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 빈자리 (1)
***
“이나는?”
“…오늘도 안 온 거 같은데.”
이혜인은 오늘도 등교하자마자 서이나를 찾았다. 하지만 그녀의 짝은 고개를 저었다. 이혜인은 그 소식에 힘없이 눈썹을 내리며 그러냐고 중얼거렸다.
오늘로 벌써 일주일째다. 저번 주는 아파서 요양차 그럴 수 있다며 넘겼지만 오늘만은 넘기기 힘들었다. 게다가 아무리 연락을 해 봐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보내는 문자가 많아지고 발신 기록이 많아질수록 그녀의 마음은 초조해지고 서글퍼져만 갔다.
‘경희도 요즘 안 나오고….’
안경희도 저번 주부터 학교를 나오질 않고 있었다. 서이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여기는 연락이 된다는 점일까. 바쁜 일이 생겨서 잠시 동안 학교에 나오질 못한다고 알려 줘서 다행이었다. 다만 문제는 서이나가 안 나오면서 보이는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찬영이도 지난주부터 이상하고.’
힐끔. 이혜인은 창가에서 앉아 있는 그의 옆모습을 훑었다. 이전에도 간간이 느끼긴 했지만 고찬영은 유독 말을 걸기 어려울 때가 있었다. 멍하니 창을 바라보고 있는 그 모습에선 묘하게 냉혹한 선이 그어진 기분이었다. 홀로 동떨어진 듯 구별된 모습은 선뜻 말을 걸기 어렵게 만들었다. 서이나와 관계되어 있을 땐 다가가기 쉬웠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그 벽이 너무 두껍게 다가왔다. 그럴 때마다 제 친구의 존재를 간절히 찾게 되지만 요즘만큼 절실한 적이 없었다. 그것은 같은 반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느낄 정도였다.
틈만 나면 반 아이들이 서이나의 안위를 제게 물어 올 정도니 오죽할까. 하지만 자신도 연락이 닿지 않아서 속이 썩고 있는 건 매한가지였다. 특히 몇 년간 봐 온 친구인데도 이렇게 연락을 안 해 주다니. 섭섭함을 넘어서 속상하고 화도 날 지경이었다.
“…집에라도 찾아갈까.”
허락 없이 방문하게 되는 일이 되겠지만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일주일 전에는 요양차 쉬었다 해도 현재까지 아무 소식이 없다는 건 불안을 야기시켰다. 이혜인은 힐끔 시계를 확인했다. 오늘은 야자를 선생님이랑 부모님 몰래 째는 한이 있어도 방문해 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 그것도 좋은 생각이네.”
“으악!!!”
친구들에게 막 분신을 만들어 달라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도중이었다. 누군가가 인기척 없이 다가와 이혜인에게 불쑥 말을 걸어 그녀는 기함하며 소리쳤다.
“깜짝이야. 너무 놀라는 거 아니야?”
“…나야말로 놀랐거든?! …어?”
반사적으로 대꾸하던 이혜인은 그제야 자신의 곁으로 다가온 이를 보곤 다시 한번 놀랐다. 그녀에게 말을 건 것은 다름이 아니라 방금까지 다가가기 어려운 분위기를 팍팍 풍기던 고찬영이었기 때문이었다.
“뭐, 뭐야. 왜 갑자기 말을 건 거야?”
이혜인은 얼떨떨하게 물었다. 고찬영은 그 말에 눈썹을 모으더니 퍽 속상하단 투로 툴툴거렸다.
“말이 왜 그래? 거참, 친구한테 말 좀 걸 수 있지. 너 진짜 전부터 나한테 너무 야박한 거 아니야?”
그건 내가 아니라 너겠지! 이혜인은 목 끝까지 반박할 말이 튀어나왔지만 끝내 꺼낼 배짱은 아직 없어 도로 꾹꾹 집어넣었다.
“…뭐, 아무튼. 무슨 일이야?”
퉁명스레 저를 찾아온 이유를 묻자 고찬영은 서운한 얼굴에서 금세 표정을 휙 바꾸며 태연히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이런 점이 불편한 거라니까. 좀체 속내를 가늠할 수 없는 태도에 이혜인은 그를 가는 시선으로 보며 속으로 툴툴거렸다.
“뭐긴. 방금 그 얘기의 연장선이지.”
“그 얘기?”
“집 가는 거.”
집? 아. 이혜인은 그제야 고찬영의 의도를 파악했다. 그럼 그렇지. 네가 이나 일로 날 찾아오지, 무슨 일로 오겠니. 이혜인은 질린다는 듯이 그를 보다가 뚱하니 얼굴을 구겼다.
“그게 왜? 그리고 이나 집은 나 혼자 갈 거거든?”
“그런 섭한 소리 하지 말고~. 그리고 그 전에 사전 정보도 좀 필요하잖아? 안 만나 주면 어쩌려고 그래?”
안 만나 준다. 이혜인은 찬물을 끼얹는 것 같은 그 말에 기분이 가라앉아 낯을 굳혔다. 그 생각은 전혀 해 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문을 열어 줄 거라 생각했던 이혜인은 설마 하는 마음에 그 말을 반박했다.
“그래도 내가 이나 베프인데, 설마.”
에이, 아니겠지. 그동안 지내 온 세월이 있는데 그럴 리가 없었다. 그리고 서이나는 의리 하나는 끝내주게 좋은 친구였다. 저를 외면할 리가 없었다.
“베프란 말은 공감해 줄 수 없지만, …뭐. 확실히 네가 나보단 더 잘 만나 주는 것도 맞을 거 같아서 기분 나쁘긴 하다. 아, 이런 건 대충 나중에 다시 얘기하고~!”
턱. 고찬영이 손을 휘젓더니 그대로 이혜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나랑 좀 같이 가자.”
“어? 어어어????”
그러곤 고찬영은 그대로 질질 그녀의 어깨를 밀며 어딘가로 끌고 갔다. 이혜인은 반항도 못 하고 손쓸 도리 없이 밀리면 밀리는 대로 힘없이 끌어가다 보니 당도한 곳은 어느 1학년 교실이었다.
“자, 잠깐. 난 여기 왜…!”
“뭐긴. 이왕 물을 거 친구님 행방을 가장 잘 알고 있을 사람에게 물어봐야지.”
이혜인이 반을 확인하자마자 창백히 낯을 굳혔으나 고찬영은 뻔뻔하게 웃으며 교실 문을 시원하게 열어젖혔다.
드륵-! 탕-!!
“이수 동생! 있나-!!”
꺄아아아아!!!. 이혜인은 모든 관심을 한몸에 받게 하는 인사법에 소리 없이 비명을 질렀다.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인 그녀에게 이런 인사법은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뭐야?”
특히나 서이수 앞에서라면 더더욱!! 이혜인의 낯이 부끄러움과 긴장으로 인해 불타는 고구마가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오, 있다, 있어. 동생 잘 있었어?”
“형이 덜 요란하게 등장했으면 더 잘 있었을 것 같은데.”
“하하, 얼굴이 썩 좋질 않은 걸 보니 너도 그닥이구나? 이거 잘됐네.”
아니, 뭐가! 뭐가 잘된 건데!!! 이혜인은 어처구니가 없어져 황당히 그를 보았다. 하지만 고찬영은 뻔뻔한 낯을 지우지 않고 서이수에게 다가가 그대로 서이수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자연스럽게 그를 끌고 왔다. 그러곤 다른 한쪽 팔을 이혜인에게 두르더니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자, 준비 끝. 가자.”
“?????”
“?????”
어딜? 당혹스러운 두 쌍의 시선이 한곳에 꽂혔다. 그러나 정작 시선을 받고 있는 당사자는 천연덕스럽게 하하, 하고 웃고만 있었다. 두 사람은 그가 쑥쑥 미는 힘에 얼떨떨히 끌려가다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잠깐, 잠깐만…! 갑자기 찾아와서 어딜 가는 건데!”
“마, 맞아 맞아!”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서이수가 그의 팔을 뿌리치며 간격을 벌렸다. 이혜인도 서이수를 따라 황급히 정신을 차리며 그의 품에서 벗어나곤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긴. 당연히 친구님네 집이지.”
“아, 친구님… 친구님? 잠깐. 형한테 친구님이면… 우리 누나잖아!!”
“응, 맞아.”
너무 태연한 긍정에 서이수는 순간 어디서부터 지적을 해야 될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뭐, 이런 뻔뻔한 인간을 다 봤나.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서이수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형이 왜 갑자기 날 찾아와 우리 집을 가려는 거냐고.”
하물며 점심시간도 아니고 아직 1교시도 시작하지 않은 시간임을 고려해 보건대 일러도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그야 당연히 친구님 보러지.”
하지만 그 문제는 고찬영이 전혀 신경 쓸 사안이 아니었다. 자퇴도 거리낌 없이 생각하는 그에게 그런 게 무슨 대수겠는가. 당연하다면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그 대답에 서이수도 말하고 나서 그의 화려한 전적이 뒤늦게 스쳐 지나갈 정도였다. 그동안 누나인 서이나가 저를 포함해서 상식을 집어넣어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만든 놈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걸 완전 잊고 있었다.
서이수는 새삼 서이나가 그간 만들어 낸 일들이 다시 다가왔다. 그리고 동시에 집에서 마주한 그녀를 떠올리며 서이수는 얼굴을 가라앉혔다.
“…그거라면 그냥 포기해.”
“음?”
“어?”
고찬영은 서이수의 말에 눈썹을 살짝 휘었다. 이혜인은 생각지 못한 말에 놀란 듯 서이수를 보았다. 서이수는 잠시 혀를 차더니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헝클였다.
“나도 요즘 누나 얼굴 보기 힘들단 말이야.”
같은 집에서 사는데 이게 말이 돼? 서이수는 제가 말하고도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흘렸다.
“얼굴이 보기 힘들어?”
“그래. 마주쳐도 뭔가 정신이 딴 데 팔린 것 같고… 내 말은 무시하기 일쑤고! 진짜 내가 얼마나 화가 난 줄 알아? 근데 저번 주말부터 갑자기 훈련을 시작하질 않나, 아빠는 거기에 대해서 아무 말도 없고!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서이수는 정말 환장할 지경이었다. 체육 대회가 끝나고 가기로 했던 정형외과에 갔더니 누나랑 아빠는 코빼기도 보이질 않아 집으로 돌아갔더니, 아빠나 누나 둘 다 얼굴이 잔뜩 굳어 있었다. 게다가 누나는 팔에 가벼운 깁스를 한 채 잔뜩 젖어 있어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당황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자신이 도착하기 전까지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굉장히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 둘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런데 누나가 저번 주말부터 그토록 거부하던 훈련을 시작했다. 아빠도 마치 당연한 것처럼 그 훈련을 코치했고 말이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제가 얼마나 얼이 빠졌던지. 하지만 아무리 왜 그러냐고 닦달해도 두 사람은 여전히 자신에게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에 서이수가 불같이 화를 낸 건 자명한 일이었고, 현재 진행형으로 그는 두 사람에게 잔뜩 배신감을 느끼는 상태였다.
“언제부터?”
한껏 뾰로통해서 투덜거리고 있자 잠자코 얘기를 듣던 고찬영이 불쑥 물었다. 서이수는 그 질문에 투덜거리던 것을 멈추곤 눈을 몇 번 깜빡이다 찬찬히 입을 열었다.
“어… 저번 주, 아니, 체육 대회 날부터?”
“…체육 대회.”
고찬영은 그 말을 조용히 되뇌더니 이내 해사하게 웃었다.
“더더욱 만날 이유가 생겼어.”
“뭐?”
“자, 가자. 동생. 아, 혜인이는 안 와도 될 거 같아.”
“어? 자, 잠깐. 나는 왜?!”
이혜인은 때아닌 봉변 같은 말에 곧장 반박했다. 마치 필요하듯 데려와 놓고 갑자기 내팽개치는 게 어딨는가! 자신도 이나를 보고 싶다고 항의하자 고찬영이 싱긋 웃었다.
“이야기가 조금… 과격해질 수도 있을 거 같거든.”
그래도 괜찮겠어? 웃는 그의 얼굴을 마주하자 이혜인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과격하다니. 대체 뭐가? 그녀는 묻고 싶었지만 올라가 있는 입가와 다르게 싸하게 굳어 있는 눈매를 보곤 입을 다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