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251화 (251/306)

251. 격동하는 운명의 수레바퀴 (4)

“?!!!!”

소리 없이 비명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뻔뻔한 미소를 달며 친한 척 달라붙은 이는 나를 향해 히죽거리며 말했다.

“이걸 보고 운명이라 하나? 이야~. 니 만나러 왔는데 이렇게 내를 반겨 주고 있을 줄 몰랐다 아이가.”

아니야. 나는 바로 반박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어쩐지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예상치 못한 만남에 경악으로 굳어선지 목소리조차 나오질 않고 있었다. 그런 내 얼굴을 지척에서 보던 이는 돌연 내 얼굴을 턱 붙잡았다. 그러곤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흐음? 오- 니 눈빛을 보니… 니 내 알고 있나 보다?”

“모르는 게 이상하죠. 그리고 제가 열어 드린다 하지 않았습니까, 도련님.”

달칵, 운전석에서 문이 열리며 잿빛 머리의 남자가 나타났다. 이국적인 외양에 단번에 혼혈이거나 외국인임을 짐작했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도련, 님?”

“아, 소개가 늦었군요. 전 김율이라고 합니다. 당신 곁에 계신 분은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정태우 도련님이십니다. …이름은 들어 보셨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제 억측이라면 실례했습니다.”

남자는 한 손을 제 가슴에 얹은 채 허리를 살짝 숙이며 인사했다.

“정태, 정태우라고?”

나는 그 소개에 아연하게 중얼거렸다. 아니, 잠깐. 그럴, 그럴 리가. 한순간에 복잡해진 머릿속에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하고 굳어 있는데 정태우라 불린 이가 내 어깨를 잡아당기며 제 얼굴을 밀착시켰다.

“자~. 통… 아, 뭐드라. 암튼 이름도 주고받았겠다, 슬슬 본론으로 들어갈까?”

“통성명입니다. 도련님.”

김율이 그의 말에 간섭을 걸었으나 그는 시원하게 무시했다. 그는 오로지 내게 시선을 꽂으며 굉장히 반가운 듯한 얼굴로 내 어깨를 두드렸다.

“니 내 소문은 들어 봤제? 내 여 있고 니를 보러 왔다, 그라믄 답은 한 개밖에 읎다, 그제?”

정태우. 그 이름에 따르는 소문. 그것은 분명…. 나는 그 말에 정신을 퍼뜩 차리며 팔을 치우고 거리를 벌렸다.

“아까부터 무슨 헛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난 조커가 아니야.”

“흠?”

그가 히죽 웃음을 그리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나온다 이거가. 단조로운 어투가 꺼내지더니 그는 대수롭지 않게 픽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 상관읎다. 니가 조커가 기든 아이든… 내 좆대로 행동하는 거뿐이기.”

“…뭐?”

그게 무슨 소린가. 나는 눈을 부릅뜨며 그를 보았다. 그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를 손가락으로 툭 건들었다.

“내가 서이나, 니한테 흥미 있다- 뭐 이런 뜻, 아니겠나. 그러니까-”

그가 맹수 같은 미소를 입가에 걸치며 웃었다.

“내랑 싸우자. 서이나.”

멍하니 입이 벌어졌다. 무슨 소리를 해야 될지 모르겠다. 머리가 새하얘지는 기분만이 나를 잠식했다. 푸른빛을 두른 독특한 색감의 흑발이 살짝 찰랑였고, 그 아래에 드러난 검은 눈동자가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나는 그 잘생긴 낯을 바라보다 홀린 듯 입을 열었다.

“…장소.”

“음?”

그가 고개를 기울였다.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침을 삼키곤 다시 말했다.

“장소를 옮기자.”

그러자 그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어렸다.

***

내 요청에 따라 우리는 장소를 옮겼다. 함께 탄 차 안에선 숨 막히는 침묵뿐이었다. 아니, 사실 무슨 정신으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도착한 곳은 일진들이 자주 애용하는 싸움터 중 하나인 공터였다. 그곳에 오롯이 선 나는 다친 팔의 주먹을 쥐었다.

아프다. 하지만 아직 싸울 순 있다.

후-. 나는 자꾸만 긴장인지 아니면 설렘인지 모를 것으로 인해 떨려 오는 숨을 깊게 내쉬어 가다듬었다. 괜찮아, 할 수 있어. 이 정도 상처쯤은 문제없어. 게다가 여긴 인소 세계잖아. 피지컬도 이 세계의 버프로 인해 이전의 세계보다 훨씬 좋아졌다. 그렇다면 승산이 있을지도 모른다.

“의왼데? 뺄 줄 알았는데 꽤 적극적이지 않나?”

건너편에서 주머니에 손을 꽃은 채 여유롭게 서 있는 상대가 히죽 웃으며 말을 걸었다. 나는 그런 이에게 함께 웃어 주지 못했다. 그만큼 내 신경은 바짝 곤두서 있었다. 내 눈앞에 있는 상대는 여유를 갖출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만난 순간부터 혼란의 연속이었지만, 지금은 눈앞에 닥친 현실에 집중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숨을 가다듬으며 침착하게 그에게 대꾸했다.

“맞아. 사실 그리 여유롭지 않긴 해. 별로 하고 싶지도 않고. 근데 빼도 안 들어줬을 것 같거든.”

“오-?”

그가 눈썹을 샐쭉 들어 올렸다. 하지만 나는 그 반반한 낯짝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두 주먹을 앞으로 내밀었다.

“하지만 상대가 너잖아? 이런 기회는 흔치 않을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또 한 가지. 확인할 게 있었다. 나는 마지막 속내를 감추며 몸 곳곳에 긴장을 불어넣어 상태를 다시금 체크했다.

“하핫, 아하하!!”

그러자 내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율아, 들었나? 이 자식 존나 시원스럽다 아이가.”

“그렇군요.”

조용히 뒤쪽으로 빠져 있던 김율이 호응했다. 제 주인의 싸움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사실이란 걸 증명하는 것처럼 투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부동의 직립 자세였다.

“하하, 난 니처럼 말 통하는 아가 좋드라?”

“…….”

“뭐, 잡설은 이쯤하고-”

그가 주머니에 꽂았던 손을 스륵 빼냈다. 그러곤 그 손을 앞으로 빼 들었다.

“-시작할까.”

그의 눈이 단번에 날카로워졌다. 푸른빛이 살짝 흔들린다 싶더니 순식간에 내 앞으로 다가왔다.

“!”

나는 본능적으로 옆으로 피했다. 훙-! 스치는 것만으로 강한 풍압이 내 볼을 스쳐 지나갔다. 그래도 황급히 거리를 벌리자 그는 코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어쭈, 피하네?”

비꼬는 말의 내용과 달리 그의 눈이 기이하게 일렁였다. 턱을 노리고 사선으로 치켜든 발을 천천히 내리며 그는 히죽 웃었다. 저것은 재밌는 장난감을 마주한 흥미였다.

“…뭐, 당연하기가.”

“무슨, …!”

마치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하는 말에 무슨 소리냐고 물으려던 찰나, 그의 공격이 이어졌다. 나는 빠르게 뻗어 오는 주먹의 연타에 손을 들어 그것을 막았다.

퍼, 빡, 퍽-!

“!!!”

일격 하나하나가 무겁다. 부상 입은 팔이 습격하는 충격에 경련하듯 움찔거렸다. 하지만 그는 내가 숨을 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 그는 내가 통증으로 몸이 굳었을 때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리를 휘둘렀다.

“크윽-!!”

퍼엉-!!!

나는 이를 악물며 휘두르는 다리를 무릎을 세워 막았다. 강한 반동으로 중심이 흔들렸다. 하지만 나는 바로 발을 뒤쪽으로 빼 땅을 지지해 서곤 그대로 몸을 돌려 반대쪽 다리를 날렸다.

훙-!! 하나 그는 내 공격에 머리칼을 살짝 흩날리며 아래쪽으로 몸을 숙여 피했다. 강하게 내지른 다리 아래서 여유로운 낯짝을 마주하자 이가 저절로 갈렸다. 나는 그가 내게로 파고들기 전, 그대로 다리를 내려찍었다.

“오.”

하지만 이번에도 내 공격은 닿지 않았다. 그는 여유작작한 감탄사를 흘리며 바로 뒤로 몸을 빼 버렸다. 그 유연하고도 부드러운 움직임에 나는 순간 어떤 감정이 스쳤다.

‘아니, 아니야.’

그러나 곧 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 감정을 떨쳐 냈다. 아직 몇 합도 주고받지 않았다. 판단은 섣불렀다. 나는 눈에 보이는 결과를 부정하듯 이를 꽉 깨물며 주먹을 쥐었다. 그러곤 곧장 그를 추격해 다리를 휘둘렀다. 그가 몸을 옆으로 꺾어 그것을 피했으나, 나는 쉬지 않고 다리를 뻗었다.

“크으…!”

“흠.”

또 피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그대로 도약해 무겁게 그의 어깨를 향해 내려찍었다.

그 순간, 피하려던 그의 움직임이 일순 멈추었다,

빠악-!

“…어이.”

그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무거운 숨이 흘러내리고 그가 눈썹을 기울였다.

“니 …굼뜨지 않나?”

꽈아악. 그의 손에 붙잡힌 발목이 억세게 쥐어졌다. 뼈를 짓누르는 듯한 통증에 눈가가 찌푸려졌으나, 그보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

다시금 방금 전, 일렁였던 감정이 되살아났다. 믿을 수가 없었다. 말도 안 된다. 아무리 내가 부상을 당했고, 체력 또한 만전이 아닐지라도,

‘이렇게… 차이가 난다고?’

그것은 불합리한 무언가를 본 것 같은. 지금의 나로선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을 마주한 것 같은 감각이었다.

“…아니야.”

그럴 리, 그럴 리가 없어! 나는 이를 까득 깨물곤 그대로 발을 박차 붙잡지 않은 다리를 휘둘렀다.

“!”

그 공격을 피하기 위해 그가 반사적으로 발을 놓았고, 나는 벗어나자마자 바로 틈을 주지 않고 연이어 왼손을 내질렀다.

“……!”

방금보다 한층 무거워진 공격에 그의 눈썹이 살짝 기울였다. 하지만 나는 멈출 틈 없이 속사포처럼 연이어 다른 주먹을 내질렀고, 몸을 돌려 주먹을 맞잡은 채 팔꿈치를 배 안쪽으로 꽂아 넣기 위해 그것을 휘둘렀다.

훅-!!

세찬 울림이 공기를 가로질렀다. 즉, 내 팔꿈치는 그가 뒤로 물러서면서 닿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

연속적으로 이루어진 큰 반동으로 인해 전신의 근육이 저릿하게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멈추지 않고 바로 공격을 감행했다. 이대로 멈추면 안 된다. 이미 한계를 외치고 있는 몸은 멈춘 순간 그대로 끝이었으니. 나는 다시 이를 악물며 몸을 날렸다.

훅, 휙, 훙-!!!

주먹을 내지르고 팔꿈치로 찍고 다리를 내질렀다. 강한 울림이 공기를 찢었으나, 그 무엇도 그에게 닿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세 번이 안 된다면, 네 번을. 네 번이 안 된다면 다섯 번, 여섯 번, 일곱 번을…! 틈을 만들어 낼 때까지 공격을 퍼부으면 그만이었다.

“…아.”

툭, 그가 몰아치는 공격을 뒤로 피하면서 잠시 발을 헛디디며 주춤거렸다.

‘빈틈!’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내 오른손이 그를 향해 강하게 내질러졌다.

퍽-!

묵직한 타격음이 들렸다.

“아-.”

그의 입에서 탄성이 내뱉어졌다. 하지만 내 눈앞에 있는 이는 한 치의 고통으로도 일그러져 있지 않은 채였다.

“내 말하지 않았나.”

툭-. 그의 발에 의해 몸이 밀렸다. 그의 볼에 닿았던 손이 힘없이 떨어지고 내 무릎은 그 미는 힘에 저항 없이 꿀리었다.

“끄, 읍…!!”

털썩 주저앉은 나는 복부에 엄습한 무거운 통증에 숨도 못 쉬고 배를 부여잡았다. 그런 내 어깨 위로 묵직한 무언가가 내려앉았다. 겨우 시선을 들어 그를 보자 그는 아무 감동이 없는 듯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며 내 어깨를 발로 꽉 짓누른 채 말했다.

“니 굼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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