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253화 (253/306)

253.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1)

***

‘이나야, 이거 한번 쳐 볼래?’

언제가 아빠가 내게 말했다.

‘응!’

그때가 유치원 때였을까, 아니면 초등학교 때였을까. 기억도 애매한 어린 시절. 여느 날처럼 아빠를 따라 체육관에 놀러 온 나는 해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아빠가 훈련하고 또 가르치는 모습을 보며 눈을 반짝였던 나였다. 그렇기에 신이 난 내가 그것을 거절할 리 없었다.

팡-!

가벼운 타격음이 미트에서 퍼졌다. 어, 다르네? 나는 아빠와 다른 소리가 불만족스러워 입을 삐죽였었던 것 같다.

‘…이나야!’

그런데 돌연 아빠가 내 어깨를 덥석 붙잡았다. 놀란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바라보자 아빠는 잔뜩 흥분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방금 그거, 누가 가르쳐 줬어? 응?!’

‘어, 어?’

아빠는 잔뜩 떨리는 음성으로 내게 대답을 재촉했고 그 눈은 기이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평소와 다른 아빠의 모습에 나는 말을 버벅거리다가 얼떨떨하게 사실대로 고했다.

‘그, 그냥 아빠가 한 거 보고 따라 한 건데.’

그 순간 나는 아빠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알아차렸다.

‘이나야, 너는…,’

‘너는 천재야…!’

나에게 아빠가 그토록 원하던 재능이 내게 있음을.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은 아빠의 희열 속에서 나는 알아차렸다.

그렇게 나는 아빠의 지도하에 격투를 배웠다. 주 기본기인 무에타이부터 시작해 킥복싱, 태권도, 주짓수 등 프로 복싱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걸 배웠다.

그 과정에서 나는 또래와 많은 게 분리됐다.

초등학교 때는 그래도 친구들과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학교가 빨리 끝난 날은 아빠 몰래 친구들과 놀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중학교 때부턴 달랐다.

‘이나야, 오늘도 체육관?’

‘아, 응.’

‘그래, 잘 가~.’

하교가 늦어지면서 나는 점점 친구들과의 시간을 줄여 나갈 수밖에 없었고, 학교에서의 그 잠깐의 시간조차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중학교에서 알게 된 얼굴뿐 아니라 초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이들마저도 함께 보내지 못한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그들과의 관계도 멀어졌다. 그렇게 나의 교우 관계는 점점 협소해져 갔다.

‘10분 더!’

‘…흐웁!’

하지만 나는 체육관을 향했다. 퍽, 퍽, 퍽, 퍽, 퍽. 리드미컬한 박자가 흐트러지지 않은 채 미트를 향해 속사로 펀치를 날렸다. 훈련은 고되었다. 정말 미칠 듯이 힘들었다. 운동을 하면서 위장에 있던 모든 걸 게워 내고 하혈을 쏟아 낸 게 몇 번이더라. 죽을 것같이 힘든 훈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빠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훈련에 매진했다. …다른 선수들처럼 나를 볼 때 실망이 어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를 악물고 아빠가 그토록 원하던 최정상만을 바라보았다.

…친구는 그 뒤에 사귀자.

그러한 생각을 마음 한구석 깊은 곳에 품고서.

‘야, 그러고 보니까 나 어제 네가 추천해 준 거 봤다!’

으음. 나는 책상에 엎드려 있다가 귀에 들어온 내용에 잠들었던 정신이 서서히 깨어났다. 어라, 지금 몇 시지. 학교만 오면 잠만 자는 나날이었다. 고된 훈련은 하룻밤을 잔다고 해서 풀리는 게 아니었기에 수업에서 깨 있던 적은 손에 꼽았다. 그리고 깨어 있어도 뭐…, 수업 내용도 이해 안 되고 같이 대화를 나눌 친구도 없었고 말이다. 나는 졸린 눈을 느릿하게 끔뻑이다가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3교시가 막 끝난 시간이었다. 체육관에 갈 때까지 아직 1시간이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파악하곤 도로 눈을 감았다.

‘야, 그거 진짜 대박이지 않냐?’

‘어, 나 솔직히 뭐 이딴 게 다 있나 했는데 다 보고 눈물 엄청 흘렸잖아.’

‘그치? 근데 그게 인소의 매력 아니겠냐. 유행하는 데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라고~.’

웃음기가 어린 여자애들의 목소리에 나는 다시 눈을 떴다. 인소? 그게 뭔데. 생소한 단어에 눈을 찌푸렸다. 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새 유행이 돌고 있나. 새삼스럽지만 무리에 어울리지 못하는 소외감에 나는 엎드린 상태에서 팔을 더 끌어모았다.

‘설마 내가 이런 이모티콘 소설 보고 울진 몰랐지~.’

‘야, 나도 나도. 설마 이모티콘 소설 보고 울 거라고 누가 생각하냐고. 근데 진짜 중독성 있지 않아?’

‘어. 나 그래서 다른 것도 찾아보고 있잖아.’

…소설. 나는 다시 눈을 떴다. 방금 그게 소설이었구나. 근데 제목이 인소인 걸까?

짧은 거면 나도 읽을 수 있을 텐데.

아. 나는 스스로의 생각에 화들짝 놀라며 일어나 고개를 저었다. 방금 무슨 생각을 한 거야. 운동하고 쉬기도 아까운 시간에 무슨 독서야. 나는 뺨을 짝짝 치며 정신을 일깨웠다.

‘엇.’

‘아.’

그러다 나는 우연히 그 무리 중 한 여자애랑 눈이 마주쳤다. 어색한 공기가 흐르고 우리는 몇 초간 시선을 마주하다 이내 여자애 쪽에서 먼저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나도 뒤늦게 찾아온 민망함에 뺨을 긁적이는데 불쑥 그 여자애가 내게 말을 걸었다.

‘아, 저기.’

움찔. 반사적으로 몸이 굳었다. 또래가 말을 걸어 온 게 심히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선뜻 대답을 못 하고 눈만 깜빡이고 있는데 그 여자애가 미안한 듯 웃으며 말했다.

‘혹시 우리 때문에 시끄러워서 깼다면 미안해.’

‘어, 어, 아냐!’

그녀는 자신들 때문에 깼다고 생각했는지 사과를 해 왔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긴 했지만 사실 시끄러운 건 반에 있는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깰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기에 그녀에게 사과를 받을 필욘 없다고 생각해 나는 고개와 손을 저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아, …그래?’

‘어…, 응.’

‘…….’

‘…….’

그리고 다시 정적. 대답이 심히 궁색해진 나는 눈동자를 데록 굴렸다. 이, 이거 어떻게 해야 되지. 오랜만에 같은 반 애랑 대화를 나누었다. 이렇게 흐지부지 끝내고 싶진 않았다.

‘그, 그… 저기…! 그 이, 인소란 게 뭐야?’

그래서일까. 평소라면 관심을 주지 않았을 주제를 먼저 꺼내어 보였다.

‘헤헤.’

정신을 차렸을 땐 어느새 나는 핸드폰을 꼭 쥔 채 헤실거리며 체육관을 향하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오늘 친구들이 공유해 준 소설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인소는 인터넷 소설의 약자로 요즘 유행하고 있는 매체였다. 주로 특정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소설들로 짧고 긴 소설들이 다양하게 게시되어 있다고 했다. 그 내용은 주로 제가 다니는 학교가 배경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는 가족과의 통화 용도로밖에 쓰이지 않던 핸드폰을 뿌듯하게 바라보았다.

내일은 주말이다. 주말이라면 볼 시간이 있다고 알려 주자 그들은 반갑고도 기쁜 얼굴로 내게 말했다.

‘이거 읽고 꼭 말해 줘!’

‘이거, 이거! 이거 꼭 읽어서 후기 좀 들려주라! 그리고 여기 남주가 지이이인짜 멋있거든?! 그 이름하여 핏빛 남자 반…!’

‘아, 그보다 난 운동한 사람이 본 후기가 가장 궁금해. 어떤 느낌인지 꼭 알려 줘야 해?!’

나는 그들의 말에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나눈 또래와의 대화는 나를 들뜨게 만들기 충분했다.

‘다음 주부터 대회 준비로 학교는 쉰다. 알아 두거라.’

‘…네?’

그런 만큼 그 소식은 내 심장을 가라앉게 만들었다.

‘그, 그게 무슨…. 그렇지만 학교, 아니, 선생님한테 아무 말도…!’

‘선생님에겐 내가 통화했다. 넌 준비에만 전념하면 돼.’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나는 아연히 입을 벌렸다. 싫었다. 또 이렇게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입만 벌리며 말없이 싫다고 고개를 젓고 있는데, 그런 내 어깨를 아빠가 강하게 붙잡았다.

‘이나야. 세계 대회야. 세계 주니어 대회라고. 이제 네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거야. 넌 분명 우승할 거야! 틀림없어.’

‘하, 하지만….’

‘학교 같은 건 당장 중요하지 않아-!!’

아빠가 내 말을 강하게 잘랐다. 움찔 몸을 경직시킨 나는 멍하니 아빠의 얼굴을 보았다.

‘이 아빠 말을 믿어, 이나야.’

열망에 가득 찬 눈이 나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네.’

어린 내가 그 힘에 거역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렇게 나는 전지훈련 6주, 그리고 세계 주니어 대회 준비와 개최 기간을 포함하여 약 2주. 모든 일정을 끝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땐 내 손에는 우승을 상징하는 트로피가 함께였다. 더불어 학교는 한 학기가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한 후였고 말이다.

나는 다시 혼자만의 생활로 돌아왔다. 아니, 딱히 돌아왔다고 할 수도 없었나. 원래부터 혼자였고, 그날만 그저 특별했으니. 나는 쓴웃음을 흘리며 책상 위에 엎어진 생활을 이어 갔다. 나 혼자만의 시간. 나 혼자만의 공간. 이 책상 한 곳만이 학교에서 내가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처럼 느껴졌다.

학생에게 있어서 약 2개월의 시간은 짧지가 않았다. 내게 친근하게 말을 걸어 주었던 이들은 다시 어색해졌고 나 또한 다시 말을 걸 수가 없었다. 2개월이나 지나고서 어떻게 말하겠는가. 나 너희들이 말해 준 소설, 너희들이 공유해 준 그 소설 나 밤새우면서까지, 쉬는 시간 틈틈이 모두 다 읽었어. 라고… 어떻게 말하겠는가.

‘…….’

나는 조용히 엎드린 팔을 껴안았다. 그리고 어서 빨리 이 시간이. 홀로 따돌려지는 듯한 이 공간을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 지나길 바랐다.

그리고 시간은 느리고도 빠르게 흘러 나는 어느새 성인이 되었다.

‘잘했다. 이나야. 이대로 세계 챔피언까지 가는 거야.’

그리고 내 손엔 페더급 아시아 챔피언을 상징하는 트로피와 벨트가 들려 있었다. 나는 아빠의 격려를 받으며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피곤하다. 나는 뻐근한 몸을 주물렀다. 경기 일정이 끝났으니 이제 한동안은 휴식이었다. 그 뒤론 또 훈련의 나날이겠지. 나는 무감한 얼굴로 경기장을 나가기 위해 움직였다.

‘아, 이나야. 잠깐만 기다리렴. 지금 컨디션은 어떠니?’

옷을 갈아입은 후 저지를 걸치고 나오자 아빠가 그대로 나가려던 나를 불러 세웠다.

‘괜찮아요.’

챔피언전을 결정하는 무대라곤 해도 경기의 양상은 매번 달랐다. 예선전임에도 눈이 현혹될 만큼 치열할 때가 있는 한편, 결승전치곤 간결하고도 심심한 무대가 있기도 하는 법이었다. 이번 결승전은 후자에 속했다. 1Round에서 K.O.를 시킨 만큼 내 컨디션은 그리 무너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여상히 대답하자 아빠가 고개를 끄덕이며 좌석을 가리켰다.

‘그럼 한 경기만 보고 가자꾸나. 네게도 도움이 될 거다.’

나는 그 말에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돌아가서 쉬고 싶었지만 아빠가 그렇다고 하니 그런 거겠지. 나는 그리 생각하며 좌석에 앉았다.

‘이나 너도 들은 적 있을 거다. 이번 경기 상대는… 아, 말 끝나기 무섭게 나오는군.’

조명이 선수를 가리켰다. 동시에 내 눈에 비친 건 푸른빛이었다. 그리고 그 푸른빛이 짧게 흔들리며 당당한 미소와 함께 등장하는 한 선수가 있었다.

‘……저 사람은.’

알고 있다. 저 사람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 잘 봐 둬라. 이나야. 너와 체급이 달라 붙을 일은 없겠다만….’

아빠가 팔짱을 끼며 그자를 주목했다. 나 또한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바로 현재 3타이틀 챔피언인 정태이 선수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으니 이 경기를 똑똑히 봐 두도록 하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