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252화 (252/306)

252. 격동하는 운명의 수레바퀴 (5)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깨에 실린 발에 힘이 들어갔다. 콱, 짓눌러진 몸이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윽…! 아릿한 통증이 턱에서 전해졌다. 바닥에 원치 않게 엎드려진 나는 그 반동에 몸이 들썩였으나 제압당한 몸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큽, 쿨럭, 콜록, 하아. 하아.”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한번 무너진 몸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릴 것만치 무거웠다. 오른팔은 더 이상 감각이 없었고 왼팔조차 올리는 게 버거웠다. 졌다. 이미 진 싸움이다. 이대로 움직이지 않고 패배를 빨리 승복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왜 이 발을 붙잡은 걸까.

자각해 있을 땐 이미 사시나무처럼 크게 흔들리는 왼손이 내 몸을 강하게 억누르는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나는 흐려진 시야를 억지로 뜨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차피 이 길을 벗어나기로 결정했으면서 왜 나는 또 일어나려 하는 건가. 이젠 스스로조차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보다 왜 나는 이 녀석의 싸움에 응했더라.’

몸이 무겁다. 머리가 둔하다. 초점이 잔뜩 흐려져 나를 짓밟고 있는 이가 잘 보이질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분명히 느껴지는 건 있었다.

“……호오.”

위에서 나직한 탄성이 먹먹하게 들려왔다. 나는 초점을 맞추기 위해 눈에 힘을 줬다. 흐릿한 시야가 서서히 잡혀 갔다.

“그 눈깔만은 마음에 드네. …근데 말이다.”

뚜두둑.

“……!!!”

당장이라도 어깨가 으스러질 것 같은 격통이 엄습했다. 하지만 내 가슴을 관통한 것은 그 통증이 아니었다.

“힘이 받쳐 주지 않으면… 쓸모읎다 아이가.”

싸늘한 말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 가득 깃든 것은…,

“서이나.”

짙은 실망감이었다.

“이만 끝내지.”

발이 어깨에서 떨어졌다. 그 발은 위협스럽게 위로 더 솟구쳤다. 하지만 나는 발이 아닌 그를 허망히 올려다보았다. 피할 생각도 못 하고 그저 먹먹히 낀 구름 아래서 서늘히 나를 내려다보는 그 얼굴을 망연히 바라만 볼 뿐이었다.

이내 사형 선고와 같은 발이 아래로 낙하했다.

콰직. 텅, 텅, 텅….

“…….”

그러나 그 발은 내게로 떨어지지 않았다. 한순간 그가 몸을 멈추고 뒤로 발을 물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숨을 작게 몰아쉬며 멍한 시선으로 시선을 굴렸다. 멀지 않은 곳에서 어떤 기기가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그것은 방금 그 몸을 물리게 만든 원흉이었다.

‘카메…라.’

왜 저게 저기에 있지. 머릿속에 하나의 의구심이 멍하니 스쳤다.

“…그, 그만둬. 그만둬, 정태우…!!”

아. 누군가, 있다. 이곳에 또 다른 사람이.

‘…누구.’

그런데 그 목소리가 어쩐지 낯설었다. 아니, 낯선데 어딘가 익숙하다. 손가락 까딱하기 힘든 바보 같은 몸뚱어리였지만 나는 억지로 고개를 움직였다.

“점마는 또 뭐고.”

황당한 음성이 들렸다. 갑작스러운 난입객이 불쾌한 모양이었는지 싸늘히 미간을 찌푸렸다. 마주하는 것만으로 위압이 느껴졌다. 과연 서열 1위. 최강자란 이름이 그 누구보다 어울리는 사람. 나는 상황에 맞지 않는 감탄을 속으로 내뱉었다. 자, 아직 시간이 있어. 누군지 몰라도 어서 도망가. 나는 나를 도와준 듯한 이를 향해 속으로 말을 건넸다.

“그만둬. 정태우. 그 사람은, 그 사람은 이미 부상자였어.”

하지만 그에게 덤벼든 이는 꽤나 간이 부은 쪽이었나 보다. 그 사람은 느리지만 차분히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 덕분에 정체가 불분명했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모자, …선, 글라스.’

어딘가 익숙하다. 저 모습을 어디서 봤더라. 머리가 안개가 낀 것처럼 멍하다. 나는 눈을 천천히 깜빡이며 낯선 이를 올려다봤다.

“부상? …아, 어쩐지.”

그는 주먹이 닿았던 제 볼을 살짝 쓸어내렸다. 마치 무언가 납득한 것처럼.

“정태우, 답지 않게 너무 조급하지 않아? 넌 분명 정상적인 컨디션인 녀석만 상대한다 했어. 아니면, 내가 널 잘못 알고 있었던 건가?”

낯선 이는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흐음. 그는 잠시 짧게 숨을 내쉬더니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어이, 니 아직 깨어 있제.”

꾹-. 머리가 지그시 눌렸다. 강하게 억눌리는 압박감에 내 입가엔 신음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

“분하나?”

하나 그는 내 반응에도 무감한 듯 여상히 물었다.

“…….”

하지만 나는 대답지 않았다. 그저 이를 악물며 그의 얼굴을 보기 위해 눈을 치켜뜰 뿐이었다.

“그래, 분할 기다. 지금 니 눈깔이 그렇거든.”

그가 히죽 웃은 듯했다. 흐려진 시야 너머였으나,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의 몸이 차차 숙어졌다. 그러곤 나직하게 말했다.

“다시 와라.”

꽉-. 내 머리에 올린 발이 힘을 더했다.

“그라고 도전해라.”

움찔. 그 말에 반응하듯 내 손끝이 잘게 떨렸다.

“지금 물러선 건, 그때를 위한 내 자비다.”

무겁게 짓누르던 발이 떨어졌다. 어질어질한 두통이 시야를 이리저리 흩어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왜일까. 나를 억누르던 발은 떨어졌는데,

“내를 실망시키지 마라. 서이나.”

“…….”

왜 이렇게 심장이 짓눌린 것처럼 아플까.

“어이, 가져가라.”

그가 내게서 완전히 물러섰다. 그를 막았던 이가 내게로 주춤거리며 다가왔다. 이내 누군가가 나를 안았다. 하지만 내 시선은 내게서 완전히 등을 돌린 이에게 떠날 수가 없었다.

“태우 도련님.”

낯선 이가 나를 짊어지고 떠날 때 김율이 그를 부르는 소리가 언뜻 들려왔다. 나는 잔뜩 흐려진 시야를 천천히 깜빡이며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아니,”

그게 아니야. 정태우가 아니야.

“네?”

나를 안고 있는 이가 내게 반문했다. 하지만 나는 그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입을 작달막하게 뻐끔거렸다.

네 이름은,

“정, 태…”

그 소리는 허공에 제대로 끝맺지 못하며 흩어졌고, 나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

툭.

볼에 차가운 것이 떨어졌다. 반휘혈은 손을 들어 그것을 훔쳐 냈다.

“…비.”

그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투둑, 투툭. 아까까지 화창했던 날씨는 사라지고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만이 존재했다. 태양이 구름에 가려 존재를 감춘 그 하늘을 잠시 바라보던 반휘혈은 다시 시선을 내렸다.

“…….”

그의 손에는 하나의 봉투가 들려 있었다. 그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이벤트 경기의 상품이었다. 회의 결과, 무대 사고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결승에 진출했던 두 팀 모두에게 상품을 주기로 결정됐다. 그래서 서이나가 받을 상품 또한 같은 팀이었던 반휘혈이 함께 가지고 있었다.

‘좋아하겠지.’

그가 그것을 보며 살포시 미소 지었다. 이것을 받고 환하게 웃으며 기뻐할 서이나의 모습이 그려졌다. 괜찮다고 몇 번이나 말했으나 떠나던 그 얼굴이 잊히지 않았다. 어딘가 과장된 듯 밝게 웃던 그 모습. 그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었다.

하지만 이거라면 괜찮겠지. 그토록 바랐던 여행 티켓이니 분명 잔뜩 상기된 얼굴을 보여 주며 좋아할지도 모른다. 그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가슴 안쪽이 부푸는 것만 같았다. 그 감각은 생소했으나 싫지 않았다. 반휘혈은 들고 있는 상품권을 다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다 품에 넣었다.

[나가시는 분들은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나가 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사고가 나지 않게 나가시는 분들은 서두르지 말고…,]

스피커에선 퇴장 알림이 이어지고 있었다. 비가 오기 시작해 혼선이 오려는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한 여러 알림이 잇따랐다. 대회는 끝났고, 결과는 뒷반의 승리였다. 이 또한 그녀가 알면 분명 기뻐할 소식이었다. 반휘혈은 점점 더 조급해지는 마음이 들었다. 그는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연결했다.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전환됩니다.]

삐-.

그런데 연락이 닿지 않는다. 반휘혈은 눈썹을 살짝 기울였다. 하지만 곧 개의치 않고 고개를 돌리고 어딘가를 향해 걸어갔다. 어차피 그녀가 갔을 병원을 아는 이는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한도,”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반휘혈은 한도훈을 부르다가 멈춰 섰다. 한도훈은 전화를 붙잡고 분노를 채 감추지 못하고 화를 터트리고 있었다.

“원래 가기로 했던 정형외과에도 없으면 도대체 어딨다는 건데!! 도대체 정신을 어디다 팔아먹었길래 누나를…! 휘, 휘혈아.”

분통을 터트리던 한도훈이 반휘혈과 시선을 마주친 건 한순간이었다. 그는 숨을 짧게 들이켜며 몸을 굳혔다.

“…무슨 소리야.”

반휘혈이 물었다. 한도훈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한도훈. 말해.”

반휘혈이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곤 그의 멱살을 잡아채며 물었다.

“누나가, 어딨다는 거야.”

“…미안.”

한도훈은 할 말이 없었다. 분명 제가 보낸 차를 타고 가야 했을 서이나가 도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서이나가 약속을 어기고 당연히 가기로 한 정형외과에 따로 갔을 줄 알았다. 그 사실이 못마땅해 만나면 한 소리 퍼부으려던 그에게 날벼락 같은 소식이 전달되었다.

서이나는 정형외과에 없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어디로 사라진 건가. 계주가 시작되기 전, 서이수의 말대로라면 정문까지는 확실히 그녀를 보았다. 그렇다면 차가 도착하기 전, 그 잠깐의 시간에 그녀가 사라진 거란 뜻이 되었다.

불안했다. 그의 머릿속엔 이미 최악의 가정까지 깔려 있었다. 혹여 백장미가 이미 손을 쓴 거라면? 안 그래도 백장미는 무대 사고의 배후 중심에 있는 유력한 용의자였다. 현재 심증뿐이긴 했으나 연이어 닥친 상황은 그에게 상상하기 싫은 결과를 계속 불어넣었다. 한도훈은 당장이라도 심장이 입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한도훈.”

그러한 한도훈의 불안을 반휘혈이 못 느꼈을 리 만무했다. 반휘혈은 한도훈의 멱살을 강하게 붙잡으며 다시 말했다.

“말하라고.”

고저 없는 목소리가 서슬 퍼렇게 압박했다. 한도훈은 숨이 막힐 것 같은 그 공기에 손이 잘게 떨려 왔다. 끝내 한도훈은 그의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떨구었다.

“…미안. 누나가, 사라졌어.”

툭. 잡힌 멱살이 놓였다.

빡-!!

그리고 강한 타격음이 울렸다. 쿠당탕, 한도훈이 바닥을 요란하게 굴렀다.

“윽….”

아찔한 통증에 한순간 정신을 차리지 못해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돌아가는 시야에 정신을 차리기 위해 고개를 저었고, 그가 겨우 눈을 들었을 땐 이미 반휘혈은 사라지고 없었다.

“…….”

한도훈은 그 사실에 고개를 숙였다. 그러곤 짓씹듯 이를 악물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땅이나 파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어서 누나를 찾아야만 했다.

방금 전 공격의 후유증으로 앞이 살짝 어지러워졌지만 그는 고개를 흔들며 시야를 맞췄다. 입가에 흐르는 피를 슥슥 닦으며 핸드폰을 꺼내던 그때였다.

“한도훈!”

덥석,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붙들었다. 갑작스러운 터치에 놀란 한도훈은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그 정체를 확인하곤 얼굴을 구겼다.

“뭐야, 나 지금 바쁘니까 꺼져. 고찬영.”

“너 차, 차 있지?!”

차갑게 어깨에 걸친 손을 내쳤으나 고찬영은 개의치 않고 다급히 물었다. 한도훈은 그제야 여유 따위 버린 듯한 그의 낯을 발견했다. 어쩐지 석연찮은 느낌이 들었다.

“…뭐야. 무슨 일인데,”

떨떠름히 얼굴을 굳히자 고찬영은 답답한 듯 소리쳤다.

“친구님 지금 병원에 실려 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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