능)]

…아니, 아까부터 질문이 왜 저래?! 게다가 이번엔 엄청 디테일해! 이건 연인이었다면 관계를 파투 내기 위한 질문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아, 물론 저런 전제면야 반휘혈은 당연히 없다는 대답을 내놓겠지만 그래도 너무하지 않은가!

“…….”

그런데 이번에도 내 예상과 달리 반휘혈은 바로 대답을 놓질 못했다.

“………………….”

게다가 침묵도 굉장히 길다. 나는 점점 찾아오는 불길함에 설마 싶어 그를 의심쩍게 보는데,

“…………………………패스.”

결국 그의 입에서 나오는 건 패스였다. 나는 경악의 시선을 금치 못하고 그를 보는데 반휘혈이 슬며시 내 시선을 피했다.

아니, 진짜 뭔데?!

반휘혈이 질투를 한다고? 누굴?! 그것도 좋아하는 사람의 문제로, 라니! 지나치게 흥미로운 사안에 내가 다 궁금할 지경이었다. 쟤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거의 나잖아! 아니, 물론 그런 알콩달콩한 부류가 아닌 친애의 정으로서! 가족으로서! 이겠지만 아무튼 나와 관련된 만큼 더없이 궁금했다. 이 게임 말만 진실 혹은 거짓이지 거의 적나라하게 답이 드러나지 않은가. 다만 이게 입 밖으로 꺼내는 문제라 당당히 대답 못 할 사안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사회자가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있냐는 건 아무래도 저런 내용 탓이었나 보다. 그렇다면 내겐 굉장히 쉬운 질문들 뿐. 나는 자신감 넘치게 탐지기 위에 손을 얹고 버튼을 눌렀다.

[Q. 죽을 때까지 안고 갈 비밀이 있나요?(*있으면 이 자리에서 말하기)]

“…….”

쩌적. 나는 자신만만한 웃음 그대로 멈췄다. 한참을 돌처럼 굳어 있던 난 사회자의 부름에 겨우 정신을 차리곤 나직이 입을 열었다.

“…패스.”

피눈물을 흘릴 것 같은 기분에 입을 가리며 조용히 물러섰다. 이런 러브러브를 작정한 듯한 질문 게임마저 나를 배신하다니. 나는 이 비극적인 현실에 통탄을 금치 못했다.

졸지에 주연희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최강혁은 관심 있는 사람이 있으며, 반휘혈은 현재 질투를 하고 있는 것도 모자라 난 큰 비밀이 있는 사람이라는 얼토당토않은 폭로전이 되어 버렸다. 물론 최강혁만큼은 저 거짓말 탐지기가 잘 작동하고 있을 때의 문제였지만 말이다.

‘한도훈, 진짜 가만 안 둬…!’

이 광경을 보며 깔깔거리고 있을 한도훈의 모습이 선명히 그려졌다. 문제를 만든 한도훈의 괘씸함에 이를 갈고 있던 중, 최강혁이 다시 엉터리라고 주장한 거짓말 탐지기 앞에 섰다. 주연희는 이번에도 이성 관련한 문제가 나와 패스를 외치고 구석에 울적하니 박힌 뒤였다.

“젠장, 이딴 빌어먹을 게임 빨리 끝내야지.”

매우 동감이다. 난 벌써부터 뒤에 나올 다른 질문이 두려웠다. 평상시 내 운으로 보건대 분명 범상치 않은 질문이 또 나올 것만 같았다. 이젠 어느 팀이든 좋으니 빨리 이 게임을 끝내고픈 마음뿐이었다.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쳐 너덜거리는 심정에 눈을 흐렸다.

끼이익-.

그런데 불현듯 내 귀로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

방금 그 소린 뭐지? 마치 녹슨 경첩에서 날 법한 소리였다. 하지만 곧 착각인가, 싶어 나는 금방 관심을 끊고 최강혁 쪽을 보았다.

끼-긱. 투둑.

“?!”

이번만은 착각이 아니었다. 설마. 오감이 반사적으로 오싹해지는 소리에 나는 빠르게 고개를 움직였다. 반사적으로 고개가 향한 곳은 한 곳. 나는 경악스러운 광경에 눈과 입을 벌렸다.

무대를 고정하는 여러 철을 엮은 기둥이… 기이하게 휘어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연희야!”

그것도 주연희의 머리 바로 위에서.

“네?”

주연희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봤다. 곧 그녀는 자신의 위에 이상이 있음을 눈치채고 고개를 올렸다.

“!!!!”

그녀의 얼굴이 경악으로 번져 갔다.

퉁-.

소름 끼치는 소리가 무대에 울렸고,

“…나!”

익숙한 음성이 당황으로 번져 가는 게 내 귀에 닿은 듯싶을 때

쿠쾅쾅-!! 쾅-! 퉁, 쾅-!!

섬뜩한 요란함이 무대를 장식했다.

꺄아악!! 뭐야?! 온갖 비명이 관객에서 울려 퍼지고 사회자가 마이크에 대고 구조 인원을 황급히 요청했다. 방금 전 그 아래에 사람이 있었음을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으.”

아스라이 피어오르는 모래 속에서 작은 신음이 흘렀다. 충격으로 두 눈을 질끈 감고 있던 여자아이는 슬며시 눈을 떴다. 그러곤 천천히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정신이 든 것처럼 몸을 벌떡 일으켰다.

“…여, 여긴, 어?”

그녀는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더니 놀란 것처럼 눈을 크게 떴다. 그럴 만도 했다. 분명 기둥 아래에 있어야 할 그녀였으나, 그와 동떨어진 무대 밖에 있었으니.

“어, 어, 언니??”

왜냐하면 내가 그녀와 함께 무대 밖으로 나뒹굴었으니 말이다.

“…….”

하지만 나는 그녀를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저게, 뭐야.’

나는 기둥이 무너진 현장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저것은 우연에 의한 사고인가.

그 물음에 대한 답은 바로 나왔다.

‘아니. 그럴 리가 없어.’

한도훈이 이런 데서 실수할 리가 없었다. 마지막 순간에도 혹시 모를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시설 점검을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이것은 인재에 가까운 사고일 확률이 높았다. …특히나 이곳에 이 일을 만들 만한 인물이 존재하고 있다면, 더더욱.

곧장 눈이 관객석으로 향했다. 시선이 당도한 곳은 꽃의 여왕이라는 불리는 색의 머리칼을 소유한 자이자,

‘백장미.’

그 이름마저 그와 같은… 가증스럽게 놀란 척 입을 가리고 있는 이였다.

***

무대 밖에 떨어진 우리를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반휘혈이었다. 반휘혈은 날 발견하자마자 내게 달려들었고 다친 곳이 없는지 그답지 않게 잔뜩 당황한 낯으로 내 몸을 살폈다.

‘다친 곳, 다친 곳은? 안 다쳤어?!’

쉽사리 진정하지 못하는 그의 모습에 몇 번이나 괜찮다고 대답해 줘야만 했다. 물론 주연희도 멀쩡했고 말이다. 곧 한도훈이 고용한 팀 닥터가 도착해 간단한 검진이 이뤄졌다.

그리고 나는 내 몸이 아주 멀쩡하진 않음을 깨달았다. 바로 아까부터 상태가 그리 좋지 못했던 팔이 덧나 버렸기 때문이었다.

‘누나 미쳤어?! 왜 이제야 말해!!!’

그 사실을 알게 된 서이수가 노발대발한 건 당연한 지사였다. 하필 팔도 내가 주로 사용하는 오른팔이라 더 분노를 일으켰다. 관객으로 놀러 왔던 서연 언니와 코치님도 이 일을 알곤 정색하며 화를 냈다.

‘그래도 큰일이 안 나서 정말 다행이다.’

한창 멘탈이 털릴 정도로 온갖 잔소리를 세 명이서 퍼붓고 있을 때 안경희와 함께 울면서 내 쪽으로 왔던 이혜인이 가슴을 쓸며 안도했다.

‘흐에엥, 누나아----!!!’

‘누나, 괜찮아요?’

‘다친 곳은요?’

‘……어.’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생들도 내가 별 이상이 없음을 알고 응급 천막으로 찾아와 안부를 물었다. 다들 하나같이 안색이 안 좋았다. 그중에 자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서강이마저 찾아온 건 꽤나 의외였지만 말이다.

‘…우선, 원인 조사 중이니까요. 상황 정리되면 다시 알려 드릴게요.’

한도훈은 그 특유의 임기응변과 빠른 대응으로 무대의 상황이 진정시킨 후 날 찾아와 말했다. 그도 이 사고가 우연이 아님을 짐작한 듯싶었다. 그리고 그건 안경희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밝혀낼게.’

눈가가 벌겠던 그녀가 흔치 않게 잔뜩 굳은 낯으로 노트북을 꽉 쥔 채 맹세하듯 내게 말했다. 이런 쪽으로 유능한 두 사람이 칼을 간 듯이 말하니 이렇게 듬직하고 무서울 수 없었다.

“알았지? 무조건 딴 곳으로 새지 말고 병원부터 가.”

“알았다니까 그러네.”

뭐, 아무튼 그러그러한 이유로 나는 현재 병원에 가기 위해 서이수와 인사를 주고받고 있었다. 거듭되는 당부와 잔소리에 나는 한쪽 귀를 틀어막으며 그의 등을 꾹꾹 밀어 버렸다.

“너도 이제 계주 준비하러 가 봐. 나 진짜 간다.”

“…진짜 딴 길로 새면 안 돼! 병원 도착하면 연락하고!!”

“알았어~.”

서이수와 얼추 멀어진 듯하자 흔들던 손을 내리곤 피로가 가득 담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이고야…. 삭신아아….”

나는 허리를 통통 두드리며 이제야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 몸뚱어리에 눈가를 벅벅 문질렀다. 그러자 방금까지 마주했던, 잔상처럼 남아 있는 놈의 못마땅한 얼굴이 왠지 그려졌다.

‘나도 같이 가.’

사실 다른 아이들, 특히 반휘혈이 나를 계속 따라오려 했지만 나는 완강히 거절했다. 고등학교 때 몇 없는 축제였다. 그런데 나 때문에 그 추억을 병원으로 장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축제의 결과를 대신 알려 달라 부탁했고, 반휘혈에게는 이벤트 경기의 결과를 맡겨 자리에 남게 만들었다. 뭐, 결국 최종 타협으로 가족인 서이수가 정문까지 데려다주게 되었지만.

그뿐만 아니라 서연 언니와 코치님이 따라오려고 했다. 하지만 퇴근한 그들을 연장 근무시키는 기분이 들기도 했고, 안 그래도 나 홀로 병원에 보낸다는 마음에 불안해하고 있을 동생도 걱정되어 나는 그들에게 동생을 부탁한다며 학교에 남게 했다. 물론 대신에 코치님이 아빠를 병원으로 불러 주신다고 했지만 말이다.

“일이 커졌네.”

분명 아빠도 헐레벌떡 찾아와 난리를 칠 것 같았다. 상상만 해도 피곤해지는 광경에 나는 다치지 않은 팔을 들어 뒷목을 쓸었다. 병원은 한도훈이 불러 준 차량을 타고 가기로 했다. 그것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분위기였고, 나도 원래 택시를 탈 생각이었기에 흔쾌히 승낙했다.

‘…친구님, 꼭 혼자 가야겠어? 저기 저 녀석… 반휘혈이라도 데려가면 안 돼?’

그런데 끝까지 불안함을 놓지 못했던 고찬영의 말이 어쩐지 마음에 걸렸다. 그의 직감은 굉장히 뛰어났다. 이건 야생의 짐승인가 아니면 신통력이라도 있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그런 만큼 연신 불안한 듯 가져다준 내 가방의 끈을 놓지 못했던 그의 손이 계속 생각났다.

‘뭐, 더 큰일이야 있겠어! 너무 걱정하지 마. 도훈이가 차 불러 줬고 병원 가면 아빠도 있을 테니까.’

그런 그에게 나는 안심하라고 더 호쾌하게 웃음을 그려 준 후 떠났다. 그것은 지금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아니, 사실 그러길 바라는 중이었다.

“음! 뭐, 괜찮을 거, 아야야.”

나는 애써 웃으며 어깨를 쭉 펴다가 오른팔에서 아릿한 통증이 올라와 인상을 찌푸리며 붙잡았다.

“하아아. 이왕 이렇게 된 거 푹 쉬기나 하자.”

마지막 계주를 끝내지 못하고 그 결과를 내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부상자가 계속 남아 봤자 오히려 더 거슬릴 뿐. 차라리 주말 동안 푹 쉬어 건강한 모습을 한시라도 빨리 보이는 게 가장 나았다.

“차는 언제 오려나.”

나는 부은 팔을 쓸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음? 저 찬가?”

나는 고급 차량으로 보이는 검은 차량이 다가오는 걸 보곤 벽에 기대던 등을 떼어 내며 반갑게 바라봤다. 아니나 다를까 차는 내 부근에 섰고 역시 이 차가 맞구나 싶어 가까이 다가갔다. 역시 별일 없을 거라니까. 나는 안도의 웃음을 그리며 마음속에 잔재한 불안을 떨쳐 냈다.

하지만 사람이 불길할 땐 언제나 들어맞질 않던가. 특히나 예민한 친구의 감은 더더욱 요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법.

그러한 내 안일함의 대가는 곧 현실로 들이닥쳤다.

달칵.

돌연 열리면 안 될 뒷문이 열렸고, 없어야 할 공간에서 사람이 나왔다.

“오?”

“…어.”

잠깐. 나는 나타난 사람에 멍하니 굳은 채 입을 벌렸다.

“와, 범 새끼도 지 욕하면 온다드니,”

그러나 내 반응이 어떻든 간에 나타난 이는 친근한 미소를 그리며 다가왔고,

“존나 반갑다 아이가,”

텁, 하고 반가운 것처럼 기다란 팔을 내 어깨에 걸쳤다.

“조커-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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