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소에 갇혀버렸다 !-265화 (265/306)

265. 빈자리 (8)

오소소. 순식간에 등골엔 한기가 차올라 등골이 쭈뼛 섰다. 나는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그 생각이 맞았음을 직감할 수밖에 없었다.

어, 여기 장르 원래 스릴러였나?

오, 미친. 나 그 장르 엄청 약한데. 나는 잠시 현실을 도피하듯 눈을 흐리며 뻘 생각을 떠올려 보았지만 눈앞에 있는 장면은 도무지 바뀌질 않았다.

제 성격까지 다 죽여 가며 이렇게까지 구는 건 대체 뭔가. 내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라고 이래. 나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머리가 꼬이는 상황에 두 눈을 질끈 감고 얼굴을 깊게 쓸어내렸다.

“…휘혈아. 내가 걔네들을 아끼는 건 그냥 그런 애들이라 좋았던 거고, 넌 그냥 너대로 살아. 무리하지 말고.”

하지만 차마 노력하겠다는 놈을 상대로 모진 말을 내뱉을 순 없었다. 정말이지, 얘를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

“괜히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

반휘혈은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매력적인 이였다. 저렇게 재수 없게 굴어도 싫지가 않으니 나도 웬만한 콩깍지 저리 가라 하는 수준이 아닐까 싶다. 이래서 이 녀석이랑은 되도록 더 멀어지고 싶었는데. 정말이지, 너나 고찬영이나 왜 이렇게 나를 혼자 두질 못해서 안달일까. 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씁쓸한 마음을 타이르며 나는 그의 행동을 만류했다.

“이제 진짜 우리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 그리고… 난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우뚝. 반휘혈의 몸이 설핏 굳었다. 그의 얼굴에 어려 있던 미소가 증발하고 차가운 표정이 감돌았다. 평소와 같은 그의 얼굴이었으나 이번에도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안엔 노기가 어려 있었다.

반휘혈은 입을 잠시 굳게 다물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곤 나를 똑바로 노려보며 성큼 내게로 다가왔다.

“누가 그래?”

서슬 퍼런 기색으로 다가온 그가 내 한쪽 어깨를 강하게 붙들었다.

“누나 멋대로 정한 걸 나도 동의했단 것처럼 말하지 마.”

“휘혈아.”

“난 그딴 말에 동의한 적 단 한 번도 없어…!”

반휘혈을 진정시키기 위해 그의 이름을 불렀으나, 그는 나의 어떤 말이든 거부하는 것처럼 고개를 강하게 저으며 소리쳤다.

“내가…! 내가 맞춰 준다잖아. 누나 좋아하는 모습으로 내가 바뀐다잖아…!!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안 되면…, 난, 난…!!”

덥석, 양어깨가 붙잡히고 그의 얼굴이 점차 다가와 지척에서 멈추었다. 저돌적인 그의 기세에 반응하지 못하고 굳어 있던 중 그의 낯이 아픈 것을 감내하는 것처럼 차츰 일그러지더니 이를 강하게 악물었다.

“말해 봐. 뭐가 마음에 안 든 거야?”

그러곤 고통스러운 것을 토하는 것처럼 아프게 말을 내뱉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 어떻게 해야 받아 줄 수 있어?”

툭, 이마가 맞부딪혔다. 아래로 내리깐 그의 눈이 앞머리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난 그냥 누나 옆에 있고 싶은 건데, 왜 이게 이렇게나 힘든 거야…?”

붙잡힌 어깨가 강하게 눌렸다. 감정을 겨우 억누르는 것 같은 애달픈 목소리가 그에게서 울렸다.

“내가… 가족이 아니라서?”

“!”

나는 그 말에 눈을 부릅뜬 채 고개를 퍼뜩 들어 올렸다. 그 탓에 이마가 떨어졌지만 반휘혈은 그저 붙든 내 어깨만 꽉 잡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억지로 결혼하잔 게 그렇게 싫었어?”

그의 얼굴이 서서히 들어 올려졌다. 그러자 가려졌던 그의 낯이 천천히 드러났다.

“그럼 내가 잘못했어…. 다신 안 그럴게….”

그리고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울음으로 잔뜩 젖은 얼굴이었다.

‘…또.’

또다. 또 이 표정이다. 처참히 무너진 듯한 그 고통 어린 얼굴을 마주한 건 이로써 두 번째였다. 정태이와 싸운 뒤 집 앞에서 마주친 날, 엘리베이터가 닫히기 전에 보았던 그 얼굴이 또 내 눈앞에 있었다.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이 너무 애달파 보여 보는 것만으로 심장이 조여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둔해지고 멍해진 머리에 선뜻 어떤 반응도 못 하고 있자 그걸 반휘혈이 어떻게 해석했는지 그 낯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러니까 나 버리지 마. 나는, 난…”

그의 호흡이 일순 멈춘 것처럼 막히었다. 그 괴로워 보이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긴장하며 손을 움찔거릴 때 반휘혈이 제 목을 죄듯 감싸더니 토해 내듯 뱉어 냈다.

“난…! 난, 누나가 정말 좋단…, 말이야.”

눈이 부릅뜨였다. 한순간에 머리가 멍해졌다. 예상치 못한 그의 말에 내가 어떤 반응도 못 하고 굳어 있던 때였다.

사락.

엇.

내 귀로 이질적인 소음이 들려왔다. 그것은 무언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였다. 반사적으로 뭐지, 싶은 순간 동시에 불투명한 무언가가 시야에 걸렸다. …저건,

‘사…슬?’

저게… 뭐야? 당황스러움에 곧장 고개를 내저으며 눈을 감았다 떴다. 그러나 눈꺼풀이 들어 올려졌을 땐 그것의 형체는 환각이란 것처럼 사라져 있었다.

‘환각…?’

하지만, 그것은 반휘혈에게 붙어 있었던 것 같아 섣불리 단순한 착각이라고 단정 짓기 힘들었다. 찰나였으나 너무나도 불투명했던 그것의 정체는 어딘가 석연찮았다. 방금 그것은 대체 무언가. 어디서부터 어디로 이어진 건가. 그러한 망연한 생각이 꼬리를 물때 쿨럭, 잔기침을 토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초점을 맞추자 눈앞엔 제 목을 부여잡으며 겨우 숨이 통한 것처럼 거친 숨을 토해 내는 반휘혈이 있었다.

그 통증이 어린 듯한 모습에 눈이 빠르게 깜빡여지면서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설마.’

그 사슬이 반휘혈의 목에…? 그 가정이 들자 나는 황급히 그에게 다가가 반휘혈의 손을 치워 내고 그 목을 살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살폈지만 반휘혈의 손자국만 있을 뿐 어떤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닌 건가.’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만, 어째선지 자꾸만 찝찝한 기분이 남아 있어 나는 좀체 그의 목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살폈다.

“…아.”

“…….”

그러다 딱, 하고 반휘혈과 시선이 마주쳤다. 눈물로 잔뜩 젖은 그 얼굴이 선연히 보이자 나는 흠칫 몸을 굳혔다.

아, 미친. 이러면 안 되는데. 이제껏 잘 쳐 내다가 얘가 아파 보이니까 바로 나서는 것 봐. 나는 모질지 못했던 자신을 타박하며 슬쩍 눈을 굴리며 몸을 뒤로 물리었다.

“그, 방금은 네가 너무 아파 보여서… 어, 건강은 중요한 거니까! 아, 아프지 말고. 흠흠.”

“…….”

멋쩍게 헛기침을 하며 딴청을 부리듯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계속 얼굴에 닿아 오는 집요한 시선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결국 나는 무시하는 걸 멈추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기, 휘혈아. 네가 착각한 게 있어. 난 네가 싫어져서 그러는 게 아니야.”

아, 이젠 모르겠다. 모질게 끊어 내 보려 했는데 도무지 나랑 안 맞나 보다. 일부러 멀어진 이유에 대해 말을 안 했지만, 정말 이 녀석이 어디까지 사고가 튈지 도무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녀석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고하기로 했다.

“…그렇게 됐으니까, 기다리지 않았으면 해서 멀어진 거야.”

체육 대회 날에 정태이와 있었던 일과 그로 생긴 내 목표를 얘기해 주자 내 이야기를 잠자코 듣던 그의 표정이 모호하게 굳어졌다. 이야기가 끝났음에도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그의 침묵이 무거웠다. 무언이 길어질수록 내겐 어색함이 찾아왔고, 결국 그 멋쩍음을 달래지 못한 나는 뒷목을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아무튼… 그런 거니까, 그때 동안은 그냥 날 잠시 내버려,”

“싫어.”

그러자 단칼에 말이 잘렸다. 지나치게 단호해서 순간 입이 다물어졌다. 그 머뭇거림을 놓치지 않은 반휘혈은 정색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겨우 그딴 걸로 멀어지려 해?”

“그딴 거라니….”

나한텐 완전 중요한 일인데! 내 인생의 목표였던 게 눈앞에 있는데 어떻게 외면할 수 있어?! 나는 할 말이 많았지만 할 수는 없어 억울한 시선으로 그를 보았다. 하지만 반휘혈은 울어서 붉어진 눈두덩이를 꾹꾹 누르며 눈가를 가렸다.

“진짜 어이없어. 짜증 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내가 누구 때문에 잠도 못 자고… 하아, 시발.”

억. 흔치 않은 그의 욕설에 나도 모르게 놀라 버렸다. 그만큼 날이 잔뜩 서 있는 그의 감정이 여실하게 닿아 오는 기분이었다. 힐끗힐끗 눈치를 보고 있자 반휘혈이 얼굴을 부루퉁하게 구기며 말했다.

“미안하긴 해?”

“어, 음…. 그… 뭐….”

이번만은 내 쪽의 잘못이 확연했기에 정말 할 말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어영부영 넘어가는 것도 좀 그런데. 사과를 해야 되는 건 맞는데 제대로 사과를 하게 되면 내 원래 계획이 틀어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선뜻 입을 열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으니 반휘혈이 숨을 짧게 내쉬곤 한 팔을 벌려 손짓했다.

까딱까딱. 마치 오라는 듯한 저 오만한 손동작은 무언가. 떨떠름히 보고 있자 되레 반휘혈이 답답하단 것처럼 얼굴을 가리던 손을 내리며 나를 노려봤다.

“미안하다며.”

“…나 아직 그 말 안 했,”

“미안하다며.”

또 말이 잘렸다. 그는 반박은 받지 않으려는 듯 단호한 시선으로 다시 손짓했다.

“나 위로 안 해 줄 거야?”

아니, 이 뻔뻔한…. 저 말의 의미와 행동의 뜻을 알기에 나는 황당한 시선으로 그를 보았다.

“안 해 주면 나 사고 칠 거야.”

하나 반휘혈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내게 협박까지 시도했다.

“뭘 할지 궁금한 게 아니면 빨리 위로나 해 줘.”

까딱까딱.

어, 왜 짜증 나지? 근데 저 말을 무시할 수 없어서 더 골이 당겨 온다. 게다가 왠지 모르게 저 녀석 마왕이란 별명도 같이 떠올랐다. 나는 얼굴을 떫게 구기며 녀석을 노려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반휘혈, 나 너 못 챙겨 줘.”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그에게 경고했다.

“나 너랑 연락도 안 될 거라고.”

관계란 건 일방적인 순간 힘들어진다. 지금은 이렇게 대화를 하고 있어도 내가 그에게 다시 소홀해질 순간부터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그게 염려가 되었다.

“분명 지칠 거야.”

그리고 난 그 모습을 지켜볼 자신이 없었다.

“그건 내가 결정해.”

그런 내게 반휘혈은 단호히 반박했다. 그리고 얼굴에 힘을 주며 두 팔을 벌렸다.

“자.”

빨리. 무언의 독촉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진짜 고집 더럽게 세다, 너도.”

나도 한 고집 하는데 말이야. 씁쓸하게 미소 짓던 나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녀석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소원대로 그 품을 안아 주었다.

“내가 졌다, 망할 동생 놈아.”

하여간 내 동생들은 왜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지 모르겠네. 나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금세 떨어지려는데, 몸이 기우뚱 기울였다.

“어, 어…?! 잠…!”

풀썩-! 갑자기 묵직하게 쏠리는 무게에 방심하고 있던 내가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져 버렸다. 다행히 뒤쪽은 침대라 가벼운 충격을 알려 와 큰 불상사는 피할 수 있었다.

“아이고….”

그래도 안 아픈 건 아니다. 더럽게 무거운 자식 같으니…. 나는 입을 삐죽이며 속으로 작게 투덜거렸다. 비키라고 하고 싶었지만 이제야 편안한 얼굴을 하는 녀석의 옆얼굴을 마주하곤 그 소리는 쏙 들어가고 말았다.

‘이젠… 어쩌지.’

이 뒤는 생각 안 했는데. 원래 계획이 제대로 틀어졌다는 막막한 마음에 숨을 작게 내쉬며 두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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